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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주의] 거절과 대인관계유형 -김준수 교수

2. 신앙성숙을 방해하는 요소들
제 1 장  나는 왜 이럴까?
    A 자매는 상대방의 작은 행동이나 평범한 말투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  예를 들어서 상대방의 전화 목소리가 퉁명하면 마치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상대방이 화를 낸다고 느끼면서 마음이 불안해 진다.  상대방이 자신을 책망하는 것 같고 거부당하는 느낌이 엄습한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위축되고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듯 여겨지면서 분노가 일어난다.  상대방에 따라서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속으로 분노를 삼키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에 과잉 대처 한 것을 알지만 순간적으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극한 감정들이 솟구친다.  자신이 도대체 왜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B 형제는 매사에 철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성실하게 감당한다.  자기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면 참지를 못한다.  자신이 맡은 일을 게을리 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비판을 하고 분노를 발한다.  나중에 생각하면 자기가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을 하지만 자신의 공격적이고 폭발적인 분노를 제어하기가 어렵다.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진리가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지속적으로 악하고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충동적인 반응을 하도록 만드는 영역을 마음의 벽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견고한 벽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아집, 죄의 속성, 죄악된 마음, 비뚤어진 마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마음의 벽은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거부하고 자신의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반응을 지속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화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애물이 된다.  고린도후서 10:3-5에서 마음의 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살아있는 사람은 반응한다.  죽어서 생명이 없는 시체는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오는 어떤 종류의 자극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삶의 다양한 자극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질이 결정된다.  다양한 자극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날카로운 반응을 나타낼수록 삶의 질은 저하된다.  그러나 똑같은 자극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반응을 나타낼수록 삶의 질은 향상된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였을 때에 나는 다양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  겉으로는 비난한 사람을 미워하고 공격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속으로는 분노와 피해의식으로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분노와 연민에 빠지기보다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반응의 차이가 삶을 황폐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는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러한 반응은 바뀔 수 있는 것일까?  특정한 반응을 야기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신앙의 성숙과 삶의 자극에 대한 반응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습관적이고 부정적인 반응을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궁극적인 상담의 목표는 삶의 다양한 자극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들을 긍정적인 반응으로 변화하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반응들이 변화의 대상은 아니다.  누구나 고질적으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며 꼭 변화가 필요한 삶의 죄악된 반응들이 있다.  물론 특정하게 길들여진 삶의 반응들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성경도 사람이 자기의 피부색갈을 바꿀 수 있는냐고 하면서 변화의 어려움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입는 과정을 통해서 변화가 가능함을 약속하고 있다. 
    변화해야 할 삶의 파괴적인 반응들은 개개인들 마다 다르고 독특하다.  이러한 반응들은 본인이 그 파괴성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본인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며 문제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있다.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먼저 자신의 삶에서 고질적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죄악된 반응을 인식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육신적인 패턴이 발달되는 2 가지 이유
1.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받는 상처나 동반되는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2. 내면의 깊숙한 필요(인정, 사랑, 용납, 자존감, 안정감 등등)를 채우고자 하는 욕망

1.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 반응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  인간이 누군가로부터 육체적인 공격을 받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대적하든지 아니면 상대방을 피해서 도망을 가게 된다.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러한 보호본능은 육체적인 공격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방에 의해서 공격을 받는다고 느껴지는 모든 영역에서 방어본능이 나타난다.  특히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억압을 당하거나 위협을 당하게 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대처 유형이 발달한다.  이러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대처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고 공격함으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대항형이고 두 번째는 공격을 당하는 상황을 피해서 도피함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회피형이며 마지막으로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잘 보여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형이다.  이 세 가지 대처 유형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행한 3 가지 행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 이들은 범죄한 후에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자신을 가렸다(창 3:7).  이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인위적으로 덮고 가림으로서 하나님에게 용납 받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는 수치와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그 때에 이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담과 하와는 두 번째 전략으로 하나님을 피해서 숨었다(창 3:8).  이들의 두 번째 전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을 찾으시고 그 잘못을 추궁하셨다.  이러한 위기에 몰린 이들은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책임 전가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창 3:12-13).  하나님은 이들에게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시고 그리스도를 통한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의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열어주신 온전한 문제 해결의 길을 택하기보다 자신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며 이러한 대처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죄로 인한 3가지 유형은 잘 통합되었을 때에 건강한 인격을 이룬다.  수용형은 사랑과 선함 그리고 돌봄과 같은 긍정적인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대항형은 리더쉽, 강함, 그리고 회피형은 독립심, 자족함, 지혜로 발전될 수 있다.  이 세가지 유형은 건강한 마음의 필수요소인 친밀감, 삶의 경계 그리고 다스림의 변질된 열매이다. 

