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마19;16-22 표면적인 관심에서 내면적인 관심으로

 

4019;16-22 표면적인 관심에서 내면적인 관심으로_2

 

 2014.5.11..주일오후.

 

*개요:    상담비전, 1적용, 5복음서, 4욕구-5은혜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ㄷ)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이 성경적 상담의 모델이 되신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씀일 것 같습니다. 성경적으로 상담을 할 때 뿐만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보고 따르고자 하는 우리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우리들에게 앞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닮고자 할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아름다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나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대화하시는 모습을 생각해 볼 때 여러가지 대화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듣는자의 생각과 마음을 송두리채 달라지게 하는 좋은 사건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납니다. 바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영생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시는 가장 핵심적인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예수님께 나아와서 그분께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자들조차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이미 예수님 안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영생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예수님과 함께 했고 그로 인해서 영생을 소망했던 것이지 영생을 얻는 길을 예수님께 배워서 그 길을 알아서 해 나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를 하던 어떤 선교사님이 다른 마을을 방문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의 한 원주민에게 그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 그 일을 다 마치고 난 다음에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그 원주민이 자기 일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록 그가 일을 마치지를 않았습니다. 그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 마을에 갈 수가 없던 선교사님은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무려 3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원주민은 자기가 일이 다 끝났다고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속은 끓어 올랐지만 꾹 참고 선교사님은 그러면 길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원주민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원주민은 선교사님을 인도해서 험한 길을 뚫고 마침내 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감동해서 물었습니다. ‘왜 진작에 길을 알려주고 가게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원주민이 말했습니다. ‘애초에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을 만들어서 온 것입니다.’

 

영생에 있어서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혼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 길을 만들고 그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온전히 붙들고 의지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의 해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배워서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예수님을 붙들고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그 해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예수님께 방법만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수단과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사람을 예수님은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17절입니다.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예수님은 선한 이는 오직 한분 하나님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자신이 선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청년에게 진정한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실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표면적인 것에서 내면적인 가치를 이해하고 일깨워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따르고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고 우리도 온전하게 내면적인 가치를 따르고 나타내며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최근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구원파 이단의 존재와 그에 대한 경각심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구원파의 모태인 기독교복음침례회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비슷한 대한예수교침례회에도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지니까 대한예수교침례회는 자기들은 구원파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대한예수교침례회는 기독교복음침례회와 다른 것일까요? 그들은 정말 이단이 아니라 정통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이들이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복음침례회처럼 모습을 갖지 않았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동일한 면이 있습니다. 바로 권신찬-유병언씨 계열의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이요한씨 계열의 대한예수교침례회는 같은 교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구원의 표면적인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구원의 내면적인 핵심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표면적인 의미인 증표만을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자신만 붙드는 이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이러한 표면에 집착하는 부자청년에게 예수님은 내면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방법을 배워서 표면에 집착하지 말고 내면의 가치와 내면의 의미와 내면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그 소유에 연연해 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을 쫓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의 보화를 약속해 주십니다. 예수님 자신의 하늘의 상을 바라보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나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온전한 상담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상담을 통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모든 말을 우리 자신이 행하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말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자신이 본질적인 가치와 그 내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좇아 나아갈 때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럴 때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던 거대한 유람선이 강한 풍랑을 맞아 완전히 뒤집어져 버립니다. 극중에서 프랭크 스콧 목사님은 배에 물이 들어찰 것이니 뒤집혀진 배의 바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기에 따르는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선미 부분의 프로펠러쪽으로 가서 사람들을 살립니다. 그리고 자신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예수님을 본받을 때에 내 자신이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희생하는 삶을 살아 가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예수님의 목표를 따르는 자들이 됩니다. 그 모습 자체가 올바른 삶의 방식을 전해주는 상담의 방식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에 이런 저런 말들만 많은 이때에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온전하신 내면의 목표와 내면의 가치를 잊어버리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셨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셨던 그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상담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필독서1
필독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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