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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상담역사] 성경적 목회상담의 역사

 


History & Direction of Biblical Pastoral Counseling
성경적 목회상담의 역사 I

1. 사도시대와 초대교회

1) 성경적 명령: 사도 시대부터 교회 안에서는 상담사역이 존재하였다.
창 1:27,28 롬15:14; 히3:13; 살전4:18, 5:11,14; 약5:16; 갈6:1,2
특히 살전5:14
모든 성도는 서로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상담을 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성경적인 상담은 말씀을 구체적인 삶의 형편에 적응하는 것입니다.(골3:16) 말씀의 지혜로 피차 가르치라.
특히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서로’라는 단어가 신약성경에만 78회 기록되어 있다. 그 중의 중요한 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막 9:50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
요 15: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롬 1:12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mutually encouraged by each other's faith)
롬 15:2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고전 12:25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갈 5:15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 5:26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 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 3:13 “...서로 용납하여....”(Bear with each other)
살전 4:18 “...서로 위로하라”
살전 5:11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encourage one another and build each other up...)
살전 5:13 “...사랑 안에서 서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 하라”(Live in peace with each other)
살전 5:15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always try to be kind to each other and to everyone else)
약 5:9 “서로 원망하지 말라”
약 5:16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2) 성경에서 심방을 통해 나타난 상담
교회역사를 통해서 보는 전통적인 상담은 목회적 돌봄적이고 또한 수동적인 상담보다는 적극적인 상담 즉 찿아가는 상담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교회의 정서도 적극적인 상담이 필요. 내담자 보다는 피상담자가 더 적절한 표현이 된다.

a. 하나님의 심방- 하나님이 먼저 고통중에 있는 인간을 찿으셨다.(창 3:9; 18:10;
b. 예수님의 심방-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목회심방의 중요한 원리제시.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나타나는 심방: 요 2:21(가나의 혼인잔치) 막 5:35-43(화당장의 딸을 살리시는 예수 눅 19:5(삭게오를 회개 시키시고 새사람을 만드시는 예수) 예수님의 심방은 풀성케하는 특징이 있었다.
c. 사도들의 심방- 사도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심방하였다(행 15:36). 사도바울의 심방은 2가지 목적이었다. 첫째는 말씀증거이고 둘째는 목회심방이었다. 초대교회에 나타나는 심방의 유형은 가르침, 전도, 격려, 병고침이었다.
d. 교회사에 나타난 심방사례
(1) 초대교회
알렉산드리아의 크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교회 사역자들이 교인들의 집을 순회하며 방문하였다. 영적상태의 온전한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크리소스톰(Chrysostom)- 목사는 영적인 의사요, 심방은 영적인 약이다.
어거스틴- 나에게 가장 아쉬었던 사역은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좀더 잘 돌아보지 못한 것이다.

(2) 로마 가톨릭 시대
로마 가톨릭 시대에는 성예전이 은혜의 중심 통로로 받아들여 지면서 심방사역이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목회자의 사역이 섬김과 돌봄에서 명령과 다스림으로 변화 되었다.
1215년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고해 성사를 교회법으로 제정하였다. 이 후에 고해성사는 교회의 가장 중심적인 목회가 되었다. 적어도 1년에 한번씩 모든 신자들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도록 규정하였다. 상담의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타락하면서 제도도 타락하였다.

(3) 종교개혁 이 후의 목회상담
루터- 로마 가톨릭 의식을 많이 지켰다. 심방 보다는 고해성사가 화랍ㄹ하게 이루어 졌다.
칼빈- 활발한 심방사역을 하였다. 1550년 제네바 교회에서 교역자들은 적어도 모든 교인들의 가정을 1년에 1회씩 심방하도록 하였다.

(4) 청교도 시대
청교도 시대에는 심방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리챠드 박스터는 가정생활의 경건을 위해서 심방은 더욱 중요하다고 하였다.


3) 초기목회상담자료:
John Chrysostom's Letter to a Young Widow(380년경)
Gregory the Great's Book of Pastoral Care(6세기 후반)
Thomas a Kempis's The Imitation of Christ(15세기초)
Martin Luther's letter 'Fourteen Comforts for the Weary and Heavy Laden'(1520)
Ignatius Loyola's Spiritual Exercises(16세기중반)
Richard Baxter's The Reformed Pastor(1656)

2. 청교도시대의 상담
청교도들의 신앙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적인 성경적 목회상담을 공부하는데 필요하다.
Puritan의 뜻은 성도의 신앙과 교회의 예배를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다. 1560년대에 시작되었다.
16-18세기 사이에 영국교회에서 교회의 개혁운동이었다. 칼빈주의와 경건주의가 중심사상이었다.
교회사에서 개혁운동이 여러 번 일어났었다. 그러나 청교도운동의 특징은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겠다는 헌신이었다. 청교도의 상담은 다음의 원리들에 뿌리내렸습니다.
1) 성경의 절대적 권위
청교도운동은 곧 성경운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는 곧 성경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말씀에 순종이었습니다. 말씀을 무시함은 하나님을 무시함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모든 신앙의 기준이었다. 곧 상담의 모든 권위는 말씀이었다.
성경 안에 모든 상담의 방향과 가르침과 위로와 격려가 들어있다. 성경을 한 구절씩 읽는 것은 곧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어떠한 심리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필요가 성경말씀에 의해서 모두 해결되고 충족된다.” 주일설교는 그룹상담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예방상담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목사와 교회의 직분자들은 성경의 원리대로 삶을 다스리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의 권위가 세워졌고 말씀으로 권면하는 상담이 효과적이었습니다.
2) 하나님에 대한 신뢰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었습니다. 도덕적 문제나 심리적인 어려움의 근원에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믿음이 원인이 됩니다. A. W. Tozer는 말하기를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의 하락은 신자들의 도덕적 타락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청교도의 신학은 곧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은 개인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의 하나님관과 현대신자들의 하나님관의 차이는 피조물을 너무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다. 피조물을 너무 사랑하면 죄에 빠지게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거룩해 집니다. 나중심적인 생활(Me Generation)을 할수록 심리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못하여서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3) 죄에 대한 바른 이해
청교도들은 인간과 죄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청교도 상담은 양심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양심은 라틴어의 지식과 또다른 (knowledge & another)두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내속에 하나님의 지식이 있어서 나의 잘못을 지적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David Dickson“양심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검토하고 지적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본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판단하게 합니다.” 양심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죄에 대한 바른 이해를 중요시하였습니다. 현대교회의 강당에서 죄에 대한 지적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죄에 대한 2가지 왜곡된 견해 a. 죄를 귀신들렸다고 몰아붙인다. b. 심리학적인 이해로 중독 되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회계할 필요가 없다. 귀신 들렸으면 쫓아내고 중독 되었으면 치료받아야 한다. 결국 회계 없는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교회가 된다.
청교도적인 상담이 어떻게 현대교회에 적용될 수 있을까? 상담에서도 기분 좋게 해주고 이해해 주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열쇠가 아니다. 문제의식을 가져야하고 잘못된 것에 대한 지적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3. 심리학 이전 목회상담의 특징- 다양한 죄에 대한 이해와 목회상담

