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2022년 1월 <48호> 주제: 가정화목*소원상담센터 소식지
2022년 1월 <48호>
주제: 가정화목
<1>성경적상담의 용어설명 : "가정화목"에 대한 성경적 이해
가정화목에 대한 성경적 상담의 의미
악순환을 이해하고 그것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성경적 상담의 변화의 흐름 속에서 '가정화목'이라는 주제는 선순환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변화의 목표입니다. 화목한 가정이란 말만 들어도 설레고 소망이 생기는 삶의 모습입니다. 특히 그러한 가정에서 살았다면 이러한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이루면서 산다는 것은 간절히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화목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결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갈고 닦고 노력하고 준비해야만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집이 깨끗해지고 정돈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대신 치워주고 돌봐주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집안을 깨끗이 해야 깨끗한 집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가정화목을 위해서 노력해야만 가정화목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런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 달려가는 푯대가 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가정화목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성경적 상담의 원리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계획'의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계획 속에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분께는 모든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자 하는 바램을 가져야 합니다. 계획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연을 따르고자 하고 무계획의 방만함 속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것은 전혀 하나님이 주신 선한 마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계획이 없다면 하나님께 그 계획을 맡겨드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것도 역시 전체적인 계획을 사모하는 방향성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떤 결과를 내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모습에 대한 비전을 마음 속에 그릴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그 의지함 속에서 하나님께서 성취하시고 허락하시는 많은 좋은 결과들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능력'의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성경적 상담의 진행주제로서 많이 들어본 말일 수 있겠지만 '능력'의 소원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며 '저녁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이 식사가 계속 반복됩니다. 그렇지만 그 식사시간 속에 메뉴가 매번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식사시간은 새롭습니다. 그와 같이 '능력'의 소원을 갖는 것도 그 내용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결과도 항상 달라집니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한다면 의외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가족을 위로해줄 수도 있고 격려할 수도 있고 조언을 할 수도 있으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화목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것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정화목이라는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수고한 노력의 결실이기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실을 더욱 사모하고 바랄 때에 더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있고 그로 인해서 가족 모두가 기쁨 속에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희생'의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가정화목의 목표가 정말 좋은 것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어떤 가치가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어떤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런 바램이 욕구가 되지 않고 자기 만족이 되지 않고 가족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풍성한 결실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것은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하려고 할 때 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희생하는 것은 자신의 욕심과 욕구와 탐욕과 악한 마음입니다. 그것을 희생하고 얻게 되는 것은 희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는 신실함과 경건함과 거룩함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 즉 희생의 소원을 가질 때 생겨납니다. 그럴 때 가정화목의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모든 양분을 꽃 피우는 일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무의 양분이 집중되지 못하고 병들고 분산된다면 꽃은 피지 않습니다. 꽃은 모든 노력의 결실입니다. 그와 같이 가정화목이라는 목표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희생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함께 가정화목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서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그리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아름다운 가정,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지금도 가정화목의 모습 속에서 모든 축복과 열매들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를 위해서 순종하고 따르고 섬기면서 가정생활의 의미를 잘 이루어낼 것입니다. 가정화목의 목표를 가지고 가져야 하는 세 가지 중요한 소원을 마음에 품으면서 자신의 가정이 정말 화목한 모습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금도 충분히 화목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화목할 수 있도록 주님을 생각하면서 애써 노력하고자 하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이 달의 학생인터뷰: 황선영 집사님
1.지금 어떤 일을 하시며 현재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중2 외 아들키우는 가정주부이며, 교회에서 고등부를 섬기고 있었으며, 신년부터 교회를 옮기면서 성경적상담 강의를 듣고, 책도 보면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으며, 서울역 노숙자 봉사활동을 하면서 캘리그라피로 말씀도 쓰면서, 충실히 성경말씀도 읽고 있습니다.
2.어떠한 계기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아들의 사춘기로 상담을 받으면서 해결되지않는, 설명할 수 없는 갈등에서 절망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유튜브를 통해 목사님 강의속에서 실마리를 찾게되었습니다. 방법을 찾는것이 확신되어 상담을 받으면서 공부도 하게되었고, 고등부를 섬기다보니 더 관심이 생겼고, 주위에 사춘기로 절망하는 부모를 보면서 절실하여 공부하게되었습니다.
3.공부하는 부분에 있어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뒤 늦은 공부다보니 강의를 듣고, 반복해 들어도 잊어버리네요. 실제적인 경험이 중요하고,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이고, 나는 못하나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열어주심을 믿습니다.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주시며 사례도 많이 들려주시고, 비유로 이해할수 있도록 강의 해주시니 자신이 좀더 열정을 발휘해야하겠습니다.
