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어떤 심리상담류와 달리 우리 성경적상담는 매우 세밀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문제의 원인을 알려고 하면 그 분야를 다 살펴봐야 하는 필요성이 생깁니다. 또한 그래야 피상담자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되구요. 지금까지 한번도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열었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고민상담을 하다보면 피상담자 스스로 더이상 열지 않는 부분이 생깁니다.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이해를 하려고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상담자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스스로 나름대로의 논리로 버텨왔는데 다른 누군가가 그 논리가 생기게 된 이유와 과정을 살피려 하는 것이 그 논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저항감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지요.
저희 상담학교에서는 상담을 팀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자꾸 우리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데, 우리가 상담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에게 생기는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으로 도와드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노력에 한계가 있을 때에는 다음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자매님에게도 그런 유형의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부분을 빨리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메일 상담이 한계가 많습니다. 한번 어려운 부분을 건드리게 되면 빨리 진행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면 걸릴 수록 피상담자에게 고통이 가중되기 때문에 항상 이메일 상담은 피상담의 저항에 부딪치기 전에 중단됩니다. 이메일상담이 상처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이메일 상담은 자매님에게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이메일을 통해 자매님의 문제를 더욱 세분화시키는 일에 자매님의 어려움이 포착되기 때문입니다. 혹시 더 상담을 진행하기 원하시면 면접, 화상, 혹은 전화상담을 신청해 주세요. 그러기를 원치 않는다면 여기에서 이메일상담은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상담을 더 진행한다면 왜 철학적 논제나 이상에 심취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항상 누군가에게 집착하게 의존하게 되는지 그런 모습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생기게 되었는지를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상담은 바로 그 원인을 가장 자세하고 분명하게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문제 이해와 방법 적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굳이 원치 않으신다면 그 자체가 힘든 일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게 된다면 진정한 변화와 회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그 의미와 유익을 생각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