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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S] PC 17K Counseling Your Church

PC 17K  Counseling Your Church


2003년 1월 7일(화)
웰치 교수 강의, 김 준 목사

공공장소에서 섬기는 문제,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성경적 상담의 문제, 한국에서의 성경상담의 적용 요구.
상담은 개인만이 아니다, 신학적인 용어가 아니다. 상담은 이미 설교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좁은 의미가 아니다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인 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상담은 우리의 가지고 있는 문제를 성경적으로 살피는 것을 말한다. 적용을 말할 때 5분동안 친구들과의 대화도 적용된다.

한국에서서 상담은 친구 사이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가정심방에도 포함된다. 그리고 가르치는 설교 사역에도 관게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이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사용할 때 성경적 상담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요구한다.

미국에서는 상담이 개인 대 개인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상황은 다르다. 상담의 대부분이 강단과 사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프로젝트가 사역과 설교에 관계가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를 생각할 때 강사에 염려하지 말고 우리 사역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문화는 권위주의, 미국은 평등주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서로 평등한 관계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원한다.

미국 문화에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상담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특별히 상담의 독특한 특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어떤 세대간에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특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현재에 있어 독특한 문화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상담이 적용되기 원한다.
미국문화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아있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의 주제는 현대문화와 관계있다는 것을 나누고자 한다.
미국문화가 한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제이 아담스와 CCEF와의 관계와 다른점.

제이 아담스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기를 원한다. 칼빈의 메타포로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안경이 되어야 한다. 2003년에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칼빈시대에는 너무 독특한 일이었다. 이것이 제이아담스와 CCEF와 다른 점이다.

아담스는 성경적 모델을 만들고자 햇다. 그러나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시에프에서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성경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다른 점은 CCEF에서는 사람의 동기 즉 마음에 대한 관심이다. 아담스는 거기에 대해 거절했다. 
아담스는 렘17에 나오는 오염된 마음이기 ㄸㅒ문이다. 그러나 CCEF는 마음이 우리 인간의 모든 것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죄의 속성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성경이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경신학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상담의 모든 주제는 그리스도이다.

아담스는 성신을 반대하고 조직신학을 두기로 했다. 아담스는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지 않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리스도 중심은 아니었다. 아담스 활동 때 교회의 주제는 자유주의였다. 그래서 아담스의 주제는 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전통이고 저쪽은 적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에는 적이 있었다. 지금은 선을 그어놓고 전쟁을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을 끌어 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미국 상담의 주제

풍성한 기독교 상담의 역사가 있다. 불행히도 그 역사를 볼 때 청교도의 글을 볼 때 상처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볼 수 있다. 1900년도에 와서 그런 전통을 잊어버렸다. 1920년도 들어와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자유주의와의 전투였다. 미국 교회들이 학문적으로 돌아갔는데 자유주의와 전쟁을 했다.
 
1920-50사이에는 좋은 상담자료를 얻을 수 없다. 1940-1960의 교회 관심은 성경과 세상종말이었다.2차, 한국전쟁, 냉전시대가 종말론 사상을 열망하게 한 것이었다.

성경에 관한 그런 전쟁은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종말론 논쟁은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도와줄 수 없다. 고통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두 가지 논쟁은 어려운 사람들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의 주제가 교회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그래서 세속적인 심리학을 교회로 끌어들였다. 2차대전 중 미국은 수만 명의 심리학자들을 전쟁에 끌어들인다.
정부의목적은 심리학 이용하여 사람분류하고, 어떻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였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전쟁에 도움될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에 이들이 다뤄야 할 사람들은 퇴역 장병들의 정신 문제였다.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그들을 도와줄 시설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리학자들이 세속적인 일을 돕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사람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교회는 교리에대해 말하고 있지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여 들였다. 교회에서 돌봄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심리학자들의 돌봄을 받았다.

상담은 모든 문제를 은밀하고 긴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반박자들은 교회안에서 살았지만 교회 안에서는 돌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세속심리학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세속적인 심리학자들은 자기들 안에 해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교회는 목회상담을 받아들이고 있다. 최소 10년 이상 세월이 걸릴 것이다.


-미국의 치료문화

문화의 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해를 위해 어디로 가는가?
1820년 극단적인 아이디어. 사람들의 변화에 대해 관심과 극단적인 개인주의 창궐로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문화도 극단적인 것을 유지할 수 없다.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문화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미국 문화는 자기 희생, 섬김에 있다.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 밑에 존재하는 것은 그 섬김은 내가 좋아지는 것이다. 개인주의를 ㄲㅒ는 데는 아직 문제가 많다.

아담스가 글을 쓸 때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것은 하라는 것이었다. 심리학자들로부터는 선과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20년전 미국의 신문은 이혼하라고. 충족되지 않으면 그렇게 하라고 그랬다. 그러나 지금의 TV는 인생은 원래 힘드는 것이니 극복하라고 한다. 문제는 바로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바뀌지 않는 문화는 자격증의 문화이다. 내가 필요로 할 때 나를 채워달라는 것이다. 율법적인 문화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자기 이익에 대해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기 컨추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자기가 필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할 수 없는 문화이다.

