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욘 3: 1-6 변화된 요나의 성공적인 니느웨 사역 [8]



32욘 3: 1-6 변화된 요나의 성공적인 니느웨 사역 [8]



2009.8.9.주일. 주일오후 / 0상담학

변화된 사람은 변화되지 않은 사람보다도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다들 어떤 식으로든지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5만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아 유명한 죠지뮬러도 사실은 비행청소년이었습니다. 도둑질을 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신앙생활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던 그는 친구의 인도로 기도모임에 가게 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성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모든 필요에 대해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주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서 고아원 사역을 하면서 필요가 생길 때마다 기도노트에 기도를 적고 성경말씀을 붙들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살면서 성경을 200번 정도 읽었다고 합니다. 꼭 기도할 때에는 그에 관련한 성경말씀을 찾고 그 구절을 짚어가면서 기도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은 것이 5만번이 되었던 것입니다. 변화되었기에 가능한 놀라운 사역이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사람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고, 존 뉴튼은 노예상인이었다가 목사가 되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찬송을 작곡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유명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깡패로 소문나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탁월한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이러한 변화된 사람들은 전부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는 좋은 것입니다. 변화는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변화는 더 놀라운 일들을 이루게 만듭니다. 그 변화는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한 인간의 삶의 문제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그 변화의 한계는 끝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로, 가정의 문제로, 종교적인 문제, 학교나 직장이나 사회의 문제로 고민했었던 것일지 모르나 변화된 삶의 열매는 애초의 영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더 크고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변화는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보고 있는 이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애초에는 삶의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한 바퀴 돌고 난 다음에는 전혀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은혜>를 알게 되었고,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실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는 제한되지 않으며 제한할 법도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금지할 법이 없는 것입니다. 계속 자라나게 됩니다.
이제 오늘은 그 모든 변화의 마지막으로 요나가 어떻게 변화를 이루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가를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변화된 요나는 너무나 놀라운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변화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커다란 하나님의 사역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우리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커다란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다음에 무엇을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이제 요나는 하나님의 명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 명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았던 이유는 스스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그가 회개하였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진리를 말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습니다. 자신의 배운 진리를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경험한 진리에는 확신이 있습니다. 신념이 생깁니다. 그것을 통해 놀라운 사역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요나는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습니다. 니느웨를 다 돌아다니는 데에는 삼일이 걸렸습니다. 삼일 동안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날에 그가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후에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선포했을 때 백성들은 정말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퍼져나가 왕에게까지 들리게 되었고 왕도 역시 보좌에서 일어나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도 어려울 것 같던 회개의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회개와 간구의 모습은 눈깜짝할 사이에 왕에게까지 이르렀고 왕조차도 돌이켜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요나가 니느웨에 도착해서 하루만 선포했었어도 온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사역을 통해 니느웨를 구원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의 사역은 가장 성공적으로 가장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며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이것이 어떠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해 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의 삼일을 보내면서 온전한 마음의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에 그 모습은 첫 번째 명령을 받았을 때와 동일한 상황입니다. 주님의 명령은 변화되지 않았고 가감되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명령이 두 번째 임한 것입니다. 그럴 때 요나가 보인 행동은 실천이었습니다. 그 실천은 즉시 일어나 니느웨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일길이 걸리는 니느웨 사역에서 오직 첫번째 날만 선포하였어도 그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 변화는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순종과 충성이 바로 그 변화를 이루는 고리가 되었습니다. 그전에 요나는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에 빠져서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달라지고 나니까 이러한 실천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에 그러한 마음에 새로운 결심이 생겼습니다. 그 결심은 실천을 이룰 수 있게 힘과 능력을 공급했습니다.
하지만 <실천> 자체만으로 당장에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애초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복되어야 합니다. 반복이 계속 이루어져야 비로소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실천 그 자체도 중요한 하나의 열매입니다. 좋은 열매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해만 열매가 맺고 그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매년 좋은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니라고 해보십시오. 반복되지 않으면 별다른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일을 하고 저일을 하면서 행동으로 마음의 결심을 나타내었지만 내일은 달라지고 또 모레가 달라진다면 결국에는 원래의 문제상황으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변화가 생길 때에 비로소 문제상황이 사라집니다.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문제상황은 다시 반복됩니다.

