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개론] 데이빗 포울리슨, Competent to Counsel?, 논문번역 일부

  powlison.zip 811.9K 1 3년전
                   COMPETENT TO COUSEL?

                      THE HISYTORY OF

 A CONSERVATIVE PTOTESTANT ANTI -PSTCHIATRY MOVEMENT
 ( 상담에 적합한가?  보수적인 기독교의 반정신의학 운동의 역사)
                         
                     
                         David Powlison

                   
                   
                        A DISSERTATION
                               in
                   History and Sociology of Science
                   (역사와 사회과학 분야의 학위논문)




Presented to the Faculties of the University of Pennylvania in Partiol Fulfillment of the Requirements for the Degree of Doctor of Philosophy
 ( 철학박사 학의를 위해 펜실버니아 대학 교수심의회에 제출된 예비논문)
                              

                             1996













                ACKNOWLEDGMENTS (감사의 말 )

  나는 이 논문이 완성되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드리기 원한다. 지도교수인 Charles Rosenberg교수는  나를 역사학자로 만들었다. 조교인 Ronald Numbers, Riki Kuklick, 그리고 Clair Davis는 비평과 함께 조언도 해주었다. Charles Bosk는 공동연구를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과가 있었다. 역사는 공동으로 연구하는 작은 방법으로 변화되었다.
  나의 중요한 주제인 제이 아담스와 버디 제인 아담스에게 친절하게 시간을 내주신 것에 감사한다. 수년간 함께 토론해온 사람들, 특히 도널드 캡스, 론 카터, 론 코에, 게디 콜린스, 래리 그랩, 하위드 에리히, 빌 고오드, 버논 그라운즈, 로이드 존즈, 스탄 존즈, 웨인 맥, 부루스 나라모어, 로버트 로버츠, 조오지 스키피온, 밥 스미스, 그리고 리처드 윈저, 또 AACC, CAPC, 그리고 NANC의 학생들에게 감사 드린다. 이들 중 조오지 스키피온의 연구와 통찰력은 특히 도움이 되었다.
  에드멘드 글라우디는 처음으로 내게 역사를 공부해 볼 것을 제안한 사람이다. 존 버틀러는 소주제를 제안하고 유형무형의 많은 다른 방법을 조언해 주었다. 바울 트립, 에드 웰치, 그리고 다른 동료들은 논문에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어보지 않고 내거 할 일들을 처리해 주었다. 바바 브래들리는 CCEF위 데이티 베이스를 이용하는 일에 귀중한 도움을 주었다. 브래드 버버즈와 빌 스미스는 지료를 찾는 일을 도와 주었다. 펜실버니아 대학,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풀러 신학교, 바이올라 대학교의 도서관 사서들은 나를 지원해주고 인도해 주었다.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도 있다. 반 크래머의 꾸준하고 실제적인 조언이 없었더라면 이 연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다른 친구들- 블랙먼즈부부, 코빙톤즈 부부, 디하츠 부부, 그로브즈 부부 밀러즈 부부, 에크코스-부부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 -은 나를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마리엔 소터는 자료들을 통계적으로 정리해 주었다. 성 클리어회와 성 줄리언 회의 제인 번즈의 호의는 집필과정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나의 어머니 로라 폴리는 장인 장모인 프랭크와 엘로지 가드너와 함께 조용히 지속적으로 나를 격려해 주었다.  피터와 그웨이스, 한나에게 그들의 삶의 신비함으로 아빠의 논문의 배경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내 낸에게 감사한다. 그녀는 “ 사랑은 오래 참는다” 는 것을 보여 주었다.







                          ABSTRACT (개요)

                   COMPETENT TO COUNSEL?
                       THR HISTORY OF
 A CONSERVATIVE PROTESTANT ANTI-PSYCHIATRY MOVEMENT
( 상담에 적합한가? 보수적인 기독교의 반정신의학 운동의 역사)
                           David Powlison

                          Charles Rosenverg

  1970년 장로교 사역자인 제이 아담스는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내의  반심리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부분적으로 O. H. 모우러와 토마스 스자프스의 영향을 받은 아담스의 주장은 세 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현대의 심리학 이론은 잘못된 신학이며 실생활을 잘못 해석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둘째, 심리치료사들은 목사들의 영역을 침범하여 부당하게 목사들의 일의 하고 있다. 셋째, 기독교의 성경은 목사들이 상담할 수 있도록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아담스의 보수적인 상담은 전형적인 신앙고백의 획일적인 형태로 급속히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세 부류의 전문가들의 도전을 받았다. 세속적인 심리학 전문가들이 실생활의 문제에 관하여 20C세기의 논문과 치료를 차지하였다. 1940년대부터 개신교 목회상담의 주류는 종교적인 상담의 형태를 취하여 왔다. 복음적인 심리치료 전문가들의 모임이 아담스의 보수적 기독교의 믿음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믿음이 현대의 심리학과 조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직업적인 권한에 대한 갈등이 아담스와 복음적인 심리치료사들 사이에 일어났다.  이 갈등은 역사적인 문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면접, 발표, 사례연구와 같은 1차적인 자료로부터 알게 되었다.
 아담스의 이론은 6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인식론은 개혁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성경을 근거로 한다. 둘째 그는 죄를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실생활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정의하였다. 셋째 그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원인이 개인에게만 보았다. 넷째 그는 삶의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선포하였다. 다섯째 상담은 목사와 교회에 속한 것이라고 정의 하였다. 여섯째 그는 세속적인 심리학의 지적이고 전문적인 주장을 비난하면서 심리학의 프로그램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아담스는 목사들과 그들의 성도들 사이에 추종자를 얻었으나 넓은 의미에서는 전문가들과의 논쟁에서 패배하였다. 1980년대의 복음적인 심리치료사들은 성공적으로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그들의 이론으로 고등교육기관과 출판에 학문적인 영향력을 넓혀가고 관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지배문화를 설득하였다. 보수적인 상담운동은 보수적인 기독교내에서 주류로부터 밀려났다. : 학회는 침체되었다. : 오류가 내부적으로도 분명히 인식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다시금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TABLE OF CONTENTS (차 례 )



1  서론

2  반 정신의학 운동의 형성
 
3  상담혁명에서의 당신의 입장

4  아담스의 내담자들

5  하나님, 죄 그리고 고통 : 아담스의 체계1

6  복음과 목회의 과제 : 아담스의 체계2

7  아담스의 반정신의학 논쟁

8  대반란 : 전문가들의 반응

9 논쟁의 흥망성쇄. 1980년대와 그 이후

후기

부록 : 아담스의 상담사레에 대한 설명

원자료에 대한 설명

참고문헌











                       LIST OF TABLES (표 차례)

표1  소개자의 분류

표2  우편번호

표3  교단적 배경

표4  나이

표5  성비

표6  교육수준

표7  직업

표8  CCEF의 내담자의 결혼관계

표9  선상담경험

표10  내담자의 관점에 대한 상담자의 반응

표11  상담횟수













                            1장 서 론

나의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서로 권하기에 능한 자임을 안다.  
                              - 바울의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 c. 60 A. D.

