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쬐는 태양과 뜨거운 동풍(욘 4:8-9)





 

 

내리쬐는 태양과 뜨거운 동풍(욘 4:8-9)

  

 

  

모든 갈등의 시작은 항상 어려움이 닥치면서부터입니다. 영화를 보아도 드라마를 보아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갈등은 대개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운 상황이 닥쳐온 이유에는 그전에 선행되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그 근원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그 근원은 좀더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밝혀집니다. 그래서 먼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힘든 상황이 찾아오는 것이 시작이고 그 힘든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갈등이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커져간 갈등으로 인해 안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애초에 왜 그런 힘든 상황이 시작되었는가는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상황이 시작되었을 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반응 속에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을 잘 들여다 보면 모든 일의 근원인 욕구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화가 나게 합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화가 날 때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날 때 그 분노를 아무 주저 없이 그냥 폭발시킵니까, 아니면 그 분노를 인내하고 참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나서 더욱 좋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까? 이런 식으로 문제에 대해서 반응이 어떠한가를 살펴볼 때에 우리는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감정적인 반응이 무엇인가를 살피고 그 반응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반응을 좋은 것으로 변화하게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왜 처음 시작된 힘든 상황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까요? 왜 문제 상황을 변화시켜 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시험이 어려워서 괴로워하는 학생에게는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있게 해주고,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하는 청년에게는 친구를 구해주며, 직장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고 있는 구직자에게는 직장을 갖게 해주고, 재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 재정적인 어려움을 무조건 대신 감당해주고 도와준다면 당장에 문제상황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악한 결과도 사라지고 악한 열매도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상황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더 요긴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래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 말씀을 잘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하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말씀의 의미를 꼭 잘 기억해두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사람에게 왜 상황적인 어려움이 닥치는지 그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등장하는 요나의 힘든 상황은 날씨와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뜨거운 동풍'과 '내리쬐이는 햇빛'이 생겼던 것입니다. 8절 상반절입니다.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욘4:8)"

  

그 뜨거운 동풍과 내리쬐는 햇빛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그 동풍과 햇빛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과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하셨고 요나의 마음속의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이 부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그런 어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그 문제상황을 없애려고 한다고 해보십시오. 그것은 누구를 막으려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며 그분을 거역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접근방법은 문제해결에 효과가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시험을 앞두고 괴로워하는 학생에게 시험을 아예 안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시험을 통해 실력을 쌓게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친구가 없는 청년에게 친구를 대신 구해주는 것은 그 자신이 직접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게 만듭니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에게 대신 직장을 갖게 해주는 것은 스스로 직장을 갖기 위해서 해야 하는 자기 자신의 발전과 능력의 개발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재정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아무런 깨달음도 없이 당장의 재정적인 어려움만을 없애준다면 근본적인 재정의 문제는 계속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이와 같이 단순하게 문제상황을 없애주고 바꿔주는 것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충돌하게 됩니다. 도와주려고 하는 의도는 좋았지만 대개 나중에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도움을 받는 사람이나 서로를 원망하고 관계가 악화되는 일이 생겨납니다. 오히려 도와주었다고 해서 안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상황만을 바꿔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배가 고픈 자에게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배가 고픈 삶을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문제상황을 서둘러 바꾸려고 하지 않고 진정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그 상황 속에서 각 사람의 반응에 집중하려고 할 때 맨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 그 사람에게 정말로 괴로운 문제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그가 괴로워하는 전반적인 문제를 잘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동시에 그가 정말로 괴로워하는 진짜 문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는 힘든 상황은 마치 뜨거운 태양처럼 고통을 줍니다. 그런데 보기에는 그 자체로 어렵고 괴로운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 진짜 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겉으로는 이런 저런 문제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혹은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면 정말 더 괴로워하는 구체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에 문제상황에 대해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변화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본문에서 요나는 자신이 처한 문제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스스로 죽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욘4:8)”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나에게 정말 괴로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가 진짜로 뜨거운 동풍과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괴로워했을까요? 그래서 죽고 싶다고 한 것입니까? 그건 죽을 이유가 안되지 않습니까? 그건 누가 봐도 이해가 안되는 말이지 않습니까?

