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역동성] 과제1. 성경인물 속에서 상황에 대한 이해, 인격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해로 해당되는 내용을 기록하기창세기 32장 1-21절 상황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아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을 받지만, 이를 알게 된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는 것을 알고 야곱은 형을 피해 삼촌 라반의 집에서 지내다 다시 형을 만나러 가는 상황이다. 분노에 차있을 형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소, 나귀, 염소 등 갖가지 제물을 준비하여 형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한다.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빼앗는 선택으로 인해 부모를 떠나 20년간 라반의 집에서 종과 같이 일하는 악한 결과가 초래된다. 또한, 그 시간 동안 형과의 관계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없었기에 항상 형이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한 켠에 갖고 살았다. 그러나, 그는 형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을 한 상황에 마주한 두려움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선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한다(9-12절).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으로 인한 악한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하게 반응하려고 할 때 고통을 상황을 축복의 결과로 바꾸시며 '의미있고 가치있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와 계기'로 바꾸셨다.
인격 야곱은 어린 시절 자신을 형 야곱과 비교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의 가시가 있었을 것 같다. 이는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며 실제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는 행위로 드러나게 된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으며 강하게 저항하고 부인하는 모습'인 것이다. 한편,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내온 후 형을 만나러 가는 그의 모습에서 열매를 맺는 나무로 성장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형과의 화해를 하기 원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형에게 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가 화평의 열매를 맺고자 결심했을 때 그 이면 깊숙이 있는 선한 마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절박함과 하나님이 그 상황에 주관자되심을 인정하는 바른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비록 그가 취한 행위들이 어느 수준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를 온전히 선한 마음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영향력' 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력'을 믿으며 나아갔다는 점에서 위와 같이 평가할 수 있겠다.
하나님의 은혜 '변화의 모든 핵심에는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있고 그것을 통해서 온전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형에 대한 야곱이 느끼는 불안감은 20년 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형의 장자권을 뺏은 도둑으로, 형의 눈치를 보며 그를 피해 라반의 집에서 지내왔고 여전히 형과의 관계를 회복해야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그에게는 상황적으로 전혀 바뀐 것이 없었으나, 사실 그 상황을 직면하고 그것을 뚫고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전적인 의존으로 그의 태도와 마음의 중심이 더욱 뚜렷이 자리잡고 있었다.
질문. 목사님, '인격-악한 마음' 부분을 두세번 읽다가 든 질문인데요. 악한 마음을 '욕구'로 정의하고 있는데, 성경적 상담이라면 욕구 보다는 '욕심'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모든 경우에서 욕구라는 단어를 '악한 마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면, 긍정적인 욕구들 존재자체를 성경적 상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예를 들면, 아주 기본적인 삶의 욕구들(식욕, 수면욕과 같은)은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수가 없다고도 생각이 되어서요. 또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알아가려는 욕구(?)같은 경우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들었던 생각은, 욕심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사실 개인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서 그것을 주어진 것보다 더 원한다는 관점에서 악한 마음과 조금 더 가까운 뉘앙스로 사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입니다.... 혹시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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