우리가 소유한 진실하고 건전한 대부분의 지혜는 기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 ....  고통스런 세상의 현실적인 모습은 인간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하며 우리 자신을 찾는 소리에 의해 우리가 인도되게 한다.
                              - 존 칼빈, 1559

복음적인 기독교는 심리학이라는 한 그릇의 죽에 장자권을 팔았는가?
                              - O. Hpbart Mowrer, 1961

의과대학이니 임상심리학 학위보다는 좋은 신학교육이 상담자를 위한 가장 합당한 배경이다.
                           - Jay Adams, 1970

  1970년 제이 아담스는 41세의 목사요 신학교수로서 상담에 대한 선동적인 책을 출판하엿다. 평신도들과가 정신과의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주로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목사들과 신학자들을 위해 쓰여진 'Competent to Counsel' ( 상담의 적합성)은 O. 호버트 모우러, 글래서 윌리엄, 런던 페리, 스자츠 토마스에 의해 영향 받은 아담스는 상술한 변혁을 의도하였다. : 그는 보수적인 기독교가 정신과의 권위자들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보기를 원했다.  이 선동가는 선동가들이 그러하듯이 충성된 지지자들과 단호한 적들을 얻게 되었다.

  아담스와 그가 시작한 운동은 관할권의 갈등에서 역사가들에게 서로 다른 사례를 제공한다. 지적이고 학문적인 경계에서 아담스와 그의 반대자들은 남달리 명확하다.   예를들어 의학적인 설치에 있어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갈등은 인식론적이고 학문적인 가정들은 공유하는 안에서의 이권과 책임을 차지하려는 내분이다. 이것은 이런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이것은 하나의 지적이고 학문적인 범주가 지배적인 범주를 공격하여 대응하는 업무를 만들었다. 동시에 이 격심한 갈등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 아담스와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정신병치료의 전문가들. ‘Competent to Counsel? : The History of a Conservative Protestant Anti - Psychiatry Movement ( 상담에 적합한가? : 보수적인 기독교의 반정신의학운동의 역사)’는 관할권에 대한 역사적이고 지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담스의 개인문제에 대한 지배적인 이해에 대한 반론은 분명한 신학적인 용어들로 구성된 이론으로 조직화 되었다. 그는 정신적인 질병이나 정신건강 등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에 의의를 제기하였다. 그의 의학적인 모델은 상한 감정과 이상행동을 설명하면서 인간생활의 본질적인 측면인 도덕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은 무시하고 있다고 보았다. 남자든 여자든 인간은 스스로에게나 하나님에게나 무책임한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상황에 대한 오진과 부합하여 의학적인 치료의 모델을 잘못 설정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감정과 행동에 만족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사회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상태를 아담스는 영혼의 치료를 위한 적당한 처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가 도덕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실제의 문제를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적절한 진단 속에서 그는 교회상담의 목표를 전통적인 기독교의 메시지로부터 세웠다. 첫째, 사람의 가장 큰 필요는 용서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혜가 실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아담스는 하나님은 사람의 인격과의 만남을 통해 일하셨으며 용서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그의 생각이나 감정, 행동의 양식이 변화될 것이다. 둘째, 그러한 용납에 대한 감사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아담스는 변화의 과정을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성화로 정의하였다. 보통의 죄나 크고 많은 죄나 고통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점진적으로 믿음과 행위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해결될 것이다.
    인간의 고통스러운 상황과 그 해결책을 재정의 하면서 아담스는 정신과의  전문가들과 그 치료를 비판하였다. 아담스가 보기에는 교육의 체계나 훈련 그리고 자격증 : 공적인 기구와의 관계 : 이 모든 것이 적이며 친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수적인 기독교의 신앙과 목적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담스가 목사의 명백한 일로 상담을 재정의 했기 때문에 많은 분파들이 생기게 되었다. 개인문제에 대한 관할권이 아담스가 수용할 수 있는 용어로 생활의 문제를 해석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던 정신건강을 위한 전문가들로부터 목사들과 신학자들에게 옮겨질 필요가 있었다. 그는 사람은 영혼의 치료를 위해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대용품이 아니라 목회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담의 실제는 병원이나  전문가의 사무실에서가 아니라 지역교회가 해야한다.
   예언적으로 아담스는 기독교 공동체내에서 정신병에 대한 세속적인 자격증을 얻고 일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았다. 그들의 우리가 다루는 기간의 높은 수준의 교육수준과 출판물, 상담은 아담스가 보기에는 이리가 양의 탈을 쓴 것처럼 보였다. 아담스는 목사들과 미국의 정신건강에 대한 체계를 디시 세우려고 하면서 목사와 교회가 일차적으로 상담해야 한다고 보았다. 아담스는 그러나 정신건강의 체계와 상응하는 구조와 시설을 가진 대체적인 기관을 만들려고 열정을 부었다 : 훈련과 교육의 수준에 따른 프로그램, 전문적인 잡지, 공인된 상담가를 위한 학회, 그의 책들을 펴낼 출판사와의 연결.
   아담스는 신학적이거나 학문적인 가정들을 제시하면서 논리적으로 심리치료의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에 반박하였다. 그는 그러한 방법은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 그리고 공동체에 관한 인간의 역할에 관하여 보수적인 기독교의 믿음에 유해한 범죄 행위라고 단정하였다. 그의 관점의 중심은 인간의 삶은 부모님, 목사님, 그리고 보편적이고 궁극적으로 가깝고 직접적인 성경에 명시된 신적 권위 속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특히 그는 상담가가 평가하지 말아야하며 지시하지 말고 문제를 가진 개인으로부터 치료하는 힘을 이끌어내는 모든 시도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렬히 비난하였다.  
   그러한 자세는 아담스가 보기에는 중립을 가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의 인간밖으로부터 구원자와 인간 본성의 내면의 악을 따라 행하는 것으로부터 돌이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믿는 관점에서는  개인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그 스스로에게 있다는 가차들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상담자의 주장은 아담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상담자는 권고하고 자문에 응하고 교훈하고 교육하며 경계하고 인도하는 좋은 지도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아담스는 피상담자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상기시키면서 상담자를 “사랑의 편지”요 “평화의 사도”라고 불렀다. 아담스는 연구를 위해“nouthetic counsling" 이라는 용어를 새로이 만들었다.
    아담스의 체계는 보수적인 개신교안에서 상담을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형용사 “개혁”은 개신교 안에서 아담스의 신학적인 위치를 말해준다. 그는 존 칼빈으로부터 이어져온 개혁신안의 계승자이다. 개혁신앙안에서 그는 19C 미국 장로교와 20C 독일 칼빈주의자의 철학의 영향을 가장 많아 받았다. 아담스는 그의 체계의 과학성이나 과학적인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부인하면서 그의 관점을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관점라고 말했다.

