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2020년 12월<35호>:주제- 대인관계
*소원상담센터<소식지>
2020년 12월 <35호>
주제: 대인 관계
<1>성경적상담의 용어설명 : “대인관계”
대인관계의 문제는 가정영역 이상으로 관계가 확장될 때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가정에서 학교에 가도 대인관계가 형성되고 가정에서 친척이나 사촌으로 확장되도 역시 대인관계 문제가 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과의 관계가 무난하고 어려움이 없다면 가정에서 확장되어서 생기는 친척, 학교, 직장, 사회 영역에서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가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영역에서도 역시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가정 내에서는 잘 파악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받아주는 부모님이 있고 형제들이 없거나 혹은 있어도 원하는 것에 특별한 제지나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가정 영역에서 미리 예상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항상 가족은 다 받아주지만 남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들 때문에 원하는 것을 원할 수 없을 때 마음 속에 스트레스가 생기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서 대인관계에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힘들어 하거나 만나지 않으려고 하거나 만나면서도 안좋은 문제가 생기거나 그런 문제로 인해서 다른 문제가 계속 일어나거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통칭하는 대인관계의 문제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양상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런 양상의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잘 해결을 하면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고 그 교훈을 통해서 다음 번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 다른 문제가 연이어서 일어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생기는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않으면 그런 유형의 문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초등학교 때 그 문제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그 문제가 다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어서 중학교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스스로 해결하게 하거나 알아서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해지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주변 상황도 점차 감정상태가 격해지거나 쉽게 봐주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그로 인해서 더욱 위축되고 주눅이 들면서 문제해결을 잘 못하게 되어버리고 그런 상태로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되면 학업과 진로의 문제로 고민이 늘어나게 되면서 대인관계의 문제는 그대로 고착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나면 해결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많은 악순환을 다시 자각하고 깨달아서 선순환으로 돌려야 하는 필요성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는 여러 인생의 전환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각 시기에서의 대인관계의 문제는 뒤로 미루지 말고 그때 그때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시기에서는 더욱 발전된 대인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기에서든지 대인관계의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노년시기에서라도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가를 깨닫는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감정과 욕구'에 있습니다. 자신이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는데 문제가 되는 '감정'이 무엇이고 그 속에는 어떤 '욕구'가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약점을 깨달을 때 그 약점을 보완하는 다른 노력을 통해서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면 타고난 대로만 몸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자신에게 있는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구를 사용할 때 비로소 자신의 몸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고 그래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과 욕구' 이상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선순환을 이루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원과 결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소원과 결심'을 사용하려고 하면 감정과 욕구에 쓰러지지 않고 좋은 모습을 나타낼 수 있고 그럴 때 가장 성공적인 대인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https://swcounsel.org/b/research3-8
<2>이 달의 학생인터뷰 1.지금 어떤 일을 하시며 현재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 다음세대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주셔서 직장을 사직하고 다음세대 교육연구소, 카도쉬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성경적 성교육 강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교회에서 중등부 학생들과 교제도 하고 성경적 세계관, 성경적 성교육 등을 공부하며 나누고 있습니다.
2.어떠한 계기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들과 상담할 기회가 많습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서 어려움을 들어주고 심리상담 지원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때 뿐이었고 매번 상대방의 똑같은 하소연을 들어주는 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근본적인 치유는 될 수 없을까?’ 고민하며 기도하게 되었고 그 때 ‘생명을 살리는 말씀을 붙잡으라’는 마음을 주셨는데 함께 사역하시는 분이 제가 생각 났다면서 성경적 상담 분야를 알려 주셨습니다.
3.공부하는 부분에 있어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목사님께서 강의 하시면서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심리학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잘 몰랐는데 지금은 무슨 의미인지를 조금 알 것 같고 제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심리학적인 요소들을 빼내고 성경적 상담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느라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에 제가 살짝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교회마다 한번쯤은 했을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한 언급이었는데 이것 또한 내 안의 욕구를 채움 받기 위한 심리학적인 요소 중의 하나였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가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삭제해버렸습니다.^^
4.성경적 상담을 공부한 후 삶 속에서 활용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교회에서 중등부 교사를 하고 있어서 학생들과 나눔을 할 때 조금씩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집 3남매와 교제할 때도 예전에는 욕구에 대한 것을 어떻게 접근할지 몰라서 답답했었는데 지금은 저희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게 되어 더 깊이 있는 교제를 할 수 있어서 감사가 됩니다. 그 무엇보다 성경적 상담을 제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많은 부분을 돌아보고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엄마가 부드러워졌다고 해요^^
5.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6학기까지 온전히 다 마치는 것이 목표고요, 그런 다음에는 교회 내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을 돕는 사역과 다음 세대를 살리는 사역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6.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1) 이 땅의 다음세대 아이들이 비전 없고 무기력한 삶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는 세대로 거듭나게 하소서. 2) 제가 체력이 좀 약한 편이라 오랫동안 집중하기 힘든데 독수리 날개 치는 강건한 체력으로 학습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소서.