1) The Roman Catholic- 죄를 구체적인 하나님 규율의 위반으로 보고 그에 대한 목회상담은 모든 도덕적인 죄의 구체적인 내역을 자백하게 하고 신부가 마지막으로 죄의 사함을 선포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게하였다.
2) The Lutheran Pietists- 루터는 죄를 믿음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으로 정의하였다. 교만하고 행위로 자랑을 삼거나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죄라고 보았다. 경건주의 루터교는 이러한 루터의 정의에 윤리적인 이기주의와 영적인 메마름을 첨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담의 방법으로는 개인적 그리고 공개적인 죄의 자백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카톨릭과 같이 죄를 나열하기 보다는 죄성을 인식하고 애통해 하는 과정을 중요시하였다. 특히 성찬식에서 죄를 기억하고 애통해 하는 과정을 갖도록 하였다.
3) The Anglicans- 기본적으로 창조주로부터의 분리된 상태를 죄라고 보았으며 실제적인 적용에서 신앙과 생활의 무질서가 죄의 상태라고 보았다. 그에 대한 목회상담적인 대응은 모든일을 질서 있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적인 생활이나 공적인 생활에서 모든일을 질서 있게 하도록 지도하였다.
4) Reformed Tradition- 칼빈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죄의 근원으로 보았으며 청교도들에 의해서 불순종의 다른 표현으로 우상숭배가 중심주제가 되었다. 특히 William Perkins는 우상숭배가 모든 불순종의 근원적인 문제로 보았다.

4. 심리학의 발전

1) 계몽주의의 발달과 심리학
Enlightenment 즉 이성주의 발달과 함께 교회 안에도 이성이 말씀 위에 군림하는 신학이 발달하였습니다. 성경을 이성으로 판단하고 역사적인 비평을 통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였습니다. 이성주의는 신자들의 신앙을 하나님 중심에서 나 중심적인 신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천국에 대한 소망보다는 이 땅에서 과학의 발달로 이루어질 유토피아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심리학의 이론들은 교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심리학은 단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연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종교를 대신해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메시아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교회들은 자연히 성경대신에 심리학적인 문제해결방법을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일반세상이나 교회에서 모두 심리학적인 문제해결이 꽃을 피웠습니다.
성경중심-이성주의, 하나님중심-인간중심,
2) Sigmund Freud(1856-1939)
정신분석학자는 세속의 목회사역자다라고 하였습니다. 융은 말하기를 환자들은 정신분석학자들을 자신의 모든 고통에서 건져줄 사람처럼 생각한다. 그러기에 정신분석학자들은 신학자들이 되어야 한다.
3) Burrhus Frederic Skinner(1904-?)
스키너의 행동요법 자들은 지구상의 천국을 실현하는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4) Carl Ransom Rogers(1902-?)
심리학의 발전과 흐름

1. 행동요법(Behaviorism)

3가지 기본사상

1) Functionalism(기능주의)

2) Instrumentalism(도구주의)

3) Associationism(연관주의)

대표적 행동주의 심리학자

1) John Watson- 행동외에 눈으로 보이고 측정되지 않는 모든 것들은 제외 시켰다.
건강한 12명의 아이들을 나에게 주면 나는 이들을 어떤 사람으로도 자유자제로 만들 수 있다.

2) Frederic Skinner- 모든 행동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다. 종교도 문화도 강화를 주는 대상이다.

기독교적인 측면에서의 비판

인간을 너무나 단순화 시켰다. 인간의 감정, 사고, 의지, 경험들을 제외 시켰다.
인간의 내면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시편 8:4-9




2.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

기본사상: 인간의 모든 행동은 본능과 유아기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된다.

A. 인간의 기본적인 5가지 가설(5 assumptions about persons)

1) 3가지 단계의 의식(3 levels of consciousness)이 있다.

2) 현재의 행동은 과거에 기인한 것이다.(current behavior is a product of past event)

3) 현재의 행동은 성과 죽음의 본능에 기인한다.

4) 인간성은 3조직으로 구분된다.
I) 원본능(The id)
II) 자아(The Ego)
III)초자아(The superego)

5) 본능은 항상 일정하게 존재한다.(energy is neither gained nor lost)

B. 인간의 사회심리와 성 심리 발달의 단계(Psychosexual stages)

1) 구순기(The oral stage)

2) 항문기(The anal stage)

3) 남근기(The phallic stage)

4) 잠식기(The latency stage)

5) 생식기(The genital stage)

C. 심리요법

1) 자유연상(free association)

2) 꿈의 분석(dream analysis)

3) 감정정의(transference relationship)

D. 기독교적 비판(Christian Critique)

1) Freud의 종교개념

2) 기독교적 인성관

E. Freud 학파

1) Carl Jung- 인간은 무의식의 세계속에 각자 고유한 성격의 유형이 있다. MBTI 검사도 이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집단적 무의식(collective unconcious)이 있다. 모든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조상으로부터 전해오는 이메지나, 유형이 있다. 죽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

2) Alfred Adler- 내면의 역동이 성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고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힘에 있다고 주장. 성의 발달단계와 Oedipus complex를 부인하였다. 인간은 결정론적인 존재가 아니라 목표를 세우고 추구하는 존재이다.