 “ 이 연구의 결론은 과학적인 발견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이 연구의 방법은 다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나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기준으로 받아들임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가 찾고자하는 모든 판단의 기초와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첫째, 나는 성경의 적용과 해석에 있어 절대적 일 수 없다. 둘쨰, 나는 과학을 경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학이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명시하고 도전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성경을 다시금 공부하도록 하면서 시대의 간격을 메꾸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신의학과 과학에는 인본주의적인 철학과 가설이 광범위하게 그러므로 그것은 다른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비평을 수반하였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아담스의 상담은 종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상담에 대해 적합한가?’와 그 후의 책에서 아담스는 반복적으로 정신의학의 모델과 세속적인 심리치료의 모든 형태와 함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세가지 핵심적인 이론들을 공격하였다. (정신역학, 인본주의 행동주의) 그것은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였다. 다만 그는 경험에 의거한 심리학과 신체적인 원인에 의한 정신의학, 그리고 O. H. Mowrer, William Glasser, Perry London, 그리고 Thomas Szasz와 같은 반정신의학자들만 인정했다.
  Mowrer는 특히 촉매 작용을 하였다. 아담스는 그의 책을 읽고 1965년 여름에 그와 함께 연구하였다. 그 후에 아담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모우러의 책 ‘심리학과 종교의 갈등’은 땅이 흔들리는 경험이였다. 미국의 학회의 인증을 받은 심리학자들의 연구룰 인용한 이 책에서 모우러는 심리학을 전체적으로 바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것을 실패라고 단언했으며 심리학의  기초인 프로이드의 가정을 평가하려고 하였다. 대담하게 그는 보수적인 기독교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 “ 복음주의 기독교는 심리학이라는 한 그릇의 죽을 위하여 장자권을 팔았는가?”

  아담스는 모우러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면서 비평의 날을 들어 보수적인 기독교의 목사들에게 장자권을 찾기위해 그와 연합할 것을 촉구하였다.그는 목회자들이 그들의 사역안에 개인적인 문제들의 영역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담스가 그의 프로그램과 그의 지지자들을 정의한 정확성은 전문가들 사이의 관계와 지적인 갈등의 연구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면 아담스는 대중사회에 정책을 제시하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 그는  집증적으로 한정된 지지자들을 위한 상담체계의 한 부류를 만들었다. 그는 신앙의 유형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신앙을 공유해야 복음적인 상담을 확실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순히 기존의 정신건강에 대한 체계안에서 목회자의 상담가로서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다. : 그는 대안적이며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다.
   다른 유의할 만한 특징은 아담스와 그가 반대한 사람들간에 직접적인 대결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의 “ 프로이드, 로저스, 그리고 스키너” 에 대한 반복적인 비판은 다소간 심리학의 이론과 실제를 수용하고 있는 다른 기독교인에 대해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개신교안에서 문화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의 분야를 담당하고 있고 아담스와 같은 권위를 요구하는 두개의 집단과 충돌하였다. 첫째, 아담스는 가끔 목화상담이론을 비판하였는데 그것은 목회상담을 자유주의적인 신학교외와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똑같이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목화상담운동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칼 로저스, 알프레드 애들러, 칼 융,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목사들과 상담을 어쨌든 생각해 본 소수의 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둘째, 아담스는 자주 복음적인 정신과 전문가들과 토론하였는데 그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 보수적인 기독교의 기독교인들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설명하면서 목회자와 무관하게 심리치료를 형성한 사람들이다.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안에서 일어난 심리학과 신학을 통합했다고 말하는 초기의 심리학 운동은 일련의 심리학자들의 이론에 심취하여  상담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 Competent to Counsel이 단순히 소외되어지고 권한을 빼앗긴 사람들을 공격했다면 아담스는 그 시대의 반정신의학 서술의 역사에 몇 개의 각주만 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가 지식의 한 유형으로 받아들였던 정신의학의 체계와 부차적으로 부딪힌 것이다. 그는 그가 부딪친 지적이고 학문적인 지배권에서 근본적으로 그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영역을 다시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전문적인 체계의 설립자였다. 심리학과 심리요법, 응용심리학, 그리고 정신건강을 위한 구조에 대한 공격은 아담스의  적극적인 관점을 위한 방어적인 기능을 하였다. 그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에게  인식과 방법과 학문에 있어 지적인  정신건강체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아담스는 대부분의 반심리학자들이 결여한 두개의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방대한 지적 자원인 신앙과 해위에 대한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 아담스를 혁신가로 만든 것은 전통적인 칼반주의의 현대적인 의미와 적영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했다는 점에서이다. 둘째, 아담스는 이러한 믿음을 강력히 지지해주는 공동체에 속해있었고 지도적인 교육기관인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에서 교수로 있었다. 그의  사회적인 위치로 인하여 그는 협회의 건물의 기반을 가지게 된다. 정신과의사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인 게릴라나 귀찮은 사람의 역할에 만족해야만 했다; 아담스는 근거지가 있었다.

