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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상담역사] 프로이트 사상에 대한 성경적 비판

프로이트 사상에 대한 성경적 비판



-차 례-

1. 서론

2. 프로이트의 인간관 비판
1) 무의식의 존재
2) 성욕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3) 성경적 인간관

3. 프로이트의 선악관 비판
1) 원초아와 초자아의 개념
2) 성경의 진리에 대한 개념

4. 프로이트의 치료개념 비판
1) 신경증 환자들에 대한 치료 가능성
2) 치유상담
3) 성경적인 치료개념

5. 결론


프로이트 사상에 대한 성경적 비판


1. 서론

성경적 상담학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이다. 그래서 성경적 상담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이 인생의 문제와 그 고민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현재 고민에 빠져 있거나 그러한 고민에 들어가는 자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연구한다. 실제로 당면한 인생의 문제는 원인이 있었고 그 원인을 찾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들 속의 본질에는 더 깊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성경적 상담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살피며 이를 기회로 삼아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는 동기가 되고자 한다.
이러한 성경적 상담학의 목적과 방법과 계획은 근본적으로 심리학적 상담과 다르다. 심리학적인 상담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그 계획에 찬동하지 않으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해석으로 인간의 문제의 근원을 살핀다. 하지만 오늘날 심리학적 상담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그 영역과 역할을 증대시켜 나가고 있다. 교회에서도 성경적 상담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적 상담이 더 그 영향력에서 있어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적 상담의 영향력으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그 근본 이론 속에 들어있는 비신앙적인 요소와 하나님께 대한 배교심이 심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는 가치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명목을 가지고 무차별적으로 교회에 들어오고 있다. 세상에 불신자들이 비신앙적 도구인 심리학적 상담을 사용하여 상담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 효과와 결과에 대해서 많은 자성과 비판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아무런 대안도 없고 준비도 없이 그저 방법이라는 허울아래 그 속에 들어 있는 전제들과 비신앙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성도들의 문제는 심리학적 잣대로 인해 신앙의 문제가 아닌 윤리의 문제, 방법의 문제, 기술의 문제로 오도되고 있으며 마땅히 나아갈 방향인 하나님께로가 아닌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데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심리학적 상담에 대한 성경적인 비판을 통해 성경적 상담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며 교회 안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심리학적 상담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심리학적 상담의 가장 핵심이 되고 있는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인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그의 정신분석학이라는 이론이 가지고 있는 비성경적인 내용들이 무엇이며,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성경적 상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선한 일들을 온전히 이루시기를 기도한다.


2. 프로이트의 인간관 비판

1) 무의식의 존재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 세계에서의 갈등과 문제가 육체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가 치료했던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육체적 문제들의 원인에 대해서 그는 정신적인 면에서 그 이유를 찾았고 그러한 정신적인 문제가 육체적인 문제를 나타내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육체는 정신에 부속되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게 되는데, 프로이트는 정신 자체도 무의식과 의식으로 나누면서 그 원인을 좀더 심층적으로 찾으려고 한다.
그가 인간의 정신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그 의미를 밝혀주었다는 면에서 학계와 일반 학문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제까지 모호하게만 알려져 있던 정신의 문제를 그는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풀어내었다.
특별히 그가 내세우고 있는 무의식의 존재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 무의식이란 인간의 정신세계를 살펴볼 때 언뜻 보아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은 현상들이 의식의 밑바닥에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데 그런 세계를 바로 무의식의 세계라고 한다. 정신 세계의 활동은 이런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며, 의식 세계로 나타나는 것은 물 위로 떠오른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이트 심리학 해설』 S.프로이트, 설영환 역 (서울: 선영사, 1985) p.294
무의식의 존재와 그 의미의 강조로 인해서 의식세계의 중요성은 사라진다.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억압과 압력이다. 무의식이 의식세계로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는 억압과 압력이 내리 누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억압과 압력은 오래 지탱되지 못한다. 무의식은 점차 성장하여져 가며 급기야는 의식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나 표시들로 나타나게 된다.  『프로이트』리차드 월하임, 조대경 역,(서울: 민음사, 1987) p.165
이러한 무의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식수준에서의 현상들에 대한 원인규명이 어렵던 심리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인간 정신에 대한 새로운 연구와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무의식에 대한 그의 연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무의식을 내리 누르고 있는 억압과 압력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프로이트는 그 원인을 인간의 직립자세의 채택과 이에 따른 후각자극의 가치저하 및 지배적인 감각으로서의 냄새의 시각에 의한 대체에서 유래된 기질적 억압, 항문 성욕, 그리고 배설영역과의 연상에 의해서 생식기 성욕에 있다고 보았다. Ibid., p. 148 이중에서 특히 프로이트가 가장 중심적인 이유로 주장했던 것은 성욕이다. 그는 모든 갈등과 억압과 압력이 대부분이 성적인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성은 성격발달부터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존재의 중심요소였던 것이다. 『심리학사』Howard H. Kendler, 이승복, 이현진, 김혜리, 김영란 역 (서울: 학문사, 1996)  p. 264

