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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삼하13; 15-19 미움은 멀리하려는 감정이다

 출처: http://shchurch.or.kr/sermon2/129


10삼하13; 15-19 미움은 멀리하려는 감정이다_2

 

 2012.7.1.주. 주일오후, 비전설교-상담

 

*개요   [54용서]  {2역사서}  <A적용> [3감정]-[5은혜]

 

15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16 다말이 가로되 가치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듣지 아니하고

  17 그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어 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저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그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가니라

 

 

 

이번 한달 동안은 다시 ‘상담’비전으로 돌아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비전이라고 할때 우리는 대개 부담스러움을 갖습니다. 비전이 우리에게 버겁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에게 비전 운운하는 것은 자격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고 다른 비전이 있는 사람에게 그런 비전이 아닌 바로 이 비전을 가지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일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비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 비전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올바른 비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비전은 ‘환상’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 비전이 얼마나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는가 다음 성경말씀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18:9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사도행전 10:3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사도행전 9: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사도행전 12:9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사도행전 10:19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사도행전 10:17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사도행전 16: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다른 본문은 제외하고서 사도행전에서만도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환상이 나오고 비전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쨌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비전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적 상담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적 상담에서 영역과 유형을 살핀 다음에 생각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이 감정을 이해할 때에 우리는 그 감정을 어떻게 은혜와 연결시킬 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는 여섯가지 감정이 있고 각각을 살펴볼 텐데 처음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미움’입니다.

 

 

1.    미움은 어떤 대상을 멀리하려는 마음이다.

 

미움이란 말하자면 어떤 대상을 멀리하려는 마음입니다. 싫어하는 것이지요. 싫어하는 것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움은 자연히 그 미움의 대상과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멀어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미움인 것입니다. 안봤으면 좋겠다, 안들었으면 좋겠다, 안느꼈으면 좋겠다라는 모든 생각이 다 미움입니다. 이렇게 미움이라는 감정이 좀 구체화되면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2.    암몬은 다말을 미워하였고 이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암몬은 다말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 미움의 양상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15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그는 다말을 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16 다말이 가로되 가치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듣지 아니하고”

 

그 미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말은 그것이 억울하고 분하였습니다. 암논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괴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17 그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어 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결국, 다말은 비참한 모습으로 암논에게서 쫓겨나갑니다. 암논의 미움때문에 결국 다말은 불행한 여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머지 부분을 읽어봅니다.

“18 암논의 하인이 저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그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가니라”

 

한 사람의 미움은 이처럼 커다란 슬픔을 만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한 미움은 그 사람을 괴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미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미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미움때문에 때로는 다른 사람을, 다른 대상을, 다른 상황을,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그 미워하는 마음 속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아신다.

 

이러한 미움을 가지고 있는 암몬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생각을 하실까요? 하나님은 그 미워하는 마음 속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아십니다.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주님은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암논이 다말을 미워하게 되었는지를 아십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셔서 도대체 왜 암논이 이렇게 다말을 미워했을까를 알고 나면 그 미움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이전에 있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11 저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12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

13 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괴악한 자 중 하나가 되리라 청컨대 왕께 말하라 저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치 아니하시리라 하되

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암논은 다말을 겁탈하였던 것입니다. 다말보다 더 힘이 셌기 때문에 억지로 동침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채울 수 없었습니다. 다말을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미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움의 이면에는 자기의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동생 다말을 해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암논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욕구때문에도 죄인이었지만 그 이후의 미움때문에 더욱 죄인이 되었습니다.

 

 

4.    우리는 미움 속에 있는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자.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암논에 대해서 분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미움을 가진 암논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보다 더 힘이 셀 때 더 큰 강자일때 혹은 더 순수하다고 생각할 때, 더 고귀한 자라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을 미워합니다. 다른 대상을 미워합니다. 다른 상황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미움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중심적인 미움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그 누군가를 대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움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의 조건을 그 대상에게서 찾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미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 그 미움을 합리화할 뿐입니다. 그러나 미움을 갖고 있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하려고 하면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그 사랑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을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랑을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미움이 아닌 사랑을 통해 우리가 자기애에 빠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더욱 빠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나타낼 때에 더욱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필독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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