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진단질문
성격적 자질:겸손
1. 정확한 자기평가
1. 나는 약점, 한계, 실수들을 얼마나 기꺼이 인정하려 하고, 또 인정할 수 있는가?
;약점들을 인정하려고는 하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지적받는 것을 싫어한다.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은 스스로 깨닫는 부분에 한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개방되거나 알려지는 것은 거부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타인에게 지적받는 약점, 실수 등에 대해서 쉽게 인정하기보다는 거부하는 편이다.
2.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강한 부분이어야 하는 개방성을 얼마나 잘 본받는가?
-하나님과의 교제관계에서의 개방성
;스스로는 많이 개방한다고는 말하지만 다 내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은밀한 비밀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경건생활을 어떻게 하며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서 많이 말하는 편은 아니다. 또한 자칫하면 자랑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삼가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개방성
;사람들을 편하게 만나는 편은 아니다. 용무와 일에 관계해서만 만나고 있다. 편하게 만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마음을 완전히 개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래 왔고, 그래서 그런지 친구도 별로 없고, 고민을 나누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다. 진정한 고민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편이다. 많은 사람과 안면이 있지만, 진실한 교제를 나누지는 못한다.
3.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사역임을 얼마나 잘 보여주고 있는가?
;늘 말한다. 나는 더 변해야 한다고, 또 변할 수 있다고. 진행중이라는 것은 아직도 변화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 스스로도 현재의 모습이 완성이라고 한다면 끔찍할 것 같다.
얼마나 배우는 데에 열려 있는가? - 심지어 내가 상담하는 내담자에게서도?
;배우려고는 한다. 그러나 정말 배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담자에게서 배울 점은 많다.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의 삶에서 기억하고 적용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혹 누군가 다른 사람의 예를 들면서 나의 실수를 지적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경우라고 거부한다.
4. 나는 어느 정도로 폐쇄적이고, 방어적이며, 자기 보호적이고, 극단적으로 예민하여 나의 실수와 약점을 인정할 수 없는가?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최소한 쉽게 열지는 않는 것 같다. 가볍게 인정하지도 못한다. 어쩔 때에는 그러한 지적이 타인에게서 올 때에는 강하게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완전히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평가일 경우이고, 그럴 땐 심하게 자책한다. (그럴 때 흔히 쓰는 말, “발등을 찍고 싶다!”)
5. 나는 얼마나 나의 한계, 실수, 약점에 대하여 솔직한가 아니면 거기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가?
;솔직할 수 있는 경우는 그것을 인정했을 때 오는 반응에 대해 걱정이 없을 때이다. 그렇지 않고 그 반응이 치명적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주저하게 된다. 허우적거리지는 않는다. 조절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그랬던 것 같다.
6. 나는 병적이거나 노출증적으로 고백하는 경향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고백하지 않으려고 한다.
7. 나는 성경의 범위안에서 나의 약점에 대하여 얼마나 정직한가?
-하나님의 능력보다도 나의 약점에 대하여 얼마나 정직한가?
;약점에 대해서 정직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면 한다.
-나는 결코 변화하지 않으면서 계속적으로 고백만 하지 않는가?
;때론 정말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고백할 때에는 변화하려고 결심한다. 하지만, 실제로 동일한 상황이 닥치면 또다시 변화하지 못한 예전의 모습을 보이고 만다. 결국 고백만 하고 변화는 못하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변화하리라고 소망을 갖는다.
-나의 고백이 내담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증진시킬 수 있는가?
;나의 고백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단순히 잘한 것만을 고백한다면, 자랑이 될 지 모른다. 또한 잘못한 것만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지 모른다. 내담자에게 필요한 고백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증진시킬 것이다.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판단은 좀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2. 영적 유연성
1.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은혜롭게 창의적으로 다룰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
;스스로에 대해 갖는 이러한 마음은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감은 꼭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할 때에 나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러 상담 경험을 통해 확신을 얻었다.
2.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가? 얼마나 잘 그들의 은사와 생각을 존중하며 일하는가?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한다. 그들의 사역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은사와 생각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일 뿐아니라,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형편에 맞도록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역사하심은 당연한 것이리라.
3. 나는 삶의 세밀한 각 부분에 대해 하나님의 통제하심에 대한 확신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는가?
;자주 말하는 것이 있다. 잘되면 하나님께 영광, 못되면 하나님의 뜻. 못되면 내 탓일 수 있겠지만, 그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
4. 나는 얼마나 기꺼이 모험, 실험, 재평가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는 모험을 좋아한다. 실험하는 것도 즐겁다. 실패가 두렵지 않다. 실패는 고통스러운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변화를 거둘 수 있다면 언제나 새로운 시도는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땐 너무 지나쳐서 탈이기도 하다.
5. 나는 얼마나 나만의 방식을 고집하는가? - 강제적, 혹은 조작적으로
;고집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과 계획을 강제하기도 한다. 특히 내가 지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러한 것은 강하게 나타난다. 강제적이 되는 경우는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얼굴을 붉히는 반응으로 나타난다. 조작적이 되는 경우는 일단 참고 다음에 다시 시도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열성 때문이다.
6. 나는 얼마나 통제 상태에 있을 필요를 느끼는가? - 주체적 활동과 두려움 사이에서?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두려움을 느낀다. 통제 상태란 뜻대로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 때, 되도록 통제상태에 있으면 좋겠지만 아니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통제 상태에 집착적이지는 않다.
7. 나는 어느 정도로 도움이나 비판을 받아들이는데 열려 있는가? 나는 얼마나 자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법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배우는데 개방적인가?