2) 성욕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이렇게 볼 때에 프로이트가 인간을 보는 관점은 성욕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이었다. 인간의 정신의 가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빙산의 일각이자 외적 행동과 증상의 원인이 되는 무의식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바로 이 무의식이 오로지 성욕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주장을 통해서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본능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성욕이라는 것은 더욱 근본적인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인간은 자연발생적이며 정욕적이라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욕구가 성욕이건 아니면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이건 자아실현의 욕구이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그것은 정신분석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그러한 욕구로 충만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는 인간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이며 생래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욕구를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은 전혀 이상하지도 죄를 짓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인간관은 성경적 인간관과 충돌하고 있다.

3) 성경적 인간관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욕구를 따라 살라고 하는 사탄의 음성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태복음 4:4)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분명한 인간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를 보여주신다. 그러면서 프로이트의 인간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밝혀주신다. 인간에게 정신이 있고, 이 정신의 대부분을 무의식이 차지하고 있고, 그 무의식은 성욕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하는 이러한 기본 전제 때문에 여기에 입각한 심리학적 이론과 상담과 자연히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비신앙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 하에서 그 욕구는 반드시 들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여기에 따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은 인간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무의식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정신의 모호한 부분은 원래부터 종교적이며 영적인 것을 갈망하는 것이었지만 프로이트의 인간관은 이를 무의식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그 영역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입각할 때 피상담자들은 그가 성도이건 성도가 아니건 간에 자신의 속에 있다는 성욕과 및 기타 다른 욕구들을 풀어주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는 인간관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과는 반대로 흘러가게 된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인간관을 배격한다. 그리고 그 부분은 영적인 것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이라는 부분은 사실 우리의 존재 자체에 하나님을 닮은 영역을 내려주신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기는 종교적이며 영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은 오직 하나님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며 목적으로 가지고 살아나갈 때에 충족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욕심에 욕심을 채우며 성욕에 성욕으로 채워나간다면 결코 그 부분은 충족될 수 없고 오히려 더 깊은 부작용과 일탈행위를 만들어 나갈 뿐이다. 그러한 인간들에 대해서 성경이 보여주는 말씀은 너무나 정확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로마서 1:24, 25)

이와 같은 이유로 프로이트의 인간관은 매우 비신앙적이며 성도로 하여금 옳은 행실에서 떠나 타락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사탄은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여 현학적인 표현을 통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성경적 상담은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참된 모습과 그리고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가야 할 것을 일러줌으로써 성도들과 인생들이 분명한 문제 해결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3. 프로이트의 선악관 비판

