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에만 있지 않아요’…정신질환 치료물질 ‘리튬’
[37] 리튬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늘 흥미롭다. 특히 조증으로 입원한 양극성 장애 환자를 대할 때에는 감정의 전염성(mood infectivity)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다. 수련 받던 병아리 의사 시절에 한 환자와 나눴던 대화는 지금도 가끔씩 떠올라 나를 웃음짓게 한다.
나: 요즘 기분이 어때요?
환자: 별로 안 좋아요.
나: 특별히 그런 이유가 있나요?
환자: (POLO란 글자가 쓰여 있는 실내화를 가리키며) 저 글자들 때문에요. 피, 오, 엘, 오. 포로잖아요. 제 처지가 수용소에 갇혀 있는 포로 같아요.
환자의 색다른 해석에 ‘역시 양극성 장애 환자는 조증 상태에서 창조성이 증가하는구나’[1]라고 느낄 때 환자가 ‘사고의 비약(flight of idea)’을 보이면서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환자: 그런데요, 물어볼 게 있어요. 제가 지금 먹고 있는 약이 뭐죠?
나: 지금 복용 중인 게, 세로켈 600밀리그램(mg), 리튬 900밀리그램(mg)….
환자: 잠시만요, 선생님. 리튬이라고 하셨어요? 그거 중금속이잖아요. 왜 그런 걸 줘요?
화학과 그다지 친하지 않던 나는 얼떨결에 “중금속이어도 치료 목적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가 관리하면서 처방하면 괜찮다”라고 얼버무린 뒤 대화의 주제를 황급히 바꿨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과 거리가 먼 너무 부끄러운 대답이었다. 일단 리튬은 중금속이 아니라 경금속이지 않나.
리튬을 정신의학에서 치료 약물로 사용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다. 그럴 수 있다. 요즘 리튬은 휴대전화의 ‘리튬이온 배터리’나 전기 자동차의 ‘리튬폴리머 배터리’처럼 주로 전기전자 장비와 관련되어서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의학에서 리튬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었고, 사용되는 범위는 의외로 넓다.
온전한 정신을 찾아서 -존 케이드
» 중요한 발견을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정신과 의사 존 케이드의 일대기를 그린 책 <온전한 정신을 찾아서(Finding Sanity)>. 출처/Amazon.com 리튬의 의학적 발견을 찾아 역사를 되짚다 보면 멀리는 2세기까지 올라간다. 그리스의 에페수스에 살았던 의사 소라누스(Soranus)는 조증 환자의 치료에 알칼리성 광천수(鑛泉水; 미네럴 워터) 사용을 추천했다.[2] 비록 알칼리성 금속인 리튬이 광천수에 다량 함유된 것을 알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입을 축이면서 심신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듯싶다. 이후 의학사에서 여러 연구자가 등장하지만 리튬의 치료 효과를 과학적으로 처음 밝힌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신과 의사 존 케이드(John Cade)였다.[3]
191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케이드는 아버지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였기에 어렸을 때 정신 병원에서 환자들과 놀면서 시간을 자주 보냈다. 그는 유년기의 경험을 통해 정신과 환자를 흥미나 공포의 대상이 아닌 친구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대대로 의사 집안 출신답게 의대에 진학한 그는 자연스럽게 전공을 정신의학으로 선택했다.
케이드에게 정신과 의사로서 전환점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는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의 주된 흐름이어서 질환의 원인을 주로 어릴 적 양육에서 찾던 때였다. 군에 입대한 그는 싱가포르가 일본군에 넘어갈 때 전쟁 포로가 되었고, 창이(Changi) 수용소에서 3년 반 동안 지내는 동안 전쟁의 심리적 외상으로 고통받는 동료 군인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환자의 불안정한 모습이 입대하기 전에 치료했던 조증 환자와 유사한 것에 주목했고,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독소(毒笑; toxin)가 질환을 일으킨다고 추정했다. 즉 정신 질환의 원인을 뇌의 생물학적인 변화에서 찾았던 것이다.
1946년 제대 후 고향과 같은 정신 병원으로 돌아온 케이드는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먼저 그는 멜버른의 가게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큰 유리병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유리병이 집안 곳곳에 쌓여가는 광경을 보면서 그의 부인은 깜작 놀라 “우린 이걸 감당할 돈이 없어요”라며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피클 담는 데에 쓰면 되죠”라고 부인을 위로(?)하며 수집을 멈추지 않았고, 유리병이 어느 정도 모이자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의 소변으로 유리병을 채워 나갔다.