첫째는 반지의 제왕이다. 두 영화가 변화되는 미국 문화를 대변한다. 이것은 고립된 개인이야기가 아니다. 해리 포터는 두 친구에 의해 둘러쌓여 있다. 반지제왕의 포드는 주변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선과악의 전쟁이 존재. 사람들을 이해하게 만들고 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는 나보다 더 큰 것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큰 질문을 가지기 원한다. 드라마틱한 사건을 원함.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상담이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데 앞장서서 할 수 있다. 상담은 여러분의 인생와 삶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연관짓고 있기 ㄸㅒ문이다. 우리의 삶보다 더 큰 소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말씀을 증거하는 대사들이다. 우리보다 더 큰 말씀을 증거하는 / 성경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노트 그림

기독교 상담- 넓은 영역, 성도가 상담을 하면 그것도 기독교 상담이다. 한국에 기독교 상담이 있기 때문이다. 상담과는 다르다. 기독교 상담은 상징이 있다면 통합이다. 함께 한다는 것. 기담은 세속적 심리학을 이용하여 교회에서 이용하자는 것이다. 결론은 성경과 심리책을 동시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기독교 상담의 두 복음을 발견, 하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주는, 용서해 주는 복음, 심리학의 복음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으냐이다. 기담은 이 두 가지의 다른 책을 결합, 결혼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기독교 상담에서이다.

우리는 심리학에 대해서는 알고있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잘모르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적인 욕구를 알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이 성경적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을 잘 하려면 주석을 사용해야 한다. 주석, 성구사전 등을 찾을 수 있다. 용서, 구원등....주제를 찾아 성구를 말하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성경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조울증, 알코올 등...다면적 인견자등. 기독교 상담은 성경적이고는 하지만 그것을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상담의 변화가 있다면 세속적인 심리학에 관심을 잃어버리고 정신의학에 간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국 사람들은 약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뇌의 문제, 정신 분열증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상담은 정신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상담의 특징은 자기들이 개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현재의 기독교 상담은 세속적인 심리학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람중심이다. 근본전제를 부술 수가 없다. 그리스도 중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계속된 문제는 내가 어떻게 기분이 좋아지느냐이다. 또한 어떻게 하면 내가 몸과 영혼이 속해 있는 그리스도를 잘 섬길 수 있느냐이다.
또한 기독교 상담의 약점은 성경은 오직 한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상담은 사람을 볼 때 전인격적으로 함께 보아야 한다. 사람은 바로 감성적, 그 안에 인지적이고, 행동을 가지고 있고, 신체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적인 존재이다. 이런 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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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목회 상담가이기 ㄸㅒ문에 영적인 문제만 언급할 수 있다. 영적인 문제안에는 구원의 문제가 축소되어 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독교 상담은 개인적인 죄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적 상담은 단순하다고 한다. 구원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믿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 이후에 사는 방법은 신학의 표현이다. 삶의 신학을 알기 원한다면 우리의 삶을 보면 안다. 두려움이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조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권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밖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바로 자기 삶은 독특한 신학적인 것을 전제하고 있다. 기독교 상담의 이런 인간의 전제는 인간의 3분설(몸, 영, 영혼)에 기초하고 있다.

 혼은 감정, 인지, 행동이 속해 있고, 육체적인 문제는 의사에 관계, 영적인 문제는 목사에게 가야 한다. 정신적인 문제는 심리치료사에 가야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혼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인생의 고통은 혼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관계, 정신문제는 정신분야에 속해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3분설이 기인한 것이 기독교 상담가의 신학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신학이 항상 잘못된 삶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바로 즉시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시대에 상담이 다루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결팝된 영적 문재를 다루고 싶어한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상담의 사명은 무엇인가? 상담의 특징을 말하고자 한다.

*성경적상담의 특성이 무엇인가? 미국 문화를 생각할 때.

첫째는 성경의 충분성이다.
이는 성경의 필요성이다. 우리의 진실은 성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책의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면 우리는 장님이다. 성경은 우리의 안경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과학은 세상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관찰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아니다. 잠언서는 말하기를 창조를 공부해야 하고, 모든 지식이 근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목적이다. 진실된 것은 말씀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단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세상의 여러 가지를 조금씩 볼 수 밖에 없는 장님에 불과하다. 계시에 대해서 말할 때 넓은 영역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 상담에서 말하는 것은 작은 분야에서만 말하고 있다고 한다.
상담에서는 말씀은 모든 영역의 문제를 포함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일할 필요가 없다. 요리책처럼 우리는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말씀은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할 일이 있다면 말씀이 말하는 넓은 영역에서 보는 것이다.