:도움이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주변의 도움에 대해서도 쉽게 받지 못하고 비판은 더 더욱이나 힘들다. 내 스스로 배우는 데 있어서도 그렇게 개방적이지 못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는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고집이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사실 또한 오히려 부담스럽고 귀찮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한 사실을 배우고 싶을 때에는 어련히 알아서 배우지 않겠는가? 이것저것 너무 많이 배우는 것은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한다.
8. 나는 지나치게 유연성이 많아서 나의 내담자가 나의 상담방향에 대해 종종 당황해 하는 경향이 없는가?
;지나치게 가지를 많이 뻗어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그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담자가 당황해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그런 일도 없었던 것 같다.
9.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 지나치게 설득되거나 좌우되는가?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늘 신경쓰는 것은 아닌가?
;타인의 의견은 참고할 뿐이다. 결정은 내가 내린다. 하지만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히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을 신경쓰는 것은 커다란 실수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고려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고려하지 말아야 할 일인가...
10. 다른 사람들의 요구나 계획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으로 자랐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자는 것 때문에 내 계획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내 용무를 보러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을 싫어했다. 내 계획이 바뀌는 것 같아서였다.
11. 나의 상담이 내담자를 기쁘게 하려는 욕망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내담자를 돕는 것이 기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부만 하게 될 것이다.
12. 내담자에게 불쾌감, 불편, 혹은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중요한 사실을 주장하는데 얼마나 주저하게 되는가? 나는 성경이 강력히 주장하도록 말하는 곳에서 얼마나 주저하는가?
;미리 주지시키고 감정을 격하게 하지 않도록 예비한다. 그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유익이 되는 지를 설명하면 갑자기 흥분한다거나 괴로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주저하게 되면 핵심에 다가서지 못한다. 의사가 환자의 비명에 두려워한다면 아무런 치료도 못할 것이다.
13. 나는 성경적인 방향감각에 의해 움직이는 것보다는 순간의 어려움에 의해 쉽게 바꾸어지지는 않는가?
;성경적인 방향감각이란 나쁜 것에서 좋은 것, 혼란한 것에서 정돈된 것,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순간의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뒤로 물러가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 경우는 있다. 그것은 내담자의 반응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성격적 자질: 사랑
1. 격려와 소망
1. 나는 누구를 나의 적으로 보는가?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적은 내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자이다. 지금은 그런 사람은 없지만, 과거의 삶을 기억해 보면 그런 사람이 꼭 있었다. 그런 자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인내해야 한다. 용납해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내하는 것도 버거웠다.
2. 나는 어떤 식으로 적에 대한 온유함을 보여줄 수 있는가?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만 온유함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정은 최악의 밀고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최대한의 온유함은 인내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내가 그 사람이었다 해도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며 이해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3. 시험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인내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어려운가?
;고통받고 있는 자를 인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불쌍하기 때문이다. 내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4. 나는 대면해서 권고할 때 은혜와 사랑으로 하는가 아니면 짜증이나 화를 내며 하는가?
;은혜와 사랑으로 한다.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혹은 권고할 것을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짜증내며 할 수 있겠는가? 화를 내게 되는 경우는 권고상황이 아닐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우연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5. 나는 힘들고 곤란한 것들을 사랑으로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말하기를 회피하는가?
;가급적이면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 폭발하면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이 되지는 않는다.
6. 나는 어떤 식으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조급함을 드러내는가?
;흥분한다. 말이 빨라진다. 억지를 부린다. 이런 경우는 내가 확신이 있을 때이다. 내가 확신이 없을 때에는 그냥 말을 끝낸다.
7. 나는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효과적인가? 어떻게 이것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쩔 때 나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정에서나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금새 쉽게 집착하며 열을 내는 모습을 발견한다. 공적인 장소에서만 화평케 하는 자라면 아무래도 마음 자세를 늘 공적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할 것 같다.
8. 나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맹목적으로 낙관적인가?
;밑도 끝도 없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이유와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낙관적이 된다. 하나님이 바로 그 이유와 목적이 되신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과에 있어서 그럴지라도 모든 일의 과정에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애가 아파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낙관하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9. 나는 어떤 이유 때문에 문제에 부딪치기 보다는 축소하거나 무마하려 하는가?
;부딪쳐야 할 문제가 있고 그냥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도저히 모든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못한 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마치 어려운 수학문제는 다음에 푸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할 것이다.
10. 나는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사람들의 자아를 부추기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나는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소망으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보다는 과장된 자기 주장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가?
;가끔 그런 지적을 받는다. 아마 그렇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 반대이던데 나같은 경우는 자꾸만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옷이나 능력이나 상황이나 업적이나 모든 것을 자꾸만 지나치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버릇을 고치려고 특히 주의하고 있다.
11.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평화를 유지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건설적인 갈등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가? 나는 갈등회피자가 되는 것과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것의 차이를 아는가?
;무조건 잠잠한 평화는 이미 그 속에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겉만 평화이지 속은 들끓고 있는 것이다. 건설적인 갈등은 속에 있는 것까지 드러내기 때문에 진정한 가치가 발견된다. 그래서 가끔 일부러 들쑤시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화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속담에 말하는 것처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2. 종의 자세
1.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의 행복보다는 하나님이 도움을 얻도록 나에게 보내어 주신 사람들의 행복에 의해 동기를 부여 받는가?
;내담자들의 성공과 행복은 커다란 기쁨이다. 무엇인가 도움이 되었다는 만족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담자의 끊임없는 동기일 것이다.
2. 나는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통제하거나 또는 조정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들이 처한 자리에서 그들을 만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는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끌어 당기는 것이 아니라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소개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에 마음을 움직이시는 성령님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역할을 만족해 하시리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주님께 맡긴다.
3. 나는 얼마나 개인의 영광, 인간의 찬사 혹은 내 개인적 계획의 성공을 위하여 애쓰는가?