https://swcounsel.org/b/letter-222
<3>인터넷 상담글과 답변
인간관계 스트레스
인간관계에 지쳤어요.. 학교생활을 하면서 왕따를 당하거나 괴롭힘당한적은 없고 항상 잘지내왔는데 필요할 때만 찾거나 잘 지내면서 진짜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한명도 없고 이런 사소한게 쌓이고 쌓여서 이제 너무 지쳐요 지친다고해서 연을 끊ㅇㅓ버리면 제가 힘들어지고 지금처럼 지내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죽어버릴거같아요 그렇다고 지금 친구들이랑 관계를 더 깊게 나아가고싶지는 않고... 인간관계가 그냥 역겨워요 학교도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
안녕하세요. 소원상담센터 이정선 사담사입니다.
님이 힘들때 진짜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한명도 없다고 했는데 가깝고 먼 친구 관계에서 무슨 이유로 멀어지게 되었는지 문제의 상황과 원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님은 "이제 너무 지쳐서 연을 끊어버리고 제가 힘들어지고 지금처럼 지내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죽어버릴거 같아요" 라고 했는데 이 말을 미루어 볼때 오랜 기간 크고 작은 감정들이 쌓여서 지금 처름 분노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감정들이 쌓이고 그것을 극복을 못하는 이유는 님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님이 바라는 것은 원하면 월할수록 허기진 것처름 더욱 마음이 힘들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에게 얻을수 없는 것을 바라고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에게 필요할 때만 찾거나" 내가 원하는것을 바랄것이 아니라 님이 어떤 좋은 친구가 될지를 생각하세요. 친구의 참다운 동행자가 될때 님은 친구들로 인해 행복한 자가 될수가 있습니다. 님과 마찬 가지로 친구들도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친구는 자신을 배려해 주고 기다려 주며 위로 하고 포용 할수 있는 친구들을 원하게 됩니다.
동행이란 같이 발을 맞추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럴때 상대의 상황에 맞추어 주어야 하며, 아픈지 힘든지 기분이 좋은지 사소한 것 까지 깊이 살피지 않으면 같이 보폭을 맞추어 걸을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친구와 아름다운 동행을 원하면 내가 친구에게서 유익을 누릴려고 하기 보담 친구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덕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럴때 님의 주변에는 좋을때도 힘들때도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이 생길것입니다. 님의 바램처름 소원이 이루어 지길 소망합니다. #극본적 해석.
https://swcounsel.org/b/ask-11682
<4> 상담설교
6수 1; 12-16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따라가는 자들_1
2020. 12. 13. 주. 주일오전.
*개요: 여호수아에서 나타난 아들의 소원, 2관점적해석, 31미움, 55동행, 2역사서
[수]1: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수]1: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수]1: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수]1: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수]1: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2월에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절은 예년에 우리가 맞이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시간입니다. 이전에 성탄절은 성탄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성탄의 기억만 남아 있을 뿐 성탄의 느낌은 갖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우리는 느낌에 의존하지 않고 기억에 의존하여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절실하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그 때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축하하지 않고 아무도 기뻐할 수 없는 예수님의 나심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러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는 분위기와 환경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나 환경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신약과 구약이 바로 그런 점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눈이 내리고 캐롤이 울려 퍼지며 성탄의 분위기가 형성 되어야 예수님을 좀 따라갈 만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눈도 없고 캐롤도 없으며 전혀 성탄 같지 않은 때에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 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합니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무척이나 색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더운 여름 속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예수님의 나심을 기념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단순히 이스라엘 지파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더욱 까다로운 지파가 있었는데 그들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였습니다. 그들이 다른 지파들과 다른 점은 그들은 이미 요단강 동쪽에서 자신들의 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지파들보다는 동기가 약해졌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땅을 받았기 때문에 굳이 들어가서 땅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제외시키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 전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 지파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1: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수]1: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그들을 가나안 전쟁에 동참시키고자 하면서 여호수아가 한 말은 그들의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모세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요단 동편에 정착하도록 했고 그러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다 얻을 때까지 낙오하지 말고 함께 연합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미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이끌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나아갈 때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참여를 일깨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은 충분히 주저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요단 동편에서 땅을 얻었고 그 땅에서 안식을 누렸습니다.