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2023년 2월 <61호> 주제: 영적권세*소원상담센터 소식지 2023년 2월 <61호> 주제: 영적권세
<1>성경적상담의 용어설명 : "영적권세"에 대한 성경적 이해 영적권세는 선순환에 대한 신체목표로서 '귀신들림'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귀신들림이 영적권세가 없어서 귀신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영적권세가 있어서 귀신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는 사도의 모습이 나옵니다.
"[행]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행]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행]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행]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첫 번째 장면은 빌립보에서 일어난 일이었었고 두 번째 장면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빌립보는 에게해 서쪽에 있는 그리스 지역이고 에베소는 에게해 동쪽에 있는 터기 지역이었습니다. 두 지역의 거리적 차이는 있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중에 머물렀던 지역이었고 그 지역에서는 이러한 영적 권세로 인해서 많은 복음의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영적 권세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는 자들도 있어서 빌립보나 에베소에서 적지 않은 괴로움이 따랐지만 사도들은 개의치 않았고 여전히 영적 권세를 나타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했습니다.
오늘날 귀신들림이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종종 상담주제가 귀신들림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한 번 영적 권세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 귀신을 쫓아내며 누가 악귀를 물리치며 누가 악신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는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며 감당하는 것이 바로 복음의 전파와 박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에서도 귀신을 이기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권세의 모습을 선순환 모습으로 이해할 때에 오늘날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영적 권세의 모습은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이끌리고 순종하며 그 뜻을 실천하는 의지와 결심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자신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귀신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귀신도 역시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비웃을 뿐입니다. 실제로 에베소에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바울을 따라하다가 귀신들에게 맞아서 벗은 몸으로 도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 권세의 본질은 귀신에 대한 위세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실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 귀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영적 권세의 의미를 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삶을 주를 경외하면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도 권세도 그 실천을 훼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영적 권세는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가장 의롭고 경건하며 거룩할 수 있는 권세는 하나님의 뜻과 그 나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더욱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온전한 영적 권세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 센터장님_총신대학교 상댐대학원 객원교수 임용 소식
총신대학교 상담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2023년도 1년간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 과목은 '상담연구방법론'입니다. 양적연구방법과 질적연구방법을 모두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상담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도록 인도할 예정입니다. 이전부터 다양한 논문을 수집하고 분류하면서 정리한 논문연구의 분류를 적용해서 논문연구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었는데 그 결과를 함께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 상담센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주의 성경적 상담을 전파하면서 그동안 통합주의 성경적 상담과 전통주의 성경적 상담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배타적이고 거부적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연구의 장에 서면서 모든 다양한 주의의 성경적 상담을 살펴보아야 하고 또한 심리학까지도 이해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혁신주의 자체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통합주의와 전통주의를 이해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고민을 통해서 얻게 된 방향은 각각의 이론과 연구방법을 살펴보면서 그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성경적인 원리를 보완하여 참고할 수 있는가를 찾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통합주의에서 어떻게 성경적 원리를 사용하며 전통주의에서 어떻게 성경적 원리를 쓰는지를 주의 깊게 보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심리학의 각각의 이론에서 성경의 관점을 갖는다면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학이나 전통적인 방법으로 따라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위치에서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가를 중요하게 주목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혁신주의는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어서 협소하거나 폐쇄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성경적 상담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세상으로 확장되는 것이니만큼 그러한 성경의 포괄성과 다양한 적용성을 기억하면서 통합주의와 전통주의에서 통찰을 얻고자 할 때 혁신주의에서 부족한 점을 메우고 더욱 확장된 성경적 상담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다른 성경적 상담과의 연합을 거부하지 않고 더욱 연합을 추구한다면 성경적 상담과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전파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총신대학교 상담대학원에서 1년간 강의를 하게 되는 시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변화되는 우리 소원상담센터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 최근 성지순례를 갔다 오고 그리스 정교회를 살펴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습니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기독교가 어떤 모습이 되는지도 보았습니다. 그 또한 또 다른 세속화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그 말씀으로 나아가는 많은 다양한 성경적 상담이나 그 말씀에 대비되는 심리학의 이론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과 풍성함을 이해할 수 있는 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외부강의를 하며 소원상담센터의 경향을 유지하려고 하니 앞으로도 이 땅에 성경적 상담이 잘 뿌리 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여 성경적의 가치를 삶에 적용하는데 힘을 모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더욱 의미있는 총신대 강의가 되기를 바라고 소원상담센터의 새로운 비전이 형성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총신대학교 상담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2023년도 1년간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swcounsel.org)
<3>인터넷 상담글과 답변 안녕하세요 다름이아니라 저희언니가 현재 15살인데 8년전 즉 7살에
새집으로이사를갔어요 근데 그집이 아파트인데 그집 현관만 들어갔다하면 언니가 울고있는 여자아이를본데요 근데 그게 조금이면상관없는데 8년동안 계속 그자리 거기에서 그아이를본대요. 그리고 계속 울고있다는데 어떻게 해야하죠?