1) 원초아와 초자아의 개념

프로이트의 선과 악의 개념은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이 두 가지 개념을 자신만의 용어를 사용하여 전혀 새로운 것으로 뒤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그의 개념 속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그가 절대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인간을 오직 정신 세계 속의 자유의지와 판단의 능력을 가진 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과 악의 문제를 인간의 사회와 문화와 관습 속에서 생긴 하나의 제도요, 양심이며, 개개인마다 제 각각인 상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 그가 만들어낸 개념은 ‘자아’, ‘초자아’, ‘원초아(이드)’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성격에 대해서 위와 같은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성격은 본능적인 ‘원초아(이드)’, 이드와 현실이 접촉한 곳에서 구성된 자아, 사회적 규범이 관습과 부모의 영향에 의해 내면화된 양심인 초자아로 구성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서 프로이트는 선악의 문제가 단지 인간의 내면적인 역할기제의 차이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각 개인이 살아오면서 형성한 관습과 양심의 체계가 어떠한 것이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 속에서 인간의 사고와 가치체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성격 상의 이러한 세 가지 개념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다. 이러한 긴장을 그는 ‘검열’이라는 의미로 보았다. 무의식과 전의식 사이에서의 갈등이 ‘검열’이라는 압력으로 인해 제지되고 억압되는데 그러한 억압은 바로 원초아와 초자아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에 의해 걸려진 것들만 전의식으로 나타나게 되고 검열에 통과하지 못한 것은 무의식 수준에서 남게 된다. 『프로이트 심리학 해설』Op.cit., p.294 이러한 갈등과 긴장이 의미하는 바는 절대적인 선과 악의 문제란 존재하지 않고 상대적인 선과 악의 문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건강한 정신과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어떻게 올바로 사느냐라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악한 본성인 원초아의 부단한 노력과 투쟁에 의해 변화되어지는 삶이다.
결국, 프로이트는 이러한 구분과 개념의 제시를 통해서 영원한 선과 악의 문제를 단순한 심리적인 문제로 귀결시켜 버렸다. 인간이 겪는 모든 정신적인 방황을 무의미한 내적 정신의 혼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2) 성경의 진리에 대한 개념

이러한 선악관은 성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상대적인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고 절대적인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진리를 확립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과연 누구를 섬길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사탄은 바로 이부분을 가지고 예수님께 시험을 하였고, 예수님은 이 시험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를 보여주셨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8-10)

선악의 문제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결코 원초아와 초자아의 싸움과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선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이냐 악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이냐는 것은 그 자신이 살아온 삶과 사회와 관습과 문화에 따라 형성된 초자아를 따를 것이냐,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초아의 본능적인 욕구를 따를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진리의 개념은 그렇게 인간의 정신세계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진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이와 같다.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디모데후서 2:18,19)

인간의 본래적인 정신 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종교적인 마음과 선악에 대한 마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악을 따르지 않을 때에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적 관습과 문화와 가치 체계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고, 생래적으로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삶을 살고, 악을 행한 것에 대한 죄의 용서가 있을 때에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선악의 문제는 오직 성장환경과 사회와 문화의 차이로 생겨난 원초아와 초자아의 갈등일 뿐이라는 프로이트의 분석으로는 죄사함의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가 없다. 또한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또한, 프로이트는 스스로 행한 악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기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영향과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그래서 그 자신은 결코 죄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거나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없다. 오직 자신의 모든 문제와 괴로움은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형제와의 관계 속에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희생된 피해자이며 마땅히 자신이 져야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는 원초아에 대해서 어떠한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원초아가 바라는 모든 욕구들은 본능적으로 선한 것이며 그러한 욕구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니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와 같은 충동이나 흥분은 서로가 영향을 받지 않고서 병립할 수 있고 부정되는 일은 있으나 의혹을 받는 일은 없다고 보았다. Ibid.
이와 같은 선악개념은 어쩌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에는 커다란 찬동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구는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한 것이라고 하니 그 누구가 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 말씀은 이러한 악을 미화하고 선을 흐리게 하는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결코 성경말씀과 양립될 수 없는 비신앙적이고 철저히 반기독교적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의 악함에 대한 다음의 말씀을 살펴보자.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로마서 1:29-32)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7)

인간의 본성의 악함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인간은 영원히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원초아와 초자아의 갈등이 아니요 무의식과 전의식 사이의 압력과 억압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마음의 문제이다.
프로이트는 선악관에 있어서 기존의 선과 악의 개념을 흐리게 만드는 새로운 자연과학적 기법에 의존하는 개념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러한 이론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에 입각한 상담 내용도 역시 받을 수가 없다. 그 기둥이 다 무너지는 곳 위에 새로운 건물을 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4. 프로이트의 치료개념 비판