;나의 영광이나 찬사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들은 교만하게 만들고 왜곡되게 만들며 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일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이요 태도라고 생각한다. 단지 계획의 성공은 좀 신경쓰는 것 같다. 아마 그것은 본능적이며 당연한 것이 아닐까?
4. 나는 얼마나 능동적으로 나의 내담자를 섬길 방법을 찾는가?
;목회를 하는 입장에서 내담자는 찾아오는 자들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심방이나 정기적인 상담, 혹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면담을 통해 능동적으로 내담자에게 나아간다.
5. 나는 언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권위, 지위, 지식, 혹은 경험을 상기시키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가?
;의심을 가지고 있을 때, 별로 상담을 내켜하지 않을 때, 권면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할 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6. 나는 얼마나 순간적 필요에 따라 융통성있게 잘 적응할 수 있는가?
;어차피 상담 자체가 시나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융통성은 필수적이다. 크게 구애받는 것이 없기 때문에 융통성을 발휘하는 일은 잘 되는 편이다.
-언제 강권적이고, 반대로 언제 인내하며 민감해야 하는가?
;마치 시소와 같다. 내담자가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가면 올라간다. 같이 내려가거나 같이 올라가거나 하면 상담관계에 어려움이 따른다. 지나치게 늘어지거나 지나치게 흥분하게 된다.
-언제 격려를 하며, 언제 조언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한 마디 말로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각성이 있을 때. 필요로 할 때.
-언제 가르치고, 언제 질문하고, 들어야 하는가?
;가르침을 받고자 할 때에 가르칠 수 있다. 내담자는 어떤 경우에 가르침을 원한다. 질문하는 때는 상담자가 알아야 할 때이거나, 혹은 내담자가 답하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을 때 한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보다 낫다. 듣는 때는 역시 내담자의 자성적 고백이 이어질 때이다. 이럴 때 말을 끊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스스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동행적 관계로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7. 나는 사람의 종이 되는 것과 성경적 사랑의 차이에 대하여 얼마나 분명한가?
;종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사랑은 이끌어 주는 것이며 인도하는 것이다. 둘은 명확히 구별된다. 성경은 적극적인 인도를 말하고 있다.
8. 나는 혼자 서는데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나?
;가장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믿는데, 상담자도 자신이 없다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뿐이다.
9. 나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어렵지 않다. 내담자도 충분히 그것을 인식하리라고 생각한다. 상담자가 항상 예라고만 대답한다면 곧 지겨울 것이다. 상담자는 종이 아니다.
10. 나는 내담자를 새로운 다른 방향들로 이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어렵지 않다. 그것이 본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적 상담의 장점이라고도 생각한다.
11. 성경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을 때 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내담자를 사랑으로 대면하거나 강력히 밀어붙이거나 혹은 지도할 수 있는가?
;설교자로서 목회자로서 이러한 일은 필수적이다. 양들은 주님께 인도되어야만 하고 그 일을 맡은 자가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12. 나는 죄를 ‘죄’라고 부르는 일을 얼마만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는가?
;주저하고 두려워하지만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력한다는 것에서 약간 차이가 있어 보일 지 모르지만, 죄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경적 자질: 성실성
1. 신뢰성
1. 나는 얼마나 성경적 원리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잘 그 원리들을 따라 상담하고 있는가? 나의 상담은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원리적 방향성은 인간에서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그 원리를 따라 상담할 때에 모든 내담자는 그 인간적 문제와 모습과 상황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된다. 나는 줄곧 이러한 일관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문제해결이 상담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문제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가 심판이건 연단이건 간에 말이다.
2. 나는 내담자에게 한 서약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비밀서약에 있어서는 되도록 상담내용을 끝난 뒤에는 잊어버리고자 한다. 사례의 인용경우에는 철저히 본인을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
3. 나의 실수를 정직하게 시인하는가 아니면 변명하는가?
;실수할 수 있음을 늘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실수을 인정한다. 때론 변명도 하는데, 그렇게 변명하는 것은 내 수치심때문이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받아들이든지 아니든지는 상대방의 몫이다.
4. 나는 얼마나 잘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가?
;자기 합리화는 고집부리는 것에 불과하고 곧 들통난다. 솔직히 그럴 때에는 양심에 꺼린다. 곧 용서를 구하고 편한 게 낫다.
5.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실성의 일부임을 인식할 때, 나는 얼마나 내가 한 약속들에 대하여 신중한가?
;은연중에 하게 되는 약속들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것 같다. 기도해 주겠다고 말하고 하지 못하는 것. 연락하겠다고 하지 못하는 것, 한번 찾아 뵙겠다고 하고 못하는 것 등....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주의한다.
6. 나는 얼마나 확신, 자신감을 갖고 두려움없이 진리를 말하는가?
;진리를 말하는 것은 진리를 과연 진리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감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이란 진리를 말할 때 오는 반응이 생각과 다를 때 오는 것이겠지만, 만약 진리가 참된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러한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확신하는 진리는 두려움이 없다.
7. 나는 얼마나 쉽게 어떤 압력을 받으면 진리를 ‘바꾸거나’ 인정받기 위하여 ‘어물어물’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저항하며 거부한다. 진리는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물어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 나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고 그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요구들을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요구하는가?
;설교를 통해서, 상담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이 강조하고 요구한다. 문제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요구하는지이다. 자신이 없다. 가르친 대로 살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든다.