[관리자 답변] 만약 정말그곳에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진짜로 귀신이 있다고 생각될수도 있겠습니다. 귀신은 항상 우리들에게 두려움과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그로 인해서 즐거워하고그때문에 우리들을 더욱 통제하고 다스리려고 합니다. 그러한 귀신의 원리를 생각한다면 이제 정말 귀신이 있다고 했을 경우에 하셔야하는일은바로 무시하는 일입니다. 귀신이 있다하더라도 주시면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세상의 귀신을 허락 하시면서 하나님이 귀신에게 주신 제한이기 때문입니다.
<4> 상담설교
65유 1; 3-10 천사와 사탄과 성도와 거짓교사_1 2019. 3. 24. 주. 주일오전
*개요: 주님과 동행하는 자의 정체성, 55동행, 3관점, 6서신서
[유]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1: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유]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유]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돌잔치를 할 때 제일 하이라이트인 순서는 무엇일까요? 바로 돌잡이입니다. 아기가 여러 물건 중에서 무엇을 집는지를 관심있게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아기의 선호이자 선택으로 인해서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애기 때부터 누구에게나 자신의 선택이 있습니다. 성별과 나이와 거주지와 생활수준과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각 사람에게 독특한 자신의 선호와 결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그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서 억압되거나 지배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고 그에 대해서 그 자신이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의 의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쁜 것을 강제로 시킬 수 없고 좋은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좋은 것을 억지로 시킬 수 없고 나쁜 것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 뿐입니다. 보여주고 듣게 하고 알게 하는 것 뿐입니다.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려야만 합니다. 자신 만의 인생 속에서 자기 자신의 결정을 내리게 되고 그것으로 그 이후가 결정됩니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그러한 결정상황에 놓입니다. 학생은 자신의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예체능계로 갈지 학업분야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대학을 갈지 저 대학을 갈지를 선택합니다. 대학에 가면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졸업 이후에는 어떤 직장으로 갈지를 생각합니다. 직장에서는 어떤 일을 할지를 고민합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어떤 정치적인 노선을 가질지를 결정합니다. 보수적이 될지 진보적이 될지를 결정합니다. 어떤 지역에 거주하며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결정합니다. 그러한 삶 속에서 어떤 개인적인 활동을 할지도 결정합니다. 수없이 많은 선택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 전에는 함께 하던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외로운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능력이자 한계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 유효기간에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결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적 결정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떤 것을 선택하던 유효기간이 있지만 오직 신앙적 결정에는 유효기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적 결정의 유효기간은 무한대입니다. 한번 결정한 신앙적 결정은 그의 영원을 좌우합니다. 왜 인간이 살면서 내리는 모든 결정에는 유효기한이 있지만 오직 신앙적 결정에는 유효기한이 없을까요?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결정은 존재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결정으로 인해 존재의 본질이 결정된 맨 처음의 경우는 바로 천사와 사탄입니다. 유다서에서는 요한삼서에 나왔던 사탄과 이단과 거짓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불신자와 구분되는 자들입니다. 또한 진실한 성도는 이단이나 거짓교사를 분별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분별 속에서 성도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천사와 사탄의 차이 만큼이나 분명한 차이입니다. 천사 수준에서 천사와 사탄의 위치가 결정되었고 인간 수준에서 성도와 거짓교사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우리가 진실한 성도임을 나타내야 합니다. 먼저 이 둘 사이의 명확한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3, 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유]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여기 나오는 성도와 거짓교사의 차이를 보십시오. 성도는 자신이 받은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자들입니다. 또한 성도는 그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자입니다. 반대로 이단이나 거짓교사를 보십시오. 그들은 경건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꿉니다. 또한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불신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전체 교회 내에 존재하는 이단이요 거짓교사입니다. 그래서 다른 순진한 성도들을 같은 이단과 거짓교사로 만드는 자들입니다. 불신자는 돌이켜서 성도가 될 수 있는 자들이지만 이단과 거짓교사는 성도를 돌이켜서 자신들과 같은 악한 자들로 만드는 자들입니다. 이 차이를 깨닫고 분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성도라면 그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우는 자들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 자들입니다. 믿음의 도를 소극적으로 들어주는 자들이 아닙니다. 수동적으로 믿어주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런 부실한 방법으로는 자신의 존재를 증거할 수 없습니다. 더욱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건하지 않고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차이를 분명하게 나타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정말 성도임을 적극적으로 또한 능동적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께 속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의 명백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천사와 사탄의 차이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유]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천사 중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은 사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지위를 지켰어야 했고 자기 처소에 남아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행동입니다. 