기독교 상담에서 말하는 영적 분야에서 말한다는 것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우울증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미국 문화에서 우울증에 걸렸다면 성경은 말하지 않고 정신적, 심리치료사들이 말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성구사전에서 우울증을 찾기 보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소망이 없고 가슴아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보았을 때 우울증만 아니라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세상을 보게하는 안경이라고 믿는다. 성경의 충분성을 믿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상담의 특성

중요한 강조점에 대해서 말하겠다. 이는 성경의 충족성이다.
성경책은 하나인데 또 다른 하나를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깊이 다루고 있다. 상담에 대해 좋은 안목으로 보고있다. 상담이 어떤 상담보다도 성경적이기 때문에 깊이 들어갈 수 있다.
행동에 대해 심리학은 동기를 찾으려 한다. 예를 들어 쾌락을 위해서 하느냐. 권력을 위해 하느냐 지배하기 위해 하느냐 안전을 위해 하느냐 이런 식으로 리스트가 나올 수 있다. 성경도 이런 주제를 가지고 다루고 있으나 더 깊이 다루고 있다. 기독교 상담보다 더 깊이 다루고 있다. 즉 깊은 동기에 가서는 하나님을 행한 동기가 있다. 이보다 더 깊은 동기는 없다. 이 주제를 배면 상담을 할 수 없다.

상담은 행동 자체보다 훨씬 더 깊은 동기를 다룬다. 즉 항상 우리는 언제든지 얼굴 앞에서 살고 있다는 동기다. 즉 두가지다. 하나님을 향한 동기든지 나자신을 향한 동기든지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예를 들어 성적 죄로 인해 싸우고 있다고 보자. 한국에서도 음란이 문제가 되고 있는가 인터넷으로 인해 저항할 수 없어 갈등을 겪고 있다. 이 사람이 와서 포르노를 보았다고 할수 있다. 우리는 멈추라고 할 것이다. 그런 포르노로부터 차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유혹을 끊으라고 할 수 있다.

세속적이 상담가들은 이렇게 접근한다. 즉 세속적인 상담가들도 나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을 자제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어떤 다른 상담가는 그 동기를 파고 들어가 왜 보느냐고 물을 수 있다. 표면의 동기보다 더 깊은 곳에 가서 동기를 알아보려고 한다. 어떤 동기가 있을 것 같은가? 외로움, 간접 만족, 등등...이것은 세속적인 상담가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런 동기를 찾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것이 없다. 비기독교인들인 상담가들이 쓴 상담책을 보면 성경적인 것은 없고 동기만 나온다. 상담에서는 더 깊은 것을 말하고 있자. 주님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그 관계 속에 나타나고 있는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신학이 포르노를 보느냐 아니냐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더 깊이 들어가 내가 하는 포르노가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향한 동기를 말할 수 있다.

첫째로 교만이다. 즉 하나님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내 스스로 왕국을 세우고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ㅉㅒ로 음란한, 정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꾸 더 원하고 원하는 탐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 내가 원하지만 아직 갖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포르노에 대해서 중심이 뭐라고 하느냐이다. 즉 마음이 원하는데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중심으로 볼 때 하나님은 존귀받으실만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람의 신학은 하나님은 나를 만족시켜 줄 분이어야 하는데 그분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가 불신이다.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부모에 대해서 보자. 예를 들어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불신으로 나가보자. 선하신 하나님이라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즉 율법과 목적 이외에도 좋은 것이 많은데 성경 안에 들어오니 좋은 것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 가지 동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 예를 들어 미국에서 법을 어기면 개인적인 문제로 보지 않는다. 65마일을 달리다가 경찰에게 티켓을 먹으면 누구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없다. 그러나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성경의 충족성은 모든 분야를 깊이 넓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깊이란 계시 때문에 성경이 아니면 더 깊이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성경 ㄸㅒ문에 더 깊이 파악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적인 상담의 관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만 찾으려고 하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찾으러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궁극적인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찾으러 하는 것이 상담의 특징이다.

세속적인 상담은 수평적이지만 상담은 삼각을 이루고 있다 , 즉 세 면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탐심이나 시기심으로 갈등을 가지고 있다고 보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것이 생길까? 더 깊이 들어가면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하고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너무 인색하여 나에게 더 많이 주지않는다는 것이다. 관대하지 않으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즉 성경 자체에도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다루고 있다. 야고보서 4장에 나온다.

;예를 들어 다투고 논쟁을 했다고 하자. 성경은 싸우지 말라고 하지 않는데, 더 깊은 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관계를 찾아 보고자 한다. 약4:4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간음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몰고 들어가고 있다. 어떤 상담가는 통신의 패튼을 바꾸라고 한다. 대화의 모델을 바꾸면 해결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논쟁과 다툼의 원인은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불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은 네가 네 자신의 소원을 너무 높게 올려 놓았기 ㄸㅒ문에 그 주먹을 하나님을 향하여 올려 놓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네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하나님의 소원을 올리지 않고 자신의 소원을 먼저 올려 놓았기 때문에 이것만 바꾸면 인간관계도 해결된다.

