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성 강의가 시작되고 과제로 ‘사람은 어떻게 변하는가?’를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참으로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이셨다.
더위의 상황은 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더위는 죄를 드러낼 뿐이다. 그동안 나는 상황의 악함에 대한 나의 선하지 못한 반응을 명분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 그렇게 반응 할 수밖에 없었던 명분을 찾아 자신을 흠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화를 낸 것도, 인내하지 못한 것도,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입바른 말로 상처를 준 것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도, 선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행동하지 못한 것도, 시간이 있었음에도 도와주지 못한 것도, 완전히 헌신하지 못한 것도 언제나 명분이 있었고 그 명분은 상황이 지지해 주었다. 상황이 그랬기에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한건 어쩔 수 없었어.. 어떤 사람도 나를 훈계하거나 질책하지 못했다. 그동안 내 안의 죄성은 열매 맺지 못하는 악함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았고 그 원인(더위)은 하나님이 제공한 것이었다.
‘사람은 어떻게 변하는가?’를 읽으면서 나의 관점은 180도 변하였다. 상황을 보던 나의 시선은 내 안의 죄에게로 옮겨 겼다. 그러면서 경험한 놀라운 사실 하나는 나의 죄는 악한 것에 대하여 악으로 반응할 뿐 아이라 하나님의 가장 선한 것에 대해서도 악으로 반응하기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치 있는 모든 것들에 냉소적인 마음으로 기뻐하지 못하고, 내게 주신 은혜들에 감사하지 않고 더 나은 어떠한 것을 기대하며 주신 것에 자족하지 못하는 나는 화를 내지 않았음에도, 사람을 때리지 않았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 자체로 열매 맺지 못하는 죄인인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시나무가 아닌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
변화된 관점은 나의 옳음이라 여겼던 것조차 죄임을 낱낱이 드러내 버렸지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주님은 나를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셨고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게 해주셨다. 어떠한 원함의 상황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리스도가 보이실 반응대로 반응하기를 소원하는 기도로 바뀌어졌고 마음의 선한 소원함이라 여겨졌던 것들은 나를 죄의 자리로 인도하는 악한 욕구였음을 인정하고 주님께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변화시키시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나에게 베푸신 은혜와 은사가 공동체 곧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 되게 하고 온전케 세워 가는데 사용되기 원하는 소원함을 갖게 되었다. 변화를 통한 삶은 공동체 안에서 완성되는 것임을 지금 허락된 삶을 통해 그리고 이번 과제로 읽은 내용들을 통해 깨닫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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