그런 행동을 할 때 그들은 천사입니다. 그런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탄이 되었습니다. 결국 사탄이 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심판은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시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단순히 악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본질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지위와 처소를 떠난 것이고 결국에는 심판을 받는데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와 대비되는 천사의 모습을 보십시오. “[유]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툴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이렇게 밖에 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사로서 미가엘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 중요하였지 마귀를 공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의 내막을 다른 문헌을 통해서 추측해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체를 숨기시고자 하셨고 그것을 천사장 미가엘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숨기려고 했을 때에 마귀가 나타나서 그 시체를 가지고 우상숭배를 위해서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귀와 다투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미가엘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명령은 모세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지 마귀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만 하나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한다고 하고 끝을 내었던 것입니다. 천사 위치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항상 천사 자신의 뜻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천사의 마음의 갈등을 보여주는 문학작품도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세상에 인간으로 떨어진 미하일이라는 천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것처럼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며 동참하는가에 대한 결정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 천사는 천사가 되고 사탄이 되지 않습니다. 사탄은 바로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사탄이 됩니다. 그들이 그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를 따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본질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이 인간을 유혹할 때에도 본질상 동일한 이유와 목적을 갖게 합니다. 그것은 인간도 역시 자기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을 따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동일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사탄은 그러한 악인들을 유혹할 수 있고 그러한 악인들끼리 연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소돔과 고모라와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였고 다양한 육체를 따르는 퇴폐적인 일을 했습니다. 여기서의 그들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것처럼 인간인 소돔과 고모라인들과 다른 도시인들도 그렇게 음란하고 퇴폐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사탄을 의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하기 때문에 사탄과 같은 행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탄과 같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고 그 모습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짓 교사와 이단들도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탄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받는 형벌을 그들도 받게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유]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령한 것을 비방했습니다. 반면 본능으로 아는 세속적인 것으로 멸망했습니다. 그들은 죄악된 본능으로 악을 행할 줄 아는 그 악한 마음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었습니다. 반면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를 더럽히지 않으며 권위를 존중하며 영광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애를 쓰며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웁니다. 그 점을 바로 거짓교사와 이단들도 보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모습을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게 굳게 서야 합니다. 그들에게서는 자신들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비방을 받을지 몰라도 믿음의 도를 위해서 힘써 싸운다는 점에서는 바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게 칭찬을 받는 자들 중에 천사장 미가엘과 같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있고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 하나님의 기업을 세운 아브라함 같은 신앙의 위인들이 있고 우리들과 같이 이 패역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세대에 태어날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마지막 심판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습이나 호칭이 어떠하든지 간에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하게 될 새로운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 편에 있을 때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자들이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자신을 주장할 때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자들이 됩니다.