요즘 시각에서는 매우 기이해 보이지만, 당시 의사들은 소변을 몸과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창으로 여겼다. 케이드는 ‘신체에서 순환하는 화학 물질이 과다해져서 조증이 생기는 것이라면 잉여 물질이 소변으로 배출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기니 피그의 복강(腹腔)에 환자의 소변을 주입한 뒤 반응을 살피는 실험이 거듭되면서, 독소 후보 물질이 요산(uric acid)으로 좁혀졌다. 요산 자체는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케이드는 리튬을 더해 수용성 물질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고,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는 중에 리튬 자체도 기니 피그에게 주사해봤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발생했다. 리튬을 투여받은 기니 피그가 차분해졌고, 자극에 둔감하게 반응했다. 리튬을 배에 품은 기니 피그는 등이 닿게 눕혀도 바둥거리지 않았고, 심지어 검지 손가락으로 배를 쿡 찔러도 부드러운 눈으로 케이드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여러 차례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다. 케이드는 뜻하지 않게 리튬의 약리적 효과를 발견했다.
이후 케이드는 몇 주 동안 리튬을 직접 복용하면서 안전성을 확인했고, 1948년 3월 29일 한 조증 환자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리튬을 치료 목적으로 투여했다. 선정된 환자는 윌리엄 브랜드란 남성으로 케이드가 일하던 병원에 조증으로 5년 동안 입원 중이었다. 케이드가 2년 전 9차례의 전기경련치료를 시행했지만, 잠깐 안정될 뿐 이내 조증이 재발하던 심각한 상태의 환자였다.
리튬의 치료 효과는 놀라웠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일쑤였던 환자는 며칠 뒤부터 차분해지기 시작했고, 3주가 지나자 확연히 달라졌다. 시끄럽게 속사포처럼 내뱉던 말의 속도가 느려졌고, 병원 안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대신 자신의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5년 동안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병원에서 본의 아니게 악명 높았던 환자는 리튬을 복용한 지 5달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케이드는 윌리엄 브랜드 외에 조증 환자 9명, 조현병 환자 6명, 그리고 우울증 환자 3명에게 각각 리튬을 투여해봤다. 예상대로 조증 환자에서 리튬의 치료적 효과가 탁월했고, 케이드는 이듬해 <오스트레일리아 의학회지>에 리튬의 항조증 효과를 보고했다.[4] 비록 세 쪽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케이드의 논문은 훗날 이 의학 저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 되었으며 정신 질환에 생물학적으로 접근하는 물꼬를 트는 시발점이 되었다.[5]
온전한 사용을 찾아서 -모겐스 쇼우
2014년 발표된 <한국형 양극성 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에 따르면 리튬은 조증 치료에 사용되는 1차 선택 약물 중 하나이다.[6] 근 70살 먹은 노장이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중인 셈이다. 하지만 리튬이 이렇게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케이드의 역사적인 논문이 발표된 때로 다시 돌아가보자.
» 조증시 치료 단계. 유쾌성(euphoric), 혼재성(mixed), 정신병적(psychotic) 조증 모두에서 리튬(Li)은 1차 선택 약물이다. 출처/각주[6]
케이드의 첫 환자 윌리엄 브랜드는 퇴원 후 2주에 한 번씩 외래 치료를 받다가 임의로 복용을 중단했다. 구토, 손떨림과 같은 부작용으로 고생하던 브랜드는 리튬을 먹는 것이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이내 조증이 재발해 브랜드는 다시 입원했고, 케이드는 그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리튬의 용량을 계속 올려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 리튬은 브랜드를 고치는 대신 목숨을 앗아갔다. 주변의 다른 병원에서도 리튬을 복용하던 몇몇 환자들이 비슷하게 사망하자 케이드는 충격에 빠졌고, 리튬 처방을 주저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약물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질환의 치료에 효과적인 범위를 ‘치료 범위(therapeutic window)’라고 한다. 리튬은 치료 범위가 좁아 조금만 용량을 잘못 조절해도 환자에게 약 대신 독이 될 수 있다. 환자의 혈액에서 리튬의 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요즘과 달리 케이드의 시대에는 어림짐작만으로 용량을 결정했기에 안타까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1958년 혈중 리튬 농도를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법이 개발되면서 해결되었다.