  

좀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요나가 죽고 싶어하는 이유를 찾아봅시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봅시다. 그래야 그가 죽고 싶어 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생각해도 뜨거운 동풍과 내리쬐는 햇빛으로 인해서 그가 죽고자 했다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정말 요나가 죽고 싶어했던 이유는 사실 박넝쿨이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박넝쿨이 의미하는 무엇인가를 그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앞서 6,7절에는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욘4:6,7)"

  

그는 자신이 아끼던 박 넝쿨을 잃어버렸을 때 슬퍼했습니다. 자신이 기뻐하였던 박 넝쿨을 빼앗겼을 때 괴로워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을 주었던 박 넝쿨이 사라져버렸을 때 분노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끼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면 슬퍼합니다. 자신이 기뻐하던 무엇인가를 빼앗기면 괴로워합니다. 자신에게 유익을 주던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리면 분노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마땅히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얻지 못하면 화를 냅니다. 기대했던 선물을 받지 못하면 슬퍼합니다. 배고플 때 밥을 못 먹거나 혹은 맛이 없으면 화를 냅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가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던 것, 아끼는 것,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고 정반대로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사라져 버리면 그들은 화를 내고 괴로워하고 슬퍼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진짜 괴로워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때문에 생겨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러한 감정을 갖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리로 사람들의 진짜 문제상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많은 돈을 잃어버렸는데 그가 별로 화를 내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고 해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의 손해는 그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돈을 많이 갖게 되기를 원하고 바라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부모님이 자녀의 비행과 문제행동에 대해서 별로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모는 자녀가 비행을 하지 않거나 문제행동이 사라지게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닙니다. 학생이 시험을 못 봐서 성적이 떨어졌는데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다른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원하지는 않던 일이 실패할 때 별로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짜 문제는 힘든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힘든 상황으로 인해서, 또흔 어떤 상실이나 손해나 실패로 인해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생기고 그로 인해 화를 내고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화를 내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정말로 감정적이 되는 분야에 주목해 봐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 그 사람이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마음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할 때 엉뚱한 것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변화시키지 않아도 될 것을 가지고 씨름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부분을 변화시키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픈 이빨을 치료해야지 안 아프고 멀쩡한 이빨을 치료하려고 한다면 시간낭비입니다. 안 아픈 부분을 치료하려다 보면 도리어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듭니다.

  