1) 신경증 환자들에 대한 치료 가능성

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정신분석학과 그 기법들을 마련하였다. 그가 환자들을 다루면서 발견하였던 치료의 개념과 원리는 이렇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 내어서 그 경험이 현재의 전의식과 생활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낸다. 그러면 이전에는 감지하고 있지 못했던 사슬과 같은 정신적 압박이 사라지고 문제시되는 행동들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예를 들고 있는 한 사람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는 불안이 안면의 피부의 상태에 집중되고 여드름을 사정없이 짜는 습관을 지니게 된 정신분열증 환자를 인용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 신경증적 행위를 별 어려움 없이 첫째는 자위행위를 그리고 이 자위행위에 이어지는 거세를 표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여드름은 남근을 표상하고 여드름을 짜낸 구멍은 남근을 뺀 다음의 질을 표상한다. 프로이드는 주장하기를 이 특정의 상징이 순전히 언어적인 시사를 따라 형성된 것이라고 하였다.」 『프로이트』리차드 월하임, 조대경 역,(서울: 민음사, 1987) p. 172
위와 같은 사례에서 프로이트는 그저 겉으로는 도저히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여드름을 짜는 습관을 성욕의 불만족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는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현상과 원인을 연결하는 것으로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정신분석은 설명을 제기하며 정신분석의 응용, 또는 정신분석적 치료의 응용은 본질적으로 분석자가 이 설명을 환자에게 응용하는 것으로서 구성된다고 말한다. Ibid., p.154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원인을 해석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그 원인에 대한 해석도 때로는 피상담자가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한데 말이다. 여기에 대한 한계는 프로이트 자신도 고백하고 있다.
설명 형태들은 하나가 특정의 신경증의 원인을  설명하고, 다른 하나가 그 신경증의 표현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상호 보완한다. 이리하여 특정의 성인 또는 사춘기의 활동들로부터 특정의 유아기 경험들로 선이 추적될 수 있다. 그러나 요인들의 다양성과 프로이트가 후에 추가하였듯이 자아발달의 상대적인 자율성과 양적인 고려의 중요성은 역방향으로의 움직임을 적어도 실제에 있어서는 불가능하게 한다. 설명은 가능하나 예측은 불가능한 것이다.」 Ibid., p.159
이렇게 설명은 가능하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을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 프로이트 사상의 가장 큰 난점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은 때로 마음의 수치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괴로움을 더욱 가중시키기도 하며 치료보다는 더 큰 괴로움만을 가져오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상황이 좋아진다는 것도 명확한 설명 속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우연적인 면이 많기 때문에 그 결과를 완전하게 보장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치료라는 것은 단지 설명에 불과하고 완전한 치료를 보장할 수 없는 그런 모호한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올바른 문제의 해결과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를 어렵다.

2) 치유상담

그런데 이 치료개념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기독교 사상과 연합하여 기묘한 제 3의 방법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마음의 쓴뿌리를 캐내어야 한다는 치유상담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히브리서 12:15)

바로 여기서 말하는 쓴뿌리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에서의 억압이요 갈등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식 치료개념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잠재의식의 정화와 과거의 부모님이나 괴로웠던 경험들로 인한 악한 마음들을 전의식으로 끌어올려 다시 체험케 함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갖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와중에는 감정적인 격정과 혼란과 눈물, 오열, 희열 등을 맛보게 된다. 그러한 반응이 일어날 때 다시 한번 치료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한다.
그렇지만, 프로이트 사상이 스스로의 한계를 가지고 이론 자체가 철저히 자연 과학적이라고는 하나 치료의 문제에 있어서 전혀 비과학적인 모습임을 깨달을 때에 이의 아류로 볼 수 있는 치유상담식의 접근 역시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 쓴뿌리를 발견하고 원인을 낱낱히 캐내더라도 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햇빛에 노출되면 사라지고 마는 안개와 같은 것이 아닌 것이다.