; 민14:에 보면 세상사람들이 하는 것 똑같이 하고 있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니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있다. 모세와 아론에게 나타나 하나님을 향해 불평한다고 하나님이 말하고 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의식하고 불평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의식적으로 불평한 것은 모세와 아론에게 한 것이다. 하나님을 의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에게 더 깊은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경멸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모델을 똑같이 사용한다면 어떤 사람이 불평하면 불평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먼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근본적인 문제는 나의 소원은 내가 당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섬겨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기독교 상담에서도 물론 상담이 너무 낮다고 비판한다. 일리가 있다. 어떤 때는 상담할 때 하지 말아라고 말할 때도 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 그만먹고 정신차리리라고 할 수 있다. 상담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상담은 더 깊이 들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담의 특징은 충족성이다.

두 번째로는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권, 성경제일주의 등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의 기독교 상담의 중심은 사람이었다. 내가 내 자신의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였다.
기독교 상담이 왜 사람중심이었는가? 소요리 문답1문에 중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다른 분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면 금욕주의가 되고 인생이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신앙은 기쁨의 신앙일까?
소요리문답에 보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얻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기쁨의 신앙일까. 상담에 있어 개혁주의 신앙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 첫 번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우리 가운데서 높여드릴 수 있느냐 이것이 상담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인생을 즐기고 기쁨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즐길 수 있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존재다.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 복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잠언서를 보면 지혜를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지혜는 쾌락을 말한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신학을 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웰치 교수가 상담을 즐기는 이유?
다른 사람에게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주면서 만난다. 예를 들어 죄를 말할 때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한다. 죄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추하고 어두운 것이다. 그러나 죄라는 것을 복음으로서 극복해 나가는 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것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죄에 대해서 책망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그 시간은 축제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는 시간이기 ㄸㅒ문이다.

두 번째는 기쁨과 아름다움의 신학이다. 이것은 은혜의 신학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개혁신학을 죄의 신학이라고 한다. 물론 죄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우리가 마주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상담은 이렇게 개혁주의 신학에서 나와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을 엄격한 신학으로 본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큰 차원의 신학이 아닌가? 미국의 신학이 너무 인간중심이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으로 바뀌어야 한다.
 
세 번ㅉㅒ는 사람에 대해 정확한 신학적인 평가에 대해 헌신한다. 기독교 상담은 영과 혼과 육으로 나눈다. 사람을 이렇게 나누다 보니 사람의 인격의 한 부분만 다루고 있다. 영은 한 부분이 아니고 전부를 다루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모델을 개발했는데 우리는 두 개의 혼합체이다. 몸과 혼 또는 마음 또는 영이라고 할 수 있는 혼합체이다.

이제 두 번째 패턴으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즉 마음 혹은 중심이 인간의 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중심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너는 누구를 섬길 것이냐의 문제다. 우리의 중심이 사람의 방향을 바꾸어 버린다. 중심으로부터 죄가 나오든지 순종이 나온다. 상담의 초점은 중심에 있다. 상담의 중점은 행동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바꾸라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는 혼이다.
; 고후4:16이 근거다. 겉사람과 속사람을 말하고 있다. 육체와 혼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봐야 한다. 기쁜소식이 하나있다. 병들면 육체는 늙어지지만 중심은 더 아름답고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상담의 특징은 사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을 3분법으로 보기보다는 2분법으로 보는 것이 훨씬 성경적이다. 인간의 중심은 액티브하고 예배해야만 하도록 되어 있다. 능동적이라는 것은 항상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 중심은 누군가에 대한 예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의 초점은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구를 예배하느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진정한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우상을 경배하느냐의 문제였고, 신약에서는 진정한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자신의 소욕을 경배하느냐의 문제이다.

상담은 바로 인간의 다른점은 어디에서 나타나느냐하면 그 중심에서 누구를 경배하느냐에 달려있다. 인간의 상이점은 바로 여기 중심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과 아담 안에 있는 사람과 나눈다. 누구안에 있는냐 따라서 비슷하냐 틀리느냐에 따라 구별된다. 아무리 변태적이고 이상한 사람이라도 문제는 하나이다. 그 중심이 누구를 향하고 있느냐이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요점이다.

산상수훈은 두 가지로 사람을 나누고 있다. 예를 들어 너는 살인자고 나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살인을 확대해서 살인자의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정신병리학적으로는 사람을 두 가지로 나눈다. 즉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나눈다. 우울증이냐 아니냐로 나눈다. 이것은 의학적인 사고로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의 중심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사람은 똑같다는 것이다. 인간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당신에게 말하는 성경이 나에게도 말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 다중적인 성격의 인간을 알고 있는가? 예를 들어 과거에 행한 일을 지금은 잊어버리고 있다. 예ㄹㅡㅎ 들어 차분하게 말하다가 갑가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서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또는 화가 났는데 오히려 더 조용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문화에 따라서 인간도 달라진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와 다르다고 본다. 사람을 만나면 너는 다중적인 성격자이냐 하여 너는 성경과 상관없다고 제쳐 놓아 버린다. 다중적 성격의 사람은 성경사전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만이 그 사람을 정확하게 보게 해 준다. 성경 때문에 그 사람을 멀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가서 그 사람을 도와준다.