 율법주의 완벽주의자에게 나타나는 3가지 유형의 성격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이 3가지의 성격 유형들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율법적인 삶의 형태를 통해서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공격형(Fight)- 공격형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갈구하고 특정한 영역에서 뛰어나거나 많은 업적을 통해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이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고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느낀다.  실제로 특정한 영역에서 기량을 발휘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한다.  이들은 강한 모습을 보이려하고 공격적이며 속임수에 능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분에 둔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려고 한다.  이들이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만일 내가 강하고 우월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거나 상처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상대방의 사랑과 은혜를 수용하거나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거짓자아를 버리기가 어렵다.  공격적 대처의 동기는 힘을 통해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는 데에 있다.  공격적인 대처는 분노를 발하거나 논쟁을 하고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비방하며 모든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며 상대방의 말을 무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물리적인 폭력이나 소리를 지름 등등으로 표출된다.
    공격적인 대처에 익숙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과 다툼이 빈번하다. 어떤 문제도 상대방에게 전가하며 매도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반항함으로 싸움이 고조되든가 아니면 상대방이 대결을 피해서 뒤로 물러나고 양보하든가 억지 순종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들수도 있다.  공격형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잘 주며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목표를 관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이러한 대처의 결과로는 인간관계가 단절되거나 극히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고 서로를 속이고 조종하는 현상들이 많아진다.  하나님을 마치 요술 방망이로 여기며 자신의 목표가 좌절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원망한다. 
    대항형의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적대적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세상은 강육약식의 진화론적인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겨야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조종하기 위한 행동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힘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우위를 차지하려는 행동이 될 수도 있고 또는 간접적으로 조르거나 강청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한다.  자신은 나서지 않으면서 배후에서 조종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조종하든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교묘하게 조종하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용하고 우위를 차지하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우선적인 관심은 상대방이 나에게 어떠한 유익이 되느냐에 있다. 대항형도 접근형과 같이 그 마음에는 두려움이 많다.  그러나 겉으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두려한다는 사실을 보이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속으로는 두려우면서도 겉으로는 부인하며 오히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모한 위험을 감수한다.  두려움 뿐 아니라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를 극도로 싫어하며 감추려한다.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감정표현이 제한된다.  자신의 약한 감정의 노출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울기가 어렵다.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려고 애쓰게 되며 자연히 감정이 둔해진다.  이와 함께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지적을 공격이라고 여기고 참지 못하며 방어적으로 대처한다.  자기의 고집이 세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하지 않는다.  자신의 논리에 빠져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상은 전쟁터와 같아서 오직 강한 자 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근원이다.  남보다 성공하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든 일에 열심을 내고 노력한다.  남보다 더 노력하고 부지런하게 일한다.  기업의 총수나 단체의 장을 차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도 윗자리에 앉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한다.  마치 잘 돌아가는 기계와 같이 자신의 감정은 억누르고 오직 힘과 성공을 얻기 위해서 달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을 하였고 높은 자리에 올라섰지만 그 마음은 공허하고 인간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사람을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대항형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느끼며 거리를 두고 대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준다.  결혼생활에서도 배우자와의 친밀감 형성이 힘들다.  자신의 감정을 돌보지 않을 뿐 아니라 배우자의 감정도 무시한다.  접근형의 아내가 대항형의 남편을 만나면 초기에는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끌리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에 끌리게 되고 남편은 자신의 주장에 순종적인 아내에 매력을 느낀다.  이 두 사람이 결혼생활을 시작하면 서로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졌던 성격이 서로를 찌르는 무기가 된다.  아내는 남편의 감정적인 무감각이 자신에 대한 거부라고 여기게 되고 남편은 아내의 의존적 성향을 무능력이라고 여기며 무시하게 된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포기와 섬김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고 순종하며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이 신앙이다.  그러나 대항형의 사람은 자신을 포기하고 남을 섬기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기고 이용하려 한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은 더 큰 성공과 권력을 얻기 위한 투자라고 여긴다.  교회의 봉사에 앞장서고 헌금을 드리며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근본 동기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을 받고 교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자신의 헌신에 대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쉽게 좌절한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다가 한 순간에 교회를 떠나거나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대항형의  교회의 지도자는 교회의 성장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성공과 힘을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교회 성장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 동기는 신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항형은 다스림의 기능이 변질된 것이다.