한편 케이드가 부딪힌 별도의 어려움도 있었다. 논문이 실린 의학 저널이나 케이드 자신이 그리 유명하지 않은 점이었다. 그는 훗날 “정식으로 연구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원시적인 기술과 하찮은 장비를 갖춘 작은 만성 병원에서 일하던 무명의 정신과 의사가 발견한 내용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 같지는 않았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7]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의 일부 의사가 관련 연구를 진행했지만 학계의 반향은 미미했다.
» 리튬의 치료적 사용에 전념했던 모겐스 쇼우. 출처/각주[9] 고착된 상황은 덴마크의 한 젊은 정신과 의사에 의해 바뀌기 시작했다. 우연히 케이드의 논문을 읽은 모겐스 쇼우(Mogens Schou)가 위약과 리튬의 효과를 비교하는 이중맹검(double blind) 연구 결과를 1954년에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8] 그는 자신이 참석하는 모든 학회에서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고, 관심을 보이는 누구에게든 리튬의 치료적 효과에 대해 알렸다. 심지어 다른 약물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리튬을 비교 대상으로 언급했다. 이런 모습을 못 마땅하게 여겼던 몇몇 정신과 의사는 학회에서 그가 발표하는 것을 아예 막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발표가 끝난 뒤 토론 시간에 리튬 이야기를 꺼내는 열성을 보였다.
처음에는 덴마크의 다른 정신과 의사가 쇼우의 연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을 갖는 의사는 유럽과 미국으로 점점 늘어갔다. 리튬의 치료적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60년대에 리튬이 광범위하게 인정되었고, 쇼우는 모든 학회에서 초대받는 귀빈이 되었다. 10여 년 사이에 학회에서의 대우가 천양지차로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즈음에 리튬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10]
‘과학에서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설득한 사람에게 공이 돌아간다(In science the credit goes to the man who convinced the world, not the man to whom the idea first occurs)’라는 격언이 있다. 정신과에서 리튬의 치료적 사용에 관한 공로는 케이드뿐만 아니라 쇼우에게도 돌아가야 마땅해 보인다.
구관이 명관이다?!
병원에서 진료할 때 환자에게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죠?”라는 질문을 이따금 듣는다. 증상이 빨리 호전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묻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일부 환자는 ‘몸을 보호하는 보약인 한약과 달리 양약은 오래 먹을수록 해롭다’라는 생각에서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리튬 역시 예외가 아닌데, 특히 복용하는 약으로서의 크기가 작지 않은 편이어서 뇌를 손상시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막연히 더 유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뇌영상 연구가 보여주는 일련의 결과물은 일반적인 걱정과는 정반대이다.[11] 한 예로 서울대병원 류인균 교수(현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2010년 연구를 살펴보자. 연구진이 16주 동안 양극성장애 환자 13명에게 리튬을 투여하면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변화를 살폈더니, 회색질(gray matter)의 부피가 최대 2.56퍼센트(%)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효과는 다른 치료제(valproaic acid)를 복용한 양극성 장애 환자 9명이나 일반인 14명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리튬이야말로 질환으로 고통받던 뇌에 보약이었던 것이다.
» 리튬(Li, 그림에서 검정 ▲ 표시)을 복용한 양극성장애 환자의 뇌에서 회색질(GM)의 부피 증가가 10-12주에 최대에 이르렀고, 16주 전체에 걸쳐서 나타났다. 출처/각주[11],변형
최근에는 리튬의 뇌를 보호하는 효과를 퇴행성 뇌질환의 치료에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시작은 2007년에 브라질 연구진이 발표한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었다.[12] 연구진은 노인 양극성 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리튬을 오랫동안 복용한 66명과 최근에는 리튬을 복용한 적이 없는 48명의 인지 기능을 살펴봤다. 조사 결과, 리튬을 장기 복용한 환자에서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의 유병률이 5퍼센트(%)였지만, 리튬으로 치료 받은 적이 없거나 오래 전에 치료 받은 환자에서는 33퍼센트(%)로 나타났다.
리튬이 알츠하이머병과 맞붙을 새로운 후보로 떠오른 배경에는 약물 개발 연구의 흑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2002년부터 2012년 사이에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을 예방, 치료, 호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약물 연구의 99.6퍼센트(%)가 중단되었거나 종결되었다.[13] 이는 실패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항암제 연구의 81퍼센트(%)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다.
물론 리튬을 사용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여정 역시 마냥 장밋빛은 아니어서 초기 연구에서는 치료적 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 결과가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기존 연구의 방식을 답습해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 리튬을 투여했기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뇌를 보호하는 리튬이라도 이미 질환이 많이 진행된 시점에서는 흐름을 돌이킬 수 없었다. 또한 연구 진행 기간이 전반적으로 짧은 제한점도 있었다.