요나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복음을 증거한 것은 <실천>입니다. 그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 말씀에 충성하였습니다. 지체하지 않았고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니느웨에서의 놀라운 회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변화>를 이룬 것일까요? 온전히 변화되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대로 다시 요나서 4장이 시작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요나서가 끝이 났다면 요나도 완전히 변화된 사람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그곳에서 <사역>을 했을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단지 회개함으로 끝이 나지 않고 용서해 달라고 심판을 정지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전부가 아닌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행했던 악독이 사라져야 했고 그런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히 니느웨에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역>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전도하고, 양육하며 상담하고 봉사하고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요나서가 니느웨의 회개로만 끝이 났다면 우리는 아마 그러한 일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서는 다시 4장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 시작은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요나는 <사역>을 거부하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나는 아직도 <변화>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자연히 사역으로 나아가야 그것이 진정한 변화인데 사역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직도 변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뿐입니다. 좀더 설명하자면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할 일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하나님의 일을 붙들고 사역을 하고 있으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변화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그 사역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일하는 곳이지 쉬는 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만 하는 곳이 그 나라이고 그 일을 하면서 기쁜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의 해결은 변화의 표현인 사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비하고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애초에 문제였던 상황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아름다운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선순환이자 <변화>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죠지 뮬러는 자신의 변화 속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며 고아들을 돌보는 봉사의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와 양육, 교육의 사역을 하였습니다. 존 뉴톤은 목사로서 찬양봉사 사역을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부흥사로서 전도와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의 사역을 했습니다. 이 모든 사역 속에서 그들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회심과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였고 그들의 놀라운 열매는 한 두번의 혹은 그 이상의 실천으로 국한되지 않았으며 사역 속에서 그들은 지구상의 하나님의 교회에 커다란 유익과 힘이 되었습니다. 바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역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역을 통해 완전한 변화가 완성됩니다. 그래양 비로소 어려운 상황도 끝이 납니다. 요나는 비록 3장에서 끝나지 않고 4장으로 갔지만 그곳에서는 끝이 났습니다. 사역을 통해 비로소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가 보여준 놀라운 변화의 과정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변화의 과정은 ‘성경적 변화의 역동성’이라고 하는 성경적 상담학의 중요한 과목입니다. 한 과목을 여러 주간에 걸쳐서 말씀 속에서 함께 살펴본 것입니다. 원래 강의 속에서는 요나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 속에서 적절한 예를 들어서 살펴보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이말은 요나 뿐만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변화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성경적인 변화는 전부 이런 과정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심리학적 변화나 세상적 변화 혹은 기존의 교회양육구조나 성장과 발전에 관한 교회적인 원리들은 다 어느 단계에서 멈춰섭니다. 그것은 상황이나 악순환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것, 나쁜 열매를 인식하는 것, 혹은 나쁜 뿌리를 깨닫는 것, 또는 하나님의 은혜와 좋은 뿌리를 이해하는 것, 좋은 열매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변화와 그로 인한 결과를 살펴보는 것 등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이 모든 것을 이어가지는 않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과정이 이해되고 진행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조금씩 밖에 영향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왜 변화했는지 잘 모르게 됩니다.
성경적 변화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 다음에 저것, 저것 다음에 이것, 이런 식으로 서로 서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적 상담학에서의 변화의 역동성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러한 변화의 역동성을 잘 이해하셔서 누군가의 변화를 돕고자 한다면 그 변화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는 이 성경적 상담학을 연구하면서 이것을 평신도로서 누구든지 잘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도표와 과정들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은 전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제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제가 만들었기 때문에 제가 고치는 것이고 제가 고치기 때문에 더욱 발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역동성 그림’ 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상담챠트’라는 것입니다.

이 챠트를 통해서 우리는 모든 성경적 상담을 하게 됩니다. 역동성 그림은 이해를 돕는 것이고 실제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에서는 필요한 상담주제들이 있고 그 모든 상담주제들은 전부 제가 연구해서 만든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이 주신 방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킵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도 변화됩시다. 이 상담챠트가 계속적인 변화의 지도가 되어서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변화된 우리들이 지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변화로 안내하는 하나님의 변화의 안내자들이 됩시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진실한 마음의 변화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만드는 이 일에 동참하시고 연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주의 일꾼에게 주시는 그 모든 풍성함을 우리 모두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필독서1
필독서2


1.신체문제 상담챠트

2.뇌구조 상담챠트

3.정신구조 상담챠트

4.마음이해 상담챠트

5.변화과정 상담챠트


아리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07-12 (월) 02:23 3년전
하지만 <실천> 자체만으로 당장에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애초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복되어야 합니다. 반복이 계속 이루어져야 비로소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실천 그 자체도 중요한 하나의 열매입니다. 좋은 열매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해만 열매가 맺고 그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매년 좋은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니라고 해보십시오. 반복되지 않으면 별다른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일을 하고 저일을 하면서 행동으로 마음의 결심을 나타내었지만 내일은 달라지고 또 모레가 달라진다면 결국에는 원래의 문제상황으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합니다. 변화가 생길 때에 비로소 문제상황이 사라집니다.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문제상황은 다시 반복됩니다.

위의 귀한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적 상담을 공부하면서 설교말씀을 반복하여 들으면서 나자신을 돌봄니다. 지난 날의 나를 주님께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대화자에게 다가가서 반복하여 은혜를 받는 중에 모든 과정속에서 주님의 은혜가 저를 치료하고 회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주신 은혜감사합니다 . 주님 생활 중에 반복하여 생각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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