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갈] 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속에서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의 악순환과
지혜의 선순환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것은 역동성의 원리로서 어떻게 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제 그것을 구체적인 성경말씀에 적용해서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갈라디아서 5장과 6장을 통해서 역동성의 각 원리를 하나 하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게 되는 어렵고 힘든 일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일들 속에서 우리는 그 고난을 이기고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목표를 가집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본문 가운데에서
갈라디아교인들이 처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진리를
순종치 않게 만드는 거짓말하는 자들(5:7)’ 이 있었습니다.
“[갈]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상황은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인식을 왜곡시키며
영향을 미치려고 합니다. 그속에서 거짓말하는 자들은 상황을 가지고 우리에게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도록
설득시키며 회유하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극복하며 나아갈 뿐입니다. 또한 ‘우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나오지 않은 조언 (5:8)’이 있었습니다.
“[갈] 5: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필사적으로 도움을 이리저리
찾다보면 주변에 수많은 조언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중에 어떤 것들은 매우 악의적이며 거짓되고 파탄에
빠지게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조언이 언제든지 주어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다른 마음으로 인해
우리가 요동하게 되고 어지럽게 됨 (5:10,12)’이 있었습니다.
“[갈] 5: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 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여러가지 말과 생각으로 인해 결국에는 원래의 마음은 평안했으나
다른 마음으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변화하게 되면 상황에 대처하는 반응이 달라지고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가치관의 혼란과 흔들림으로 이어집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커다란 시험이 됩니다. 그런 것은 전부 ‘육체를 따르는 자들이 우리가 육체를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 (6:12,13)’이었습니다.
“[갈] 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갈] 6:13 할례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요동치며 불안하여 할 때에 육체를 따르는 자들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하고 보이는 육체와
그 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유혹에 빠질 때 하나님에게서 떠나 육체로 움직이게 되고 그곳에서
안락함만을 추구하려고 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나타나는 것은 ‘반응’입니다. 이것은 ‘악한 열매’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그런 일이 안일어났으면 좋았겠지만 문제를 더욱 커지게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악한 반응입니다. 먼저 나타나는 것은 ‘스스로
속임(6:7)’입니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사람이 심는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스스로 오해하고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홀히(경멸하고 깔보는) 여기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를 가진 자의 변명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였습니다. 모든 의도와 계획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그 어떤 잘못으로 인해 스스로
범죄하였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더 가중시키는 어리석은 변명일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 ‘서로 물고 먹음(5:15)’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서로 공격하고 피해를 입음으로써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채 자신에게 피해만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럴 때 행하는 것은 ‘꼬투리 잡기’나 혹은 ‘책임
전가’일 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의 결과는 서로 물고 먹음으로
아무런 유익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격적으로 ‘육체의
일을 행함 (5:19~21)’이 되어 버립니다.
“[갈]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명하심을 거부할 때 일어나는 것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육체의 일들입니다. 어려움이 닥쳤다고 해서육체의 일을 행하게 되는 이유는 환경에 대한 본성상의 악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외에 일어날 수 있는 악한 반응은 자신이 분명히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변명하고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며 다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서로 격동하고 투기함(5:26)’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갈]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이러한 반응의 이유는 영광을 취하려 하기 때문인데 그 영광은
헛된 것이며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방법이 격동하거나 투기하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선한 영광을 추구하였다면 그 방법도 역시 선한 것이었어야 합니다. 육체의
방법은 반칙을 행하더라도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며 그러한 방법을 사용할 때에 그것은 헛된 영광을 추구했음을 더욱 반증합니다.
세 번째로, 이
모든 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 결과는 ‘Bad Reap’악한 결과입니다. 가장 우선 나타나는 것은 ‘육체의 썩어진 것(6:8)’입니다.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육체를 쫓은 자들은 그 육체가 썩어지고 부패하게 되는 결과를
만나게 되고,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그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영생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매우 필연적입니다. 육체를 따르는 자들과 성령을 따르는
자들의 경험하는 결과는 극과 극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여전히 육체를 따르는 자들은 성령을 따르는
자들의 얻는 결과는 다른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계속 반복합니다. 그 다음, ‘피차 멸망함(5:15)’이
나타납니다.
“[갈]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걱정하였던 일이 마침내 일어나게 됩니다. 서로 싸우고 다툼으로서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파멸과
깨어짐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파국은 이미 이전부터 계속 경고가 되었지만 그 참담한 결과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 악한 상태를 진전시키다가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네 번째, 이
모든 일을 행하게 된 근본적인 것은 바로 ‘욕구’(Bad Root)였습니다. 그 악한 욕구가 사황에 대해서 악하게 반응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한
욕구는 먼저 ‘스스로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노력(5:4)’이 있습니다.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할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며 은혜에서 멀어진 자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기 위해 나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자랑과 교만에 싸여 살게 될 뿐입니다. 또는 열등감에 빠져 자기 세계에서의자기 만족속에서 안주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욕심(5:16,17)’이
있습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실 그 근본에 들어있었던 것은 육체의 욕심이었습니다. 육체의 욕심은 자연히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의 욕심과 대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늘 성령님은 마음의 원하는 악한 것을 하지 못하시게 막기 때문입니다.결국 지배력이나 평안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 속에는 근본적으로 ‘본질과 정체성의 상실(5:24)’이 있었습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할 때에 정과 욕심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며 급기야는 육체마저도 그 매어달렸던 십자가에서 떨어져 나오려고 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 옆에 매어달렸던 어리석은 강도는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자신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드러내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갈라디아서에서는 진리를 막는 자들의 어리석음이 나타납니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올바른 지혜로움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피해야하는 어리석음이 무엇인지를 잘 기억하고 이 모든 것 가운데에서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