3) Melanie Klein- 어린이에게는 대화를 통한 상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프로이드 이론을 가지고 psychoanalytic Play Technique을 개발하였다.

4) Erik H. Erikson- 프로이드의 영향에 있었지만 어릴적의 기억들에 문제의 원인을 두는 것을 부인. 성장과정에서 문화가 주는 영향에 대해서 연구. 성장과정에서 단계마다 일어나는 내면의 갈등을 주는 상반되는 힘을 연구하여 발표. 예) 유아기- 신뢰와 불신, 자율성과 수치, 의심 등등 그는 처음으로 정체성(Identity)라는 어휘를 사용

F. 신프로이드 학파(neo-Freudians)

인간관계가 인간이해의 핵심이다.

1) Karen Horney- 인간의 중심역동은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사랑받기위한 욕구이다. 불안증은 용납받지 못한 결과이다.
2) Eric Fromm- 환경이 주는 영향력에 초점을 두었다. man as history-made

4. 인본주의적 심리학파(The Humanistic Psychologies)
심리학의 초점은 인간의 경험과 각자가 그 경험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다.

1) Carl Rogers의 내담자중심 상담(Client-Centered Therapy)
Catharsis- 내면의 숨겨지고 억눌렸던 감정을 청소
Insight- 새로운 각도에서 보는 관점
Experience-centeredness- 나의 주관적인 경험이 모든 진리의 원천이다. 경험을 조정하려고 하지 말고 경험을 수용하고 배우라.
Growth-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되어 있다. 성장을 막는 요소들을 제거해 줌으로 자라게 한다.
Non-directive counseling and Client-centered therapy

기독교적인 비판- 인간의 본성을 완전하고 자율적인 존재로 보았다.

2) 실존주의 심리학(Existential Psychology)
철학적인 이론의 근본은 니체나 사르트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틀이나 방식은 없다. 단지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주조되는 것이다.
사르트르 “Man is nothing else but which he makes of himself."

a. Victor Frankl- 실존주의 심리학자 중에서 기독교에서 많이 인용하는 사람이다.
의미요법(Logotherapy)- 인간의 경험에 의미를 찿고 부여함으로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요법. 나치캠프에서 경험한 일들이 그의 이론에 근거가 됨. 프로이드의 결정론적인 인간이해를 부인하고 인간은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절대로 절대적인 의미나 절대적인 진리를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고 하였다.

5. 새로운 심리요법들

1) Rational-emotive therapy(인지치료)
Albert Ellis에 의해서 개발됨. 인간이 불합리한 사고를 가지고 있을 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기에 사고의 전환을 통해서 감정을 통제한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부정했다. 인간이 논리가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외부에서부터 오는 힘을 부인

2) Transactional analysis(의사교류분석)
Eric Berne 3자아 I'm OK, You're OK.

3) Gestalt therapy(형태요법)
Fredrick Perles


6. 목회상담과 심리학의 결합: 자유주의 종교심리학의 발전
자유주의교회들은 자연스럽게 심리학원리들을 받아드려서 활발한 목회상담을 시작하였다.
특히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원을 인간의 나약함과 무지함으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자유함을 얻는 능력의 경험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점차 신학은 심리적인 기능을 감당하는 도구로 여겨졌다.

1) Emmanuel Movement
1905년에 보스톤의 미국 성공회교회에서 심리학적인 목회상담의 운동이 시작되었고 곧 미국의 전역으로 번져갔다. 심령의 돌봄사역을 전통에 의지할 것이가 아니면 과학에 으지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서 심리학에 근거한 영혼의 돌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 Anton T. Boisen(1876-1966)
처음으로 심리치료이론들을 받아들여서 목회신학을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의 부모는 자유주의 장로교신앙을 가졌다. 그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매우 진보주의적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정신적 감정적인 불안증을 경험했다. 신경 쇠약증세로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특히 아버지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 그가 7살 때 아버지가 죽자 그 충격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에 사직하고 종교적인 체험과 정신질환과의 상관관계를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였다. 특히 Freud& Jung을 비롯한 심리학자들을 공부한 후에 Worcester State Hospital에 원목으로 일하면서 목사들을 병원에서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그후에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 심리학교수로 NeoFreudian 학자들과 교류하며 연구하였다. 그는 최초의 심리학적 목회상담의 선구자였다. 그는 특히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을 형성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Rollo May, Seward Hiltner 등이 그의 제자였다.


3) Leslie Weatherhead(1893-1976)
그는 감리교목사였다. 1916년에 인디아선교사가 되었다. 인디아에서 영국군목으로 지원해서 메소포타미아 사막에서 주둔하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신앙적인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철저한 신앙교육속에서 자란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을 하게 됩니다. 그의 일기에 쓰기를 목사는 성도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야한다. 그는 군대병원에서 심리분석학에 심취합니다. 그리고 그의 설교에 점차적으로 심리분석학 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상담에서도 프로이드의 여러 요법들을 사용하였습니다. 꿈의 분석, 자유연상, 그리고 최면술도 상담에 사용하였다. 성적욕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피상담자의 80%가 성적인 문제의 근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후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50년에 마친 박사논문의 제목은 심리학, 종교, 그리고 치유였다. 그는 인간의 죄성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회의적이었다.

