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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상담훈련법] <성경인물에 대한 성경적 상담모델 연구>- 요나

  biblical analysis.hwp 41.5K 1 10년전
<성경인물에 대한 성경적 상담모델 연구>

“요나”
1. Heat
; 그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명령은 도저히 그 자신이 행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다.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은 그 자신에게 견딜 수 없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이는 것이었다. 그 태양은 자신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와는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었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고 따를 수 없는 것이었다. 요나에게 ‘니느웨’란 나라는 자신의 민족과 철천지 원수였고 그들이 멸망하기만을 바랐던 나라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라고 명하셨다. 그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케하시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가 가서 회개하라고 외친다 하더라도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요나를 배척하고 거부할 지도 모른다. 그것은 차라리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게 되면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니느웨 사람들이 정말 회개하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될까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해도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

요나의 마음 속에 일어나고 있는 갈등은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이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면으로 충돌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모든 고민과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괴로움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이냐.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는 자신의 뜻을 포기해야 하고, 자신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버리게 된다. 완전히 반대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요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자신의 순종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원초적으로 하나님이 뜻과 자신의 뜻이 충돌됨을 경험하고 있었다. 비록 그 자신이 선지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이러한 갈등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당면한 뜨거운 햇빛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2. Bad Fruit
; 그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갈등속에서 요나가 선택한 것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도망하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이 선지자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이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을 일단 피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속에서 그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에 그 속에서 나타나는 반응은 우리의 나쁜 열매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평상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요나가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가 이전에도 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이나 치는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도 요나에게 임하셔서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그가 나타낸 반응은 한번도 그 자신이 보인 적이 없었던 반응이었으며, 안타깝게도 하나님께 대해서 불순종하는 것이었다.

요나의 악한 열매 속에는 다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악한 열매는 오직 하나님과 그 자신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가 가만히 있다가 욥바로 내려 갔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왜 다시스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전혀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혼자서 행하고 있다. 악한 열매를 맺고 있을 때에 그는 처절하게 혼자였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과의 갈등 속에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은 그가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오른 뒤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 모습 속에서 나타난다. 그는 누구와도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악화와 그로 인한 피난의 모습은 그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닫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직 혼자서 그 모든 죄악으로의 길로 행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요나의 마음에 도움을 줄 수 없었고 그가 하나님을 떠나 멀리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3. Bad Root
; 그가 기대하거나 요구하거나 갈망하거나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요나가 보여주는 다시스로의 도망이라는 악한 열매 속에서 그가 정말로 기대하거나 요구하거나 갈망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그분의 신실하신 명령을 받았지만 그렇게 황망히 도망가는 모습 속에서 지금까지 그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일을 해왔던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가 다시스로 도망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기 때문일까? 만약 하나님께서 그가 원하는 곳에 가라고 하셨다면 그는 그렇게 도망가지는 않았을까? 하나님의 명령이 늘 그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셨으면 정말 그의 삶은 행복했을까?

요나의 마음 속에 있었던 악한 뿌리는 전적인 헌신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에게는 보내주시는 곳에 가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뜻에 맞는 곳에 가겠다는 개인적인 의지가 더 강했다.
어쩌면 요나는 왜 많고 많은 곳에서 왜 하필 니느웨냐고 하나님께 물었을지 모른다. 또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원망했을 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흡족하게 일할 수 있는 곳에서 보람차게 일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선지자로 대접을 받는데 왜 자신은 유독 가기 싫은 니느웨로 보내시며 그곳에 억지로 가게 하시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을 야속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요나에게 육체의 고생은 두렵지 않았다. 회개하라는 멧세지를 전파하는 것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그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자신있게 전할 수 있는 확신이 넘쳐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심에 대한 충만한 신뢰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꿈으로 혹은 몽조로 나타나시지 않았다. 그에게는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나셨다. 아마 기도중에 나타나셨을 것이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으로도 요나는 충분히 하나님의 종으로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분의 전권을 일임받아 회개를 전한다는 데야 얼마나 담대함으로 충만해 있겠는가?

요나의 문제는 육체적인 것에 있지 않았고, 마음에 있었다. 하나님의 만남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있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었다. 그 모든 마음의 은밀한 것들을 다 숨겨둔 채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마음을 들어 내셨다. 그 은밀한 마음의 불순종을 밖으로 나타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그 마음에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셨을 때, 요나는 마음의 뿌리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고 그분의 눈을 피해 도망갔다. 이일은 하나님께서 요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자신의 고집과 뜻을 나타내보이신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요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헌신되지 못한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말았다.


4. Reap
; 그 결과는 무엇인가?

요나는 하나님의 눈을 피해 멀리 달아나기 위해 욥바 항구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그 배를 타게 되었다. 요나의 목적은 좀더 멀리 그리고 한적한 곳으로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하나님께서도 자신에게 주셨던 명령을 거두어 가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은 피하고 보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시스로 가는 배는 순조롭지 못했다.
배는 큰 풍랑을 만나 거의 파선될 상태에 이르렀다.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통하였고 괴로움을 겪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였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물건을 바다에 던져 배의 무게를 줄이려고 하였다. 그 손실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이러한 고통을 당하였는가?