우리의 위치는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선과 악의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하나님 편인가 하나님 적인가를 결정합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하나님 편인가, 하나님 적인가를 결정합니다. 이것이 존재의 본질이 되기 때문에 그 유효기간은 영원하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결정된 것은 영원토록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고 경험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 따르지 않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의 본질을 결정하는 이 중차대한 결정 앞에서 하나님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 결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위대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5유 1; 3-10 천사와 사탄과 성도와 거짓교사 (swchurch.org)
<5> 성경적 상담 연구 자료
우리는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경외를 도둑질했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물질에 대한 집착, 일중독, 폭식과 비만, 간음 등 작고 사소한 문제에서 도덕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도 여전히 빚이 많다. 나는 왜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제공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물질에서 내 삶의 안정감을 찾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특정한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어떻게 하면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나의 정체성을 잃고, 사람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녔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불안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권력과 통제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의 주권자이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경외심을 갖도록 창조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라. 마음을 사로잡는 장엄한 자연, 귀를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음악,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달콤한 음식, 인상 깊게 박힌 강렬한 그림……. 우리는 주변의 많은 것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새로운 차나 새로 이사한 집, 새로운 직장 등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가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신 데는 목적이 있다. 바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분, 그리고 그 피조세계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신 분을 기억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경이로운 피조세계를 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경외심을 잃은 것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을 지니고 있던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에서 그 경외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로 향해야 할 경외심을 다른 대상에게로 돌리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자아와 피조세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꾸어버린 데서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다. 죄 때문에 뒤틀려버리고 방향을 잃은 “잘못된 경외심”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된 것이다. “오늘날 정계나 교계의 지도자들 가운데 ‘잘못된 경외심’에 사로잡혀 자신이 섬기고 이끌어야 할 사람들보다 자신의 권세와 지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마치 자신은 연약한 교인들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아무런 영적 돌봄도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거리를 두거나 그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목회자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하기보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적인 권력을 강화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정치인도 있을 수 있다. 요즘에도 아모스 당시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경외심’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_본문에서 폭식과 비만, 감당할 수 없는 빚, 간음, 살인, 가정 폭력, 테러, 원한, 시기심, 인종차별, 일중독, 끊이지 않는 불평과 불만족 등 사소한 삶의 문제에서 도덕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뒤틀어버리게 만드는 많은 문제가 바로 “잘못된 경외심”에서 비롯된다. 당신은 무엇을 경외하는가? 바로 그것이 당신의 삶을 지배한다 탁월한 강연자이자 상담가인 폴 트립은 이 책에서 뒤틀려버린 우리 삶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외하는 것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경외”라는 개념을 실제적인 삶과 연결하여 구체적인 실천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경외심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여, 우리 삶이 세상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평안과 안전, 만족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거짓을 밝히 알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경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영적 인식이나 관심, 지식과는 상관이 없다. 교회나 신학, 성경 지식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것은 문화, 역사, 지리, 언어, 종족, 성별, 나이의 한계가 없다.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경이로움을 갈망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_1장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 마지막 구원이 이를 때까지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여 있다. 