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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음악세션] lmsj

2014.5.30.pm6 음악세션 1 - 용서 1
2014.6.2.pm2  음악세션 2 - 용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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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4-05-30 (금) 19:24 9년전
2014년 5월 30일 pm6 전화음악세션 1: 용서1
 
제목: 사람들 사이에 있던 나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욕구 -> 은혜)
 
Q. 미리 음악을 감상하면서 어려웠던 점&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햇살보다 밝은 주의 영광’ 이라는 노래와 비슷한 것 같아서 밝은 주의 영광, 빛으로 임하신 주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첫번째 음악&방향제시 : 용서에 대한 깨달음을 갖기, <이미지제시> 깜깜한 방안에 내가 웅끄리고 앉아있었고, 문이 열리고 빛이 따라 들어온다. 그 빛을 따라 방 밖으로 나간다.
 
<극본적 해석>
1)발단
 
>>감상후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예수님이 동행해주시는 것처럼 같이 길을 걸어 주시면서 주위에는 너와 나 사이를 막는 다른 것들이 있었다. 그 죄를 적극적으로 버리는데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 오히려 약할 때 강함이 된다.
 
2) 전개
 
Q.떠오른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새로운 깨달음이 되시나요? 아니면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되시나요?
-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의식을 못하다가 우울증이 오면서 의식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이게 왜 죄인가? 요즘 이게 왜 죄가 되는지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도 모르게 내가 알지 못했던 영역에 죄를 깨닫게 되었다. 이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큰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절정
 
Q. 지금 떠오르신 생각은 예수님의 ‘용서’ 안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소명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에서 넘어지는 나. 하나님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사랑하라는 계명. 그래야 죄를 이길 수 있고... (도달해야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다.
 
4)결말
 
Q. 좀 더 ‘용서’와 연결해서 의미를 찾는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 내가 너를 그럼에도 불고하고 용서하고, 제자로 이끌어 간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낙심했다. 그런 제자들... 잘 알지 못하는 제자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일으키고 깨우치는 것처럼 죄악이 있고, 죄로 가고 있었지만, 동행 그 자체가 용서인 것 같다. 베드로의 삶의 이막처럼... 첫 번째에서는 부인하고 도망갔지만 이후에는 생명을 낚는데 까지 나아가는... (죄인 것을 아는 것) 그게 다가 아니고  죄를 버리고 나아가자.
 
Q. 용서 이후 - 동행 - 새로운 삶에 대한 부분을 생각하셨습니다.
 
>>두번째 음악&방향제시: 용서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동행해시고, 새로운 삶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음악에서는 성도님의 실제적인 삶에서 예수님의 용서 이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상후
- ‘영생을 취하라. 믿음을 선한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 그 말씀이 생각났다. 이후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견고하게 세워주시는....
 
Q. 용서해주심 속에서 이런 말씀들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의미를 좀더 생각해보세요.
- 이것들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침노하는 것처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 믿음의 당당한 경주를 해야하는 의지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 죄를 이기기 위한 적극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 푯대가 분명해야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죄인 것을 아는 것과 그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겠다.
 
<적용적 해석>
1)원리
- 푯대가 분명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푯대는 주님의 부르심.
 
2)예화 
- 사도바울이 향방없는 것 같이 달리지 않고 분명한 것을 쫒고 있다. 삶에 있는 어려움들을 자신들을 극복하고 기쁘게 간다. 그런 사도바울의 모습.
 
3)방법 
- 말씀을 암송을 해서 그 말씀이 나를 지배해서 갈 수 있도록. 삶 가운데로 부르시는 것 같고, 흔들리고 길들이 열리면서 내가 굳이 이 길을 가야하는지 문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정말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포기가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깊이 만나야겠다.
 
4)사례: Q. 그렇게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갖게 된다면, 삶의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 자유하게 될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의 시선, 내가 욕심을 얻고자 했던 많은 것들에서 자유.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되는 변화.
 