4) 심리학적인 목회상담의 발전
이후에 전반적인 심리치료학의 확산에 힘입어서 심리학적인 목회상담이 전통적인 성경 중심적인 상담사역을 쇠퇴시켰다. 자유주의 교회들은 십자가의 대속에 의한 구원과 회개 대신에 심리학적인 자기성취와 치유에 치중하게 되었다. 예) Vincent Pearl목사의 Power of Positive Thinking은 베스트셀러였고 그의 교회는 주일마다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넘쳤다. Pearl 목사는 Carl Rogers의 자기개념이론을 기독교화 하였다. 즉 자기개념이 행동을 바꾼다는 것이다. 동일한 머리의 소유자라도 긍정적인 자기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심리치료학적인 이론을 가지고 성경에서 연관되는 구절로 기독교화 시켰다. 이 당시 교회밗에서는 심리학이 인간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1960년에 미국에는 7만 명이 넘는 상담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복음주의 적인 교회들은 목회상담을 외면하였다.
2종류의 흐름
첫째는: 무조건 성경 읽고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문제는 성경읽지 않고 기도 안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성령집회를 통해서 순간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문제의 해결을 받지 못한 신자들은 갈 데가 없었다.
복음주의 적인 교회의 상담사역: 목사들에 시작하지 않고 심리치료학자들이 시작하였다.
50년대와 60년대에 심리치료학자들 가운데 복음 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서 CAPS(Christian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tudies)를 조직하였다.
1950년도 후반에 Clyde Naramore가 복음주의 교회에서 잘 알려진 심리치료학자가 되었다.
Narramore Christian Foundation을 만들어서 정신건강에 관한 많은 책자들을 출판하였다. 지금은 Rosemead School of Psychology 가 되었다.
1965년도에 Fuller Theological School에서 Graduate School of Psychology를 시작하였다. 심리학과 신학을 서로 조화시켜서 기독교적인 심리치료학자들을 배출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소위 통합주의(Integrationism)라고 불리는 새로운 심리상담 영역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Gary Collins, Thomas Oden(Drew University)
이들은 복음주의 적인 성경의 이해와 과학적인 심리학의 이론들을 조화시켜서 보수적인 신자들의 심리적인 문제들을 치료하는 영역을 개척하였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영역의 출현으로 인하여 반대하고 우려하는 소리도 높았으나 일반 신자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받아들여졌다. 지금까지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였던 보수주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심리상담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세력과 영향력을 더하여 갔다. 1960년대에 시작되었으나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성경적 목회상담의 역사 II

반 심리치료학 물결

기독교가 심리치료요법을 기독교 상담에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Hobart Mowrer(1907-1982)

그는 일리노이대학의 교수였으며 neo-behaviorist였다. 그는 특히 Freud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958년에 David Bakan이 쓴 ‘Freud and the Jewish Mystical Tradition'에는 Freud를 노예생활의
멍에에서 해방시켜준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Mowrer는 이를 비판하면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의 멍에로부터 구원하였지만 Freud는 인류를 죄라는 개념에서 풀려나게 하였다고 비꼬았다.
인간은 본능을 자제시키는 초본능과의 갈등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Bonhoeffer의 말을 인용하면서 값싼 은혜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를 설교하는 것이다. 값싼 은혜는 제자도 없는 은혜요, 십자 가없는 은혜요,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삶이 없는 은혜이다.”
그 자신은 복음 적인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심리치료학을 거부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Jay Adams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Paul Vitz

뉴욕대학의 심리학 부교수로 재직하며 심리학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그의 저서 ‘Psychology as Religion: the cult of self worship'에서 자신의 신앙적인 경험을 기록하였다. 60년대에 임상심리학자로서 인본주의적인 인간론의 허위성을 보게되었다. 특히 자신이 70년대 초에 기독교인이 되고 난 후에 인본주의 심리학이 하나님대신에 인간자신을 예배케 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Mowrer가 Freud를 공격한데 반해서 그는 인본주의와 실존주의 심리학자들(Eric Fromm, Carl Rogers, Abraham Maslow, Rollo May)을 비판하였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경배하는 인본주의적 심리학은 Harry Emerson과 Norman Vincent Pearl의 글과 설교를 통해서 자유주의 교회에서 꽃을 피웠다.
그는 인간이 자신만을 예배하고 자기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 속에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William Kilpatrick

그는 보스턴대학의 교육심리학 부교수로 재직하였다. 그의 저서 ‘심리학적인 유혹: 현대심리학의 실패(Psychological Seduction: the failure of modern psychology)’는 심리학과 기독교가 경쟁관계로 서로 대립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대립관계속에서도 기독교가 심리학이 줄 수 없는 더욱 우월한 것을 인간에게 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인본주의심리학의 자기애 적인 필요충족과 섬기는 가운데 만족과 행복을 얻는 기독교적 사랑을 비교합니다. 그는 세속적 심리학의 주장에서부터 돌아서서 정통기독교 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영광을 그날의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Jay E. Adams

1) 성장배경과 신학훈련
그는 1929년 1월 30일 경찰이었던 부친과 비서였던 모친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불신자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첫 교회 경험은 친구에게 끌려서 자유주의적인 감리교의 주일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그때 첫 주일학교 시간에 주교교사가 성경을 집어던지면서 나는 성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알기를 원치도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시간 내내 운동과 연애 등등을 이야기하면서 마쳤다.
그가 15살 때에 동네친구와 성경말씀이 진리이냐 하는 토론을 하게 되었다. 그후에 아담스는 2개월 동안 신약성경을 끼고 다니면서 시간나는 대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후에 그는 거듭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를 가서 또는 감정적인 사건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경을 읽는 가운데 회심하게 되었다. 이 체험은 그가 나중에 성경 중심적인 상담을 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교회목사님의 권면을 듣고 필라델피아에 소제한 개혁성공회 신학교(Reformed Episcopal Seminary)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 없이 입학했으나 열심히 공부하여서 칼빈주의 신학과 성경에 심취하게된다. 성공회신학대학의 수업은 주로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스스로 믿는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이러한 훈련은 후에 그의 사역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후에 그는 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헬라어를 전공하였다. 그는 대학시절에 심리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았다. 그가 접한 첫 번째 심리학 과목은 오랫동안 그의 뇌리에 기억되어졌다. 심리학 교수는 세상은 온갖 문제들로 인하여 엉망이나 심리학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라고 하였다. 목사가 되려고 준비하고 있고 예수님이 인류의 소망이라고 믿고있던
아담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그는 학교 졸업후 곧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1960년 UPC(United Presbyterian Church)에서 안수를 받고 피츠버그 지역에서 담임목회를 시작하였다. 첫 목회지 에서 저녁 예배 후에 한성도가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요청하였다. 아담스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하였다. 그는 돌아가고 한달 후에 사망하였다. 아마도 의사에게 시한부 생명의 선고를 받고 목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그사건후에 효과적인 상담자가 되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후에 수년동안 그는 닥치는 대로 상담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들의 대부분은 일반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쓰여졌거나 Carl Rogers의 이론들을 기독교화한 복음주의 심리학자들의 책들이었다.
그 후에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마쳤다. 템플대학에서 심리학 과목을 들으면서 상담자가 죄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에 대해서 심한 반발을 나타내었다.
그후에 그는 교단이 신학적인 문제로 나누어지는 와중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해서 보수신학을 지키는데 앞장을 섰다.
그는 1960년부터 미조리대학에서 설교학 박사과정을 시작하였다. 그후 1963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실천신학 강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신학교에서 상담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성경적 상담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약5년 동안 그는 상담에 관한 논리들을 체계화시켜 나가게 된다.