4.성경적 상담을 공부한 후 삶 속에서 활용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시다면? 저에게 유익했습니다. 나를 돌아보게되었고, 하나님을 더 알게되었고, 의지하는 저를 보게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활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의미를 찾게되었고, 실제가 되었습니다. 실제적으로 도움을 이웃에게 나눌수 있었고 적용할수있었습니다.
5.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충실히 배워 이웃을 돕고, 전도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통로로 쓰임받는 사람되길 목표하며 소망입니다.
6.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이웃에게 온유하며 하나님께 겸손한자 되길 원하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부르심이 무엇인지 알아져,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할수 있도록 중보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달의 학생인터뷰: 황선영 집사님 (swcounsel.org)
<3>인터넷 상담글과 답변
내가 싫어요. 살기 싫어요.
제목 그대로 입니다 내가 싫고 살기 싫습니다 전 제가 할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마음이 커요(자립심) 엄마가 완벽주의자에 내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저에 대한 관심이 너무 지나쳐요 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엄마는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시지도 않아요 짜증내요(사소한거에도요) 오늘은 내가 "난 엄마의 그런 행동땜에 엄마땜에 살기 싫어!!"이러니까 엄마가"나도 너땜에 살기 싫어" 이러는겨 먼저 원인 제공하는건 엄마인데 왜 엄마가 저땜에 살기 싫다고 그렇게 반박하죠? 내 의견도 잘 안 듣고 그러는데??? 그리고 무조건 엄마가 원하는 데로 하면 저는 뭐가 되나요? 내가 무슨 인형인가요?? 그리고 저땜에 살기 싫을 정도면 엄마, 아빠가 왜 저를 낳았을까요? 정신과에 1주일 정도 입원해서 엄마랑 잠깐이라도 떨어지고 싶습니다
정신과 상담은 다음주인데 다음주까지 어떻게 버티죠? 못 버틸 것 같아요.
답변) 님은 자립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큰데 반해 완벽한 엄마가 님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에 대한 반응으로 엄마에 대한 마음을 솔직히 표현할 때 좀처럼 받아주지 않고 존중해 주지 않는 엄마에게 절망과 좌절을 느끼니까 더 혼란스럽고 살고 싶어지지 않는 괴로운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에요.
#이상미상담사 #사례분석 #가족갈등 #가정화목
내가 싫어요 살기 싫어요. (swcounsel.org)
<4> 상담설교 1창 3; 12-17 부부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_1 2019. 9. 1. 주. 주일오전. *개요: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 12가정-51계획, 2분석, 1오경 [창]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인간의 삶 속에서 가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의 영역 다음에 가정 영역이 시작되지만 사실 가정의 영역이 생성되기 이전의 개인이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의 영역이 먼저 더 익숙해진 다음에 비로소 개인의 영역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영역의 생성순서는 개인의 영역 다음에 가정의 영역이지만 실제로 자각하게 되는 순서는 가정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개인의 영역입니다. 그만큼 가정은 인간의 삶 속에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영역입니다. 그래서 가정생활이 평안하면 개인생활에서도 평안하지만 가정생활에서 문제가 많으면 개인생활에도 그 안좋은 영향이 미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을 만드시고 세워 주셨습니다. 가정의 시작은 부부관계인데 바로 이 부부관계를 이루어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한 개인이었던 아담이 하와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과 부부의 관계는 우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그것을 기억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할 때에 비로소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되면서 부부관계가 시작되는데 이러한 부부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모범입니다.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는 기본적으로 부모를 떠나서 자신들이 세우는 새로운 가정을 위해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든 혹은 순종하지 않든 항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을 바꾸거나 폐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 뜻을 깨닫고 순종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려고 할 때 선을 이루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지만 그 계획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면 악을 저지르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저버리게 됩니다. 선악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처음부터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랐으면 그들은 선을 이루면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부모는 떠났지만 한 몸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었다면 선악과의 유혹을 잘 이겨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둘이 한 몸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개별적으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뱀은 오직 하와에게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자기 혼자서 뱀의 유혹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아담에게 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함께 상의하고 결정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것은 악한 일이어서 뱀의 유혹을 받고 나서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결정에 아담과 한 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직 아담이 죄를 짓는 공범자가 되게 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럴 때 아담이 범죄하도록 유혹한 사람이 바로 하와였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아담에게 주기 위해서 다가갔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이전의 하와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하와가 선악과를 아담에게 줄 때 아담은 그 열매가 선악과인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하게 선악과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를 먹은 이유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하와와 같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아담이 이미 죄악을 저질러서 당당해진 하와에게서 들은 말은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선악과를 먹었지만 죽지 않은 하와의 모습을 보면서 그 말에 신빙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하와는 정말 눈이 밝아져서 자신이 벗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정말 선악을 알게 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죄인이 된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순간에는 뱀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장 설득력 있게 아담에게 전할 때에 아담은 그 말에 커다란 유혹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유혹하는 자가 뱀에게서 하와로 바뀌었다 뿐이지 유혹의 본질은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이 거짓이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 아담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 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심을 지키려고 한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일이 만약 부부가 둘 중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나머지 한 사람도 같이 죄를 지어서 둘이 함께 죄인의 몸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둘 중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나머지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죄를 지은 그 사람이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와서 다시 의인으로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붙들기를 원하셨습니다. 