    다스림은 하나님의 중심적인 속성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전능왕이시며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찌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위의 열방을 치리하실 것임이니이다(시 67:4).”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애 5:19).”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고 공의로 다스리신다(대하 12:6).  창세기의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사건은 하나님이 왕이시며 주인 되심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다스리는 속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에게도 주어졌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의 중심된 존재로 지으시고 사람을 통해서 만물을 공의로 다스리기를 원하신다(창 1:28).  하나님의 사람을 통한 통치는 아담에게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이름을 짓게 하시는 사건에서 잘 나타난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모든 만물을 공의로 다스렸으며 피조세계는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이러한 공의의 다스림은 깨어지게 되었다.  타락 후에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버리고 자신의 욕심과 정욕에 따라 통치하게 되었으며 온 피조세계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의 통치는 절대적인 다스림이 아니었다.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통치자가 되시며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역에서만 다스리는 기능을 나타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자신을 다스려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신 처사였다.  즉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다스리는 분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하나님의 다스리는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교만해진 인생들을 곤고하게 하시며 낮추신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진 느부갓네살왕은 인생의 곤고함을 경험하고 나서야 겸손하게 되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를지로다(단 4:34).” 
    사단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범죄하게 되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과실을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 마음의 정욕대로 행하며 스스로의 통제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피조세계의 질서는 깨어지고 모든 관계가 변질되었다.  인간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하기 보다는 자기의 욕심대로 통치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다스려야 하는 영역의 한계를 망각하게 되어다.  스스로 다스린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죄의 노예가 되어서 통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변질된 다스림은 주위 사람들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이용하고 교묘히 조종한다.  자기의 뜻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며 보복한다.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여기고 대적하든가 아니면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공격한다.  세상을 전쟁터로 여기며 오직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항상 전투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모든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대한다. 
    예수님은 죄 범한 인간들에게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체계를 다시 회복시키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들을 정리하셔서 두 가지 계명으로 요약하셨다.  즉 첫 번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두 번째는 이웃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고 이웃 사랑은 주위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이들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고 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정복자를 상징하는 말을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심으로 평화의 왕으로 오심을 나타내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다스림은 곧 섬김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자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다스림의 권세를 다시 회복하는 방법이다.
    반사회적 성격장애
    공격적 성향이 굳어지면 점차 반사회적 성격으로 굳어진다.  반사회적 성격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적대적 대인관계- 모든 대인관계가 매우 공격적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동정심을 느끼거나 상대방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음의 양심이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 있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그 결과로 극히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많아서 상대방의 조그만 잘못이나 실수도 용서하지 못하고 비난하거나 보복한다.  다윗이 자기를 공격하는 자들을 보면서 “내 생명을 찿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며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라고 고백한 것과 같이 이들은 온갖 궤계를 사용해서 상대방을 해하려 한다(시 38:12).  또한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을 거절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하며 하늘에서 불을 내려 다 멸하게 하자고 예수님께 건의하였다.  이처럼 조금이라도 자기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면 참지 못하고 가차 없이 보복한다.  급하고 적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변하여서 주님을 위해 순교를 당하였으며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타인들에 대해서 매우 차갑고 인정이 별로 없다.  사람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잘 신뢰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을 해하거나 넘어뜨리려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한다.  자연히 사람들과의 관계는 매우 사무적이고 필요 중심적이다. 도덕적인 불감증에 걸린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극단적으로 자기 욕심만 채우는 전형적인 적대적 인간관계의 유형을 보여준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팔 것을 요구한 후에 거절당하자 마음이 상하였다.  그의 아내 이세벨은 이 사실을 알고 건달들을 사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거짓 증거를 하도록 사주하고 결국 나봇을 돌로 쳐 죽인다.  나봇이 죽은 후에 아합은 손쉽게 그의 포도원을 손에 넣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상대방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힘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다-  사람들을 자기의 뜻대로 조종하고 명령할 수 있는 힘과 권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반사회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 중에 지능지수가 높고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빠른 두뇌 회전과 자신의 매력을 활용해서 사람들의 신뢰와 환심을 얻는다.  또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자기의 명령에 복종하고 섬기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따뜻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그 의도는 상대방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만일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의도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다시 차갑고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한다.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으며 목적을 이루는 소모품으로 여긴다.  마치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네게 주리라(눅 4:5-6)”고 유혹한 것처럼 힘과 권세에 집착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 애를 쓴다.  이들이 단체에 소속하는 목적은 높은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들은 집단에서 권력을 잡기위해서는 무슨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으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계략과 술수 그리고 속임수가 빈번하다.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철저하게 응징하고 제거한다. 교회에서도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이유가 교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고 힘을 얻기 위함이다.  평 교인으로 있을 때에는 교회의 굿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하며 목사나 다른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지만 일단 교회의 장로가 되면 그 본성이 드러나면서 공격적이 되고 목사를 대적하며 자신의 패거리를 형성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  교회의 모든 행정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며 자기를 반대하는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을 제거한다. 