처음 만나면 그 사람 귀신에 들렸구나 하게 된다. 갑자기 성격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부한 것에 따르면 이 사람을 귀신 들린 사람으로만 볼 수 없다. 귀신 들린 것은 그 사람과 나는 근본적으로 틀린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람을 그렇게 보려고 한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상담을 하러 왔는데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우리도 두려워지게 된다. 어떤 사람은 분노에 찬 사람이 올 수도 있다. 우리들 마음에도 분노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가? 죄책감에 떠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누구이냐에 대해서 말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날 때 그런 사람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 사람의 감정의 덩어리를 다른 이름으로 명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정상적으로 볼 때 사실은 모든 사람은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상담을 할 때 어느 방향에 두고 하느냐 중요하다. 두가지이다.

첫째는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간에 이야기 하는 것이다.
불안한 사람이면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된다. 두려움이면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면 된다.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다. 죄문제를 가지고 할 수 있다. 즉 죄와 정죄받는 것에 대해서 성경이 많이 말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 복음의 능력으로 그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다. 복음 진수를 가지고 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보통 사람의 이야기로 듣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분노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죄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 당신이 분노를 가지고 있군요, 하나님에 대해서도 주먹을 들고 대드는 사람같이 보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분노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분노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 인간에 대한 분노를 가진 사람도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귀신들린 사람들에게도 귀신들렸다고 보지말고 하나님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분노보다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네가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에 대해 너는 분노하고 있음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적인 상담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상담은 해 주어야 한다.

-다중적인 성격자에 대해서는 사탄이 너를 하게 한 것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강조해 주어야 한다.

그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네가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국은 네가 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분노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또 한가지, 당신은 결국 그리스도를 찾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우리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다른 소원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과 다른 면이 없다. 그런 똑같은 행동은 하지 않지만 단지 자제할 뿐이다. 화가 나면 나는 차가워지는 것이고, 그 사람은 뜨거워지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나는 내 방식으로 참아보는 것일 뿐이다. 단지 마음으로 화를 내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죄의 속성은 감추는 것이다. 3개월정도 기간을 주고 내 마음에 어떻게 마음이 있는지를 살피면서 기도하게 하라. 그런 분노는 어떤 내재적인 것이 밖으로 표현된 것 뿐이다.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 얼마든지. 내 자신의 교만이 분노케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네 보다 낫다는...이런 것들이 살인적인 분노의 모습들이다. 즉, 인격적으로 접근해서 우리 모두는 같은 사람임을 전제하고 가야 한다. 그래야 상담이 된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일 중의 한 가지를 이야기 해 보면 이렇다.

십대에 자기 자해를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허벅지 같은 곳에 칼을 가지고 해를 입히는 아이들이 많다. 예를 들어 자해행위한 아이의 부모가 와서 보고할 수 있다. 성경에는 자해행위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 어떻게 하라고 하는 곳은 없다. 그 아이를 만나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은 그런 모습까지고 비추어주고 있다. 그 아이나 나나 사실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첫째 친해져야 한다. 네가 한 행위를 알지라고 물어보라. 우리 중심에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데 너도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른다는 것은 네 중심에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냐? 자동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것이 성경적으로 사람을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자해하는가? 무슨 목적으로?

성경을 몇 가지로 이야기 하고 있다. 너는 언제 그런 것을 자르느냐? 마지막으로 자를 때는 언제이고, 그때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자르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그는 분명 목적이 있다. 왜 틴에이지 걸들이 자기를 자르느냐? 이다. 부모를 자르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가까운 언급은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 자해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 심판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카타르시즘이라고 한다. 은혜가 중심이 되지 않는 곳에는 항상 그런 자해행위가 나온다.

기독교외에는 모든 종교에는 신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피가 나올 때까지 자해를 한다. 꼭 피를 봐야만 한다. 그런데 그아이들이 말하기를 피를 보고나면 이제 나는 ㄲㅒ끗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를 성경적을로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해를 하면서 자기를 벌하면서 하나님께 하나님 되었지요 이만큼 하면...이렇게 하면서 회개한다는 것이다. 또는 자기 고통을 자해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 자체도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는 것이다. 내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께로 나가지 않고 자기 스스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자해 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흔한 이유만 살펴 보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성경적인 빛을 통하여 그의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 자해를 한 아이도 우리와 같은 아이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 중심에는 항상 율법주의가 있다. 즉 인간 중심에는 은혜와 그 다음것으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지적했다. 은혜만이 아니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무엇인가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복음적으로 무엇인가 답을 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지라도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해야 전제해야 한다.

