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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고통] 고통에대한 3가지 이해중 익숙한것..어색한것  

나는 고통에대해 정말 많은 생각과 갈등 속에 고민해온 사람이다.
나의 표면적인 상황은 교회나 세상에서 다들 부러워하는 축복받은 크리스챤 가정이었고 ...나의 내면 상황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하루하루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왜- 이래야할까? 왜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저 모양이지? 무슨 장로가 권사가 저 정도밖에 안되는걸까..? 우리가정의 정서적인 고통은 무엇으로 설명이되고 이해를 해야하지?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세상을 선택했었다.
그렇기때문에 고통의 타인에 대한 이해나 내 자신에 대한 이해보다는 하나님에대한 이해가 가장 익숙치가 않다. 나는 자신의 행한 일에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사람도.. 알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도..괴로워하며 후회하는 사람도 이미다 보았기때문에 그다지 타인에대한 이해는 어렵지 않은거같다.
내 자신이나 타인은 생각해볼 시간이 많았지만 하나님을 외면한 내가 고통에대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보는 일은 시작부터가 하나님과의 실랑이였다.
결국 나는 하나님과 고통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내 마음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고있다. 이땅에 살면서 인간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기 마련이지만 하나님안에서의 고통이 주어지지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린자식이라 생각한다. 편하게 편하게 막나가다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정말 하나님이 중요하다면 내 앞에 버티고 있는 내가 고통이라 부르고 있는 일들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의지를 갖는게 맞는거같다. 축복안에서도 고통을 느낄 수가 있고 고난가운데서도 평안과 기쁨이 넘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게하는것이 아닐까?
나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쉽지가 않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가 나오지만 나는 살면서 삼백번도 넘게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이다. 고통에대한 이해 가운데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이 내게는 회개와 직결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고통은 고통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가운데 만나게 되는 하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든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소중하다면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말씀하시든 축복을 통해 말씀하시든 그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하실 하나님의 몫으로 인정하는 것이 맞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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