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순환: 제3자의 문제 악순환이 아니다. 제3자 문제로 인한 피상담자의 악순환을 생각해야 한다. 제3자의 문제 때문에 힘든 것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피상담자의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이 생겨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죄와 사람을 분리해야 한다. 저 사람 때문에 또는 저 사람 죄 때문에 힘든 이유를 먼저 찾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인은 죄가 없고 저 사람만 죄가 있다고 정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의 죄를 보기 전에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봐야 하는 것이다. 오늘 아들의 문제는 엄마가 가지고 있는 욕구 때문에 아들을 자기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녀라 생각했더라면 다르게 키웠을 것이다.
- 진입구: 바램만 있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암담한 상황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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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본적 해석 작성 기술 예
https://swcounsel.org/b/supervision3-3258?#c_3287
(빛소리 3-4)
-예) 시간순 기승전결
발단: 과거 (~ 하였다), 악순환 설명 이해
전개: 현재 (이렇게 ~ 하면, .... 한다.)
절정: 반전의 가능성을 통한 (마음의 변화) 최고조 표현 (하지만, 그러나, ~할 수 있다.),
결말: 미래 변화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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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구와 소원 표현1
https://swcounsel.org/b/supervision3-3151?#c_3249
(승리자 3-4)
욕구: 정말 원했던 것
소원: 처음에 원했던 것
* 욕구와 소원 표현3
https://swcounsel.org/b/supervision3-3381?#c_3503
(Grace88, 3-4)너무 힘들고 슬퍼요.)
욕구: 없는 것(안좋은 것)을 원하는 것
소원: 있는 것(좋은 것)을 원하는 것
은혜: 그 좋은 것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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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구와 소원 표현2
https://swcounsel.org/b/supervision3-3258?#c_3391
(빛소리 3-3)
(그러면 더 이상 님의 유익을 구하지 않게 되어 함께하는 충만한 은혜로 상황을 새롭게 보게 되며) => 그러면 무엇인가를 더 얻으려고 하는 마음(욕구)이 아니라이미 자신에게 있는 것(은혜)을 깨닫는 충만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충만을 계속 추구하는 마음의 소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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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생 약한 부분
박인혜: 극본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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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소감 (2/1)
- 도제식의 한계
독일 유학생들의 특징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이 진리인 줄 안다. 그래서 처음에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유학생활을 시작하면 실망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들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 예로 비자 문제로 관공서에 가면, 분명 엄충한 법이 있는데 사람들마다 적용하는 기준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엄중한 법이 있어도 말을 이해가 되도록 합리적으로 설명 하면 예외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결정 기준의 가장 기본이 사람 자체에 있기 떄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 소원상담센터가 그렇다. 나는 내가 배운 게 정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배운 것만이 정석이 아니었다. 각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 다 다르고 적용하는 것이 다 달라서 이상하다 생각을 했다. 아니 너무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산만하다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실습 간사를 하다 보니 그것이 이해가 되었다. 5명에게 지도하는 방식과 내용이 다 다른 것이다. A는 B다 하고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정리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 정도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곧 뭐가 잡히길 바라며... 이 상황이 곧 이해 되길 바라며...
실습 피드백(2/2) - 새로운 실습 수준 적용 시기?
실습수준을 높일 때 하나의 실습을 하는 중간에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수준을 높이는 것은 좋도 좋지만 그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이냐 또한 중요하다. 일단 기초를 배워가는 입장에서 하나의 사례 상담문을 만들어 가는 중에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혼란스러울 수 있기때문이다. 사례가 하나 끝나면 그 다음에 새로운 적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의사소통의 한계 글로 하는 의사소통에는 한계가 있어 실습생들이 글을 쓴 의도를 알 수 없다. 특별히 해석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