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분들이 스스로 동성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노력을 했는가를 들어보면 같은 남자를(혹은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고 여자를(혹은 남자를) 좋아하려고 노력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동성인 남자를(혹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여자를(혹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에 대부분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이 동성애로 고민하는 분들의 사연입니다.
동성애를 극복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성애를 극복하게 되는 것이 이성애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애써 이성애로 가게 되면 결국에는 동성애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둘다 모두 '성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성애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 '짝'을 찾을 뿐입니다.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지만 원래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배필, 자신의 소울 메이트를 찾으려고 하지 이성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동성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성애로 가려고 하면 안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합니다. 자꾸만 '성애' 수준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그 자체가 성적 자극이 되어버려서 동성애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진짜 반대방향은 육체적, 자극적, 쾌락적 욕구가 아닌 고상하고 신령하며 영적인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정상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고 그 다음에 마침내 자신의 반려자, 배필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애초에 자극이 생기고 욕구가 생기고 취향이 생기게 된 이유가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자극적이었기 때문에 그 반대방향인 경건하며 신실하고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야 결국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에 있던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그 이전에 단지 먹지 말라고만 생각되던 선악과를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선악과는 그냥 먹지 말라는 과일이 아니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과일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현대의 세속적인 사회에서는 동성애 자체를 일깨우며 의식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말 주목해서 보기 시작하면 그 이전에는 심드렁하고 밋밋하던 동성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게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럴 때 그러한 생각에서 뒤돌아서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충만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신 창조명령을 준행하다 보면 비로소 원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행위를 실천함에서 생기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충만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이며 자신이 다스려야 하는 영역이 무엇이며 자신이 정복해야 하는 분야가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거기에 몰두할 때 순간적으로 잘못되었던 성애에서 돌이켜서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없는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우정이 싹트고 의리가 생겨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친구로서의 마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동성애가 한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계층의 문제가 되어버린 요즈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더 나아가서 해결해서는 안되는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역시 여전히 존재합니다. 바로 그러한 자들이 이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하게 되어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자신의 일생의 가장 중요한 도전을 잘 극복하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