3) 성경적인 치료개념

성경적 상담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전혀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은 가장 성경적인 지혜에 근거하고 있다. 다음의 말씀이 성경적인 올바른 접근 방법과 치료개념에 대해서 보여준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2-14)

성경적 상담은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일러줌이요 그분의 함께 하심을 증거하는 일이다. 그리고 곧은 길을 만들어 고침을 받게 한다. 행동적인 면에서 실제로 무엇이 어떻게 필요한지를 제시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 일을 촉구한다. 응원할 뿐만 아니라 다음의 작전과 계획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진정한 삶의 변화를 추구한다. 화평함과 거룩함이라는 본질적인 목표를 바라본다. 단순히 문제 증상의 완화나 당면한 위기의 모면이 아니다. 그 상황을 통해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게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성경적 상담은 완전한 회복과 온전한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이렇게 치료개념에 있어서 프로이트는 비신앙적이고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적인 접근에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다시 다른 심리학 이론을 혼용하고 차용하여 좀더 수정된 이론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치료의 개념이 단순히 문제의 증상의 완화와 이를 위한 정신적 개념의 혼란과 충격을 가하는 요법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 개념을 수정 보완하거나 연구 발전 시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인간을 이해할 때만이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온전한 치료의 개념을 수립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에 대한 가장 완전한 자료가 바로 성경에 나와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고 인간의 필요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를 깨닫고 그 개념들의 차용이나 어설픈 인용 등은 배제해야 한다. 교회와 성도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사람들에게서 그대로 받아 가지고 나온 ‘애굽의 보화’가 아니라 불에 담구어져 완전히 새롭게 되어 나타난 ‘성전 기물’들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5. 결론
 
프로이트 사상의 핵심은 비신앙적이며 반기독교적인 모든 내용들이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알고 극복하며 넘어가야 하는 장애물이다. 프로이트로부터 비롯된 심리학의 모든 원리 역시 이러한 특징에서 크게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심리학자들에 의해 추구되고 있는 심리학과 성경의 조화도 역시 너무나 이율배반적이다. 전혀 합치될 수 없는 것들을 합치하려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성경적인 것이 전혀 성경적이지 못하게 되었으며 신앙과 삶은 결코 연결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를 주신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지 우리를 미혹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시험 속에서 신앙을 다지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그분을 더욱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두려움 속에서, 우울함 속에서, 절망감 속에서, 상실감 속에서, 모든 갈등과 방황 속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고 그분을 소망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길을 막고 더 큰 배교와 타락이라는 엉뚱한 길로 인도하는 심리학적 모든 상담들은 거부되어야 하며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하나님께로 가는 올바른 길을 다시 가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의 의지해서 다시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의 뜻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성경적 상담’이다. 이 성경적 상담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악함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다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자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게 된다. 그저 입속에서만 맴도는 고백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진정한 능력과 변화를 가져오시는 그분의 충만하신 말씀을 사모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문제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분을 만날 수 있다. 풍랑 가운데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을 통해서이다. 이 말씀을 기반으로 한 상담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위로와 지혜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체험들이 부족했던 원인들은 우리가 너무나 성경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성경을 읽고 쓰고 듣는데에만 주력했지 그 속에 담겨는 참된 원리와 뜻을 삶속에 적용시켜 가는 일에는 소홀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가능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늘 성숙이란 이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죽기 전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결코 우리의 삶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속에서 줄기로 가지로 뻗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그 꽃을 피울 때가 되었다. 삶속에 적용되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성도의 삶의 아름다움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한 아름다운 열매를 심리학적 상담과 그 이론으로 인해서 망쳐서는 안될 것이다. 가지를 갉아먹고 뿌리까지 흔들어 버리는 심리학적 상담은 배격되어야 하고, 오직 배우고 익힌 그대로 그 속에서 삶속에 피어나는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더 잘 준비된 성경적 상담을 통해 심리학적 상담으로 얼룩진 교회와 성도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그리고 성경적 상담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어 커다란 유익을 끼치게 되기를 소원한다. 