9. 나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지배하지 않으면서 상담자로서의 나의 위치와 이에 따르는 책임을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상담자는 인도하는 것이다. 인도함을 거부할 지라도 바른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것이 상담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늘 그 책임을 인식하며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10. 하나님께서는 나의 적은 인간적인 노력을 도구로 쓰셔서 위대한 일들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가?(딤후 2:21)
;가끔씩은 그 위대한 일이 무엇인가 하는 평가에 대해서 세상적이며 인간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말씀을 통해 깨닫는 것은 그 평가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주님의 평가를 바라보고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리라고 늘 다짐한다.
11. 나는 얼마나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는가?
;무척이나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다. 고집스럽다. 다른 사람들의 요청이나 요구에 굴하는 법이 별로 없다.
12. 나는 얼마나 원칙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짓밟는가?
;사람들을 짓밟는다는 것은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이리라. 원칙은 나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남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리라는 것이다. 때로 나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상처를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지배력과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13. 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격려하며 창의적으로 지도하는가?
;격려하며 지도한다. 잘한 것을 칭찬하고 못한 것은 좀 더 개선되도록 요구한다. 그것은 그 스스로 깨닫고 행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해서이지 내뜻과 판단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14. 나는 얼마나 율법적인가? 나는 얼마나 내가 확신하는 일들에 대해 까다롭게 구는가? 나는 모든 것을 중요시 하는 어떤 경향이 있는가? 내가 듣는 모든 것들에 관하여 말하려는 경향이 있는가?
;율법적이지 않다. 오히려 나는 율법을 폐하고자 한다. 은혜롭게 하기를 원한다. 까다롭게 구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까다롭게 해야 하는 일은 까다롭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자 한다. 모든 것을 중요하게 한다면 너무나 소모적이며 쓸데없는 집착일 것이다. 그래서 오직 중요한 것만 중요시 여긴다. 듣는 모든 것은 오직 듣는 것으로 그치도록 한다. 말하는 것은 오직 생각한 것, 걸러진 것만 내 뜻을 담아서 말한다.
15. 나는 얼마나 분파적이고 논쟁적이며 혹은 대결하기를 좋아하는가?
;대결 성향은 없다. 분파하는 것과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리에 관한 한 싸울 것은 싸워야 한다. 싸우기 싫지만 때로는 싸워야 한다. 그것이 진리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공격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수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2. 훈련
1. 나는 내담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잘 훈련되어 있는가? 나는 시간을 잘 지키고, 잘 준비하며 과제물을 잘 해내는가?
;성실하게 준비하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훈련은 이미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 충분히 훈련되어진 것 같다.
2. 나는 얼마나 잘 내담자와의 관계를 성경적 범주 안에서 유지하고 있는가?(예: 남/여,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의존관계 등에 있어서.)
;끊임없이 내담자의 의미를 되새긴다. 내담자는 도움이 필요한 자이고, 나는 도와주어야 하는 자이다.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한다.
3. 야고보서 3:17-18에 묘사된 것처럼 나는 성경적 지혜를 얼마나 잘 발휘하는가?
;말씀과 기도의 경건생활을 통해 지혜의 그릇을 준비하고 목적의식을 늘 자각함으로써 분란케 하는 자가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이기를 노력한다.
4. 나는 어떤 식으로 내담자를 낙심시키거나 겁먹게 하는가?
;낙심시키거나 겁먹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탄적이다. 근심하게 할 지라도 깨닫는 죄에 대해서이지 깨닫지 못하는 죄에 공포로 사로잡히게 하지 않는다. 모든 근심은 성령 안에서 기쁨과 안식으로 바뀌는 것을 믿는다.
5. 어느 정도로 외적인 훈련이 나의 삶에서 언급되지 않고 인식되지 않은 약점들을 덮어주는 가리개인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잘한다. 늘 누군가 보고 있다는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혼자 있으면 그러한 의식함이 무너질 때도 있지만, 어떤 곳에서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그러한 죄를 의식함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또한 성령님이 도와주신다.
6.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표준으로 삼아 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을 비판하는가?
;그렇지 않다. 자신이 표준이 될 때 다른 사람을 마구잡이로 판단하고 평가하게 되는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스스로를 관조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상대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올바른 회개와 반성과 결심의 길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성격적 자질:영적성숙
1. 개인적 경건
1. 나의 기도생활은 어떠한가?
;습관을 좇아 기도하며 전심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며 기도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타인을 위해서 기도한다.
2. 나는 단지 사역을 위한 준비라기 보다는 개인적 향상을 위한 성경공부에 얼마나 몰두하는가?
;늘 꾸준히 읽어 오는 성경읽기 순서가 있다. 그것은 설교를 위해서나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오직 습관적인 경건생활에 따른 것이다.
3. 나는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시는 것이 계속적으로 필요함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가?
;목회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너무나 필수적이다. 나의 영성과 경건은 교회의 분위기와 성도들에게 미치는 은혜를 좌우한다. 그러나 나의 힘으로 경건함을 갖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늘 경건을 통해 새롭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깨우치시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감사하다.
4. 나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나의 상담이 얼마나 즐거운가?
;즐겁다. 상담을 하다보면 그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그 흔적을 추적하는 일은 즐겁다. 재미있다. 그것을 함께 주목하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만약 그것이 성경적 상담이 아니었다면 지루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를 위한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를 즐겁게 한다.
5. 나는 얼마나 나의 경건함을 자랑하는가? 나는 얼마나 쉽게 나의 경건을 내 삶의 문제를 다루지 않기 위한 도피/변명으로 사용하는가?
;되도록이면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자주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경건의 모습을 가르친다. 경건을 추구하기 때문에 삶의 문제가 야기된다는 것은 경건 자체에 대한 모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문제는 나의 문제고 경건은 그것을 가리거나 덮지 않는다. 나의 문제는 인격적 연약함이고 경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6.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이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사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것이 경건의 진정한 능력이다.