    부풀린 자존감과 자신감-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서 자신을 부풀린다.  자신의 학력이나 경력을 위조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상대방에게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능력 이상의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거나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비록 속으로는 두렵고 염려가 되어도 겉으로는 약한 모습을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여서 독단적이 된다.  자기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자기중심적 성격장애 
    자기중심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를 과대하게 포장해서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자신에 대한 극히 주관적이고 과장된 표현에 비해서 객관적인 자신의 평가와 판단이 결여되어 있다.  소위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입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어려움이나 힘든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다.  감정이입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방의 상황과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기능이 결여된 사람은 상대방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른다.  타인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므로 타인의 실수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가 어렵다.  자기 합리화에 강해서 스스로의 잘못은 대충 넘어가거나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조그만 실수는 강하게 비난하거나 질책한다.  A부장은 회의 중 핸드폰이 울리거나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직원들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면서 강하게 질책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회의 중에 핸드폰이 울리면 태연하게 통화를 한다.   
    어린아이는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의 기능이 없다.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는 데에 급급하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많은 청소년들이 자기 세계에 몰입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고려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점차 이타적이 되고 성숙한 인격체로 발달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극단적인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유아기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의 표출이다.  사도 바울은 이기적인 태도로 시기하고 분쟁하는 고린도교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라고 하였다(고전 3:1-3). 
    이들은 자신이 법위에 군림한다는 환상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현실감각이 결여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집단에서는 자기가 제일 잘 낫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며 자기가 이룬 업적을 선전하고 다니기를 즐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기피하거나 왕따 시키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이 종교지도자가 되면 하나님이 자기를 특별한 사람으로 세우고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얼마 전 물의를 일으킨 이단 목사가 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는 무조건 들어주신다고 하면서 하늘의 별과 구름이 자기의 기도로 움직이는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이러한 허무맹랑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는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또 다른 목사는 설교 중 자신이 하루에 8시간 이상씩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면서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쓰시기 때문에 그 말에 거역하거나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치신다고 겁을 주며 교인들에게 쌍소리를 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매우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참지 못한다.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다는 선언을 하기도 하며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서 무조건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증명하기 위해서 무모한 시도를 하며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도 이러한 자기당착에 빠져서 말하기를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단 4:30). 

    접근형(Please)
      접근형 또는 수용형은 다른 사람들의 용납을 너무 간절히 바라며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할 수 있도록 모든 총력을 기울인다.  이들은 매우 순종적이며 협조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결정을 위임한다.  이들은 문제를 야기해서 관계가 힘들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에 자신의 의견은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관계의 깨어짐을 막으려한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상대방을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  이들의 기본 철학은 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이를 위해서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은혜와 진리가 동반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면하고 진리 가운데서 깨어지는 과정도 필요하다.  무조건 예가 사랑이 아니고 예와 아니요를 분명하게 하는 태도가 성경적인 사랑이다. 접근형은 대인관계에서 친밀감과 소속감이 중심 목표이다.  친밀감과 소속감을 추구하는 이유는 내면의 불안으로 인하여 안정감을 얻기 위함이다.  이 유형은 자신을 매우 약하고 작은 존재로 보며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험한 세상에서 생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원하고 좋아하며 용납하고 인정해 주기를 갈망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자기가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어서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주위 사람들의 필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신이 그 필요를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동시에 힘 있는 주위의 특정한 사람이 자기를 지켜주고 돌보아주며 인도해 주기를 필요로 한다.  