1.신체문제 상담챠트

2.뇌구조 상담챠트

3.정신구조 상담챠트

4.마음이해 상담챠트

5.변화과정 상담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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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6-06-11 (토) 13:46 8년전
심리학자에 대한 성경적 비판

-차례

1. 서론

2. 프로이트의 인간관 비판
1) 무의식의 존재
2) 성욕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
3) 성경적 인간관

3. 프로이트의 선악관 비판
1) 원초아와 초자아의 개념
2) 성경의 진리에 대한 개념

4. 프로이트의 치료개념 비판
1) 신경증 환자들에 대한 치료 가능성
2) 치유상담
3) 성경적인 치료개념

5. 결론







*인간관

『프로이트』리차드 월하임, 조대경 역,(서울: 민음사, 1987)
P 48
"프로이트는 그가 <일차적 기능>이라고 부른 것에 있어서만 마음의 기능이 이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음은 지각에 있어서와 같이 외부세계로부터 자극을 받을 뿐 아니라, 식욕과 본능에 있어서와 같이, 신체의 세포로부터도 자극을 받는다는 사실이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외적인 자극에 제한하는 경우에 한하여, 신경생리학의 반사호에 입각된 단순한 마음의 모형이라는 것이 적절한 것이 된다. “

P.46
"1895년은 한해를 통해서 프로이드의 마음이 점증적으로 마음에 관한 이론, 특히 생리학적 차원과 심리학적 차원간의 관계로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P.65
"프로이트의 주석자들이 마음에 관한 그의 이론을 논의하고 경제적으로 해석된 이론의 부적절성을 고려할 때 그들은 대개 인간의 행동에 관한 우리의 견해와 관련지어, 이것이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왜곡에 전념한다. 환언하여 그들은 에너지의 발산이나 혹은 체계로부터의 에너지의 폭발과 관련된 이론의 부분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체계내에서 에너지가 변동하거나 이동하는 것과 관련된 부분이 이론에 포함되어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P. 162
“무의식의 개념은 처음에 억압에 시달리는 생각들을 사로잡는 운명을 특징화하는 방법으로서 억압이나 방어와 관련지어 소개됐었다. 프로이드는 <우리는 무의식에 관한 개념을 억압에 관한 이론으로부터 얻는다>라고 분명하게 표현했었다. 다음과 같은 종류의 순환이 가정됐었다. 즉 한 생각이 어떤 이유로 억압되고, 이 생각은 의식에서 제외되나 활동을 계속하며 다음에 어떤 적절한 상황에서 이 생각은 의식에 재현될 수 있다. ”

P. 164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의 마음>은 <활성적이면서도 무의식적인 생각으로 충만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증상은 이 생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사실상, 히스테리 심리의 가장 현저한 특색은 이 마음이 이 생각들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것이다>라고 썼었다.”


p. 165
“새로운 개념의 도입으로 이끈 바로 그 사례들이 무의식적이면서도 매우 강한 관념들의 예를 우리에게 제공하여 준다. 따라서 왜 이 관념들이 무의식적인가에 관한 새로운 설명이 주어져야 하며, 이 목적을 위해서 <의식으로의 진입 불능성>의 개념이 생겨나는데 이 개념의 뜻은 역동적 의미에서 무의식적인 관념이 처음에 억압되고 다음에는 계속적인 압력에 의하여 의식으로부터 거리를 띄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무의식적 관념들에는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과 의식으로의 접근이 거부되는 것 사이의 구별이 있다는 결론이 생긴다. 프로이드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주의가 주어져 왔던 전자는 <전의식>이라 불리우고 후자는 <무의식>이라 불리는데 프로이드는 이 양자간의 경계가 명확하고 양자간의 차이가 각성의 정도나 정신적 명료성의 정도에 따라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P. 167
"개인의 생애사에서 모든 것은 원래 무의식적이었으나 외부세계의 계속적인 영향하에서 마음의 내용의 일부가 전의식적이 되고 경우에 따라 의식적이 된다는 것은 프로이드의 성숙된 견해였다. 그리고 이 과정이 진행되는 사이에 무의식은 채택되고, 적절치 못한 것으로 밝혀지고 보류되는 새로운 내용으로 보충되며, 이리하여 궁극적으로 무의식은 <생득적으로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과 <자아의 발달과정에서 획득된 것>의 두 부분들로 분할된다.”