< 창세기와 연구의 진행 >

   이 연구의 개념들은 주로 다음의 두 책의 영향을 받았다. : 찰스 로젠버그의 ‘정신의학의 정당성에 대한 혼란’과 앤드류 애보츠의 ‘고백의 체계’이다. 이 두 책은 이 연구의 정의와 개념적인 틀에 있어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로젠버그의 정신의학의 상황에 대한 분석은 연구의 주제들을 떠오르게 하였다.  애보트의 체계적인 관할권에 대한 반론의 분석은 - 특히 어떻게 정신의학이 개인문제에 대한 목회자적인 관할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한 장- 역사적인 윤곽을 보여주었다.
  로젠버그는 어떻게 정신의학이 상담과 상관없는 의학적인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는지 주목하고 있다.  이성과 효과의 원칙은 -소위 인간의 역기능과 불쾌의 과학과 기술- 정신의학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할만한 치료의 권위에 필요한 일관된 이해와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진리의 내용은 가끔은 믿음의 모호한 주장이다. ; “우리는 가장 일반적인 정신의학적인 진단의 기초에 대해 토의하고 믿음의 체계와 사회구조의 실제와의 관계에 대해 논의 할 것이다." 정신의학적 치료법이란 항상 불확실한 것이다. 단지 강한 ‘약물투여’ - 향정신성 약물치료, 전기충격, - 경련을 일으키는 치료, 뇌수술- 그리고 어찌할 수 없어서 육체적으로 돌보는 것은 약물투여처럼 쉽다. 전문가들은 치료의 방법과 효과에 대한 계속되는 요구의 내부적인 어려움과 모호한 효과에 직면하여 효과적인 방법들을 얻기 원한다. 의학적인 특성을 가진 정신의학의 상담에 대한 정체성은 희미하다.
  더 나아가 분규가 정신의학의 가장 명백히 의학적인 기관과 환자들에 - 병원은 사람들을 유기체의 행동양식으로 본다 -  관계된 사람들이 20C에 걸쳐 가장 낮은 위치의 직업이였기 때문에 일어났다. 정신과 의사의 높은 수준의 행위는 최소한 철학이나, 신학, 그리고 목회사역과 분리되었다. : “ 우리 세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 저서중 많은 양이 일반적인 인간의 상태에 대한 저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높은 수준의 행위는 - 삶의 의미를 가르치고 영혼의 병을 치료하는 - 보호하는 직업 이상으로의 정신의학에 많이 기여하였다. 그러나 싦의 의미에 대한 요구를 직업적으로 들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로젠버그는 정신의학이 세속적인 미국에서 막대한 사회적 역할을 떠맡고 있다고 보았다. 이 직업은 여러 가지의 병과 역기능 그리고 영혼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떠맏고 있다. 그러나 이 직업이 가진 지식체계와 효과는 도움을 제공해야만 하는 책임에 못미치고 있다. 사랑과 도움에 대한 요구는 진리와 능력의 방법인가 아닌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사회적인 기대와 직업적인 성과 사이의 실망스러운 차이가 끊임없이 이 직업의 정당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틀안에서 로젠버그는 이 논문의 촉매작용을 한 두 가지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많은 사람이 즉시 치료해서 좋아질 수 있는 육체적인 병보다 침체와 분노의 정신적인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금욕주의와 전통적인 기독교적인 관점이 정신적인 질병에 의미체계로 보통 제공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신의학이 사회적으로 가장 다루기 힘든 정신착란이나 이상행동의 문제를 다루어야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생활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의 기독교의 운명과는 반대로 불가피하게 대표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 로젠버그의 통상적인 것에 대한 묘사는 색다른 결론 - 현대의 금욕주의와 전통적인 기독교의 실패-을 가져왔다. 제이 아담스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세계관이 정신병을 설명하는데 의미있었던 문화적인 상황에서 이 글을 썼다.
  둘째로 로젠버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정신의학은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하고 정의된 개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논쟁의 테두리를 정하기가 쉽다. 마지막 문단이 문제의 설명에 도움이 되는 사실이다."  관할권에 대한 많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형태가 있다. 예를들면 입원환자에 대한 제도적인 정책 때문에 정신과에서는 정신병을 위한 의사나 심리학자, 그리고 심리치료법을 사용하는 사회사업가가 간호사와 함께 - 흔히 구별할 수없지만 정신과 간호사와 상담가 - 필요하다. 이것은 일반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상담운동은 논의의 범위와는 다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 “분리주의 정책 ”.  그 사례는 정신의학의 중심지대 안에서의 권위와 책임의 적당한 할당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결별에 관한 것이다.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는 정신의학의 체계내에서 방황하고 고통하는 영혼을 의학적으로 병으로 설명하고  취급하는 것에 쉽게 동의 할 수 없다. 제이 아담스는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직면하고서  지적이고 학문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로젠버그는 정신의학의 정당성은 희박하지만 의사라는 직업과 미국사회와 정책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담스느 정신의학이 그의 환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전제 안에서 설들력 있는 반대자들의 그룹을  발견했다. 반 정신의학의 프로그램은 그들의 주장을 성공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사회적인 학문적인 기반을 기지고 있지 않으며 그 정당성의 기초도 대안속에서  주장했다. 제이 아담스는 반정신의학 논쟁과 성경적인 상담의 실천의 예를 보수적인 기독교의 기관안에서 만들 수 있었다. 그의 성공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수용보다는 반대를 특별히 1차 집단사이에서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역교회와 보수적인 신학교, 성경학교, 선교단체, 그리고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승리의 소리를 들었다.        
  만약 Rosenberg가 나의 연구의 명백한 윤곽들을 시사하였다면, Andrew Abbott는 많은 세부사항을 제안하였다. 그는 “그것은  현존하는 전문직에 대한 관할권 논쟁의 역사”라고 주장하였다. 상담에 관한 권한?은 질문의 논쟁에서 권한을 위한 전문가 그룹들 사이의 다국면의 갈등의 흔적을 발견할 것이다 -  학문적인 주도권과 상담실제를 담당하는 양방면에 있어.  Abbott는 이 갈등을 이해함에 있어 세부적인 일련의 범주들을  제시했다.
  예를 들면, Abbott는 경제학, 정치, 전문가 학회 그리고 수사학보다 더 통찰력 있는 지식 시스템의 의의를 강조했다.  " 지식은 경쟁의 수단이다 ". 이것은  이론체계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쳤고, 썼고, 그리고 설교하였던 사람들의  자의식이 강한 믿음과 행동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 밝히 증명하였다.
   Abbott의 용어에서  관할권을 지배할 수 있는 전문가의 능력은 추상적 지식의 시스템의 생존능력에 달려있다. 단지 추상들에 의해 적용된 지식 시스템이 그것의 문제와 일을 재정의할 수 있고 침입자들에게서 그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새로운 문제를 붙잡을 수 있다. - 약이 최근에 알코올 중독, 정신병, 아이들에 활동과다, 비만 그리고 다수 다른 것들을 대하여 붙잡았듯이.  Adams는 기능 문제로 고발된 약의 목록을 읽었을 것이다. 그가 대취, 책임으로부터 비행, 계획적임, 과식증, 그리고 이름표를 붙여야할 많은 다른 문제들을 붙잡으려고 시도하였다.
  Abbott의 미국에서의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관할권의 역사에 대한 고찰은 나의 목적에 유용하였다. 그는 어떻게 1930년대부터 1970대까지 적합한 정신요법이 공적으로  공공연하게 의학적인 직업에 의해 독점되었는지 기술하였다. 상대적으로 직업의 평화가 있었던 이 시기에 신경과 전문의는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는 환자에게는 육체적인 처방을 하였고 분노, 절망, 흥분 등의 문제를 가진 환자들에게 정신의학적인 처방을 하였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의 직업적인 시도들을 고찰하면서 애버트는 1970년대와 그 이후에 심리학자들과 사회사업가의 경쟁이 개인의 문제에 대한 정신의학의 발전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애보트의 저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다른 전문가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 목사. 애보트는 목사의 쇠퇴를 이렇게 표현한다. 19C에 있어 목사의 학문적인 분석수준은 소박하였다. 그가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학문적인 기초를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개인의 문제를 설명하고 다루는 지식체계의 - 새로운 비판적인 지식체계와 서로 영향력을 끼치는 - 출현은 목사를 더욱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 1920년대끼지 목사는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관할의 흔적을 잃었다.”  그들의 상층문화에 대한 관할권을 거의 잃었다. ;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나 그들의 종교적인 기반에서 보거나 교회 밖에서 교회로 말하는 권위적인 목소리가 증가하였다. 애보트는 목사의 소멸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이 시기에 (1920년대) 젊은 목사들에게 새롭게 정의된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지접적인 경험을 하도록 정신의학적인 목회훈련운동이 대두하였다. 정신의학과 심리학, 그리고 사회사업가들이 직업적으로 아는 새로운 인간본성에 대한 기초가 가르쳐졌다.

