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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F] Preaching or Counseling?



Preaching or Counseling?

Published: March 28, 2016



In pastoral ministry, are preaching and counseling complementary ways of proclaiming Christ? Is one more important than the other? Or is one essential and the other less so? Seminary students and pastors are by no means unanimous in their answers.

Definitions matter, especially here. Preaching, as I am using it, is public ministry—the public proclamation of Jesus—in which the preacher speaks and congregants listen. They also respond, but not in the direct, one-on-one sense. Counseling, as I understand it, is personal ministry—the personal proclamation of Jesus and the implications of his death and resurrection—in which one person speaks and the other person responds, back-and-forth. It can be done formally, by appointment, but more often consists of five-minute interactions after church and in the course of daily life.

Preaching and counseling as complements

In pastoral ministry, the public and personal ministry of the Word are the two prominent ways that the work of Christ is proclaimed. Both are important, though counseling, either formal or informal, takes more time because we talk with people more often than we preach to people.

The Apostle Paul summarized his pastoral ministry this way, “Him [Jesus] we proclaim, warning everyone and teaching everyone with all wisdom, that we may present everyone mature in Christ” (Col. 1:28). Paul did this publicly in the synagogues and personally in the course of his daily conversations. The hard distinction between public and personal ministry, with one form having pride of place, is not immediately obvious in either his writings or in Acts.

Preaching and counseling as antagonists

But perhaps you have heard someone talk about the primacy of preaching. In its original form, it seems to have been a reformation response to papal authority and the primacy of the Mass. In its day, it was equivalent to, “Scripture and its proclamation have primacy.” Today, it means that the actual Sunday sermon is the center of church life and pastoral calling. So far, so good—I think. Most evangelicals agree that the preaching of the Word is essential to life in a local church. But when primacy of preaching is mentioned today, it is no longer contrasted with the Catholic Mass. Rather, it is usually contrasted with other regular features of a pastor’s life, such as the individual care of souls, a.k.a. counseling.

Like all theology, our position here has consequences, some intended, some not. When personal care of souls becomes the contrast to, rather than complement of, the public care of souls it relegates it to the theological ghetto. Its absence or lesser position will communicate that congregants need not talk about their weaknesses or struggles. They have no clear biblical authorization to ask for help for their souls or to give help. This is not what any of us intend to communicate to our churches.

I would suggest that Scripture does not make precise distinctions between public preaching and personal pastoral care. Both are the Word proclaimed. One is not lesser. Given this equal weight, the pastor’s goal is to grow in both pastoral care and preaching, and give as much attention to the personal care of souls as is given to the preparation of sermons.


필독서1
필독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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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고 번역

설교인가 상담인가?
작성자: 에드 웰치
주제: 페이스트링, 상담 & 일반 페이스트링, 상담, 설교
발행: 2016년 3월 28일



목회에서 설교와 상담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상호보완적인 방법인가요?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가요? 아니면 하나는 필수적이고 다른 하나는 덜 중요한가요? 신학생과 목회자의 답변이 결코 만장일치는 아니다.

정의는 특히 여기서 중요하다. 내가 사용하는 것처럼 설교란 설교자가 말하고 회중이 경청하는 공공목회, 즉 예수의 공공선포입니다. 그들은 또한 직접적으로 일대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상담은 개인적인 사역, 즉 예수의 개인적 선포와 그의 죽음과 부활의 함축적 의미입니다.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이 앞뒤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약속을 통해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경우 예배 후와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5분 간의 상호 작용으로 구성된다.

보완으로서 설교와 상담

목회에서는 말씀의 공적 사역과 개인적 사역이 그리스도의 사역이 선포되는 두 가지 두드러진 방법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더 자주 대화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상담이든 비공식적인 상담이든 둘 다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회를 "그[예수]께서 선포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모든 지혜를 가르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모든 사람을 예우하게 하신다"(콜 1:28)고 요약했다. 바울은 회당 안에서 그리고 일상 대화 중에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한 형태가 지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공적 사역과 사적 사역의 고된 구분이 그의 글에서도, 법률에서도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적대자로서의 설교와 상담

하지만 아마도 여러분은 누군가가 설교하는 것의 우월성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본래의 형태로는 교황의 권위와 미사의 권위에 대한 개혁적 대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에는, 그것은 "성경과 그 선언은 우위에 있다"와 같았습니다. 오늘날 실제 주일설교가 교회생활과 목회소명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잘했어-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말씀의 전도가 지역 교회에서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날 설교의 우위가 언급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가톨릭 미사와 대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보통 영혼의 개별적인 보살핌, 일명 상담과 같은 목사의 삶의 다른 규칙적인 특징들과 대조된다.

모든 신학이 그렇듯이, 우리의 입장은 결과가 있다. 일부는 의도된 것이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영혼에 대한 개인적인 보살핌이 영혼에 대한 공적인 보살핌이 보완이 아닌 대조가 될 때, 그것은 그것을 신학적 게토에 귀속시킨다. 그것의 부재나 그보다 적은 위치는 신도들이 그들의 약점이나 투쟁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전달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움을 줄 명확한 성경적 권한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중 누구도 우리 교회에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성경이 대중 설교와 개인적인 목회 돌봄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고 제안하고 싶다. 둘 다 선언된 말씀이다. 한 명은 더 적지않다. 이런 동등한 비중을 감안할 때 목회자 돌봄과 설교 모두 성장해 설교 준비만큼 영혼의 개인적인 돌봄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이 목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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