2. 성경적/신학적 지혜
1. 나는 얼마나 현대문화에서 중요한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한 입장들을 개발해 가고 있는가?
;인생의 문제들은 필요에 따라 다르다. 성도들에게 필요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연구하고 개발한다. 하지만, 피부에 닿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리고 큰 관심을 갖지 못한다.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일도 그리고 쉽게 하지 못한다.
2. 나는 얼마나 진리의 균형을 깨뜨리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가?
;고정관념이 진리의 균형을 깨뜨리는가? 고정관념은 변화를 추구하지 못할 뿐이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 격려, 개념의 명료화 및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서 나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핵심적 성경교리들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핵심적 성경교리를 정확하게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설교나 성경공부나 권면이나 상담이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주된 일이기 때문에 잘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4. 성경적 교리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얼마나 모호하고, 잘못 생각하며, 불확실하고, 편파적이며, 혹은 비실제적인가?
;교리에서 볼 때, 나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바르게 생각하고 있으며, 확신하고, 균형적이며, 실제적이다. 교리는 그럴 때에만 전달 될 수 있고 가르쳐 질 수 있으며 유익할 수 있다. 목회에 있어서 필수적인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5. 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신학과, 비그리스도인들의 철학과 얼마나 잘 상호교류할 수 있는가? 나는 이러한 자료들을 성경적으로 얼마나 잘 비평할 수 있는가?
;상호교류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비평하는 일은 목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교수가 해야 하는 일일 것 같다. 성도들에게 목사의 비평은 양자를 잘 알지 못하게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사변적일 말일 뿐이다.
6. 나의 신학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추상적이고 이론적인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또한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 이론적, 사변적인 것은 일반 철학에서나 다루는 것들이다. 목회자는 진리를 혼란스럽지 않게 명확하게 분변하여 사용해야 한다.
7. 나는 얼마나 편협하고, 교리적이고, 호전적이고, 비판적이고,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꼼꼼한가?
;균형이 중요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은 진리를 맡은 자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반면 지나치게 호전적인 것도 나쁠 것이다. 분명하게 해야 할 부분에 분명하고 분명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 분명하지 않게 한다. 상식선 상에서 말이다.
8. 나는 성경적 원리를 개인적 적용과 혼동하는 어떤 경향이 있는가?
;성경적 원리를 지나치게 비약하거나 곡해해서 적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다. 혹시 그럴 염려가 있다면, 그 적용을 다시 말씀에 돌려보면 된다. 말씀에서 왔다면 다시 말씀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원리와 적용은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기능적 자질: 관계형성
1. 온유와 친절
1. 격려
a. 나는 얼마나 소망을 심어 주는데 익숙한가?
;익숙하다. 나 자신이 소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소망을 깨닫게 하고자 한다. 나처럼 말이다.
b. 나는 얼마나 잘 내담자 속에 있는 절망의 징후를 파악하는가?
;절망은 모든 사람의 감정이다. 나 자신도 뼈져린 절망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아니 지금도 순간 순간 느낀다. 인간은 모두 동일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쉽게 깨닫는다.
c. 나는 내담자의 절망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가?
;밝혀낼 수 있다. 스스로의 고백을 통해서도 나타낼 수 있고,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분석적 종합을 통해, 통찰을 통해 발견하여 나타낼 수 있다. 상담의 필수적인 진단적 측면이다.
d. 나는 절망의 특별한 원인을 언급하는 성경적 자료를 찾아내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 스스로 연구를 해야 한다. 많이 성경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때 그 때 찾아내기 위해서 항상 연구해야 한다.
e. 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내담자로 하여금) 하나님, 그의 말씀, 복음의 능력 안에서 소망을 갖게 하는가?
;내가 소망을 갖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소망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보라고 말해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소망을 가졌던 것처럼.
2. 위로
a. 나는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알려주고 모범을 보이는데 얼마나 익숙한가?
;상처받았을 때에는 치료가 필요하다. 수술은 그 다음이다. 먼저 하나님의 용서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 나는 이러한 원리를 생각하며 행동한다.
b. 나는 내담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책임과 그렇지 않은 것을 얼마나 분명하게 구별시켜 제시할 수 있는가?
;헝클어진 책장을 정리해 주는 것처럼 감정과 사명과 소망과 부르심을 정리하다 보면, 내담자에게 분명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책임이 발견된다.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상담하며, 그것을 발견하면 대안을 제시하고 인도한다.
c. 나는 사람들의 죄나 혹은 그러한 사람들을 대하는데 지쳤기 때문에 그들을 무시하는 경향은 없는가?
;그런 경향은 없다. 사람들의 죄성과 연약함은 나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을 깨닫게 해 줄 뿐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그들을 돌보고자 한다. 어쩔 땐 기다린다. 연약함을 용납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서.
3. 촉구
a. 나는 얼마나 내담자의 변화를 위해 실제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상담계획을 세울 수 있다. 실제적인 변화의 과정을 설명해 준다. 시간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설명해 준다. 방법을 제시한다. 알아서 할 수 있다면 자율로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방법을 제시하고 점검한다.
b. 나는 정죄하거나 율법적이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얼마나 잘 지도할 수 있는가?
;이미 율법적인 정죄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음을 고백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회복과 변화와 성장만이 있을 뿐이라고 확신한다.
c. 나는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내담자를 ‘회복’시키기 원하시는 방식을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치료하심과 해결하심을 내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실 부분을 맡기고 의지할 뿐이다.
d. 나는 내담자의 낙심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한가? 얼마나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가?
;반복되는 실패는 큰 침체로 이어지게 만든다. 그럴 때에는 반복적인 위로와 반복적인 권면이 필요하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일지라도 말이다. 늘 그러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e. 나는 상담관계가 어느 곳으로도 진전되지 않는 무목적적 온유함으로 (‘절실한 필요’를 만나지만) 이루어지는 때를 얼마나 잘 인식할 수 있는가? 원래의 상담으로 돌아가는데 얼마나 능숙한가?