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처럼 앞으로 다가올 가나안 전쟁에 대해서 조바심이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미 많은 것을 얻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 구원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구원을 얻지 못했지만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나는 체력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고 정신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싫음(미움)’의 마음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왜 ‘싫음’을 이기고 가나안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그것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성탄의 의미입니다. 바로 그런 의문 속에서 답을 알지 못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동방박사들만이 예수님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신 예수님께 진정한 경배와 영광의 예물을 드린 사람들은 그 가치를 멀리서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이 분위기와 환경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의미와 가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예수님의 영광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에 대해서 경배할 수 있는 동방박사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가나안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전쟁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미 모든 것을 얻고 목표를 이룬 그들이 왜 힘들고 고달픈 가나안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애초에 그들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의 한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나안 서쪽에 들어가기도 전에 땅을 얻은 것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요단 동쪽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그들만이 참여해서 얻은 승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이 요단 동쪽에 있던 가나안 민족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들은 그 승리 후에 땅을 먼저 분배받기를 요구했고 그 요구를 허락받은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민수기 32장 5절에 나옵니다.
“[민]32:5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모세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 대신 이스라엘 전체가 가나안 땅을 얻기 전까지는 그들의 땅으로 들어가지 말고 전쟁에 함께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이후에 계속해서 가나안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가나안에 이르기도 전에 먼저 가나안의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은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먼저 얻은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이자 열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거기에 안주할 것이 아닙니다. 계속 나아가서 그 승리와 열매 속에서 다른 사람들도 승리하고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동참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따라서 안식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여호수아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1: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비록 그들의 처자와 가축은 요단 동편에 머무르겠지만 싸움에 참여할만한 장정들은 모두 형제들이 안식하고 가나안 서편 땅을 차지할 때까지 함께 가나안 전쟁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도 동의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수]1: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그들은 애초에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안위와 평안에 주저앉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나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나안을 따라가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열매를 거두었든 아니면 앞으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든 애초에 하나님을 따라가기로 했고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은 구원의 열매를 다 이루었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 열매를 이루기를 바라며 함께 합니다. 우리 자신은 생활의 열매, 삶의 열매를 다 이루었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가나안에 대한 싸움은 지속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은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상황이나 분위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탄절에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절기가 아니어도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고 열매가 있건 없건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안식을 얻게 하시고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을 이루게 됩니다.
이 달에 더욱 예수님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겨울의 의미가 새로워지고 상황과 분위기의 의미가 새로워져서 더욱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안식을 향해 예수님 따라가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상황과 분위기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2.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자들이었다. 3.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유혹을 피하고 인도하시는 삶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자들이 되자. https://swchurch.org/b/sermon-1364
<5> 학생연구실
스마트폰 사용욕구단계에서 온라인 관계형성과 현실친구와 소속감 인정을 원함은 은혜단계에서 동행과 충만함으로 연결한다. 괜챦은 자기확인과 재미추구의 욕구가 있다면 은혜단계에서 희생과 용서를 사모함으로 연결한다. 스트레스 해소와 게임조작성취를 위한 욕구는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으로 연결짓기를 해보려는데 이것이 적절한 것인지 확인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책을 참고하며 정리중인데 은혜의 6가지 유형의 대한 자세한 설명이 별도의 자료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목사님~~?
