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감정영역에서부터는 조심스러운 부분으로 들어갑니다. 이 감정이 욕구와 연결되어 있고 욕구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근거가 됩니다. 그 감정의 악함과 그 이면에 있는 욕구의 부끄러움을 깨달을 때에 얼른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그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더욱 얻고자 하기 때문이지, 하나님께 이미 자신이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 를 채워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걸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나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의 어떤 반응이나 태도에 걸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러한 자신의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는 절박함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어야 성도님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예전부터 성도님을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기 때문에 주님이 어떻게 나를 반겨주셔야 내가 나아갈 수 있을까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탕자도 아버지가 나를 반겨주시는가 반겨주시지 않는가에 따라서 자신이 아버지에게 돌아갈 것을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고민은 더욱 주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앞으로 이 부분을 계속 다루게 될텐데 이메일로는 곤란하고(조심스러운 부분이기때문에), 전화상담으로만 진행할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진행된다고 생각하시고 과거는 필요할 때만 살펴볼 것입니다. 현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느끼는 감정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추가과제는 없고 다음 상담시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