;시간은 흐르는데 명확한 초점을 찾지 못하면 괴로움을 겪는다.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럴 때에는 화제를 환기시키거나, 다음에 다시 다루어보도록 하고 마친다.
f. 나는 온유함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힘든 문제를 다루기를 회피하는 것과 혼동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유함으로 상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g. 나는 죄악된 분노, 자극적 언어, 위협적 시선등이 없이 대면할 수 있는가?
;내담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내담자들은 그렇게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는. 따라서 내 자신이 별 다른 개인적인 사정이나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면 동요없이 대면할 수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자문한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2. 민감과 동정심
1. 나는 내담자의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개인적 경험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찾아내는가?
;늘 자주 쓰는 경험만 반복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경험이 컸기 때문에 자주 인용하게 된다고는 하지만 역시 좀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그런 면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2. 나는 이런 갈등을 기꺼이 내담자와 솔직히 나누려고 하는가?
;내담자와 스스로의 갈등을 나누지는 않는다. 내담자의 문제만 다루고 싶다. 상담자인 자신의 문제까지 꺼내 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래도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 나누는 것이 적절할 때와 부적절할 때를 얼마나 잘 구별하는가?
;내담자와 갈등을 나누는 때가 적절한 때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그 갈등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얻었을 때이거나 해결되어진 과거의 갈등일 때라고 생각한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갈등을 듣고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 경우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4. 나는 언제 동정심이라는 명목으로 죄악된 반응들을 용서해 주거나 재해석하려는 유혹을 받는가?
;죄악된 반응들을 고백적으로 털어놓을 때, 심히 괴로워 할 때, 그 정도로 고통을 당했으면 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5. 성경적으로 내담자가 들어야 할 ‘어려운 말들’을 하면서 동시에 연민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동시에 그런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연민을 가지면서 ‘어려운 말’을 해야 하는지, ‘어려운 말’을 하면서 연민을 가져야 할지. 사도 바울은 먼저 질책을 하고 나서 연민을 가졌음을 볼 때, ‘어려운 말’을 먼저 꺼내는 것이 좋을 듯 싶고, 그에 대한 반응에 따라 연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려움 말’에 강하게 저항하는 반응을 보면서 연민을 가지기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3. 화평케 함
1. 내담자의 공격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가?
;그런 경향이 있다. 다분히 자존심이 강한 자의식 때문인 것 같다. 그럴 수 있으리라고 이해는 하지만, 감정적으로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다.
2. 나는 화평을 위하여 진리를 왜곡하거나 아니면 문제에 직면하는 태도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가?
;진리가 중요한가, 화평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우선 순위의 문제이다. 늘 여기에 관한 우선 순위는 지켜져야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우선 순위는 진리, 사람, 그리고 화평이다. 일관된다면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3. 상담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 나는 어떻게 화평을 간구하는가?
;일단 공백기간을 가져본다. 갈등이란 감정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 더 감정이 누그러지면 다시 이성적인 화평을 추구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인내해야 한다.
4. 나는 내담자 속의 갈등이나 분노를 노출시키는 질문들을 하는 데 얼마나 능숙한가?
;일부러 자극적인 질문은 삼간다. 갈등이나 분노를 발견하게끔 도와 준다. 갈등이나 분노를 일으킴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은 극적이긴 하지만, 그 후유증이 걱정된다. 전에 Welch교수님은 그런 상담을 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내담자에게 소리지르는 것), 다소 듣기에도 당황스러웠다. 한국 사회에서 깨달음 보다는 갈등만 남을 것 같다. 대개의 다툼에서는 옳고 그름보다 이런 식의 갈등표출방법이 시비거리가 된다.
5. 어느 경우 외부의 중재를 구해야 하는가? 또 어느 경우에 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하거나 진행할 수가 없을 때,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섰을 때. 하지만, 상담자는 자신이 시작한 상담을 자신이 끝을 내야 한다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갈등으로 끝을 내지 말고 외부의 중재를 통해 화평케 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자신이 상담과정을 종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종결과정에서는 꼭 자신이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기능적 자질:이해
1. 데이터 수집
1. 나는 내담자가 자기 개방을 할 수 밖에 없는 질적이며 개방적인 질문들을 얼마나 잘 하는가?
;가벼운 주제에서 무거운 주제로 점차 진행해 나가며, 덜 민감한 주제에서 아주 민감한 주제로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면 자연히 개방은 이루어진다. 단, 자기 방어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에 그렇다.
2. 나는 질문을 얼마나 잘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가? - 앞의 질문에서 얻은 정보로부터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유도되는가?
;질문들끼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며, 이야기하는 내용도 중구남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초점으로 몰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한 초점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 편이고 따라서 질문도 분명하게 유도된다.
3. 나는 내담자의 삶 속에서 한 영역을 세밀히 탐구해야 할 때와 여러 영역에서 광범위한 질문을 해야 할 때를 분명히 알 수 있는가?
;대화 속에 중요한 요점이 등장하는 때가 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통찰력이다. 통찰력을 통해 중요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그럴 때 세밀히 질문을 통해 탐구한다. 대개 이러한 통찰력은 많은 사례를 접해봄으로써 증진된다.
4. 나의 질문은 얼마나 내담자의 자기 인식을 향상시키는가?
;상담자가 알기 위한 질문은 단순히 정보와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유형의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말하는 자가 스스로 깨닫게 하는 질문이다. 나는 철학수업을 들으면서 이러한 질문의 내재된 철학적 원리들을 연구했었다. 흔히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널리 알려졌는데, 그러한 질문들은 그냥 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로 고안된 계획을 가지고 이루어 지는 것이다.
