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
심층문제는 이해 못하는 일들로 인해 감정이 생기고 그것이
몸에 쌓여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고자 하는 상담문제의 여섯 번째 유형은 심층문제입니다. 이 심층문제라는 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유형의 문제가 더욱 가중 될 때에 일어나는 새로운 유형입니다. 순위, 합의,
선악, 조직, 관계의 문제가 더욱 가중되면서 복잡해지면 그 연합 속에서 전혀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생겨나는데 그것이 바로 심층문제입니다. 이 심층문제는
다시 말하자면 몸에 영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계속 받다 보면 몸에 영향을 주는데 그렇게 몸에 영향을 주게 되면
몸이 망가집니다. 그것이 명확한 병명이 주어지지는 않고 증상만 나타나게 될 때 그것을 심층문제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우리의 삶 속에서는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 사건들이 이해가 되고 정리가 되면 다 사라지지만 만약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건들이 마음 속을 떠돌다가 다른
사건들과 연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덩어리가 지게 되고 그 덩어리가 구체화되면 그것이 ‘감정’이 됩니다. 또한 이 감정도 역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 속을 떠돌다가 다른 감정들과 함께 뭉치면 ‘몸’의 증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너무나 세밀해서 정확하게 병명은 주어지지 않지만
분명히 몸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증상을 우리는 스트레스성 질환이라고 합니다. 그런 질환들이 바로 이 심층문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심층문제에 해당하게 될 경우, 해결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되어진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몸의 증상들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어떤 감정으로 나뉠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감정들로 분리가 되게 하고, 그 감정들이 각각 어떤 사건들로 인해 구성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감정이 여러가지 사건들로 분리가 됩니다.
그런 다음에 각 사건들에 의미를 붙여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 이전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이해가 되면 그 사건은 정리되어서
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부여가 모든 사건들에 대해 주어지면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여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의 과거를 끄집어
내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여자에게 있어서 심층문제를 다루고 계십니다.
그녀의 몸의 문제는 대인기피증이었습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햇볕이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러 나온다는 매우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단 한번 뿐이었지만 사실 그 여자는 날마다 그러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기를 꺼리면서
스스로 숨어지내는 우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몸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감정의 어려움이었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어쩌면 이 여인이 감정적으로 그토록 괴롭지 않았다면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그럭저럭 우물물을 길어 먹으면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워낙 괴로운 상황이었기에 여자는 그 샘물을 얻고 싶었습니다. 말만 들어도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괴로운 감정들이 다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원한다는 것이 바로 그녀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녀는 너무나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에서의 괴로움입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몸의 괴로움은
대인기피증이요, 감정의 괴로움은 목마름이었습니다. 그런 목마름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목마름이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지를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주님이 그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것은 그녀의 과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남편에 얽힌 여러가지 이해되지 않은 일들이 그녀를 목마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몸의 증상에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 여인은 자신에게는 남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 이해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님은 이해를 시켜주십니다.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이 이 여인의 삶에 있었던 사건을 이해시켜 주실 때에 여인은 자신이 현재 남편이 없는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를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결국 다섯사람이나 거쳐 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편이 없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 여인의 삶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에 해석을 내려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해석은 하나님은 그의 삶을 다 알고 계시고 그를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불쌍히 여기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3.
예수님은 모든 사건들이 주님 안에서 올바르게 재해석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 기준에 의한다면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던 불운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남편으로써가 아니라 그저 동거하는 사람으로서 함께 하는 이 여인을 행실이 불량한 여인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여자 자신도 스스로를 그렇게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버림받은 여자 내지는 운없는 여자, 혹은 처신이 바르지 못한 여자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고 두려워하며 목말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삶의 모습에 대해서 전혀
다른 해석을 주십니다. 그 해석은 그녀의 말이 참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녀를 죄인으로
몰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주님의 백성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해석의 가장 압도적인 것은 소경에 대해서 예수님이 하신 해석입니다. 요한복음 9장입니다.
“요9: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주님께서는 소경이 소경된 것이 자기 죄도 아니고 부모 죄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물론 자기 죄도 있고 부모의 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도 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해서 해석해 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고 그 주님 안에서 우리는 온전한 삶의 해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을 따를 때에 그분은 바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소경의 눈을 낫게 하셨고, 그가 예수님을 믿게 하셨으며, 수가성의 여인도 예수님을 믿고 다른 사람들을 피하고 도망다니던 여자가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속에서부터 솟아나오는 영원한 샘물이 생겨나게 하신 것입니다.
4.
우리는 주님만이 우리 삶에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분임을
알고 그분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받읍시다.
우리는 이러한 심층문제의 온전한 해답이 주님이신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만이 분해된 모든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만이 일어난 모든 일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 자신의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바라볼 때 비로소 소경의 눈이 떠지고 사람들에게서 도망다니던
여자가 사람들에게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심층문제에서 궁극적인 해석이 중요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몸이
감정으로 감정이 사건으로 분해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건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았던 사건들이 이해되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계셔서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운데 심층문제가 있다면 가장 좋은 대답을 주님 안에서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변에 심층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대답을 발견할 수 있음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지혜를 통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상담의 비전을 이루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