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무엘상 1-4장까지를 읽고 분석적 해석을 통해 성경을 묵상하고 그 내용을 상담저널에 기록하기
단어: [격분] - 이 단어는 사무엘상 1장 첫부분에 한나의 적수인 브닌나가 한나를 대할 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요새 격분했던 일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이 단어가 나왔을 때 제 눈에 많이 띄였습니다. 한나의 약점을 콕 찔러 격분시키는 브닌나와 그러한 격분에 대해 힘들어 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한나를 통해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부터 제게 어떠한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제가 제일 잘 했던 것이 하나님께 매달리는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화이에 있는 선교사 학교인 University of Nations 에서 3개월 있으면서도,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나아갔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유치한 일에 분해 하면서도 그걸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일들, 제가 어찌 해볼 수 없는 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일들등 이러한 기억들이 너무나 생소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것이 제 생각엔 너무나 오랫동안 하나님께 제 문제들을 가지고 기도하고 매달리지 않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어릴 땐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을 잘했고(?) 또 그러한 어려운 환경들 속에서 그러한 기도들의 응답을 받아왔던 제가 어느 순간 부터 그러한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을 단절하고 오로지 제 자신에게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필요할 때만, 제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다시 생각해보니 제 자존심과 자만, 명예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의 영광등을 원하는 욕구 때문에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막혀왔던 것같습니다. 한나의 격분됨과 그러한 상황속에서의 처세하는 법을 보면서 제가 지금까지 가졌던 태도와 하나님을 대해왔던 자세들이 너무나 틀리고 또 비그리스도인들의 자세 같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말씀을 통해 깨달은 지금의 필요는 어릴 적 하나님께 매달렸듯이 그분에 대한 온전한 의존과 그 의존을 추구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또 이러한 인간적인 혹은 "내 일은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어"라는 다 자란 성인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목이 뻣뻣한 백성으로서의 마음가짐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구: [여호와의 언약궤] - 이 어구는 사무엘상 4장에 걸쳐 여러번 등장하는 어구입니다. 4장에 나오는 많은 이스라일의 백성들과 그들의 적인 블레셋 사람들 까지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려워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오고 난 후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 이스라엘 백성들, 그 소식을 들으며 두렵고 떨었던 블레셋 사람들, 그리고 그 언약궤를 뺏기고 나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과 고통 등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의 언약궤는 정말 엄청난 권위와 능력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눈여겨 보았던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오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싸운다고 해서 그들이 반드시 승리하고 하는일에 성공하리라 믿었던 그 어리석음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김으로 인해 그분의 이름을 실추시키는 꼴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 인생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인해 제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다 얻고 싶다는 태도로 살아왔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구를 통해 느꼈던 점은 그러한 인간적인 어리석음들이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것이었고 이러한 교훈을 통해 제 자신이 좀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문장: [여호와여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 이 문장은 사무엘상 3장에서 엘리가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를 이르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종이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깊은 묵상을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제가 하나님께 드리는 저의 욕망과 추구하는 세상의 것들보다 더욱 더 소중하고 지혜롭고 제게 필요한 것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인간으로써 제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이 제 삶에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들으려 하는 자세가 제게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분이 제게 말씀하려 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제 마음이 있는 욕망과 욕구들부터 비우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단: 사무엘상 2장 22-25절 -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 이 부분은 엘리가 자기의 악한 아들들에게 그들의 행한 악한 일들을 듣고 이르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는 죄에 대한 무거운 처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예수님의 뜻과 방법대로 살려 할 때 그러한 노력과 태도들을 대적하며 유혹하는 무리들이 제 주위에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러한 유혹과 대적에 물러서지 않고 흔들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거기에 질 때도 많은 제 현실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또 얘기하려고 하며 힘들고 지치게 되는 경험들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하며 단순히 "나로 하여금 죄짓게 만드는 인간들은 다 처벌받아 마땅해" 라는 마음보다는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위치와 신분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귀로운 것인지 다시 한번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둘째로는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는 아들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중요하고 필요한 말씀이라해도 그것들을 듣고 듣지 않고는 하나님께 달린 것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게도 많은 좋은 말씀들을 해주시는 아빠와 엄마가 계십니다. 그들의 말과 충고들을 귀담아 듣고 싶고 따르고 싶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단 말이 제게 딱 맞듯이 제 육체의 욕망과 원함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종종 경험하고 살아 왔습니다. 혹은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우치게 할 때가 있으나 그 말씀들의 옳음을 알면서도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문단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이던지 아니면 제 주변 사람들로 부터 오는 지혜로운 충고던지, 제가 필요한 교훈과 가르침들을 저로 하여금 듣고 따르게 하실 수 있으며 뿐만아니라 사실 그것이 완전히 그분께 달렸다는 것을 느꼈고 또 제가 그것들을 따를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절실한 필요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