5. 나는 직접적 상담 혹은 곤란한 것을 말하기를 회피하기 위해서 질문을 이용하느라,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 내담자의 반응은 질문의 유의미함을 보여준다. 너무 많은 질문이라 함은 내담자가 불편해 하는 질문이다. 이런 것은 당장 티가 난다.
2. 성경적 해석
1. 나는 내담자와 그의 상황에 대하여 성경적인 관점을 형성하는 훈련이 얼마나 되어 있는가?
;설교는 늘 상황에 대해서 성경적인 관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설교훈련을 통해 상담훈련도 잘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2. 나는 문화적 범주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받는가? 나는 얼마만큼 성경에 의해 내 생각이 형성되기 보다 내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는가?
;생각으로 성경을 보았지만, 성경이 생각을 바꾸게 된다. 성경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생각을 가지고 그런 뜻이 있으리라고 성경을 연구하다보면, 그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 의해 생각이 형성되었다고 확신한다.
3. 적절한 성경적 원리에 비추어 살아가는 내담자를 위한 실제적인 함축된 뜻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내담자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우선한다. 내담자에게 성경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내담자를 맞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바르게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성경의 진리가 내담자에게 이루어짐을 경험한다.
4. 나는 내담자들을 하나님의 사고방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아니면 나의 성경사용이 진부한 상투어이거나 너무나 하늘의 생각이어서 땅의 일에는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말씀은 늘 내게 실제적이며 땅의 일을 하늘로 올리는 방법으로서 깨달아진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가 바로 말씀이다. 이 사닥다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땅에 닿아있다.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5. 대중적인 세속적 범주가 나의 상담에 스며들어 사람들과 그들의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는가?
;그렇지 않다. 대중적 세속적 범주를 늘 경계해 왔다. 그런 매체와 그런 행위와 습관들을 경계해 왔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생각하고 말하며 인도할 뿐이다.
3. 마음의 이슈를 노출시킴
1. 나는 생각들이나 마음의 의도와 씨름하는 대신 행동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경향은 행동이 마음에 따르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예수님께서도 들어가는 것이 악한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악한 것임을 말씀하셨다. 혀가 악한 것이 아니라, 혀를 움직이는 마음이 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이 중요하지 않고 마음이 중요하다.
2. 나는 행동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 동기, 태도 등을 포함하는 죄에 대한 개념 정의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
;죄의 개념이란 하나님이 기준이 되신다. 성경에서도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것이 죄라고 하셨다(롬 14:23).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이요, 의지하지 않음이요, 믿지 않음이다. 그것이 죄의 개념이고 기준이다.
3. 나는 내담자를 희생자 이상으로 생각하는가? 나는 경험과 마음의 활발한 상호 작용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내담자를 희생자로 생각하는 것은 세속주의 심리학이다. 그들은 모두 희생자만 만들고 있다. 가해자는 없다. 성경적 상담은 그렇지 않다. 가해자가 있다. 그 가해자를 교정하고 용서하며 구원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고 하셨다. 마찬가지이다. 모든 가해자에게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지 못함’을 징계하신다.
4. 나는 내담자가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인식하고 탐구하도록 돕는 데 있어서 얼마나 효율적인가?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한 두 번 권면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말했다. 나는 이에 따라 계속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5. 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과로부터 근본적 문제에 대한 질문들로 옮겨가는가?
;천천히 내담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씩 짚어가면서, 근본적 문제들의 인식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해나간다. 이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6. 나는 내담자들이 나의 질문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다. 원리를 알고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은 정확히 풀숲에 있는 숨은 마음을 밝혀낸다.
7. 나는 내담자가 참된 마음의 동기를 확인하고 소유하도록 돕기 보다는 동기에 대한 판단들을 하는 경향이 있는가?
;이 질문은 다시 말하면 돕느냐 아니면 판단하느냐이다. 당연히 상담자는 돕는 자이다. 판단하는 자가 아니다. 판단은 분석만 낳을 뿐이지만, 도움은 열매를 낳는다.
기능적 자질: 의사소통
1. 경청
1. 나는 내담자의 말에 얼마나 잘 집중하여 적극적으로 경청할 수 있는가?
;내담자에게 최선을 다해 집중한다. 시선은 그의 얼굴에 고정하고 적절히 반응하면서 혹은 독려하면서 맞장구치면서 말을 끊지 않으면서 모든 말을 다 듣는다.
2. 나는 얼마나 기꺼이 못 알아 들은 것을 인정하고 다시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가?
;못 알아 들었을 때에는 즉시 다시 말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런 요청을 통해 요지를 더욱 분명하게 밝히게 하는 효과도 있다.
3. 나는 오해의 여지가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내담자에게 얼마나 기꺼이 분명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하는가?
;‘제가 잘못 알아들었나요?, 이런 뜻이 아닌가요?’라는 반문을 통해 요점을 명확하게 되짚는다.
4. 나는 내담자가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도록 돕는데 얼마나 능숙한가?
;말한 것을 정리해서 다시 설명하면 내담자는 훨씬 더 자신의 말에 대해 분명한 요점을 강조하게 된다. 잘못 이해되었다 싶으면 내담자는 나의 정리를 통해 틀린 부분을 수정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분위기상, 감정의 흐름상 끊지 않아야 할 때에는 잘 이해를 못했어도 그냥 넘어가는 때도 있다.
5. 나의 개인적인 듣는 태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듣기에 있어서의 나의 취약한 점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듣는 훈련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부터 듣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여왔고, 지금까지 듣는 것은 인내와 이해와 사랑을 가지고 해 오고 있다.