- 가치관, 삶의 목표, 많이 바뀔게 될 것이다.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낮아지고자 하는 마음. 세상이 달려가는 길을 거꾸로 가는 것이므로 예수님을 깊이 만나야 가능한 것이다. 미지근히 만나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소감
- 주님의 길을 간다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광야를 겪으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희생없이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고, 부르심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던 것. 단순한 사람 믿음 붙잡고 나아갈텐데, 나는 의심과 두려움이 많아서 메시지들을 주셨는데 잘 실천해나갈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이 길이 분명한 길이라면 분명히 결단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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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4-06-02 (월) 15:08 9년전
2014. 6. 2. pm2
 
*은혜주제: 용서
 
<첫번째 음악>
>>지난 세션 마지막에 '주님의 길을 간다라는 것, 부르심에 대해' 적용하고자 하셨는데, 이번 세션에서는 '부르심'에 대한 관점적인 이해를 해보겠습니다.
 
<감상후>:부르심에 대해 어떤 것들이 떠오르셨나요?
- 십자가, 희생, 그것을 통해 열매를 맺어지고 그것이 기쁨이 되고 십자가가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할 수 있다는 것.
 
<관점적인 이해>
1)나의 과점 :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라. 자기를 부인해야 갈 수 있다.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갈 수 있는 길. 인간은 죄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사랑, 자기보호를 한다. 자기 부인을 통해 십자가 지신 그 뜻을 쫒아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인정받고자하는 마음'은 부르심을 감당하는데 대치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대치되는 부분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 십자가를 깊이 체험하기 전에, 그때도 사람들의 시선 속에 살았기 때문에, 사역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10년을 살았다. 대부분을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  (어려움들이) 터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렇다. 내가 살았던 방식이 아닌 것으로 살아야 되는 것. 습관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예수님께 뜻을 물어서 하고자 했던 것을 버리는 과정. 상황을 부딪쳤을 때 예전처럼 행동하지 않아야되는 것을 알게됨.
하지만 쉽지않다.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기보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야지만 육신적인 노력으로는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이 되지 않는 것처럼. 포도나무 가지처럼 접붙여야 되는 것처럼. 그만큼 내려놓아지지 않는 부분이 아직도 있구나. 실천해나가고 사고 방식을 뒤엎는 작업들인데.... 반드시 싸워내야겠다. (의지)
 
>>'반드시 싸워내겠다'는 의지적인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의지는 감정을 이겨낼 수 있게 하고, 하나님께 더 나아가게 합니다. 이런 본인의 의지적인 부분에 대한 타인의 관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2) 타인의 관점 : 가족들은 본인의 이런 의지적인 부분에 대해 어떤 관점인가요?
- 너를 왜이렇게 유별나냐, 적당히 살지, 말씀에 의해 치열한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심, 하나님의 방법과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에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같은 그리스도인이지만 다르다. 언니와 엄마의 뜻에 동조하고 의지했던 세월이지만 부모나 자식을 하나님 뜻을 사랑하는 자들은 합당치 않다. 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 음악>
>>‘반드시 싸워내야겠다.’라는 의지적인 부분에 있어서 예수님의 용서는 어떤 의미가 되는지 묵상해보겠습니다.
 
<감상후>
 
3)하나님 관점 : 용서에 대한 의미가 떠오르셨나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책망하지 않으신다. 용서라는 것을 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 하나님이 나늘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람의 관점이다.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정말 다르다..
 
>> 이러한 예수님 용서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이 생각은 너무 다른다는 것. 나의 감정에 휘둘리면 하나님의 관점을 잘못하고 나 중심적인 생각을 늘 하니까 죄를 지으면 회개하면 말씀 그래도 희게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그것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4)사탄의 관점: 사탄은 예수님의 용서에 머물러있으려는 본인에게 어떤 관점을 가질까요?
- 너무 싫어하고 여태까지는 그 생각에 동조해줘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니, 많이 달려들 것이다. 지금도 싸우고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무기는 말씀이니 말씀을 취하고 있는 그대로 믿고 나야가야 겠다.
 
*소감: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정말 다르고, 그분의 용서는 인간적인 사랑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잘못은 들추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덮어주신다. 물론 공의로 다스리시지만.... 우리 선함이 없을 때 하나님의 용서는 정말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적인 부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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