대처의 동기는 사람을 두려워하며 모든 사람에게 잘 보여 지기를 원함에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두려워하는 대상이 우상화되며 종속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이러한 유형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여 지며 상대방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항상 순응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고 항상 상대방의 의견에 이끌리는 경향이 많으므로 주장이 불분명한 사람으로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보다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자신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근거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서 자신의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가장 보편적인 자아의식은 스스로가 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본다.  홀로 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갖는다.  누군가 자기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대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자신이 매우 열등하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멋이고 능력이 있으며 똑똑하고 도 좋은 학벌과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열등감으로 인하여 매사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고 사람들 앞에서 주눅이 든다.  특히 공격적이거나 차갑게 대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위축된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평가와 태도에 의존한다.  상대방의 인정이나 친절하거나 따뜻한 태도에 자존감이 급상승하고 이와 반대로 조그만 거부의 메시지나 불친절하거나 차가운 태도에 급강하한다.  어떠한 비난이나 거부의 메시지도 엄청난 위기로 여겨지고 감당하기가 힘들다.  접근형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이타적이고 헌신적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한다.  다른 사람과의 다툼이나 갈등을 두려워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하려한다.  또한 능동적으로 자기의 삶을 살거나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의존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모든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소속감을 갖는 데에 있으므로 자기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돌보지 못하며 자신이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 뿐 아니라 자존감이 낮아지고 삶의 에너지가 고갈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지극히 피상적이 되어서 인격적인 관계를 갖지 못한다.  부부관계에서도 이러한 패턴이 작용한다.  결혼을 하는 목적도 자신을 지켜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차갑고 상처받기 쉬운 세상에서 혼자 사는 것은 위험하고 두렵다.  누군가 나만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지켜줄 사람이 있으면 위험에서 벗어나고 더 이상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다.  부부관계에서 자기주장은 극도로 자제하고 상대방에게 순종하며 용납받기 위해서 노력한다.  배우자의 사랑과 보호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며 일방적으로 배우자에게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배우자로부터 사랑받고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이러한 확신이 결여 될 때는 심리적인 불안을 경험하며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접근형의 성경적 이해
    접근형은 하나님의 속성인 친밀성이나 하나됨이 변질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하나님 자신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거하시며 서로 교통하시는 관계에서 나타난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사랑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친밀한 교제가 필수적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들과 깊은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나누시기 원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교제를 통한 하나됨과 친밀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뿐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이들과 교제하셨다.  이 뿐 아니라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에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하시면서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창 3:18).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도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는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공존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동물들은 먹이사슬을 이루면서 공존하고 있다.  물의 오염으로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는 프랭크톤이 감소하면 그 영향이 도미노 현상으로 번져가게 되고 생태계 전체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다. 지구상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재앙의 영향은 그 지역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파급된다.  교회나 가정도 한 지체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지체의 어려움은 전체의 어려움이 된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기능은 인간의 생존과 성숙을 위해서 절대적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없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으며 인간관계의 친밀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정서적인 성숙이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다.  단절된 관계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창조의 원리가 아니다.  형무소에서 가장 심한 조치는 독방에 감금하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삶의 기쁨을 느끼며 영적이고 정서적으로 성숙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서 완전한 친밀감을 누렸다.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하나 됨을 인하여 벌거벗었으나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 2:25).  그러나 이러한 친밀감은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이들은 자신을 가리고 숨기며 서로를 비난하는 관계로 전락하였다.  관계의 친밀성은 그 관계가 깨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에 마음이 저리고 아프며 상대방이 보고 싶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유는 떠난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픔은 우리가 얼마나 상대방과 깊은 친밀감을 느꼈는지를 대변해 준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동산에서 누렸던 교제를 관계가 깨어진 후에 실감하게 되었다.  타락 후의 인간 역사는 미움과 전쟁, 시기와 질투로 오염되었다. 
