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 속에 가난에 대한 수치심이 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 알았다. 왜 그렇게 주눅이 들고 어깨가 움추려드는지 몰랐다. 내 자랄 어릴 적에는 다들 그랬다. 그러나 유독 어려웠던 가정 형편을 숨기고 가리고 싶었기에 그로 인한 수치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같다. 나를 둘러싼 가정 형편을 누군가에게 오픈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창피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하여 경험하지 못한 문화적 결핍은 열등감을 일으켰고 언제나 부족하다는 핍절의식을 갖게 했다.
그러한 수치심 속에서 느끼는 욕구는 인정이다. 내가 하는 것이 유익하고 바람직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여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임이나 단체에서 나는 보통의 관심사에 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거기서 오는 소외감은 인생의 덜 중요한 것에 얽메여서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알면서도 나를 수시로 낙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인생의 우선순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나약하고 어린 상태에서는 섞여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실제적 삶을 통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나에게는 절실했던 것이다. 그것이 잘 안될 때에 나는 자주 무너졌다. 특히 해외에 살 때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경우 이러한 감정을 느끼며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지금은 나 나름대로 나에게 주신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주어진 현실을 성실하게 채워가며 감당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삶을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깨달았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