<질문들에 대해서>
*귀신들린 사람에 대해서 접근할 때 축사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귀신을 쫓아 낼 생각부터 하지 말고 성경으로 복음을 말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귀신들린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다. 귀신에 잡힌 것도 귀신이 그 사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능동적으로 귀신에게 잡혀 들어간 것이다. 그 마음의 중심이 능동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도 축사를 하셨지만 그것은 사탄의 세계에 천국이 임하여 들어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 외의 신약에는 축사의 언급이 없다.
귀신과 축사를 인정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회개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강의

1. 교회에서의 상담
2. 개인 상담을 다루겠다.
오늘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성경적 상담에 대하여 말하겠다. 그 독특함을 말하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사역에 대하여 말하겠다.
  내일은 폴 트립이 와서 설교와 상담학의 연관성에 대하여 말하겠다. 대부분은 강단에서 하는 상담일 것이다. 설교자로서의 상담에 대하여 말하겠다.
목요일에는 비슷한 주제를 말할 것이다.
금요일에는 스미스가 와서 성경의 이야기와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말하겠다.
  두 번째 주간에는 개인적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겠다. 결혼과 상담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말하겠다.
다음 화요일에는 의학과의 관련, 뇌졸중, 치매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정신질환의 문제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신체 질병과 상담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수요일에는 그 다음에는 프로젝트에 대하여 발표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모두가 프로젝트에 대하여 발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요일에는 서로의 생각을 요약하겠다.

  성경적 상담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성경적 상담에 설교를 포함하고 있는 거을 알고 있을 것이다.
“칭의”라고 할 때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 상담은 더 많은 의미와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티타임에 성경적 상담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여자들의 대화에도 이루어지고, 심방에도 이루어진다. 가르치는 사역에도 이루어진다. 성경적 상담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말하겠다.
  미국에서는 성경적 상담이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강단의 설교와 목회사역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적용되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생각할 때에 강사를 기쁘게 하지 말고 여러분들의 목회 유익의 관점에서 다루라.
어떻게 학습이 이루어지는가?
  가르치는 강사들은 여러분들이 귀한 목회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학습을 하나의 교회로 생각하고 싶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관찰이나 생각들을 주저 없이 말해주라!
  한극문화는 권위주의의 관계이나 미국은 평등한 관계에서 나누게 된다. 그러므로 평등한 관계에서 나눔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이 시간에서 미국문화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가를 알아 보겠다. 그것이 상담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겠다.
현재문화에서 성경적 상담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을 말하겠다. 어떤 생각이 특별한 문제에 대하여 영향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미국의 독특한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 상담학이 대응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권위를 가지고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대문화와 관계되는 것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오후에는 한국문화에서 어떤 것을 다룰지를 말하겠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전통과 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겠다. 어떤 것이 성경 적인 말씀에서 조명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두 가지 주제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
세상이 문화들이 세계화되어 있고 미국문화들이 점점 한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제이아담스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기를 원한다. 칼빈의 메타포를 이용하면 말씀이 우리의 삶의 모든 관점이 되기를 원한다. 칼빈시대에 그것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이 제이 아담스와 CCEF가 하는 상담의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계속해서 연구되고 계발되어야 한다. 이것이 CCEF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점은 렘17장에서의 마음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의 신비는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성경은 많은 부분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제이 아담스는 마음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을 거절하였으나, 현재CCEF는 이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성경신학의 관점으로 이것을 다루기를 원한다.
  제이 아담스는 조직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다루었으나, 오늘 CCEF는 성경신학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다루게 된다. 성경신학은 항상 결론이 예수그리스도와 연관이 있다.
제이 아담스 시대에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이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 대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 즉 자유주의와의 전쟁 중에 있었으므로 그의 마음속에는 늘 자유주의와의 전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전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다양한 상담의 역사가 있다.
1700년대, 1800년대는 청교도의 영향이 컸다
1920년대 교회의 주제는 자유주의와의 전쟁이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해야 하는 오직 하나의 전쟁은 아니었다. 그래서 1920년에서 1950까지 좋은 목회상담의 책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대항하는 책을 발견한다.
1960년대는 종말에 관한 관심이 컸다. 즉 성경에 관한 전쟁과 종말론에 관한 관심,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주제였다. 성경에 관한 전쟁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종말론에 관한 이야기들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목회상담에 관한 주제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이것은 심리학을 교회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미국 정부의 중요한 것은 심리학자들을 제2차 세계대전에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오히려 퇴역장성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을 하여야 하였다.
  교회에서 7년 대 환란과 종말에 대하여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다. 저는 종종 세속적인 심리학자들의 모임에 참여한다. 저는 분명하게 예수그리스도가 삶의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대답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있다. 성경이 얼마나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지를 생각하고자 한다. 학회에 가서 말을 한다. 저의 발표에 대하여 동의 하는자 들이 있고 화를 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에서 자랐지만 교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였는가?
심리학자들은 그들에게 답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점점 더 목회 상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치료의 문화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뉴욕타임스에 나오는 베스트 셀러 란을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볼 수 있다. 거기를 보면 사람들의 변화를 볼 수 있다. 현재 사람들은 개인주의화 되어간다. 그래서 미국문화는 공동체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한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내가 공동체를 섬겼을 때 내가 좋아진다.
사람들이 선과 악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과거 부부가 힘들면 이혼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현재는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한다. 인생은 힘든 것이다. 고 한다.
  미국문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 자격증의 문화가 있다. 미국문화는 자신이 필요한 욕구에 대하여 노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중독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예)미국에서 인기 있는 영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반지의 제왕에는 친구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거기에는 선과 악의 전쟁이 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미국문화에는 나보다 큰 것에 대하여 참여하고 싶어한다. 성경적 상담학이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답을 줄 수 있다. 우리보다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보다 큰 성경을 전하는 대사이다. 성경적 상담에서는 복음에 대하여 말한다. 그래서 이것을 전하는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2교시
                미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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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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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 상담의 범위