2) 1965-1969 아담스의 성경적 목회 상담학 형성과정

1965년 겨울에 Mowrer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근처에 있는 비버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다.
특강을 들은 아담스는 그후에 목회자들을 위한 6주간의 단기상담학교에서 Mowrer밑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이기간에 배우고 느낀 것들이 상담사역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4가지의 Mowrer의 이론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a. 죄의 문제를 상담의 중심에 두고 인간을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로 보는 견해
b. 죄를 자백할 것을 촉구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통한 변화를 촉구하는 이론
c. 그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상담자세
d. 그의 프로이드의 이론에 대한 비판과 무분별하게 심리학 이론을 사용하는 자들에 대한 공격
아담스는 고백하기를 Mowrer는 첫째로 나에게 잔재해 있었던 프로이드 적인 상담원리들을 깨끗이 씻어주었으며 두 번째로 목회자로서 상담을 하는데 자신감을 불러 넣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담스 자신은 Mowrer의 제자가 아님을 밝히고 그의 상담방법들 가운데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지적합니다. 특히 죄나 죄의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성경적인 의미보다는 인본주의적인 관점의 해석을 하고 있음을 비판합니다.
아담스는 모든 상담은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성경적 목회 상담학을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담스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던 복음 적인 심리학자들은 통합주의(Integrationism)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복음주의적 목회상담의 큰 두갈레의 흐름을 이루게 됩니다.
성경적 목회 상담의 역사 III

1. 1970-1979년 사이의 성경적 상담학 역사.

1) 1970년 ‘Competent to Counsel'의 출간
아담스는 목회자들에게 상담사역이 교회에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게 하고 적극적인 상담사역을 감당하도록 자극하는 책을 쓸 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심리학적인 상담을 비판하면서 그와 함께 복음주의적 심리상담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는 상담사역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소위 전문가라고 하지만 영혼을 책임지는 사역은 교회에 주신 것이라고 반박하였습니다.
CtC는 1970년에 출판되어서 그 당시에 기독교서적중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책이 출판되기 전인 1969년 3월 20-21일 양일간 아담스와 그 당시 주도적인 기독교상담기관들의 대표들과 평가회를 가졌습니다. (Narramore Christian Foundation, The Evangelical Counseling Center, Fuller Theological Seminary, Conservative Baptist Seminary) 이 모임에서 대표들은 아담스의 성경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교리에 기초를 두는 상담은 높이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너무나 단순하고 깊고 복잡한 상담과정과 인간심리를 이해하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 너무나 율법적이고 도덕적인 면만 강조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그후에 계속해서 많은 복음주의적 심리상담자들에 의해서 지적되었습니다.
Gary Collins는 말하기를 “아담스의 성경을 토대로 하고 성령의 역사 하심을 강조하는 상담에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의 핵심이 죄라고 강하게 공박할 때에 한편으로는 수긍이 되었지만 너무나 단순하고, 공격적이고, 직접적이고, 민감하지 못한 이 방법은 절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마 출판해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빗나갔습니다.

2) 1970-1979년 사이에 일어난 기독교상담자들과 단체들

a. Gary Collins- 1969년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 기독교심리학 교수로 부임
그는 그후 25년이상 복음주의적 심리상담학계의 리더로 활약하였다. Paul Tournier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아담스와는 정반대의 상담방법으로 부드럽고 교훈적인 상담자였다. 그가 지은 “The Rebuilding of Psychology"는 통합주의 상담의 교과서로 불려진다.
b. Rosemead Graduate School of Professional Psychology- Narramore Christian Foundation 에 해서 세워졌다. Fuller Seminary보다 좀더 복음 적이고 실제적인 교육을 목표로 세워짐. 첫 번째 학장은 임상심리학자인 Bruce Narramore 였다. 독립학교로는 최초로 Psy.D와 Ph.D 학위를 주었다. 지금은 Biola University에 속해있다. 첫 기독교 심리학 저널지를 발행“The Journal of Psychology and Theology"
c. Christian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tudies(CAPS)- 1952년도에 시작된 이 단체는 7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 하였다. 1000명 이상의 회원과 매년 전국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1975년도에 the Bulletin of CAPS가 발행되다가 1982년에는 The Journal of Psychology and Christianity가 되었다.
d. James Dobson- USC 의과대학의 아동심리학자였던 그는 1970년에 자녀교육에 관한 책인 “Dare to Discipline"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2,000,000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복음주의적 신앙과 행동요법적 자녀교육을 적절하게 배합한 그의 자녀양육방법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Focus on the Family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가정문제의 독보적 단체로 성장시켰다. 그가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미전국적으로 방청된다. 심리문제에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e. Larry Crabb- 임상심리상담자로서 개인상담을 하던 그는 기독교 상담에 발을 들여놓은 후로 기독교 상담자들을 훈련하는 세미나와 책자들을 통해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덴버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나름대로의 성경적 상담을 개발하는데 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f. Frank Minirth and Paul Meier- 1975년도에 달라스 신학교의 상담학교수로 부임. 이들은 1976년에 Minirth-Meier Clinic을 개설함.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정신과의사들에 의한 입원환자 치료에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후에 이러한 종류의 기독교인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병원들이 많이 세워져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 CCEF 의 태동과 발전