그 배에는 바로 요나가 타고 있었다.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도망자요 하나님께서 좇아오시는 죄인이었다. 그를 잡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애매히 고생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 자신의 죄는 아니었지만, 함께 있는 자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수아 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비참한 패배를 당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 패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당연히 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죄인이 있었다. 그 죄인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전체가 슬픔과 고통과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나도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괴로움을 안겨다 주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함께 있던 사람들이 받은 물질적인 손해와 정신적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났는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요나 자신이 책임이 있던 만큼 그 자신이 담당해야할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잠든 요나를 깨워 지금까지 되어지고 있는 환난에 대해서 말하였을 때 요나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피해 도망쳐 온 일로 이러한 고통이 임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이 모든 재앙이 누구에게로 비롯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을 때, 요나가 그 제비에 뽑힘으로서 모든 일은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죄를 짓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그 책임은 오직 죽음으로서만 갚을 수 있었다.
요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욘 1:12)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큰 물고기가 자신을 구해낼 것을 알고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은 그때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아무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하지는 못했다. 요나가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져야 한다고 했던 것은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분노가 풀리고 사람들에 대한 애매한 고생이 끝이 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주저하였지만 도저히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할 수 없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는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다시 한번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요나 자신은 바다에 빠지우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을 따랐던 일이 결국 모든 일을 이렇게 끝이 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죽게될 바엔 차라리 하나님의 뜻을 따를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모든 것은 결정나버린 상태였다. 요나는 도저히 살아날 수 없었고, 죽는 길만이 지금까지 지었던 모든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폭풍이 밀어닥치는 바닷 속에 던져졌다. 그의 인생은 거기에서 끝이 나버린 것이다.


5. Sovereign Speaker

요나가 바닷물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고 계시다가 그를 삼키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이미 그 이전부터 요나가 바다에 빠지게 될 것을 알고 계셨고 그를 받아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과 사망의 바닷물에 빠지게 되었지만, 생명과 구원의 물고기 뱃속으로 인도되었다. 그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죽게 된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거의 죽게된 인생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사 구원하시는 모습은 자주 발견된다. 자살을 하려고 하거나 삶을 포기하고 절망가운데 빠져 있을 때에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은 요나에게 큰 물고기를 예비해 주심같이 시기에 적절하게 구원받을 경로를 열어 주신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요나가 그렇게 죽게 된 이유는 너무나 분명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소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애에 인애를 더하셔서 그를 구원해 내셨고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머무르게 하시면서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셨다.

요나서 2장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흘린 눈물과 행한 회개와 깨달은 하나님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그 흉용한 파도와 검은 바다를 두려워하였다. 그 물은 그의 신체를 잠기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도 깊이 파묻어 버렸다. 정말로 그는 완전히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회개의 간구와 구원의 요청을 드렸고 그 기도는 들으심을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죄많은 그에게 응답하셨고 그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 그의 소원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
다시 한번 주님께 돌아오기를 소원하는 그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은 죄를 죄로 갚으시는 분이 아니었으며 불충한 종을 내치는 무정한 주인이 아니었다. 그분은 인자하시며 사랑이 풍성하시며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하게 되는 하나님의 뜻을 최후에는 완전히 이루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셨다.


6. Good Root
; 어떤 확신이나 소원이 그를 지배해야 하는가?

요나는 처음에 하나님은 모든 죄많은 자를 처벌하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니느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용서받아서는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많은 타격을 입혔으며 큰 슬픔을 안겨다 주었다. 그들은 철천지 원수였으며 반드시 멸망시켜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셨다. 그 목적을 위해 요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요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주시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하나님께 대해서 반감을 갖고 불순종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게 되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에 그는 자기 자신이 니느웨 사람들과 동일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죄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때에 하나님이 자신을 긍휼히 여기심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참으로 그에게 넘치는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니느웨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요나 자신을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 사랑앞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던 자신의 잘못을 처절하게 뉘우치게 되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히 임하게 되었다. 이제 그 사랑으로 긍휼함으로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수행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나 자신의 얄팍한 지혜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깊고 오묘한 것임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충만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이 그 자신을 가득 채웠다.
요나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요 종이요 부르심을 받은 사자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리고 그러한 선지자와 종과 사자에게는 더 많은 순종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회개와 간구의 시간 속에서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욘1:9)
변화된 마음과 충성스러운 결심을 품고서 요나는 다시 육지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그가 가졌던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구원의 기쁨을 표현하는 장(場)이었다.