  기독교 상담은 포괄적이고 통합적이다. 그 가운데 성경적 상담은 범위가 더 좁다. 우리는 두 가지 책을 가지고 공부하자. 하나는 성경이요, 나머지 하나는 심리학 책이다. 성경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섬기는가 하는 것이고, 심리학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은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 상담은 이것을 통합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잘 모른다. 기독교상담에서는 어떤 것이 성경 적 인가하는 것을 잘 모른다는데 있다. 주석을 사용하는 것과 성구 사전의 성구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조울증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다중인격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 상담은 점점더 심리학에 대하여 관심을 잃어버리고 정신의학과 약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상담학에서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고 인간중심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더 잘 섬기는 것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다.
  또한 그들은 성경에 대하여 한 부분에 대하여만 말한다. 그러나 성경적 상담은 전반적으로 성경을 말한다.
기독교 상담은 인간에 대하여
감정적 존재-인지적 존재-행동적 존재-육체적 존재-영적인 존재.
  영적인 것이 구원이란 것에 대한것으로 만 축소되어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성경적 상담이 너무 구원에 대하여만 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삶의 신학을 알기 원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는 것을 보면 된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컨추럴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삶은 자신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
위와 같은 인간에 대한 설명은 삼분설에 기초하고 있다.

육체 / 영혼 / 정신으로 그들은 생각한다. 영혼에 감정, 인지, 행동이 포함된다.
육체적 문제는 의사에게 가면된다. 영적인 문제는 목사에게 간다. 정신적인 문제는 심리치료사에게 가면 된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문제는 영혼의 문제이다. 영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삼분 설의 신학이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미국문화와 기독교상담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한국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성경적 상담의 사명이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성경적 상담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과제이다

  미국에서 성경 상담의 과제
1. 성경의 충분성과 성경의 필요성이다.
우리의 유일한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우리는 단 하나의 책의 사람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 없이 우리는 장님이다. 성경은 우리의 안경이다. 잠언에서 우리가 세상을 조심스럽게 보라고 한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관찰과 학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있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잠언은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공부해야 한다. 모든 지식의 출발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목적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포괄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완전히 말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리 책과 같이 그것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방향은 무엇인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의 넓은 영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적용해 나가야 한다 것이다.
  예를 들면 우울증에 대한 것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울증에 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하는 것이다.
먼저, 사람들이 우울증을 어떻게 경험하는 가를 본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소망이 없고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성경을 바라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성경의 충분 성을 믿는다. 우리의 해야 할 일은 성경이 얼마나 포괄적인 것인가에 대하여 알려 주는 것이다.
 
