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원리로 상담을 하는 것은 단순히 신앙을 더욱 굳게 하는 의미만 있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원리는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진정한 유익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 때 이 세상은 가장 축복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네 번째 원리는 바로 그러한 의미를 보여줍니다.
1.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
2. 사람은 죄로 인해 타락하였다.
3. 상담의 주요도구는 성경이다.
4. 사람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다.
5. 상담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6.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존재이다.
7. 진정한 변화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라는 신앙적인 원리도 알게 되고 이 세상의
사람의 문제의 근원이 마음에 있고 그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인생의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정할 때 사람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그 이유를 그 사람의 마음에서 찾기 보다는 다른
곳에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많이 제기되는 것이 상황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그러한 문제를 갖게
된 이유는 외부 상황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문제는 상황의 문제이다.]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고 사건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고 그는 원래 착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인데 그의 주변이 이렇게 그를 망쳐놓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잠언 4장 23절을 보십시오.
“잠4:23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 나오는 곳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바라고 의지하고자 하는 모든 생각은 바로 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근원되심을 마음으로 지켰다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어떠한 사건에서도 하나님을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어리석음이자 문제의 근원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울왕은 하나님의 세우심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왕으로서는 제사를 드리는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인 사무엘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기가 제사를 드려버렸습니다. 아말렉왕을 처단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가 환경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가
주변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에게 어떤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요? 진정한 문제는 바로 그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때 더이상 주님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바꿀 수 있을까요? 행동을 바꾸면
마음도 바뀌어 질까요? 그래서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문제는 행동만 달라지면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교회만 가면, 일단 기도만 하면,
일단 성경만 읽으면 그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되고 좋은 마음을 가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원리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사람의 문제는 마음에 달려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달라져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 행동이 달라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잠4:22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그것은 성경의 원리입니다. 잠언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의 원리입니다. 그것을 얻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지키고 얻는 자에게 그 마음은 생명이 되고 온 육체의 건강이 됩니다. 마음을 잃어버릴 때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도 잃어버리게 되지만 그 마음을
얻을 때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극복해 낼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서 결국에는 승리하게 됩니다.
다윗은 어려서 왕이 된다는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서 동시에 왕의 미움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울을 피하고 사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냥 자유를 원하고 안전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속에서 하나님을 바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얻었습니다. 그럴 때 그 속에 생명이 생겼고 육체가 안전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따라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흥부와
놀부 이야기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해서 흥부가 박씨를 받게 되었나요? 그는 진심으로 제비를 사랑했고 도와주고자 했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씨로
제비가 박씨를 물어왔던 것입니다. 놀부는 무엇을 따라했습니까? 그는 그냥 제비다리를 고쳐주었을 뿐입니다. 문제는 그 제비다리는 사실 자기가 부러뜨린
것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제비를 고쳐준 것이 아니라 제비를 학대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선한 행동은 따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의 원리에 대한 부정을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때 해야 하는 것은 원래 있었던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원래 우리에게 있던 마음은
악한 마음입니다. 그 속에서는 심각한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 버려지고 나서야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울에게는 악한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삼상15:30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찌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그가 더 사랑했던 것은 사람들의 평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러한 우상숭배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잘 깨닫고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빈 마음에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그 마음은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붙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 속에서 늘 새로운 은혜를 얻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진정으로 마음의 변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십시오. 에스겔 36장입니다.
“25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28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정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신을 우리 속에 주셔서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수였던 간하베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한국에 선교사로 오셔서 창녀촌에 있는 직업여성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들을 전도하는 데는 그들의 환경에서 구원해 주면서 전도를 하는 방법과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자신의 환경에서 나오도록 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자의 방법으로 전도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창녀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하베 선교사는 창녀촌에 가서 그들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낮에는 별로 할 일이 없던 그녀들은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으니까 여기 저기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창녀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성경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호기심으로 그가 전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던 직업여성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달라졌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이런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합리화를 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간하베 선교사가 전도를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열의 여덟은 아무 말 없이 예수님을 믿게 된 그날로 그곳을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가정부 일을 하거나 공장에서 일하거나 길거리에서 행상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숨어서 다른 사람들을 후원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을 변화시키는 것과 겉만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성경적인 전도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본질은 마음의 변화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마음의 변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의 변화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는 않고 빨리 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서 생기는 결과는 초라합니다.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문제 해결로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분명한 문제의 해결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통해 더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고 또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