목사님 답변 : 다음을 살펴보세요~
https://swcounsel.org/b/calendar-6815?#c_6819
5. 은혜: 계획, 능력, 희생, 용서, 동행, 충만
피상담자의 욕구를 이해하면 그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 원인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떠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진정한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진정한 소원은 반드시 악한 욕구의 이면에 있기 때문에 악한 욕구를 들추어 낸 다음에야 비로소 선한 소원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선한 소원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입되고 그 은혜의 도우심과 능력을 통해서 악한 욕구가 사라지고 변화가 시작된다. 이렇게 피상담자의 선한 소원과 연결되는 하나님의 은혜에는 여섯 가지가 있고 각각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직결된다. 첫 번째, ‘계획’은 성부 하나님의 은혜로서 모든 상황과 사정에 대한 하나님의 주도면밀하신 구원경륜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계획을 알지 못할 때에는 순간순간의 어려움과 고비는 그저 괴로움 자체일 뿐이고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경험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면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이 오히려 더 큰 영광과 은혜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하는 자에게는 이러한 은혜를 얻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은혜를 얻게 되면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고난 이후의 모든 회복된 삶에 대한 소망이 생겨나게 된다. 두 번째, ‘능력’은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서 능히 모든 필요한 부분을 공급해 주시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신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은혜이다. 이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들은 현재 고통과 괴로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은혜라고 통칭되는 모든 하나님의 선물 중에서 특히 구체적으로 ‘능력’이라고 하는 부분에 더욱 집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고 그럴 때 이미 얻은 능력과 아울러 더욱 새로운 능력을 공급받을 수가 있다. 이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하심이기 때문에 그 능력의 시행을 상담자가 좌지우지 할 수 없고 오직 그 은혜를 간절히 바라도록 준비시킬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사모함과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것에 대해 응답하신다. 세 번째, ‘희생’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은혜로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분의 크신 사랑을 알게 한다. 이 희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이유가 바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고 그것은 우리의 이기적이고 자신의 유익만을 얻고자 하는 악한 마음을 변화시킨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이고 그 사랑이 정확히 반대로 행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욕구에 비추어질 때 그 악함을 없애고 또는 부끄럽게 만들어 스스로 완악함을 포기하게 만든다. 예수님의 희생이야말로 그 어느 것보다도 인간을 부끄럽고 겸손하게 만들어준다. 네 번째 ‘용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완전해지는 관계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온전한 용서를 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용서의 흉내만 낼 뿐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정으로 용서해 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고 그 죄값을 사하여 주신 것이다. 용서를 통해 진정한 관계회복이 일어나고 서로 대적만 하던 관계가 화해와 연합의 관계로 바뀌어진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용서이고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게 하신다. 다섯 번째, ‘동행’은 성령님이 우리의 모든 삶에 항상 연합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은혜이다. 동행의 은혜를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이유는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인식하기 때문이고 그런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순간순간 붙들어주시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성령님의 동행을 원할 때에 성령께서는 함께 해 주시고 길을 인도해 주신다. 하지만 그 동행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며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라면 동행하시는 성령으로부터 우리가 떨어져 나오게 된다.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님을 떠나는 것이다. 여섯 번째, ‘충만’은 성령님의 은혜이다. 성령님은 인간의 비고 비인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시고 이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주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이시다. 피상담자는 그 충만한 은혜를 누릴 때 마음의 모든 허전함과 갈급함을 채우게 되고 그렇게 채워진 마음은 반드시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일에 넘쳐나게 된다. 하지만 이 충만은 아무에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간절히 원하고 부르짖는 자에게만 이루어진다. 충만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굳이 그런 은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에는 충만한 은혜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제든지 충만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기 받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은혜를 통해서 자신의 악한 욕구가 사라지기를 바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한 소원을 들어주셔서 충만의 은혜를 내려 주신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은혜는 마음 속에 선한 소원이 생길 때에 순수하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하게 되고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맞을 때에 온전하게 허락해 주신다. 결코 이러한 은혜는 인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지지 않는다. 선하게 주어졌더라도 악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 없고 자신의 죄의 도구만이 될 뿐이다. 상담전도자는 이러한 은혜를 구하는 피상담자의 마음이 순수해져서 하나님께 올바른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
https://swcounsel.org/b/study-101
<6> 이 달의 학생 소식
안녕하세요. 심정옥 상담사입니다.
저는 현재 소원상담센터와 조이풀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이 잘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지만 부족한 제가 상담으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원상담에서는 주로 신자들을 상담하고 있으며, 조이풀에서는 불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신자들 위주의 상담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많았고 불신자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면서 저도 이전에 불신자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불신자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조이풀은 교육청 및 다양한 바우처 상담과 일반상담이 많아서 피상담자가 원치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답답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지만 성경적 상담을 통해 자기 중심적인 심리학에 빠지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성경이 말하는 삶의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최대한 불신자들의 선순환을 돕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간접적인 전도를 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신자들이 오는 경우가 있어 마음 편하게 하나님 이야기를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신자들도 여러 문제로 믿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있을 때, 선순환으로 나아가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신비롭고 놀라운 성경적 상담. 진주같이 빛나는 성경적 상담을 저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과 윤홍식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https://swcounsel.org/b/letter-223
<7> 12월 후원금 내역
https://swcounsel.org/b/letter-155
센터후원금계좌: 국민은행 449901-01-210121 윤홍식(소원상담센터) "소중한 후원..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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