  오후 강의
성경적 상담의 특색에 대하여 공부하자
강조점에 대하여 말하겠다.
성경책은 하나인데 그 하나가 성경책을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다루고 깊이 다루고 있다.
  행동이다
일반 심리학에서는 동기를 찾으려한다. 예를 들면 쾌락, 권력, 지배를 위함, 안전을 위한 욕구 때문에 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성경은 훨씬 깊은 동기를 다루고 있다. 깊은 동기는 하나님을 향한 동기이다. 이 주제를 빼버리면 우리는 성경적인 상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적인 상담은 동기를 다루고자 하지만 더 깊은 것을 다루고자 한다. 즉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고 있다는 동기이다. 하나님을 향한 동기이든지 나 자신을 향한 동기이든지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성적인 동기와 사우고 있다고 하자. 인터넷에 포르노가 유행 함로 저항하기 어려운 갈등을 겪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반응은 그것을 그만 두라 말할 수 있다. 유혹을 받을 때마다 교회 목사님께 전화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을 자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원하고 있다. 예)포르노의 동기-아내와 싸우고 아내를 처벌함, 쾌락추구, 만족이 없음, 호기심, 요구 추구 등. 비 성경 적인 학자들의 대부분은 동기만을 살핀다. 성경을 말하지 않는다.
  포르노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ㅅㅣㄶㅇㄹ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과 관련된다. 
포르노를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을 때 하게된다.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다.
1. 첫째이유는 교만이다. 하나님이 뭐라 해도 상관없다 나는 재 자신이 지배자이다.
2. 정욕 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다. 정욕적인 탐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약4장에 보면 나는 무엇을 원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나는 무엇인가를 원하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3. 불신이다: 요한 복음에 나타난 부모에 대하여 보자. 하나님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좋으신 하나님이다. 하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미국에서는 법을 어기면 그것을 개인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거스 리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것을 다루고 있고, 깊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성경 때문에 더 깊이 파악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적인 상담은 문제를 개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예)탐심이나 시기심에 대하여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는 나는 더 깊이 원한다. 나는 하나님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충분히 주지 않아서 그는 인식하고 관대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다룬다. 예)약4장: 성경은 싸우지 말아라! 고 말한다. 간음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성경 적으로 어떻게 의사 소통하는가 하는 것을 배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을 앞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깨어진다는 것이다.
민14장: 세상 사람과 똑 같이 그들이 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불평한다.
자녀들이 불평할 때, 그러지 말라 해도 자녀들은 불평을 멈출 수 있으나 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이 인간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다. “너희가 나를 멸시한다”는 말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불평할 때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것을 말해 줘야 한다. 불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문제가 먼저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섬기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에 대하여 술좀 그만 먹고 정신차려 하는 식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경적 상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성경은 충족성이 있다-넓고, 깊게 말한다는 것이다.
  2. 성경 적인 상담은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 성경의 권위, 예수그리스도의 대속, 성령의 역사 등.
  하나님께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 동안 사람이 중심이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기쁨의 신학일까?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적 상담을 해야 한다.
1)하나님께 영광: 예수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성경 적 상담의 목표이다.
2)삶을 즐길 수 있고 높이는 것이다. 잠언을 보면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귀한지 너희들이 말하는 모든 것보다 더 귀하다고 하고 있다. 죠나단 에드워드의 신학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이 나온다.
  두 주간 아름다움을 주는 사람과 만남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상담을 통해 만족을 얻는 자를 만날 때마다 인생의 행복을 느낀다.
예)죄에 대하여 말할 때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죄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해 가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너를 고치기 원한다. 하시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는 시간이 축제의 시간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은혜의 신학이다. 우리가 다 죄인인데 하나님의 은혜를 다루려면 죄의 심각성을 다루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표현이다. 그래서 성경적 상담은 개혁주의 신학으로 해야 한다.
  미국의 신학이 인간적이기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의 성경적 상담으로 바꾸어야 한다.
3. 사람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대하여 헌신한다.
영혼, 정신, 육체의 삼분설은 잘못이다. 사람의 영은 전체를 다 커버하는 것이다. 더 좋은 모델은 우리는 두 개의 혼합체이다. 육체와 영혼(영혼, 마음, 정신)으로 나누어진다. 중심으로부터 순종이 나오든지 불순종을 한다.
  성경적 상담의 목적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고 후 4:16. 겉사 람은 후패 하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롭 도다. 육체와 영혼으로 보고 있다.  육체는 늙어가나 우리 중심은 더 아름다워지고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중심은 능동적이고, 무엇인가를 예배해야 한다.
능동적이라는 것은 항상 인간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 무엇인가를 예배한다는 것이다.
  성경적 상담의 중심은 내담자가 누구를 예배하는가 하는 것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는가 네 자신의 소욕을 경배하는가하는 것이다.  사람이 누구를 경배하는가 하는 가에 대하여 보아야 한다.
과연, 인간이 그리스도안에 있는가 아니면 아담안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상하고 변태적인 문제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가지 문제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아니면 자기자신을 경배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신병에서는 정상이냐, 비정상이냐, 우울증이냐 아니냐로 나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의 중심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똑같다는 것이다.
  인간의 중심에 들어가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나에게도 말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중성격의 사람을 아는가? 한사람이 이렇게 말하다가 다르게 말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조용하다가 급히 화를 내거나 그 반대 경우도 있다.
  문화에 따라서도 다르다. 미국에도 다중성격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만이 그 사람을 정확히 볼 수 있게 해준다. 성경 때문에 그 사람을 이해하게 한다.
  처음 그를 만나면 이 사람 귀신들렸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수 는 없다. 어떤 사람은 두려워하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어떤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감정의 덩어리를 표현할 뿐이다. 그 사람들을 정신적인 사람으로 볼 때는 그 사람들은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목회자로 그들을 상담하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1)분노하면 불안에 대하여, 불안하면 불안에 대하여 얘기한다. 그 사람의 죄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시작할 수가 있다. 복음의 진수를 가지고 상담할 수 있다. 복음의 은혜를 가지고 그 사람을 상담할 수 있다. 복음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접근하면 반드시 그 사람이 놀라게 되어 있다.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을 어떻게 상담하는가?: 당신은 너무 분노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는 분노하는 것 보다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죄책감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표현한다. 성경 말씀으로 그 사람을 진단하여 그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
예)기도회 후 아내를 때리는 남편: 화나면 차가워지거나 화나면 뜨거워진다. - 너도 하나님을 찼고 있고, 나도 하나님을 찾고 있다. 죄의 속성은 감추는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다라는 점에서 상담해야 한다.
예)청소년의 자해: 그 소녀와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상담해야 한다. “너 네가 자해 행위 한 것을 안다. 인생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행동한다. 너는 무엇을 위해서 자해했니?” 너는 언제 너를 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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