2011년 브라질의 한 연구진은 초기 연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14]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의 발생 위험이 높은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 환자 45명에게 1년 동안 리튬 혹은 위약을 무작위로(randomized) 투여했다. 그 결과 리튬을 복용한 환자의 뇌에서 인산화 타우 단백질(phosphorylated tau protein; 알츠하이머병에서 나타나는 주요 병리 조직)이 1년 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위약 집단에 비해 리튬을 복용한 집단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일부 병리 조직이 감소했다. 출처/각주[14],변형
새로운 약들이 속속 개발되는 시대에 오래된 리튬이 여전히 연구 대상에 오르면서 사용 범위가 확대되는 모습은 이채롭다. 정말 구관이 명관인가? 아직은 초기 단계여서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향후 많은 임상 자료가 쌓이고 뇌영상학으로 효과가 확인되어 리튬이 구닥다리가 아닌 이른바 ‘힙한’약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길 기대해본다.
리튬 한 잔 하실래요?
우리나라에서는 ‘칠성 사이다’와 ‘스프라이트’에 밀려 존재감이 미미한 ‘세븐업(7 Up)’이란 청량음료가 있다. 음료의 이름이 낯선 사람도 한때 세븐업 광고에 등장하던 주인공 ‘피도 디도(Fido Dido)’를 떠올리면 예전에 접했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세븐업이란 이름은 짧아서 기억하기 편하지만, 1929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될 때의 이름은 그렇지 않았다. ‘빕-레이블 리티에이티드 레몬-라임 소다(Bib-Label Lithiated Lemon-Lime Soda)’였기 때문이다.
[ 피도 디도가 등장하는 1990년대 세븐업 광고, https://youtu.be/zZk1naucz1k ]
당시 긴 이름의 세븐업은 ‘리티에이티드’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리튬을 함유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래 전부터 리튬에는 치유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고, 19세기 말 미국 조지아 주의 리티아 스프링스(Lithia Springs)라는 작은 도시에는 리튬수를 마시려 유명인사가 드나들곤 했다. 초창기 탄산 음료는 일종의 강장제였기에, 리튬이 포함된 음료를 마시는 것은 건강을 챙기는 행동이었다.
나름 잘 나가던 리튬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40년대였다. 당시 심장 질환 환자에게 일반적인 소금(염화나트륨) 대신 염화리튬이 처방되곤 했는데, 조절하지 않고 과다 복용한 일부 환자에서 심각하고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 계기였다.[15] 결국 리튬은 세븐업을 포함한 일체의 먹고 마실 것에서 퇴출되었다. 태평양 너머 남반구에서 리튬의 항조증 효과가 드러나면서 치료제로서 서광이 비치고 있을 때 반대편 미국에서는 건강 음료수의 역할에 암흑이 들이닥친 셈이다.
하지만 리튬은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기에 우리가 마시는 물에 적은 양이지만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미량이더라도 리튬이 포함된 물을 오랫동안 마시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혹시 리튬의 뇌를 보호하는 효과가 나타날까? 반대로 몸 안에 쌓이고 쌓여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극소량인 만큼 별 일 없을까?
1990년 질문에 답하는 첫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미국 텍사스 주에서 리튬이 많이 함유된 식수를 마신 사람들에서 살인, 자살, 강간, 절도의 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16] 특히 리튬 농도가 가장 높은 물과 가장 낮은 물을 마신 사람들 사이에서 자살률이 40퍼센트(%) 차이를 보였다. 20년 뒤 일본, 그리스, 오스트리아에서도 식수의 리튬 농도가 높을수록 사람들의 자살률이 감소하는 결과가 속속 보고되었다.[17]
» 식수에 포함된 리튬이 자살률을 낮추는 연구의 한 예. 가로축이 리튬의 농도를, 세로축이 자살률을 나타낸다. 출처/각주[18]
물론 모든 연구에서 리튬수의 자살 예방 효과가 규명된 것은 아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별 다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거나,[19] 여자에서는 나타나지 않거나,[20] 사는 곳의 위도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21] 향후 좀 더 많은 자료가 축적되어야 하겠지만, 자살률이 높아 악명 높은 우리나라는 관련 연구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혹시 아는가? 근래에 공익 광고의 문구가 이렇게 바뀔지. “리튬 한 잔 하실래요?”