      진정한 교제를 상실한 인간은 허무한 마음을 채울 대용품을 찾게 된다.  요즘 신문 지상에 오르는 다양한 중독 현상들은 친밀한 교제를 상실한 공허한 마음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채우려는 시도이다.  일중독, 음식중독, 약물중독, 성중독, 쇼핑중독, 인터넷중독, 관계중독 등등 수많은 중독들은 인간이 얼마나 의미있는 관계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인간의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후에 그 마음의 빈 공간을 하나님 아닌 대상으로 채우기 시작하였다.  중독의 대상이 꼭 나쁜 것이 아니다.  일이나 음식이 나쁜 것이 아닐지라도 절제되지 못하고 삶의 균형을 잃게 만들면 역기능을 나타내고 파괴적인 요소가 된다.  특히 관계중독은 특정한 인간관계에 집착하게 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관계이다.  건강한 교제가 상실된 심령에 이러한 왜곡된 집착이 뿌리를 내린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친밀한 교제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6).”  건강한 친밀감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하나님 자녀 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교제권이 회복되어야 한다.  자신을 용납해주고 지지해주며 격려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남이 중요하다.  많은 교제들이 용납과 지지보다는 거부와 비난으로 가득하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애통하는 마음이 되고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놓고 나누는 과정에서 마음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의존적성격장애
    의존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홀로서기를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려고 한다.  간난아이는 태어나서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생존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 성장할수록 조금씩 부모에게 의존하는 비율이 낮아지게 되고 장성한 후에는 부모를 떠나서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에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기를 두려워하고 정서적으로도 누군가를 의지해야 편안해진다면 장애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타인에 대한 과잉의존- 스스로를 불신하며 타인의 힘을 빌려서 살아가려는 욕구가 강하다.  자신의 행복은 타인에게서 온다고 믿기에 자신이나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쓴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욕이 결여되어 있으며 타인이 자신의 선택과 방향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자기 의견이 없으며 뚜렷한 주장이 결여되어 있다.  모든 일에 주도적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른다.  예를 들어서 음식점에 갈 때에 무슨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없다.  무슨 직장을 잡고 어떤 종류의 차를 사고 무슨 취미생활을 하고 등등의 선택을 하기가 힘들다.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선택을 대신해 주는 것이 마음 편하다.  특히 요즘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한다.  자녀들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는 과정을 무시하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모든 결정과 선택을 대신 해준다.  자녀가 부모의 의견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부모에 대한 반항이라고 여기고 야단을 치거나 묵살한다.  이러한 삶에 익숙해져서 성장한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는 자녀가 자기를 떠나서 홀로서기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자녀를 계속 붙들어 놓으려고 한다.  이러한 자녀는 결혼 후에도 배우자의 의견보다는 부모의 의견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정적 자아의식- 자신을 매우 약하고 무능하며 사리판단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본다.  직장이나 학교 또는 가정에서 책임지는 일을 기피한다.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감이 없고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을 의존하는 이유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친절하고 고분고분하며 순종적이다.  그러나 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 회의와 절망 등으로 가득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보다 잘나고 능력이 있으며 행복하다고 여긴다.  자신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누군가를 의지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사고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신이 타인보다 열등하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에도 쌍방대화를 통한 의견교환이 어렵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지시 받기를 좋아한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파괴적인 인간관계도 정리하지 못하고 안주한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신의 가치가 타인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직접적인 평가 뿐 아니라 간접적인 평가에도 민감하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곧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여긴다.  상대방의 거부는 내 존재가 버림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감당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항상 눈치를 본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 보다는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하고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회피형(Flight)
  - 회피형은 사람들을 피하고 혼자 있기를 즐겨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아무 일에도 끼어들지 않으면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사람들과 떨어져서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고 감정적인 교류도 나누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수용형은 회피형이 강하게 보이기 때문에 사랑과 친밀감을 기대하며  결혼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불행의 시작이 되고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를 채우지 못하고 고통을 당한다.  회피형의 동기는 소심함, 실패의 두려움, 상황을 도피로 모면함 등이 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었던 것처럼 문제를 직면하고 대처하기 보다는 뒤로 물러서고 도망함으로 문제를 덮으려한다.  회피하는 반응의 유형들로는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차갑게 대며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신을 비난한다. 많은 경우에 힘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체 수단으로 다양한 중독에 빠진다. 중독의 대상으로는 술, 마약, 일, TV, 도색잡지, 음식, 음악 등이 있다.  그리고 자기합리화에 능하고 완벽주의 적인 경향이 많다.  이러한 유형은 주위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게 보이며 그 결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당사자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이 상대방에 의해서 피해를 받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누구나 사람들과 격리되어서 혼자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사람들과의 교제를 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시간을 통해서 에너지를 다시 보충한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피하셔서 홀로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보내셨다.  특히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을 해야 할 상활에서는 무리들을 떠나서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격리는 누구나 때때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한 격리의 도를 넘어서 삶의 중심 경향이 사람들과의 접촉을 회피하고 혼자 지내기를 즐기는 삶의 유형이 회피형이다.  이들은 사람들과 가깝게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들은 단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도 격리된다.  자신으로부터 격리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감정적인 반응의 감소이다.  감정적인 느낌의 마비가 오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잘 분별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좋아하고 소망하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와의 단절이 일어난다.  그 결과로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이 둔해진다.  자신과 격리된 또 하나의 현상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현상이 있다.  특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자신이 그 상황 속으로 몰입되어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상황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상황을 1인칭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데에는 둔하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욕구에서 온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엉키는 것을 피하고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이다.  자신의 둘레에 벽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하며 자기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고집하려는 바람이다.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거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그러기에 가능하면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자급자족의 정신이 강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신에 대해 분노한다.  예를 들어서 몸이 아파서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하는 상황이 되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도움 자체를 고마워하지 않는다.  길을 잃고 헤메이는 상황에서도 길을 묻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자신의 개인생활을 침해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오거나 간섭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신앙생활에서도 교회에 등록을 하고 다니기보다는 익명으로 다니기를 원한다.  교회의 등록을 기피하는 이유는 교회의 목사나 다른 교인들의 간섭이나 사생활을 침해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급자족이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생활태도는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된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다스림을 받는 생활이다.  과도한 자급자족의 정신이나 프라이버시에 대한 집착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개인생활의 침해라고 여기고 거부하며 스스로의 벽을 허물지 못하게 하며 다른 성도들과의 지체의식을 인정하지 못하게 한다. 