1) CCEF의 태동

1966년에 제이 아담스는 상담과 훈련을 위한 기구의 필요성을 의식하고 White Oak Ridge Community Chapel 교회건물에서 기독교 상담과 교육센터(Christian Counseling and Educational Center)를 시작합니다. 한 주일에 하루씩 상담하면서 근처 교회의 목사들을 교육하였습니다. 일대일 상담보다는 훈련 자들이 함께 하는 그룹상담을 하였습니다. CCEC에서 훈련받은 첫 번째 목사인 John Bettler가 제이 아담스의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1968년에 CCEC를 CCEF(Christian Counseling and Education Foundation)으로 이름을 바꾸고 좀더 적극적인 상담사역을 시작합니다.
CCEF는 초기에 4가지사역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1) CCEF는 지역교회와 연결되어져서 교회가 할 수 없는 목회상담을 제공한다.
(2) 목회자와 선교사 그리고 평신도 사역자들을 훈련하여 교회상담에 성경적인 원리들을 사용하게 한다.
(3) 성경적 상담에 관한 출판사역을 한다. 정기적인 간행물과 교육을 위한 책을 발간한다.
(4) 양로원과 장기입원 환자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한다. 또한 전 가족을 위한 수양관을 지어서 가족이 함께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한다.

2) CCEF의 발전(Powlison pp144-169 참조)

CCEF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역교회들의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사역자들을 훈련하는 기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후에 베틀러 박사가 원장으로 CCEF를 이끌게 됩니다.
베틀러박사는 CCEF를 기독교상담에 있어서 하버드와 무디와 같은 기관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비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문적으로 성경적 상담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며 또한 많은 상담자들을 훈련시켜 성경적 상담을 보급하고자 하는 뜻을 펼쳐가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1975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건너편에 건물을 구입해서 본격적인 상담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1974년에는 한해에 1,000시간정도의 상담을 하였습니다. 1978년에는 2,000시간 그리고 1980년에는 3,000시간의 상담을 하는 발전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1990년도에는 10,000시간이 넘게됩니다.
상담비도 1968-1981년 사이에는 $12-20, 1980년도 중반에는 $32이었으며 1990년도에는 $50으로 상승됩니다. 평균 일반 심리상담비의 반정도의 수준입니다. 피상담자들 가운데 약 반 정도는 교회의 목사가 의뢰해서 온 경우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상담경비를 도와줍니다. 대부분 신자들이 찾아옵니다. 98%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대답하며 86%가 구원 받았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상담내용중 약 50%가 부부관계나 자녀교육등 가정문제 상담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신앙문제, 우울증, 외로움, 분노, 정신분열등 다양한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체상담의 약 25%는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로 다른 기관의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평균 연령은 30대가 32%로 가장 많고 20대에서 40대 사이가 75%를 차지하였습니다.

3) NANC(National Association of Nouthetic Counselors)의 발족

1974년 CCEF 이사회는 NANC를 발족할 것을 결의하고 그 책임을 베틀러에게 위임하였습니다.
1976년에 정식으로 발족되었습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1) 성경적상담자들을 훈련하는 기준을 만들고 (2) 목사나 평신도들에게 상담자격증을 발급하며 (3) 성경적 상담소를 인정하고 (4) 다른 학교나 상담소와 교류하며 (5) 기독교상담의 연구를 격려하고 (6) 성경적 상담자들간에 친목을 도모하는데 에 그 목적을 두었습니다. 1976년에 첫 모임에는 약 50명이 참석했으며 그 다음해는 12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처음에는 CCEF의 주도하에 운영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독립적인 기관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4) The Journal of Pastoral Practice(JPP)의 창간

1977년 성경적 목회 상담학의 정기 간행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JPP를 발행합니다. 목회상담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로는 최초의 잡지가 되었습니다. 그 취지는 1980년에는 1,000부씩 발행하였으며 미전국의 신학교에 비치되었습니다. 매년 한번씩 발행되다가 나중에는 매년 4번씩 발간하게 됩니다.

















성경적 목회상담의 역사 IV

1980년대 이후의 성경적 상담의 역사(Powlison pp. 361-410 참조)

1. 1980년대에 나타난 성경적상담의 쇠퇴
1) 제이 아담스를 중심으로 한 성경적 상담은 70년대에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소위 상담의 혁신을 주도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의 상담이론은 많은 복음주의 교회상담사역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전문적인 상담기관들(CCEF, The National Association of Nouthetic Counselors, John Broger's Biblical Counseling Foundation, Bill Goode's and Bob Smith's Faith Baptist Counseling Ministries)이 세워졌습니다. 그중 CCEF는 실제 상담사역과 연구를 병행하면서 점차 그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복음주의적 심리상담은 아담스의 영향력에 눌려서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스는 복음주의적 심리상담을 성경적 상담으로 끄어들이려는 대신에 그들을 공격하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아담스는 기존해 있던 기독교상담의 구조를 뒤엎고 교회 사역자 중심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상담 조직을 세우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제이 아담스의 완전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전문사역자 중심이 아닌 교회목회자 중심의 사역은 시간이 감에 따라 점차 그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쇠퇴하였습니다. 목회사역에 모든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목회자들은 상담사역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발전시키며 보급할만한 시간적 여유와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1980년도에 들어와서 제이 아담스 중심의 사역은 급속도로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2) 제이 아담스 자신도 상담사역에만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1975년 이후에는 직접상담사역에서 손을 떼고 주로 저술사역에 몰두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설교에 은사가 있는 목회자였습니다. 1982년부터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설교에 관한 7권의 책을 쓰며 신학교 설교학강의와 저술에 매달렸습니다. NANC와 CCEF에 관계를 하면서 정기모임에 참석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더 이상 영향을 못 미치게 되었습니다. 1989년에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사임하고 지역교회 목사로 복귀하였습니다.

