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선으로 이기려고 할 때 항상 처음 드는 생각은 무조건 악을 제거하기만 하면 선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선을 추구하려고 할 때만 악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빛으로 나아가야만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배교한 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신사참배를 이미 한 사람들은 과거의 우리 장로교 교단의 모든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오직 신사참배를 결의하지 않은 고신 교단만 거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있었던 그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그것은 회개 만이 살 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긍휼함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용서를 구함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우리는 주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에 대한 철저한 증오와 비난으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나는 정말로 의로운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것 밖에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그 이후에 공산주의가 남침을 하면서 기독교인은 다시 총칼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유주의와 세속주의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언제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습니다. 비난과 증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믿음으로만 그 의가 살아있게 됩니다. 그러니 신사참배가 악한 것이었지만 이미 그것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이냐 하는 것은 회개만이 답이 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 대한 증오나 미움 보다는 돌이키게 됨과 올바르게 함을 더 강조했던 것입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가장 깨끗한 물이어야만 가장 싱싱한 고기가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한 깨끗한 물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깨끗한 물은 더러운 물을 제거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 부터 내려오는 깨끗한 물을 받을 때에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배교행위와 배교자를 다 지적하고 대적하며 비난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를 붙들 때만이 깨끗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