예전에 어떤 병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왼쪽 발에 심각한 병이 생긴 어떤 환자는 그 왼쪽 발을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 당일 날 의사는 커다란 착각을 해서 멀쩡한 오른쪽 발을 절단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중에 그 환자는 원래 심각한 병이 있었던 나머지 왼쪽 발마저 절단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결국 두발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는 문제상황에 집중하게 되면 그러는 동안 진짜 문제상황이 진행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 정말로 고통스럽고 중요한 문제는 제쳐두고 엉뚱한 문제만 계속 살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별로 괴롭지 않은 문제상황만을 가지고 씨름하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고 맙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문제상황을 이해할 때에 무엇이 그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점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속에서 나무를 하며 혼자서 살아가는 나뭇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나뭇군에게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나뭇군은 이제 죽었구나하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이상하게도 호랑이는 자신을 잡아먹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눈을 떠 보니 그 호랑이는 자신의 앞에서 입을 쫙 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잡아먹지는 않는 것을 보니 필시 무슨 사정이 있겠다 싶어서 나뭇군은 가만히 그 입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이빨 사이에 커다란 뼈가 하나 박혀있었던 것입니다. 나뭇군은 손을 넣어서 그 뼈를 빼주었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뭇군이  집밖으로 나와보니 커다란 죽은 소가 한 마리 집 앞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가 자기가 받은 은혜를 보답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문제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가 정말로 괴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입을 쫙 벌려서 무섭기는 하겠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인가가 걸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성질을 내고 화를 내고 절망하고 괴로워하고 하소연을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이 정말 무엇인가를 알기 전까지는 우리는 제대로 된 상황파악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리 도와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어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문제는 그에게 정말 괴로웠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그 문제가 정말로 해결을 원했던 부분은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시작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게 되면 그 괴로움이 어디서부터 왜 왔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 그 괴로움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한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단계를 다시 말하면 '문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문제 자체를 깨닫는 것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무엇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 그 문제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자기 생각 속에서 그 문제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건 별로 문제가 아니라는 어리석은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는 자를 돕고자 하는 성경적 상담자는 그 사람의 문제를 들어보고 그 사람이 정말로 괴로워하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에게 정말 괴로운 문제를 찾아서 그 문제를 다룹니다. 그 속에 그의 다루어져야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 속에 그의 연단되어야 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 속에 그의 변화되어야 하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연단시키십니다. 또한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연단 받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강한 부분은 연단하시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원래 강하기 때문에 연단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돈에 약하다면 돈으로 연단하십니다. 우리가 명예에 약하다면 명예로 연단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평판에 약하다면 사람들의 평판으로 연단하십니다. 우리가 음란함에 약하다면 음란함으로 연단하십니다. 우리가 간음에 약하다면 간음으로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연단이 시작되고 그 연단에 따라서 문제상황이 시작됩니다.

  

요나는 박넝쿨에 약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 무엇인가 사라지는 상실감에 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부분을 연단하심을 통해 그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고자 하셨습니다.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알려주시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다음에 다시 살펴볼 것입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문제상황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문제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성경적 상담자로 준비되고 마음을 변화시키는 성도들로 하나님의 변화의 도구로 훈련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필독서1
필독서2


1.신체문제 상담챠트

2.뇌구조 상담챠트

3.정신구조 상담챠트

4.마음이해 상담챠트

5.변화과정 상담챠트


번호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27
성경적 상담사는 어두운 면만 보는 사람들인가?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16 24 8617
26
성경적 상담에서 보는 악순환과 선순환의 두가지의 실체 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13 22 11945
25
심리학적 상담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 1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27 27 9939
24
심리학 상담, 기독교 상담, 그리고 성경적 상담 3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09 21 11927
23
진짜 성경적 상담은 무엇인가?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0-30 22 9034
22
미국 한인 학생들의 상담방향, 성경적상담의 측면에서 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9-15 22 9194
21
미국, 미국내 한인사회, 그리고 한국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8-24 12 8398
20
미국에서의 상담상황 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8-24 21 9340
19
성경적 상담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는 세 가지 질문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7-25 21 8407
18
마음을 여는 십자 드라이버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20 8617
17
해야할 때 해야만 하는 일들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5 8352
16
자르는 도구와 붙이는 도구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5 9030
15
병아리의 죽음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8 8574
14
부모는 자녀의 성장에 따라 다르게 대해야 한다.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21 8062
13
황금알을 낳는 거위 1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8 10024
12
당근과 채찍의 원리 4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7 10835
11
왕진을 간 의사의 이야기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20 8105
10
심리학적 방법론의 문제점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5 8226
9
지도가 지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1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9 8706
8
고기를 낚아 올리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나 배가 물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15 8177
7
가치를 아는 사람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2-04 23 8843
6
성경적 상담학의 여정(旅程)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0-08 19 8794
5
한국 교회의 성경적 목회상담의 방향성과 나의 역할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5 6223
4
"피스메이커" 독서감상문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10 7618
3
상담주제 연구보고서: 고통 1 센터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9 7137
2
프로이트 사상에 대한 성경적 비판 1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6 9311
1
성경적상담학의 개요 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6-21 8 8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