애보트는 관할권에 대해 실패한 사람으로 안톤 보이슨을 인용했다. 보이슨은  “ 정신의학의 점령지의 게릴라”였다. 그가 들었던 깃발을 이어서 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이 아담스는 개인적인 문제가 도덕적안 영적인 해석을 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 햇으나 보이슨이 설명하려고 했던 정신의학의 본거지와 개신교의 주류는 피했다.  지식의 지배자가 사람의 본성에 대해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오류라고 확언하며 일련의 또다른 정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깃발을 다른 나라에서 들었으며 거기서는 회개하는 사람이 승자였다.
  애보트는 목히상담은 세속적인 정신의학에서 떠다닌다고 결론내렸다.  목회상담은 많은 부분을 세속적인 정신의학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 ; 그것은 목회상담이 다른 정체성을 주장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정신의학을 향하여 표류하며 가고 있다. 이 두가지 현상은 아담스의 반정신의학을 증명해 주었다. 그는 세속적인 정신의학에 반하여 개인적인 문제와 상담의 일을 다시 정의하면서 관할권에 대한 공격에 착수하였다. 그는 세속적이고 의학적인 정신의학으로 표류하며 가고있는 세속적인 전문가들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사업가)와 기독교적인 전문가들 ( 목회상담가와 복음적인 정신치료의사)의 가면을 폭로하고자 하였다.
  많은 면에서 애보트의 범주는 이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나의 이해와 서술에 도움을 주었다. 예를들면 다른 방식의 주장에 해결되는 다른 방법에 대한 그의 논의는 자극적이고 통찰력이 있었다. 그는 관할권이 내담자의 지반에 따라 나누어지는 해결방식을 설명하면서 “관할권의 재배치가 정신의학에 곧 닥쳐올 것이다. ”고 생각했다.  그는 그러한 상담자의 차이는 다른 그룹의 관할권에 침입한 한 그룹의 결정적인 성공이라고 보았다. “ 보조적인 직업으로부터 나타나며 무지한 의뢰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혁을 추구하는 공격적인 그룹의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이것이  아담스와 그의 성경적인 상담운동의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진 의뢰자의 타입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역사적인 측면이다. 한편으로 가장 최근의 기독교 상담운동-예를들면 the Emmanuel Movement, 정신의학적 목회교육 그리고 목회상담운동- 은 정신의학에 지배되어 있다. 각각의 사례에서 목사는 생활의 문제에 관할권을 최소한 추구해야한다. 그러나 기독적인 상담가는 사례에 대해 부차적인 역할에 그치고 만다.  : 그들은 멀리되어지거나 동화되거나 스스로를 학생의 지위에 놓고 만다. 다른 한편으로 세속적인 상담에 대한 최근의 영향력 있는 기독교의 연구는 - 예를들면 적극적 사고자라는 20C 미국의 상담체계- 낙관적이고 중심문화에 편승되어 있으며 자유주의적인 기독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경적인 상담운동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반정신의학은 1990년대까지 간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론은  낙관적인 자유주의를 기독교적인 형태와 세속적인 영역에서 비난하였다. 역사가의 관점에서 이 운동은 문화, 시간, 장소, 민족 그리고 특정한 이념과 행동을 뛰어넘고있다. 아담스는 개인이 믿는 특정한 지식의 체계를 분명히 하였다. 그는 똑같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인 제도적 구조를 만들었다.