    회피형은 결혼생활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경험한다.  결혼생활 자체가 배우자와 일평생을 함께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혼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기피한다.  결혼 후에도 배우자와의 친밀감을 형성하기가 힘들다.  배우자의 다양한 요구가 자신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로 여겨지기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다투는 일이 잦아진다.  상대방의 조언은 자신을 억압하고 주관하려는 시도라고 느껴지기에 받아드리지 못한다.  회피형과 접근형이 서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두 사람의 추구하는 방향이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상처를 준다.  접근형인 아내는 회피형인 남편의 행동을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드린다.  또한 남편은 아내의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자신을 구속하고 간섭하는 행위로 여겨지면서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접근형은 상대방이 나를 과연 좋아하고 용납해 줄 것인가에 우선적인 관심이 있고 대항형은 상대방이 나에 비해서 얼마나 강하거나 능력이 있느냐 또는 나에게 얼마나 유용한가가 관심사이다.  이에 비해서 회피형은  상대방이 과연 나를 구속하거나 간섭할 것인가 아니면 홀자 있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에 있다. 

회피형의 성경적 이해
    하나님은 인간 한사람 한사람을 독특한 존재로 지으셨다.  우리들은 각자의 독특한 성격과 외모 그리고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우리 모두가 한지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구절에서도 모든 지체가 각기 다른 모양과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고전 12:12-21). 교회에서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각 지체에 주신 역할은 각자 다르다(고전 12: 28-30).  하나님이 교회에서 목사에게 주신 역할이 있고 장로나 집사에게 주신 역할이 있다.  이러한 역할의 경계가 잘 유지되어야 건강한 교회가 된다.  만일 교인 모두가 목사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교회의 질서는 무너지고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우리 각자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만 주신 사역의 영역이 있다.  이러한 경계를 넘지 않고 다양성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즉 지체가 하나 되기 위해서 자신의 독특성을 버릴 필요가 없다.  지체 안에서 친밀감을 나누고 하나가 된다고 해도 나에게 주어진 독특한 삶의 영역은 유지되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식구들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서로 깊은 교제를 통해서 친밀한 관계로 묶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녀의 경계는 유지되어야 한다.  가족의 역할이 뒤바뀌어서 자녀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가정을 우리는 역기능 가정이라고 말한다.