리튬의 역사, 인간의 역사
“수헬리베 붕탄질산 플네나마 알규인황 염아칼칼….”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주기율표를 외우기 위해 원소의 앞 글자만 따서 선율을 붙여가며 외웠던 적이 있다. 요즘은 칼륨이 먼저인지, 칼슘이 먼저인지 헷갈리지만 세 번째가 리튬인 것을 여전히 자신있게 외울 수 있다. 정신과 의사 때부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게 리튬의 역사는 이미 오래 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인류에게는 리튬의 역사가 훌쩍 더 올라간다. 먼 옛날 그리스 시대의 광천수로 사람들의 아픈 몸과 지친 마음을 치유하던 리튬은 약 70년 전 생물학적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약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여러 장애물에 부딪혔지만 잘 이겨냈고, 최근에는 퇴행성 뇌질환으로도 적용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또한 치료 약물로 사용할 때처럼 많은 용량이 아닌 마시는 물에 함유된 작은 용량의 장기적 효과 또한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제 리튬을 단순히 전기전자 장비와만 관련 짓지 않도록 하자. 조금 과장하면, 리튬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이다.◑
[주]
[1] http://scienceon.hani.co.kr/?mid=media&category=90222&document_srl=519009
[2] Johnson, F.N., The History of Lithium Therapy. 1984: Palgrave Macmillan UK.
[3] de Moore, G. and A. Westmore, Finding Sanity: John Cade, lithium and the taming of bipolar disorder. 2016.
[4] Cade, J.F., Lithium salts in the treatment of psychotic excitement. Med J Aust, 1949. 2(10): p. 349-52.
[5] Schou, M., Lithium treatment for half a century. How did it all start? Nord Y Psy, 1999. 53(5): p. 383-4.
[6] 우영섭 외, 한국형 양극성 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 2014: 조증 삽화. Korean J Psychopharmacol, 2014. 25(2): p. 57-67.
[7] Li, J.J., Laughing Gas, Viagra, and Lipitor: The Human Stories behind the Drugs We Use. 2006: Oxford University Press.
[8] Schou, M., et al., The treatment of manic psychoses by the administration of lithium salts. J Neurol Neurosurg Psychiatry, 1954. 17(4): p. 250-60.
[9] Grof, P., Mogens Schou (1918-2005). Neuropsychopharmacology 2006. 31: p. 891-2.
[10] http://blog.iseverance.com/yuhs/6354
[11] Lyoo, I.K., et al., Lithium-induced gray matter volume increase as a neural correlate of treatment response in bipolar disorder: a longitudinal brain imaging study. Neuropsychopharmacology, 2010. 35(8): p. 1743-50.
[12] Nunes, P.V., O.V. Forlenza, and W.F. Gattaz, Lithium and risk for Alzheimer‘s disease in elderly patients with bipolar disorder. Br J Psychiatry, 2007. 190: p. 359-60.
[13] Cummings, J.L., T. Morstorf, and K. Zhong, Alzheimer’s disease drug-development pipeline: few candidates, frequent failures. Alzheimers Res Ther, 2014. 6(4): p. 37.
[14] Forlenza, O.V., et al., Disease-modifying properties of long-term lithium treatment for amnestic mild cognitive impairment: randomised controlled trial. Br J Psychiatry, 2011. 198(5): p. 351-6.
[15] Hanlon, L.W., M. Romaine, 3rd, and et al., Lithium chloride as a substitute for sodium chloride in the diet; observations on its toxicity. J Am Med Assoc, 1949. 139(11): p. 688-92.
[16] Schrauzer, G.N. and K.P. Shrestha, Lithium in drinking water and the incidences of crimes, suicides, and arrests related to drug addictions. Biol Trace Elem Res, 1990. 25(2): p. 105-13.
[17] Vita, A., L. De Peri, and E. Sacchetti, Lithium in drinking water and suicide prevention: a review of the evidence. Int Clin Psychopharmacol, 2015. 30(1): p. 1-5.
[18] Giotakos, O., et al., Lithium in the public water supply and suicide mortality in Greece. Biol Trace Elem Res, 2013. 156(1-3): p. 376-9.
[19] Kabacs, N., et al., Lithium in drinking water and suicide rates across the East of England. Br J Psychiatry, 2011. 198(5): p. 406-7.
[20] Liaugaudaite, V., et al., Lithium levels in the public drinking water supply and risk of suicide: A pilot study. J Trace Elem Med Biol, 2017.
[21] Helbich, M., et al., Does altitude moderate the impact of lithium on suicide? A spatial analysis of Austria. Geospat Health, 2013. 7(2): p. 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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