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 '수고'나 '노력' 이라는 것 자체를 마음 깊히 거부 했었나 보다. 편암함을 내 마음의 우상으로 삼고 매순간 타협하고 물러서고 포기하는 것의 연속이었고, 살아가면서 기울여야 할 노력들 자체가 나에게는 고통 이었다.
설교문에서 다른 삶이 그려져 있었다. 바울과 실라는 내가 그토록 기피하는 것 두려워 한 것을 기쁨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한 순간은 가장 절망적인 때였다. 내가 매를 맞고 옥에 갖히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바울과 실라는 그랬다. 그건 믿음의 행동이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항상 두려워 했던 것은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는지, 정말 내손을 붙드시는지' 의심하고 걱정했으며, 나의 상황과 과거를 돌아보며 절망하곤 했던 것 같다. 정작 해야할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의심함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은 것이다. 나는 당장 증거가 없어도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믿음에 대한 오해를 버려야 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 그분의 일하심, 능력 주심을 믿고 한발짝 움직이는 것이다. 의심과 절망의 감정은 자꾸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하지만 믿는 건 증거없이 믿는 것이니까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