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3 3장 전체를 읽고 그중 각과에서 해야하는 일들을 생각할 때,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쓰고 그 이유를 기록하기
1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한다._> 잘 안되는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큐티나 묵상보다는 뉴스읽는 패턴에 더 익숙해서 그런것 같다.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보다 나의 유익이 더 우선이 되어서 이루어지는 패턴 같다.
2과)
긍휼히여기라-> 악을 선으로 이기라이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이 내게는 생각보다 어렵다. 복수 하고 싶고 같이 혈기 등등하게 싸우고 싶은 내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욱하는 상대방이 내게 화를 내오면 같이 그 화에 동화 되어 나도 투사처럼 변하는 내가 느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다투고 싶은 욕구가 있는것 같다.
3과)
부르심을 계시와의 일치속에서 검증해야 한다-> 이 말 자체가 사실 잘 이해가 안가는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을 할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이 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4과)하나님께 대해서 헌신해야 한다.-> 지금 내 생활이 이미 포과 상태라고 생각해서 이 이상의 더 헌신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같다. 아무레도 내 안의 편안의 욕구가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도 내려 놓아야 더 하나님께 나아 갈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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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 디테일한 과제 피드백 감사합니다. 제 과제를 우선 읽고 에스더 선교사님의 글을 읽으니 무릎을 탁 치게 되네요. 선교사님의 통찰과 깊이에 탄복하며 과제를 합니다.
1)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여전히 순위의 문제에서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다는 사실을 피드백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 문제가 내 안에 있었기에 내 삶의 결과가 이렇게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꺠달을 수 있었습니다.
2) 다투고 싶은 마음은 긍휼의 문제가 아닌 내가 하나님의 위치를 혼동했다는 사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안의 그런 은밀한 마음들이 있었고 욕구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3) 부르심에 대한 즉 콜링에 대한 소명의식이 희미해 지게 되면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정체성에 큰 타격을 입고 그 흔들리는 정체성은 내 삶의 다양한 문제들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써주신 4번의 내용은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들에 굉장히 큰 감동이 될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사역이나 봉사라도 그 안의 인정의 욕구가 있다며 아무리 선한일도 자신을 위한 일 즉 죄가 되는 일이라는 진로 상담 강의를 통해서 우리의 동기를 보시는 하나님을 다시 배웠습니다. 현재 드러내는 신앙이 아닌 은밀한 가운데 누군가를 의식하는가가 현재 우리의 교회 지역교회 국가교회 모두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 또한 여지껏 다녔던 교회 안에서 배운 사상들이 이런 부분에서 많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한번 깊은 통찰을 통해 내 마음을 면밀히 진찰하게 된 귀한 과제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