P. 171
“분석자가 분석의 과정에서 환자가 분명히 억압하고 있는 관념을 환자에게 제시할 수 있고, 이것이 처음에는 아무런 차이도 자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때 무의식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의식적이기는 하나, 환자에게 관념을 제시한다는 것이 억압의 해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억압은 저항이 극복되고 무의식적 관념과 무의식적인 기억흔적이 의식으로 도출되어 연결될 때까지 존속한다. ”

P.172
"우리는 프로이트가 <기관언어>라고 부른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의 예로서 프로이트는 불안이 안면의 피부의 상태에 집중되고 여드름을 사정없이 짜는 습관을 지니게 된 정신분열증 환자를 인용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 신경증적 행위를 별 어려움 없이 첫째는 자위행위를 그리고 이 자위행위에 이어지는 거세를 표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여드름은 남근을 표상하고 여드름을 짜낸 구멍은 남근을 뺀 다음의 질을 표상한다. 프로이드는 주장하기를 이 특정의 상징이 순전히 언어적인 시사를 따라 형성된 것이라고 하였다.“

p. 177
“우리는 마음에 관한 세 가지의 일반적인 요점들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첫째는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는 언제나 무의식적 정신과정의 존재가 인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에게 대해서 이러한 과정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관한 과학이 심각한 손실을 보면서 거부하였거나 무시하였던 중요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어떤 정신적 과정이 무의식적이라는 사실이 이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 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프로이트의 주장의 힘의 큰 부분이 우리가 과정들을 의식적인 것인가, 혹은 무의식적인 것인가에 너무나 큰 관심을 기울인다는 데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어느 쪽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될 수도 있고 저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치료개념
P.133
"프로이트는 그의 ‘입문강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명백하게 언급한 바가 있었다. 그는 <문외한에게는 증상이 질환의 본질을 구성하고 치료는 이 증상의 제거에 있다. 의사는 증상을 질환으로부터 구별하는 데 중요성을 두며, 증상의 제거가 질환의 치료에 이른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증상이 제거된 후에 남는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새로운 증상을 형성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로서는 문외한의 입장을 취하고 증상을 해명한다는 것이 질환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가정한다>라고 하였다.”

P.146
“프로이트가 처음에 인간생활에서의 성욕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때부터 그는 정신적 장애를 대규모의 성적 규모의 결과, 혹은 잠재적 졀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것은 실재적인 신경증들에서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신경증 발병의 유형들]에서 프로이트는 현실세계에서의 좌절과 함께 약간 불분명하기는 하나 현실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적응의 실패, 발달에 있어서의 억제, 그리고 리비도의 양적 증가 등을 촉진적 요인들로 들고, 나중에 그가 <성공에 의하여 파멸된 사람들>을 썼을 때 성공과 자애적 좌절을 부가했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관심은 단순히 촉진적 원인들의 목록을 확대하는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외적 좌절이 병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적 좌절이 이에 부가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주장을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P. 148
“억압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혹은 충동은 왜 억압되어야만 하는가와 신경증이 있는 경우에 왜 다른 형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형태를 지니게 되는가?.........[문명과 이의 불만]에서 보다 넓게 다루어진 이 명제는 인간의 직립자세의 채택과 이에 따른 후각자극의 가치저하 및 지배적인 감각으로서의 냄새의 시각에 의한 대체에서 유래된 <기질적 억압>을 가정하고 있다. 항문 성욕, 그리고 배설영역과의 연상에 의해서 생식기 성욕도 체취에 대한 문명인의 점증적 혐오의 희생물이 된다.”

P.154
“정신분석은 치료에서 비롯되었다. 불연이면 치료는 이론에서 이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분석에 있어서의 이론에 대한 치료와 관계는 모든 경험적인 과학이 실제적인 응용을 허용하는 방식의 한 특별한 예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 특별한 예가 특별한 곤란을 제기한다. 그 이유는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과학은 한편으로는 설명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최대의 제안이나 조작적인 지시를 제기하는데, 과학의 응용에 직접적으로 동원되는 것은 후자이다. 정신분석은 설명을 제기하며 정신분석의 응용, 또는 정신분석적 치료의 응용은 분질적으로 분석자가 이 설명을 환자에게 응용하는 것으로서 구성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어떻게 설명을 한다는 것이 실제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생긴다. 생각의 단순한 교환이 어떻게 치료의 형태가 될 수 있느냐?”