3) CCEF를 제외한 다른 기관들은 유명무실하게 되거나 아니면 NANC와는 결별하고 독립적인 상담기관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NANC의 상담자격증을 받기 위해서는 신학과 상담과목 시험을 쳐야 하며 50시간이상의 공인된 상담시간과 계속적인 도덕성과 믿음에 관한 서약을 해야 했습니다. 지역교회의 목사들은 이러한 과정이 거추장스러웠습니다. 꼭 상담자격증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2. 1980년대의 심리치료학의 급진적인 발전
기독교 심리치료학은 80년대부터 급속한 발전을 하였습니다. 각기 다른 이론과 학파들이 쏟아져 나오고 교육기관들도 늘어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상담소와 임상병원들도 증가하였습니다.

CAPS의 멤버는 70년대 말 350명에서 88년도에 2,000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992년에 게리 콜린스가 AACC(American Association of Christian Counselors)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AACC는 CAPS보다 더욱 복음적인 신학에 기초한 상담을 하였습니다. 자체적인 자격증을 발급하지 않고 회원들 사이의 정보교환과 친목에 힘을 썼습니다. AACC는 3가지 사역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첫째,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실제적인 상담방법론을 개발하고 나누는데 힘썼습니다. 둘째로, AACC는 CAPS의 자유주의적인 신학과 인본주의적인 상담방법을 비난하였습니다. 복음적인 기독교상담을 발전시키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상담자들의 보험료를 싼 가격에 들 수 있도록 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상담자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후에 회원들이 급속히 증가해서 17,000명까지 되었습니다.

3.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난 성경적 상담의 변화와 발전

1) 제이 아담스가 떠난 후에 CCEF는 많은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특히 베틀러는 아담스와 성경적 상담의 원리는 같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달랐습니다. 아담스는 성경적 상담의 변화를 위한 행동지침을 피상담자에게 가르쳐 주고 그것을 실천에 옮김으로 나타나는 행동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베틀러는 피상담자의 의식세계를 변화시켜서 피상담자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서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담스는 상담자를 코치나 영적인 교사로 인식한데에 비해서 베틀러는 상담자를 친구나 조언자로 생각하였습니다. 아담스는 모든 복음적 심리상담자를 비롯한 모든 심리상담자들을 비판하고 모든 심리학 이론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비해서 베틀러는
복음주의적 심리상담자들과의 대화를 모색했으며 심리학 이론 중에도 성경적으로 다시 재생해서 쓸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2)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베틀러가 이끌었던 CCEF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상담에 임하는 인원이 5명에서 2명으로 줄었습니다.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일대일로 상담하는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훈련받는 학생들의 분포도 아담스 시절에는 모두 남자 목사나 또는 남자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는 여자가 50%를 차지하고 목사의 비율은 20%이하가 되었습니다. 베틀러는 아담스가 시작한 성경적 상담의 원리를 유지하면서 좀더 부드럽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할 수 있는 상담방법을 만드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그는 특히 피상담자와의 관계를 세우는 과정을 중시하였습니다. 피상담자를 들어주고 이해하며 감정이입을 통해서 피상담자의 마음을 열게 하는 사랑표현을 강조하였습니다.
CCEF의 초점이 지역교회 목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에서 점차 전문적인 성경적 상담자를 배출하는 사역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CCEF의 상담자들도 목회자들에서 전문 상담사역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1990년 CCEF의 30명의 상담자들 중에 11명은 목회경험이 있는 목사들이고 한 명은 현직 목사이며 나머지중 12명은 목사안수를 받지 않은 남자상담자들이고 10명은 여자상담자들이다. 대부분 신학교육을 받았으나 전문적인 상담을 공부한 상담자들이다. 또한 베틀러는 적극적인 상담사역의 대중화를 시도하였다. 서부에 한 개를 비롯해서 동부에 4개의 상담소를 개설해서 저변확대를 꾀하였다.
그는 또한 다른 기독교상담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1988년에는 Paul Vitz를 초청해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80년대 말에는 Larry Crabb이 여러 차례 CCEF에 와서 강의를 하였습니다. CCEF의 상담학자들은 다른 기독교상담자들과 교류하며 협력하는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3) 90년대 이후에 성경적 상담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게 됩니다. 80년대에 침체되었던 성경적 상담은 90년대에 꽃을 피게 됩니다. NANC 연례모임의 참석인원이 90년도에 400 이었으며 그후에 1,000명을 넘게 됩니다. NANC 회원도 급속도로 증가하였습니다. 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의 구독 부수도 450에서 2500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이 아담스 외에 다른 성경적 상담자들이 책을 활발하게 출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John MacArthur가 세운 Master's College and Seminary가 심리학과를 성경적 상담학과로 개칭하고 전 CCEF 교수 였던 WAYNE MACK을 책임자로 세웠습니다.

4) 198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는 전통보수주의의 강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1996년에는 150명의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서 ‘Alliance of Confessing Evangelical을 결성하고 “Cambridge Declaration"을 발표하였습니다. 특히 이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심리적인 욕구와 필요를 채워주는 분으로 인식하게 하는 소위 변질된 복음을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복음주의 심리학자들도 균형을 잃은 심리학적인 상담이론들이 복음에서 떠나 신자들에게 잘못된 신앙을 조장한다고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Larry Crabb은 ’Christianity Today'와의 대담을 통해서 심리적인 문제는 심리상담자에게 영적인 문제는 목사에게 육체적인 고통은 의사에게 라는 이론을 강하게 반박하였습니다. 그리고 Gary Collins도 심리치료의 세속화에 대해서 계속적인 우려를 표하고 성경 중심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사역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기독교 상담자 연구

제이 아담스(Jay E. Adams)

I. 권면적(Nouthetic) 상담의 의미와 방법

1. Nouthetic의 의미

Nouthetic은 신약성경의 nouthesis 라는 명사와 noutheteo 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에 이 단어가 표기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골 3:16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롬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사람을 가르침은.....”

2. 권면적 상담의 3가지 요소
1) 가르치는 상담이다.
권면은 가르침과 함께 병행하는 것이다. 잘못한 것, 문제, 어려움이 깨달아지도록 하여야 한다.
권면은 잘못된 점이 인식되어지고 난 후에 변화를 가져오는 도구로 쓰여진다.
2) 말로 권면 하는 상담이다.
일대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며 말로서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하고 성경적인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상담이다. 엘리제사장의 죄는 그의 아들들에게 속히 권면하지 못하고 분명하고 심각하게 권면하지 못한 것이다. 권면적 상담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강조한다. 문제해결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3) 피상담자의 유익을 위한 사랑의 권면적 상담이다.
권면의 동기는 책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사랑이다.

