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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소감] [51계획] 43요5; 2-10 삼십팔년된 병자 이야기

천사가 물에 내려왔을 때 먼저 그 물에 들어가게 되면 병이 나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천사가 하나님의 천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병이 낫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표가 현재는 어떻게 변질되어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낫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사람의 노력으로 물에 들어가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목표가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점차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병자가 원한 것은 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있기만을 바랬을 뿐입니다. 자신을 낫게 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 자기를 찾아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그 순간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주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은 항상 그들의 진정한 필요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마시려는 잔은 이미 예정되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 에게도 주님은 네 눈이 나았느니라 하시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모든 말씀들이 단지 예수님 좌우편에 서는 것, 눈이 낫는 것, 귀신이 떠나가는 것 이상의 궁극적인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말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그것을 주님은 채워주시고 그로 인해서 결국에는 우리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까지도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여기 너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있느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네 병이 나았느니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단계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 바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생기면, 그래서 물이 동할 때 빨리 들어갈 수 있으면, 그래서 병이 나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자리를 들고 집으로 걸어갈 수있게 되겠지만, 주님은 그 모든 중간 과정을 생략하신채 지금 당장 자리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에게 궁극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삼십팔년된 병자에게도 주님은 그의 궁극적인 필요에 대해서 채워주셨습니다.

그가 나아버린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그 순간 그는 나았습니다. 이미 자신을 얽어매고 있던 모든 어려움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결정해야 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순종하지 않을 것인가입니다. 이 자리에서 정말 그대로 일어나 버리면 그것은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그 순종은 새로운 문제를 낳게 됩니다. 바로 안식일에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걷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늘 안식일에는 아무도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일어나게 되면, 그리고 자리를 들고 걷게 되면, 몇 발짝 띠는 것과 동시에 안식일 규례를 어기게 됩니다. 그런 위험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있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생겨나는 많은 크고 작은 마찰 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주님이 주시는 그 온전하게 하심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주님이 주신 그 온전한 구원이 더 감사하고 기뻤기 때문에 그는 바로 그 순종을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것을 말씀하실 때 이미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다만 자신이 그 능력을 부인할 때 그 능력은 안나타날 뿐입니다. 다리에 힘은 주어졌으나 지금 일어나면 대혼란을 일으킬 것 같아서 그냥 자리에 앉아 있기로 결심한다면 결국은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은 이미 안정이 되었지만, 화도 전혀 나지 않지만, 두렵지도 않지만, 그런 내색을 하면 버릇들까봐, 우습게 여길까봐, 오히려 계속 화를 내는 척을 하고 두려워 하는 척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38년을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 39년을 향해 나아가는 것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38년의 악순환은 이제 끝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 계기는 너무나 놀랍게도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일어서라’는 주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그 순간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고, 병이 나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그냥 순종하면 됩니다. 일어날 수 있는 대로 일어나고 들수 있는대로 자리를 들면 됩니다. 그리고 걸어가면 됩니다.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못한다고 해야만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들을 통해 주님은 38년된 병을 끝내버리십니다.

[출처] 소원교회 - http://swchurch.org/b/sermon-915

삼십팔년 병자 이야기.. 이 말씀은 내게 너무 필요한 말씀이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의 문제의 핵심. 골수를 쪼개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신앙생활을 할땐 주님을 알기를 원했지만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것이 아닌

나의 상황과 환경과 유익에만 초점을 맞춰 주님은 나를 버리셨다고 원망하며 병자와 소경같이 누워있는

삶을 살았다.

끊임없이 나의 노력으로 회복되길 바랬고, 내가 진짜 무엇이 필요한지. 중심이 완전히 뒤틀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 과정을 모두 건너뛰며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궁극적인 필요를 정확히

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씀에 순종할 것인지는 나의 몫이다.

다리에 힘이 주어졌는데 대혼란을 일으킬 것 같아서 그냥 자리에 앉아 있기로 한다면 일어나 걸어라 하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을때 이렇게 나아가야 되는것인줄 알지만

그렇게 하면 버릇들까봐, 우습게 여길까봐 오히려 계속 화를 내는 척을 하며 두려워 하는 척을 한다면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못하는 것이 아니다. 못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못한다고 해야만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뿐이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긴 38년의 병을 끝내시길 원한다. 기억하고 명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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