P. 159
“광의에서 <해석>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는 말하자면 꿈이나 증상에 이들의 외견과는 달리 사고를 표현하는 것임을 보임으로써 이들에게 의의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성립된다. 여기서 사고라는 것은 더욱이 본능적 충동의 잔여물이나 표상으로서 억압되었으나 비효과적으로 억압된 까닭에 무의식적이지마는 활성적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광의에서 <병원>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은 생각과 욕망의 복합에 이들이 생의 초기단계에서 어떻게 억압을 받게 되어 병원적인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보임으로써 원인이나 원인군을 귀속시키는 것으로서 성립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과적인 설명은 이와 같은 생각과 욕망이 발달의 특정 단계에서 특징적이며 이 단계에서 이들이 전형적으로 양립할 수 없거나 억압에 적합하여진다는 사실을 활용한다.
이 두 가지의 설명 형태들은 하나가 특정의 신경증의 원인을  설명하고, 다른 하나가 그 신경증의 표현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상호 보완한다. 이리하여 특정의 성인 또는 사춘기의 활동들로부터 특정의 유아기 경험들로 선이 추적될 수 있다. 그러나 요인들의 다양성과 프로이트가 후에 추가하였듯이 자아발달의 상대적인 자율성과 양적인 고려의 중요성은 역방향으로의 움직임을 적어도 실제에 있어서는 불가능하게 한다. 설명은 가능하나 예측은 불가능한 것이다. “




『20세기를 빛낸 심리학자』최창호 저 (서울: 학지사, 2000)

p 119.
“프로이트 심리학은 세 가지 기본 가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정신결정론이다. 인간의 심리도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우연한 현상이란 없으며, 모든 정신적 상황은 그 전에 일어난 정신적 사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정신 세계, 특히 성격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이전의 정신 경험이 중요하다. 둘째, 무의식 가설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살펴보면 언뜻 보아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은 현상들이 의식의 밑바닥에 인과관계로 얽혀 잇는데 그런 세계가 바로 무의식의 세계이다. 정신 세계의 활동은 이런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며, 의식 세계로 나타나는 것은 물 위로 떠오른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목표 지향성 가설이다. 인간의 정신 활동은 동기와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주위 세계의 어떤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속에 깃든 행동의 동기나 목표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출생한 날부터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발달 단계적으로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

p. 120.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심리와 행동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은 인간이 자신의 심리와 행동에다 스스로 붙이는 합리적인 이유보다 원초적 본능, 특히 성욕과 공격성이라고 보았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무의식적 동기나 소망, 갈등을 다루기 때문에 심층심리학이라고도 한다. 심층 심리학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 무의식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정신분석의 입장을 반영해 주는 말이다......
프로이트는 말년에 무의식적 동기 가운데 선천적인 것 외에도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도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성격은 본능적인 이드, 이드와 현실이 접촉한 곳에서 구성된 자아, 사회적 규범이 관습과 부모의 영향에 의해 내면화된 양심인 초자아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심리학사』Howard H. Kendler, 이승복, 이현진, 김혜리, 김영란 역 (서울: 학문사, 1996)

p. 264
“성은 성격발달부터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존재의 중심요소이다. ....
프로이트가 단지 혼자서만 성을 인간심리의 기본 동기이고 부적응의 이유가 된다고 과격한 주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p.290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노력이 자연과학적 방법과 일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



『프로이트 심리학 해설』 S.프로이트, 설영환 역 (서울: 선영사, 1985)

p.294
"프로이트에 의해서 이처럼 중요시된 무의식의 체계는 어떠한 특징을 갖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항상 그 에너지를 방출하려고 하는 온갖 충동, 즉 원망 흥분에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충동이나 흥분은 서로가 영향을 받지 않고서 병립할 수 있고 부정되는 일은 있으나 의혹을 받는 일은 없다. ......
정신분석의 성과로 보아서 무의식의 체계와 전의식의 체계 사이에는 일종의 검열과 같은 기능이 끼어져 있다. 즉 무의식의 내용이 그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때에는 전의식 체계로 옮겨갈 수가 없다. .....
여기서 프로이트가 검열이라고 하는 것은 무의식의 체계 내용의 의식화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그 어떤 가정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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