    구별됨과 하나됨은 서로 상반된 개념이면서도 우리 가운데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개별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는 책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각자가 자신의 몫을 심판받게 된다(고후 5:10).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몫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영역을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갈 6:2-5).”  본문에서 각자의 짐을 지는 것과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명령이 아니다.  서로 져야 하는 짐은 천지재앙이나 불의의 사고로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칭한다.  만일 우리의 지체 중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되었다면 모든 지체들이 힘을 모아서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남이 져 줄 수 없는 우리 각자의 몫이 있다.  5절의 자기의 짐은 바로 내가 책임져야 삶의 영역을 표현하고 있다.  만일 자기가 책임져야 할 몫을 남에게 떠맡긴다면 짐을 맡는 사람이나 맡기는 사람 모두가 해를 당한다.  아무리 교회의 한몸된 지체나 가정의 식구라 할지라도 이 원리는 지켜져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에 자녀가 감당해야 할 짐을 대신 져 주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서 TV를 늦게까지 보다가 숙제를 못한 아들이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대리 숙제를 해 주었다면 자녀가 당장의 어려움은 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책임지는 인격형성에 역효과를 가져온다.  부모가 자녀의 삶에 너무 밀착되어서 분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장성한 아들이 결혼해서 분가하려고 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 있느냐고 죄책감을 주어서 붙들려고 한다.  건강한 심리적 경계가 있는 사람은 ‘예’ 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표현한다.  또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의 한계를 잘 구별한다.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구분 할 줄 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삶에는 건강한 경계가 있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한계를 정하셨다.  아담과 하와도 남자와 여자로서의 구분이 있었으며 역할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해서 자신을 숨겼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고 거리를 두게 되었다.  성경의 역사는 범죄 한 후에 하나님을 피해서 자신을 숨기고 도망가는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중심 내용이다.  건강한 경계는 자신의 독특성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인정한다.  자신의 책임영역에 대한 한계를 알고 상대방의 삶에 자신이 책임질 수 없음을 인식한다.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구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지만 휩쓸리지는 않는다.  건강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존중하며 타인도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왜곡된 경계는 다른 사람들과 멀리하고 자신을 숨기고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 마음에는 수치심에 의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에 의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자신의 감정에 둔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도 무감각하다.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지는 현장에서 도피한다.  결국 자신과 타인들에게 무책임하다. 
   
    회피성성격장애
    회피성성격장애는 비난이나 거절에 매우 예민하다.  이들은 친구가 거의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며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이들은 크게 2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매우 수줍어하는 성격으로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하여 사람들을 대하고 어울리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경우이다. 이들 가운데 천성적으로 사람들을 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관심과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방치된 가운데 성장하였거나 사회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감정적인 에너지의 수위가 낮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 별로 없다.  결혼생활에서도 이러한 성격의 배우자는 상대방에게 무감각하고 감정적인 표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부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다.  함께 있어도 거의 말이 없고 감정 표현을 안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부부관계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 교회에서도 침구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이 주로 외톨이가 된다.  이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제하는 것 자체에 관심이 별로 없다. 둘째는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피하게 만드는 경우이다.  거부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을 피하는 사람들은 성장과정에서 부모나 주위 사람들에게 직, 간접적인 육체적 언어적 폭력을 당한 사례들이 많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외모나 가정환경 또는 학교성적 으로 인하여 부모나 친구들에게 반복적으로 놀림을 당한 경우에 대인관계에 자신이 없어지고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것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많다.  이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제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거나 무시할 것 같은 두려움이 사람들을 피하게 한다.  또한 과거에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친밀한 관계를 거부하게 만든다.  J양은 직장생활을 하는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자신의 뚱뚱한 외모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다.  부모는 귀여운 돼지라고 부르는 애칭이 싫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놀림을 당하면서 모든 일에 소극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싫었다. 학교에서는 얌전하고 말이 없는 아이로 지냈다.  그녀의 직장 근무는 별 문제 없이 소화한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예민하고 수줍음을 잘 탄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예민하다.  만일 직장 상사가 자기 옆 직원에게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자기에게는 웃어주지 않으면 상사가 자기의 근무태도에 불만이 있고 자기를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자신이 위축된다.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일이 별로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어울린다고 해도 말도 없이 혼자 있다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퇴근해서 군것질을 하면서 TV나 비디오를 보는 일이다.  혼자 공상을 많이 하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자신의 삶에 특별히 기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아주 슬픈 것도 없다.  최근에는 자꾸 우울해지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느낌이 자주 온다.
   
    이러한 세 종류의 유형은 꼭 한 가지에 고정될 수도 있으나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출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가정에서는 모든 상황에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는 가장이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관계에서 회피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유형 중에서 한 가지가 다른 유형들보다 많은 빈도수로 표출된다. 
특정한 자기 방어 유형은 각자의 독특한 기질과 어릴때부터 주위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형성된다. 
아버지와 3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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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대 아동을 위한 성경적 상담(성경적 레질리언스를 중심으로)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 652
7 통합주의
연구논문 : 미혼모를 위한 성경적 상담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 578
6 통합주의
연구논문 : 성경적 상담을 통한 기독 중년 여성들의 우울증 회복과정연구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 705
5 통합주의
연구논문 : 완벽주의와 우울에 관한 성경적 상담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 582
4 통합주의
연구논문 : 다문화사회에서의 성경적 상담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 593
3 통합주의
특집 : 실천적 칼빈주의와 성경적 상담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 517
2 통합주의
노화 불안에 대한 성경적 상담의 적용 센터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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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복음주의 내 성경적 상담의 확장과 "신칼빈주의" 센터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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