관련된 연구들
         
    상담에 적합한가? :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의  반정신치료운동의 역사는 1차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쓰여진 사상과 사건들은 더 넓은 문화의 보이지 않는 상황하에 존재해왔기에 보충문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급되어진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들과 관계지어질 수 있다. 많은 연구들이 이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매우 도움이 되었다.  이 연구과제가 다양한 학문적 논문들의 하나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원한다.
  의학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데, 특별히 19세기 후반이후로 삶 가운데 있는 ‘의학화’의 문제들에 대한 수많은 토의들과 정신치료의 역사가 그것이다. 만일 인간 몸의 병들이 문화적 메시지들의 흔적을 위한 “다루어지지 않은 재료를 제공한다면” 얼마나 더 투명하게 삶의 문제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철학과 가치의 문제들은 은밀하기보다는 뚜렷하게 삶의 영역들에서 나타난다. 지적인 논문들과 치료법 그리고 의학협회들은 인간 조건인 신체적 속박(물리적 압박)에 대하여 대답한다. 우리는 정신치료법이란 넓은 의미로 정의된 인간조건의 심리사회적 억압에 대한 것이라고 비슷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치료 요법은 시대를 초월한 현실 즉 언어장애, 대인관계의 어려움, 의미 추구, 결정하기, 고통에 대한 다양한 심리적 행동 반응, 출산, 진리와 선의 기준에 대한 불확실성, 양심의 문제, 그리고 죄, 악습, 변태적 행위 또는 중독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에 대한 다양한(그리고 강력한) 습관적 행동들 - 이런 것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치료 요법의 역사는 인간 상태의 도덕적 사건을 개선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들의 역사인 것이다.
    반정신치료의학은 또한 우리 이야기의 틀을 이루고 있다. 비평주의자들의 다양한 연구는 포콜트, 고프만, 짜즈처럼 제도적 정신치료요법의 선구적 개척 비평들을 총괄적으로 일깨우도록 했다. 규범성과 영원성을 주장함에 있어서 정신치료법의 시도들은 여러 다른 이유들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공격 받아왔다. 어떤 혁명론자들은 광범위한 정치적 제안들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짜쯔는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적 협의 사항들을 이행하는데 있어서 강제성을 띠는 단체들의 해체를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스쿨과 같은 이들이 있는데-다른 사회적 영향력을 겨냥하면서 다른 분석에 기초한 같은 제안을 했다. 또 다른 비평가들은 혁명가라기 보다는 개혁가에 가까운 의도를 가지고 고찰했다. 모우러는 도덕적 행위모델에 찬성하며 두드러진 정신의학 치료법과 설명들을 바꾸어 놓기를 원했다. 쇼월터는 여권주의자의 시각으로 민감하게 정신치료법을 추구했다. 또 다른 온건개혁자들은 전문적인 정치와 공공연하게 강조된 것들의 완화를 주장했다. 예를 들면 제랄드 그로브는 정신치료란 우리 사회의 가장 힘없는 구성원들을 향한 사회적 동정의 행위로써 돌봄과 보호의 역할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많은 반정신치료법들처럼 성경적 상담 운동은 1960년대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한 어떤 기록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최근까지 보수적인 개신교의 하위문화수준에도 보이지 않는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학문적으로 등한시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문화적 분리주의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아담스는 사고와 실천이 병행하도록 하는 체계를 이룬 한 학파의 창립자로서 개혁가 또는 혁명가의 다른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장 값진 성취는 -내가 언급했던 것들처럼- 몇몇 환자들이 현대 미국문화의 정신건강설에 관한 그의 대안들이 제도화되도록 발전시키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스의 성취와 그와 보수적 프로테스탄트심리학자들 사이에 있는 작은 분쟁들은 좀더 넓은 문화를 볼 수 없게 했다.
   분리주의자의 한 구성원으로서, 아담스의 사회적 이상은 다른 반정신치료학자들과는 매우 달랐다. 그는 그의 주의력을 오직 지역 교회와 교단소속의 학교와 신학교들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들은 정신치료에 대안을 제공하고자 하기 때문이었다. 공적인 정치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그는 잘 정의되어진 조직적인 문제들로 정신치료법의 합리적인 범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것에다 정신치료 병원에 대한 합리화를 첨가시켰다. 그들은 보호하고 훈육하는 사회적 영향력은 가지고 봉사할지도 모른다. 행동하는 자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 또는 자유를 제한하는 영향력으로서의 정신치료병원에 직면하는 된다.  아담스가 제안한 사회적 협의들은 자유주의-짜쯔, 로트만, 쇼월터처럼-라기보다는 모우러처럼 보수적이다. 그는 사람들을 자발적 행동을 위한 자유를 필요로 하는 자들로 보고 사회적 속박의 강압적 기계주의의 노예로서 사람들을 보지 않았다. 그는 책임성 있는 행동을 하기위한 자유를 필요로 하는 죄의 노예로서 사람을 보았다. 나의 글이 추려낸 논평임에도 아담스에게 거의 일반적인 사회적 이상이 언급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보기 드물게 반정신치료학자들 중에 그의 잘 갖춰진 고객들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나는 19세기와 20세기동안 미국에서 활기를 띄었던 양자택일적인 의학과 과학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았다. 이 작업의 주제는 나의 논문의 뼈대를 이루는데 도움과 엄청난 평행선을 -그리고 대조를-  제공했다. 성경적 상담은 정신치료문화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우주인처럼 분명하게 정상이 아닌 것이었다. 그것은 특권을 박탈당한 의학치료법들의 주제들을 재생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종교적인 관심들과 선택적 정신치료법사이의 연계된 주제들은 분명하게 내 이야기에 나타나  고 있다.   ‘nouthetic' 상담의 역사는 로날드 넘버즈의 창조자들에서 보충과 반대의 사례를 보이고 있다.
  대안적인 의학에 대한 연구는 진단과 처치에 문화적인 의미를 첨가하였다. 대안의 체계는 그들의 관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 그들은 의학적인 철학의 세계관이 명백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체적인 고통이나 역기능보다 더 극적일지라도 생활의 문제는 그들과 그들의 주위의 사람들의 관점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삶에 대한 의학적인 처치와 도덕적인 다룸은 주도권의 싸움이다.
  성경적인 상담은 최근에 의학적인 처치에 맡겨두었던 행동의 문제들을 다시 다루고자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의학이 하는 치료를 하고자 한다. 이 역사의 소주제는 의학적으로 잘 훈련된 nouthetic 상담가의 정신신체의학과 생활양식의 질병에대한 광범위한 서술이 될 것이다. 의학적인 내용이  Journal of Pastoral Practice(목회의 실제)의 1/5을 차지하며 대식하는 습관에 (거식증 혹은 항상 배고픔을 느낌) 대하 효과를 이야기 한다. ; 불면증, 성 도착 ; 담배, 술 그리고 마약 ; 걱정과 분노, 등등. 그 주제들은 신체적인 문제에 대해한 도덕적으로 처치할 수 있는 것과 병, 고통, 무책임, 생리불순, 그리고 노화 등과 같이  도덕을 사용할 수 없는 주제들도 포함하고 있다.       
    많은 다른 대안적인 철학과 실천처럼 대중적인 흐름이 강하게 성경적인 상담우동에 있었다. 아담스는 그의 책에서 “능히 다른 사람을 권할 수 있는 ” 것처럼 누구나 생활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저의 하며 하나님의 전문가인 잘 훈련된 목사들과 개신교의 만인 제사장설 사이의 긴장을 서술하였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그 자신의 치료나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을 위한 돌봄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와 기술을 제공하는 상대적으로 비전문화된 지식과 치료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성경적인 상담운동은 역사가들에 의해 연구된 대다수의 다른 대안적인 치료와는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영적 심리치료- the Emmanuel Movement, Christian Science, 그리고 spiritual psychotherapies (영적 정신치료) -와는 반대로 성경적인 상담은 감정과 행동을 치유의 직접적인 목표로 추수하지 않는다. 아담스는 치유를 단지 그것이 생활의 문제에 대한 상징으로 보았고 그 상징은 인간의 도덕성을 의학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그 생동성을 잃었다고 주장하였다.  아담스는 생활의 문제를 역기능으로 진단하지 않았고 치료로 상담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그뒤에 상담하며 믿고 행동할 수 있는 생각의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담스는 비신화적이고 객관적이였다. : “나는 신화의 뼈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죄인의 믿음과 태도, 행동에 대해서 말할때에도 - 그는 거의 모든 책의 서두에 이것을 반복햇다. - 성령은 삼위일체중의 하나의 인격으로서 의무를 인식하고 행동하며 새롭게하는 보조자를 의미했다. 마찬가지로 아담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객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기도는 특별한 목표를 위해 집중된 것을 의미했다.