이 시기에 일어나는 싸움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으신 경외심의 능력을 누가 또는 무엇이 장악하고 통제할지를 둘러싸고 주도권을 빼앗는 것이다. _2장 예배를 드릴 때나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때나 소그룹을 인도할 때나 설교를 전할 때나 내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교인들 앞에서 항상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의 경이로운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무슨 사역을 하든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_3장 대체의 원리는 헛된 거짓말에 속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이 강력하고 사악한 거짓말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창조주 아닌 다른 곳에서 생명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신념, 피조물 가운데서 참된 영적 평화와 안식, 만족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_4장 모든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의 성향을 아시는 하나님은 기억을 도울 수 있는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삶은 일차적으로 우리에 관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작은 이야기보다 더 큰 이야기가 존재하며, 우리는 혼자도 아니고 주인공도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도록 배려하셨다. _5장 불순종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사랑하는 영적 간음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어서거나 그분의 율법을 거역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분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_6장 불평은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도외시하고 그분의 능력과 성품을 의문시한다.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자 통치자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상황에 대한 불평은 곧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나 다름없다. 경외심의 상실이 말로 드러난 것, 그것이 곧 불평이다. _7장 우리는 피조물이 우리의 개인적인 메시아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그것을 열심히 추구한다. 우리는 소유나 결혼생활, 직업, 새로운 경험이나 장소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마음은 늘 공허하기만 하다. 이사야는 그런 우리를 향해 묻는다. “너희가 어찌하여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_8장 경외심 쟁탈전이 곧 성화의 과정이다. 성화는 올바른 신학이나 규칙을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신학과 규칙뿐이라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이루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성화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 대신 해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 _9장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면서 이원화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삶을 “실제 생활”과 “영적 생활”로 분리한다. 그들의 믿음은 삶의 모든 것을 이끄는 원동력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일 뿐이다. _10장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인력을 운용하거나 사람들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경외심의 문제를 안고 있다. 교회는 사역과 관련된 싸움이 아닌 경외심과 관련된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다. _11장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려면 아이들의 마음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자녀 양육은 경외심이라는 크고 중요한 원칙을 지향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은혜를 일깨워주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 _12장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내 마음을 만족시키고 그분의 자녀인 내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으면, 나는 성공이나 성취, 권력이나 통제, 소유나 풍요와 같은 것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그런 것을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면서 수많은 관계와 영적인 삶을 희생시키는 폐해를 초래할 것이다. _13장 1부 하나님, 경외를 도둑맞다
1장 인간은 경외하도록 창조되었다 2장 경외심 쟁탈전, 나는 무엇을 경외하는가 3장 사역의 본질은 경외심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4장 잘못된 대상을 경외하다 5장 우리는 경외심을 잊어버렸다 2부 문제의 시작, 경외하지 않는 마음 6장 증상1: 불순종_ 경외심을 잃은 행위 7장 증상2: 불평_ 경외심을 잃은 말 8장 증상3: 물질주의_ 경외심을 잃은 욕구 3부 삶의 해답,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9장 경외심을 지배하는 것이 삶을 지배한다 10장 경외심을 되찾을 때 삶과 신앙은 하나가 된다 11장 경외심을 되찾을 때 교회와의 관계가 새로워진다 12장 경외심을 되찾을 때 자녀는 영적 어둠에서 벗어난다 13장 경외심을 되찾을 때 일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맺음말 주 탁월한 강연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폴 데이비드 트립(Paul David Tripp)은 미국 텍사스 주 달라스에 위치한 리디머신학교(Redeemer Seminary)의 목회상담학 교수였으며, 수년 동안 필라델피아 글렌사이드에 위치한 기독교상담교육재단(CCEF)에서 '변화되는 삶' 사역을 이끌었다. 현재 텍사스 주 포트워스 목회상담센터(Center for Pastoral Life and Care) 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폴 트립 미니스트리(Paul Tripp Ministries)를 설립해서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 저자는 3년 전, 몸무게를 18킬로그램 줄여야 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일상적인 상황에서 겪는 문제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몸무게가 느는 문제는 단순히 육체적인 것이 아니었다. 폭식과 비만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 곧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 상태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일상에서의 상황과 관계 속에서 생각과 욕망, 말, 선택, 행동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또한 수많은 상담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 이면에 깔린 근본적인 원인을 이 책에서 통찰력 있게 파헤치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목회, 위험한 소명』(이상 생명의말씀사), 『현재를 이기는 능력, 영원』(두란노), 『영혼을 살리는 말 영혼을 죽이는 말』,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이상 디모데), 『돈과 섹스』(아바서원) 등 다수가 있다.
<6> 2월 후원금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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