3. 권면적 상담은 곧 성경이 쓰여진 목적이다.
딤후 3:16에서 성경의 4가지 사역을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이라고 밝히고 있다.
말씀사역을 크게 2가지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행 20:20)
첫째는 설교를 통한 말씀선포
둘째는 상담을 통한 개인적인 권면이다.

II. 제이 아담스 상담의 중심사상

1. 하나님이 모든 상담의 중심이 된다.

제이 아담스는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 위에 모든 상담의 원리들을 세웠다.
1) 공기 없이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 없이는 인간의 존재가치가 없다. 아담스는 상담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현실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였다.
2)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신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또한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해하고 의미를 찾도록 하였다.
3) 하나님이 아신다. 상담은 우리의 앉고 서신 것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의 깊은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권면적 상담의 권위는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우리 각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에서 나온다.
5)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하나님을 찿는 자를 만나 주시고 믿는 자에게 역사 하시는 분이다. 아담스의 상담세계는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확실하게 말씀하시고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세워졌다.

2. 죄가 문제이다.

아담스의 성경적 상담은 인간문제의 원인이 죄에 있음을 가정한다. 그는 모든 문제가 죄의 문제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죄는 삶의 문제들의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진단이다. 잘못된 행위, 바르지 못한 생각, 나쁜 사고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살아가려는 인간의 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 특히 아담스는 죄의 문제를 다루면서 죄로 인하여 뿌리내린 죄악된 습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죄악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는데 진력하였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라”(엡4:22-24)는 권면적 상담의 중심적인 성경구절이다. 죄악된 성품, 습관들이 신자의 생각과 생활양식 속에 프로그램 되어져 있다. 인간은 죄악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고싶은 욕망이 있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인간은 프로그램된 대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고 또한 그것이 자연스럽다. 아담스는 성경과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프로그램 되고 그 결과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변화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2) 아담스는 또한 잘못된 인식과 믿음이 죄악된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 자신 환경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말을 통해서 고백되어지고 이것이 본인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말을 바꾸면 생각과 행동이 바뀔 수 있다고 보았다.
3) 닥친 고난에 죄악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신자로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에는 의미가 있다. 고난은 우리를 시험해서 변화되어야 하는 부분들을 노출하게 된다. 결국 고난은 우리의 인격과 신앙을 성숙시켜서 예수님을 닮아가게 한다.

3. 죄에 대한 회개의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서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1) 아담스는 회개와 성화의 잘못된 2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는, 성화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견해이며
두 번째는, 성화를 종교적인 행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죄를 회개한 후에 변화된 삶을 살기로 작정을 수없이 하면서도 어떻게 구체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변화하지 못한다.
2) 피상담자가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행동지침이며 반복되는 노력에 의해서 변화가 가능하다.
하나님의 능력은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나타난다.

III. 아담스의 상담방법

1. 사랑으로 피상담자를 이해한다.

2. 피상담자의 문제를 분석하고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을 인식시킨다.

3. 변화를 위한 7가지 과정
1) 버려야 할 옛 습관, 생각, 언어를 구체적으로 찾아서 정리한다.
편하고,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죄악된 행동의 동기, 횟수 등을 조사
2) 성경적인 새 습관, 새 사고, 새 언어를 찾는다.
상담자는 성경에 박식하고 적절한 말씀을 찾아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3) 새롭게 변화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다.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구체적인 환경의 변화를 만들어야한다.
4) 죄의 고리를 끊는다.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죄의 시작단계에서 죄의 유혹을 이기기는 쉽다.
첫째, 저항하라(잠17:14) 둘째, 저항에 실패하면 억제하라.(잠15:28)
5)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계속 기억나게 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6)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를 강조한다.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와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7) 새로운 패턴을 계속해서 연습한다.
묵은 습관은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계속적인 연습과 노력이 필요. (대하 27:6)

IV. 아담스와 심리학

아담스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충족성을 전제로 한다. 성경이 상담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심리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또한 모든 이론에는 전제(presupposition)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전제 위에 세워진 심리학의 이론과 방법을 가져다가 기독교상담에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임을 지적한다. 권면적 상담이 심리학과의 통합(integration)을 인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아담스는 2가지로 대답한다.
1) 심리학이 기독교상담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대는 대중성을 중요시한다. 닫혀진 자세가 아니라 열린 자세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의 계시와 다른 것에 우리의 마음을 열면 안된다. 성경적인 가르침과 상반된 이론이나 방법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2) 심리학과 기독교 상담에 사용될 수 있다.
심리학 이론이 기독교상담의 원리가 될 수는 없으나 필요한 정보들은 기독교 상담에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다. 심리학이 성경의 원리와 실천에 상반되지 않는 영역에서 부분적인 접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로렌스 크렙(Lawrence Crabb)

그는 임상심리학을 공부한 후에 상담의 현장에서 자신이 사람들의 진정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수없이 많은 상담이론들이 있는데 거기에 제시된 이론들을 가지고는 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으로 고민하였습니다. 결국 수없이 많은 이론들이 실제로 상담의 현장에서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인본주의에 토대를 둔 것이며, 자기만족에만 그치는 인간적인 확신뿐이라는 명백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복음주의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의 글을 읽는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인본주의 심리학임을 보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성경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로 하고 성경적 상담이론과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I. 그의 인간심리 이해

1. 인간은 죄로 인하여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다.
인간의 문제는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심리적 역기능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 인하여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둘째로, 인간들 사이에서 분리되었다. 셋째로, 인간은 본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분리의 결과로 정신적인 문제를 경험하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간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벗어나서 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다.

2. 인간의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불안, 우울, 분노, 난폭함, 습관적 거짓말, 공포심

필독서1
필독서2


1.뇌구조 상담챠트

2.신체문제 상담챠트

3.정신구조 상담챠트

4.마음이해 상담챠트

5.변화과정 상담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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