7. Good Fruit
; 현재의 상황에서 지금 그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실행하라.

요나가 있었던 물고기 뱃속은 하나님 앞에서 그가 회개하고 간구하고 깨달으며 결심하는 장소였고, 물고기가 뱉어 놓은 육지는 그 깨달음과 결심을 실천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물고기에게서 나와 발을 딛은 장소가 니느웨건 그 어디건 상관이 없었다. 니느웨라도 좋고 아니라도 별 차이는 없었다. 요나는 당연히 자기 발로 니느웨로 찾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곳이 그가 있던 곳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하더라도 요나는 악착같이 그곳에 이르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니느웨로 가는 일은 그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니느웨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다시스로 도망가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미 다시스로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가려고 했던 그가 다시 한번 도망갈 수 있겠는가? 그에게 헌신과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니느웨 말고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요나는 다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고 곧장 자신의 결심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니느웨로 갔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붙들고 있던 자기 자신의 뜻을 따르던 삶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서 하나님 앞에 승복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는 선지자였다.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있다. 그리고 나타나심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다. 여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오직 책임감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지고 책임감있는 헌신을 하시도록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명령에 불복하고 무책임한 생활을 살고 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니느웨로의 삶이 아니라 다시스로 떠나가는 삶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이 깨닫는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자처하는 삶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소원과 기호대로 행하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자녀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다시 두 번째 임하셔서 말씀을 해주신 부분은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욘 3:1,2)
이 말씀은 요나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으로 선지자의 직무를 임명해주시는 의미를 갖는다. 이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요나였지만, 하나님께서 재차 그 부르심을 해주심으로써 그는 이번엔 온전한 순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도망가고 불순종하였지만, 고통스러운 경험과 큰 깨달음을 통해서 온전한 순종을 보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요나에게 다시 한번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요나는 니느웨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전의 나약하고 유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여 도망가던 모습도 아니었다.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의 요청을 선포하는 선지자였다. 마침내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던 일을 온전히 수행하였다. 그 일을 행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참된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실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서 겉으로 순종하는 척만 했더라면 그의 모습은 온전한 하나님의 선지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렇게 속과 겉이 다른 선지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된 선지자로서 주님의 심판과 회개에의 부르심을 선포하였다.



8. Reap
; 그 결과는 무엇인가?

요나 한 사람의 회개와 돌이킴, 그리고 헌신으로 인해 니느웨에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었을 때에 니느웨에는 거대한 회개운동이 전개되었다. 왕은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위에 앉았고, 니느웨 전역에 조서가 내려져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께 부르짖게 되었다. 또한 각기 악한 길을 떠나고 지금까지의 강포에서 떠나도록 명령받았다. 이러한 회개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긍휼히 여기사 내리시기로 한 진노를 면하게 되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회개의 운동은 즉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자극하였고 마침내 내리려고 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이 큰 구원은 모두 요나의 순종과 헌신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요나가 처음에 니느웨에 가기를 거부하였을 때, 다른 사람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그보다 더 헌신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그 이유는 왜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의 명령을 받기를 거부하는 모세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택하지 않으셨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모세 이외에 더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모세는 주님의 계획과 그 계획을 이루는 일에 가장 적합한 자였다. 오직 부족한 것이 있다면 순종함이었던 것뿐이다.
요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요나는 니느웨 구원에 아주 알맞는 주의 종이었다. 다만 그에게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부족한 자를 들어 세우신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메꾸어서 사용하신다. 완전한 자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모자람을 채우시면서 사용하시는 것이다. 요나의 변화와 성숙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예가 되었다. 그래서 이 요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계시를 말씀하실 때 인용하시기도 하였다(마 12:39).

요나서 4장에 나오는 마지막의 요나의 갈등은 이전의 다시스로의 길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이 결과는 요나의 불충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에게 친절히 사물을 통해서 설명하여 주시는 것과 니느웨에 예고되었던 무서운 재앙, 그리고 그 재앙을 중단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보여준다.
요나는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 여전히 그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마땅하게 생각되지가 않았다. 비록 그 자신의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알았지만 니느웨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그 다음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려주시는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와 함께 간다. 공의가 있기에 사랑이 있다. 하나님께서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 이만여 명과 많은 육축을 아끼신다고 하시는 것은 원래는 그 모든 것을 박넝쿨 말리시듯이 다 없애버리실려고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재앙이 멈추어졌으니 이 어찌 놀라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니겠는가? 요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설명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는 온전한 선지자로 나아가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행착오와 어려움들은 결국 하나님을 알게 하는 도구요 방법이었던 것이다.


<결론>

성경인물을 통해 세워지는 성경적 상담 모델은 연단과 훈련을 통해 성숙되는 그리스도인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회개와 순종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더욱 친밀한 주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경적 상담은 이와 같은 목적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어려움의 극복을 통해 더욱 하나님과 친밀하여 지는 것, 그분을 더욱 아는 것이 성경적 상담 모델인 것이다. 이러한 체계를 통해 어떠한 사람을 대입해도 올바른 상담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욱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이 상담모델이 오직 주의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는 데에 더욱 효과적으로 쓰여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필독서1
필독서2


1.뇌구조 상담챠트

2.신체문제 상담챠트

3.정신구조 상담챠트

4.마음이해 상담챠트

5.변화과정 상담챠트


아리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05-27 (목) 14:57 3년전
요나서가 성경적 상담의 모델이 될수있네요. 자꾸 읽으면서 나의 삶 속에서 육신이  계획과 능력, 희생과 용서 ,
 동행과 충만의 은혜는 풍성하게 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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