  위에서 앤드류 애보트에 대해 논의할 때 언급하였듯이 histories of the professions (직업의 역사)에는 성경적인 상담에 관한 이야기가 다루어져 있다. 목사는 고전적인 직업의 하나로 현대에서의 그들의 낮은 위치는 되풀이되어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에 대한 목사들의 지적이고 학문적인 공격은 유의할만하다.
  Histories of psatoral care (목회적 돌봄의 역사) 역시 이 연구의 틀이 되고 있다. 예를들면 호필드는 18c부터 1960년대까지의 목회적 돌봄의 발달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그의 주요한 주제는 구원에 대한 신학적인 개념이 “자아실현”에서 인류학적인 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호횔드는 이라한 논평으로 그의 연구를 마치고 있다. : “ 나의 연구는 1960년대 말의 그것의 결론에까지 다룬다. 나는 그 십년의 결말이 하나의 전환점을 기록할 것에 대해 논의 할 것이다. ” 목회적 돌봄과 상담에 대한 연구는 거의 두세기동안 자유주의의 물결에 떠다녔다. 그러나 1960년대말  보수적인 성향이 대두되었다. : 자유주의적인 목회상담가에 의한 신학적인 비평으로부터 복음적인 심리치료운동과 아담스의 성경적인 상담운동으로. 20세기의  목회상담은 일반적으로 지배적인 범주를 기독교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1970년이후  신학적인 자유주의나 보수주의는 똑같이 더 엄격한 믿음의 개념 안에서 상담실제의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미국개신교의 보수주의에 대한 급속히 증가한 많은 연구는 나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는 널리 알려져 풍미했다.  기독교 그룹에 대한 표현의 정확성은 얻기 어려웠다. 기독교 보수주의를 정의하려는  많은 연구들이 최근에 증가하였다.  보수적인, 복음적인, 개혁적인, 분리적인, 근본주의의 그리고 성경을 믿는 등의 형용사는 외연적이고 내연적인 의미를 표현했다. 나는 이 논문의 전 영역에서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정의하기위해 이 연구의 소주제로 다룰 것이다. : Copetent to Counsel? (상담에 적합한가?) :  The History of a Conservative Protestant Anti-psychiatry
  나는 위에서 제이 아담스를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했다. : 보수적인 개신교, 칼빈주의자, 장로교인, 개혁파. 여기에 다른 이름들도 첨가될 수 잇다. 어떤 용어들은 상대적으로 세밀하여 일반 독자들에게는 모호하다. : 구 프린스턴 신학교의 학자적적인  칼빈주의자, 구식 장로교인,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의 전제된 변증학.  다른 용어들은 세밀하지 않지만 대중적이다. : 복음적인, 근본주의자, 분리주의자, 성경을 믿는. 이 각각의 용어들은 아담스의 신학적인 ,교회적인 그리고 사회학적인 위치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을 돕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 중에 많은 것은 불행하게도 독자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의미의 화물이 되었다.
  아담스에 대해서는 그의 신학적인 작업에 대한 용어로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쉽다. 그는 스스로 개혁 신학적인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다.   아담스의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가정은 그의 상담체계의 이론과 실제에 배어있다.  칼빈주의의 5가지 요점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가에 대한 그의 관점을 서술한다.  아담스는 또한 일반적인 칼빈주의자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 예를들면 믿음의 아이들은 언약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 ; 세례의 표시는 잠기는 것이 아니라 부어지고 뿌려지는 것이다. ; 교회행정의 적당한 형태는 주교나 회중에 의해서보다 장로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 세계에 실현시키는 것이다. -후천년설이나 전천년설처럼 미래에 일어나기보다. 인식론과 변증학은 실용주의나 증거주의의 방법이 아니라 칼빈주의 신학자 코넬리우스 반 틸의 방법처럼 전제되어야 한다.
   Adams의 교회적인 연합은 현대주의자와 근본주의자의 논쟁동안에 1930년대에 북쪽 장로교회로부터 갈라진 작은 보수적인 장로교회안에서 이루어졌다. 실천 신학의 교수로서 그의 학문적인 활동은 그 같은 논쟁으로 프린스턴 신학교로부터 떨어져나왔지만 장로교의 형태를 유지한 웨스트민스터 신학학교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Adams의 교회적인 위치를  정하는 것은 그가 가진 광범위한 영향력으로  복잡하다.  그는 보수적인 교파의 넓은 범위에서 반응자들을 찾았다 : 여러 장로교회파들; 네덜란드 Christian Reformed ; 근본주의자와 독립적 침례교인들; 그리고 더 온건한 카리스마파 신자들과 오순절교회들 ; 도심지 저소득층 지역의 흑인 독립 교회들; 형제 교회들; mennonites ; 주류교단에서 보수적인 거듭남운동에서 포함된 감독교회와 회중교회들; 그리고 심지어 가끔 거듭난 가톨릭교도. 그는 또한 같은 교파 안에서 반대자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보수적인 개신교이 현상에 대한 역사상 해석들은 Adams의 nouthetic 카운슬링의 역사의 많은 주제와 소주제를 밝게 설명한다. 이 운동은 개혁주의 전통과 근본주의자 전통 모두의 지적인 특징과 실제의 특징을 결합시키면서 혼합되었다. 그것은 개혁주의 내부에서 일어났으나 근본주의자 청중들을 넓게 받아들였다.  Adams는  온건한 근본주의자들에게 그를 받아들일 만하게 하였던 특정한 근본주의 경향들과 개혁주의의 특성들을 겸하고 있었다. Adams를 수용했던 이 온건한 근본주의자들은 전통적인 특징을 더 강조하는 않는 것에 대하여 많은 호전적인 근본주의자에 의해서 자주 비평되었다 : 전천년간 종말론, 유아세례, 교파 분리주의, 순간적인 성화, 킹제임스버전에 한한 성경사용, 그리고 성경본문증거주의.  온건한 사람들은 현재하는 천년왕국설,  유아세례, 점진적인 성화를 가르치고 개혁성경에 대한 학문적인 탐구를 수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Adams 또한 전통적인 근본주의의 주제를 강조하였다 : 성서의 권위와 관점 ;  Christian과 세상사람들과의 생각의 정반대 ; 상대적으로 신속한 진행을 약속한 복잡하지 않은 카운슬링 방법 ; 숙고하거나 학문적인 관심보다 활동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요구 ; 비지배적인 방법의 제기 ;  폭넓은 Christian 카운슬링 공동체와 문화 모두로부터 분리 ; 학문적인 세밀한 구별보다는 오히려 화려한 표현 능력과 대중설교를 강조하였던 의사소통 스타일.  Noll의  " fundamentalist Manichaeism "은- 빛의 그리스도인의 힘과 어둠의 악마의 힘 사이의 전쟁터인 세상을 건설하는 - 아담스의 추종자들에게서 때로 계속되지 않았던 - 개혁주의의 소주제와 함께 아담스에게서 세분화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작은 연구는 자연스럽게 역사적 연구의 가장 큰 것중의 하나에 끼워진다 : 서구의 세속화, 더 많은 분석적 연구가  20세기의 학문을 점유한 것에 대한 서술.  성경적인 카운슬링 운동은 문화의 접촉점으로 그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향에 대해서 반대한  주장들이 어느 정도 성공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미래 역사가의 일이다.  그것은 이 시점의 역사에 반동적인 소용돌이거나 또는 아마 상류로 향한 작은 잔물결로 간주될 수 있다.  재논의의 움직임, 반동적인 후퇴, 조화, 재정립, 연합 ,그리고 적극적인 발표는 일반적으로 현대성에 대한 교회의 반동적인 주제이었다.  방어, 비행, 굴복, 예약, 그리고 위반의 요소들은  뒤따른 nouthetic 카운슬링의 이야기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는 이 연구가 이 모든 것에 공헌하기를 바란다.  비록 나의 연구가 작고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질지라도, 그것은 또한  역사가들의 다른 공동체에서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  이 연구는 의학과 대체의학, 반정신의학 그리고 전문적인 직업의 역사를 다룬다.; 그리고 목회적 돌봄과 보수적인 개신교의 역사에 관하여 다룬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세속화와 재신성화의 역사들에 관하여 다룬다.