물론 둘이 함께 의인으로 한 몸을 이루면 제일 좋겠지만 둘 중 한 사람이 죄인이라면 그중 다른 한 사람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의인이 될 수 있도록 한 몸을 이룬다면 결국 그 부부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로 그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원하셨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담은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하와를 돌이키게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었던 아담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와를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그도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되기를 원했던 것뿐입니다. 아담의 이러한 마음은 그 다음에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하와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로 말했습니다. 그는 이미 선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고 악을 몰랐었는데 선악과를 먹으면서 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악하게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터득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이유를 하나님과 여자에게서 찾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했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것을 스스로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어서 부부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났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죄의 유혹을 전달하였고 아담은 하와의 유혹을 받아서 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 서로에게 원망과 비난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부관계가 끝장이 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원하셨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부부들이 부부관계에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애초에 부모를 떠나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잘 실천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 배우자 한 쪽이 먼저 시험을 받아 실족을 하고 그 다음에 이어서 다른 한 쪽이 유혹을 받아서 뒤이어 실족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죄인이 되어 버리고 나면 하나님께 대해서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더 큰 죄인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때에라도 하나님의 계획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아갈 때 소망이 있습니다. 모든 부부관계가 좋을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길 때입니다. 그럴 때 그 때까지의 최고의 부부관계는 문제가 생기고 난 다음에는 최악의 부부관계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되도록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한 몸을 이루라고 했지만 한 몸을 이룰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몸으로 엮여있는 그 관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인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때에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하나님은 거짓말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선악을 안다는 것은 결코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낮아지는 것입니다. 악을 알면서 선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악은 몰라도 됩니다. 악으로 인한 고통을 직접 경험해 봐야만 그 아픔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보기만 해도 그 아픔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바로 그 점을 유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항상 붙들고 흔들리지 않을 때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계획을 붙들려고 하는데 그 계획이 신뢰할 수 없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계획을 붙들지 않으니까 문제가 생길 뿐입니다. 예를 들면 구명조끼를 입을 때 그 구명조끼의 성능이 불량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는 안전벨트를 착용할 때 안전벨트의 문제가 아니가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그제라도 따르고자 할 때 할 일이 무엇인가가 명확해집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원래의 계획을 바꾸라고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라는 것은 죄인이 되어서도 계속 유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인간은 살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나님의 계획을 따를 때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그마저도 못하고 더욱 타락하고 범죄하여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인이었을 때에도 둘이 한 몸을 이루지 못해서 죄인이 되었는데 죄인이 되어서 둘이 한 몸을 이루지 못한다면 얼마나 더 심한 상태로 떨어지겠습니까? 그에게는 오직 계속적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아담 자신이 아내의 말 속에서 유혹을 받고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부정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고 싶어하는 반역의 악심을 품었기 때문에 그가 받은 심판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었던 땅이 저주를 받아서 평생 수고해야 소산을 먹게 되는 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열매를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악한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받는 육체의 고통이었습니다. 그 저주와 수고 속에서 남편 아담은 아내 하와와 연합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 에덴동산이 아닌 척박한 세상 속에서라도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와는 둘이 한 몸이 되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남편을 외면하고 뱀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여자로서의 수고를 얻게 되고 그 이후에도 더욱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시는 계획을 따라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원래 여자에게 주어졌던 임신의 일에 고통과 수고가 더하여졌고 남의 말에 쉽게 귀기울였던 어리석음의 댓가로 항상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따라야 하는 것은 둘이 한 몸이 되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남편과 아내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관계에 대해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든지 그 계획을 따르고자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룬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계획을 잊지 마시고 온전히 순종하여 아담과 하와가 이루지 못했던 하나님과 함께 동산에 거하게 되는 귀한 삶을 아름답게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창 3; 12-17 부부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swchurch.org)
<5> 성경적 상담 사역자료
<파파고 번역> 나는 그 사역이 정말 균형을 잘 못 잡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역일은 완전히 불균형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흥미롭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것에 어떻게 충실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과 자원과 에너지와 특정한 책임의 지혜로운 관리인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묻습니다. 잠시 멈춰서 주님을 찾지 않으면 가끔 진흙탕이 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시간을 내어 그런 질문을 할 때, 제가 무엇을 예스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들은 종종 지혜의 문제이다. 하지만 저는 그것들이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swcounsel.org/b/biblical-300
<6> 1월 후원금 내역
센터후원금계좌: 국민은행 449901-01-210121 윤홍식(소원상담센터) "소중한 후원은 누군가의 새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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