6. 의사소통이 잘 안될 때 내담자를 비난하는 편인가? 아니면 나 역시 책임을 인정하는가?
;내담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상담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내담자의 고의적인 저항이 아니라면 상담자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 부분이다. 모든 책임은 상담자인 나에게 있다.
7. 나는 얼마나 상담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하느라고 내담자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가?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지 않고 듣고 있느라 내가 말해야 할 공백을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여하튼 하고 싶은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걸 잊어버린다는 것 아무래도 자질이 부족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2. 타인 중심성
1. 나는 내담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가? 이에 따라 어떻게 그와의 상담방식이 정해지는가?
;내담자가 일반적인 사람일 경우에는 일반적인 원칙에 따른다. 하지만 특수한 사람일 경우(몸이 불편하다든지, 연로하다든지)에는 적절히 상황을 조절한다. 시간과 방법과 태도가 융통성있게 조절된다.
2. 나는 말씀의 진리를 내담자의 특수한 필요와 상황에 얼마나 적절히 적용시킬 수 있는가?
;이미 설교훈련을 통해 말씀을 삶에로 적용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성경의 예화, 성경의 원리,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밝혀 보여준다.
3. 나는 내담자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그 경험을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데에 얼마나 잘 사용할 수 있는가?
;내담자의 경험은 특수하지만, 일반화하면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의 예화에 접목이 된다. 그러면 그와 동일한 사건을 통해서 자연히 하나님의 진리가 제시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잉태치 못하는 내담자의 고민-> 동일한 경험을 했던 한나의 경우-> 한나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내담자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이런 순서이다.
4. 진리를 명확하게 알도록 돕기 위해 내담자의 삶에서 예나 비유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
;예나 비유는 성경적인 것을 주로 사용한다. 성경에 있는 것 외에 특별히 인용할 필요가 있는 간접경험이라든지 비유를 사용하기도 한다.
3. 명확한 복음제시
1. 나는 복음의 주제들이 이 특별한 사람의 삶과 경험에 어떻게 역사하는 지를 얼마나 잘 보여 줄 수 있는가?
;복음이 얼마나 과거의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었던 성경에 나타난 자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복음은 큰 역사를 이루었는지 증거한다.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2. 중요한 성경적 경험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내가 준비한 말씀 구절들의 목록이 얼마나 광범위한가?
;말씀 구절들의 목록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매우 협소하다고 생각한다. 아예 성경 전체를 그 목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디에 어떤 말씀이 있는가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싶다. 성경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성경요절을 머리에 꿰고 있는 것보다 성경 전체를 머리에 꿰고 있을 때에 더 큰 원리를 증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고린도후서 몇장 몇절보다는 고린도후서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3. 나는 얼마나 분명하게 내담자에게 복음 전체를 제시할 수 있는가?
;복음의 원리는 간단하다. 그래서 분명하게 증거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은 풍성하다. 먼 길을 가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풍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할 때에는 원리만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유익을 위해 찬찬히 복음의 내용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복음 전체의 제시는 큰 관점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4. 나는 내담자가 성경적 범주 내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얼마나 잘 도와 주는가?
;잘 돕고 있다. 범주를 넘어갈 때에 지적하고 넘어서면 다시 들어오도록 가르친다.
5. 나는 성경의 주제들을 단순하게 설명하고 인용할 수 있는가?
;인용할 수 있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로부터 나온 모든 복음에 대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설명들이다.
기능적 자질: 행위
1. 적용
1. 나는 내담자의 생각, 동기, 행동에 있어서 필요한 구체적 변화가 무엇인지 얼마나 잘 판단하는가?
;구체적인 변화는 때로 너무나 느리게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이가 자라는 것이 느리지만 분명한 것처럼 내담자의 영적 성숙도 그렇게 진행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령께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2. 나는 그러한 변화들을 실행가능하게 하는 계획을 얼마나 잘 세울 수 있는가?
;그러한 변화는 문제의 해결을 넘어서는 성숙과 성화에 관계된 것이다. 목회를 통해서 성도는 전생애에 걸쳐 이러한 변화를 실행케 하는 프로그램 속에 속해있다.
3. 나는 내담자의 상황에서 변화하는 요소들에 따라 얼마나 잘 계획을 세울 수 있는가
;이러한 계획은 정기적인 내담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수립되고 시행된다. 급한 경우 일주일에 한번씩, 급하지 않은 경우 한 달에 한번씩 만나는데 그 때마다 적절히 조절하고 계획하며 실행하고 진단한다.
4. 나는 얼마나 잘 정기적으로 그 계획을 분석할 수 있는가?
;상담보고서를 통해 그 계획을 기록하고 분석하여 다음 번에 다시 한번 적용한다.
5. 내담자가 유혹을 다루는데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계획을 얼마나 잘 세울 수 있는가?
;이러한 계획을 세우는 일은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특별히 행동수정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하지만, 그 목표는 경건을 추구하는 것이다. 행동주의자들의 인간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 감독과 책임감
1. 내담자가 어떤 종류의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지 나는 얼마나 잘 결정할 수 있는가?
;문제를 진단하면 답이 나온다. 책임감은 그 문제의 진단에 달려있다. 문제의 진단과 책임감의 필요에 있어서 적절하게 결정할 수 있다.
2. 내담자를 위하여 실행가능한 책임감의 연대성을 만들도록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
;교회적인 도움과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단지 내담자를 홀로 서기하도록 만들지 않고, 서로 연결하여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묶여지도록 한다.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성경을 적용한다.
3. 내담자와 함께 세우는 책임감 계획들은 얼마나 효율적인가?
;목회자로서 성도들을 관리하고 조정하기 때문에 중복되지 않고 무리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책임감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