The historian's stance (역사가의 자세).

   어떻게 내가 기술적인 것과 설명적인 것 그리고 평가하는 것 사이에 나의 관심과 목적을 배치할 수 있을까?  나는 서술하는 역사가의 역할에 서려고 노력하였다.
이 연구는 이전에 미개척된 땅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의 중요한 목적은 서술하는 것이다. 들은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 있고 설명한 곳이 있다.  이것은 의학, 정신의학, 심리학 그리고 기독교에 대하여 동시대에 다루었다. 나는 1차 자료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서술적이고 지적인 기초적인 사실을 정리할고 노력하였다.
   나는 신중하게 설명할 것이다.  이것에 대한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나의 주제인 현대의 여전히 빨리 발전하고 있는 운동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임시적일 수 있다.  전문직 영역의 전쟁으로 표현하면서 때때로 나는 최전선 가까이에 떨어진 종군 기자처럼 느끼었다. 사건은 나의 주시전에 소용돌이쳤다. 그러나, 원인과 중요성을 조사하는 것은 역사적인 시간을 많이 요구한다. 두번째, 나는 역사인과관계에 기여한 많은 군대들의 무게를 결정해야 할때는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한다.  나는 나의 연구에서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확신한다 ; 나는 그것이 일어났던 이유에 대해서는 거의 확신하지 않는다.
    Nouthetic 상담은  1965년의 여름동안에 그것의 창설자의 생각과 실제속

필독서1
필독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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