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인터넷 중독으로 인해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새로운 중독 증상입니다. 앞으로 더 새로운 기술이 발달되고 그 기술이 사람들의 중독을 일으킨다면 그것도 역시 새로운 신조어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의 발달 속에서 그것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며 끊임없이 그것을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각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살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할 때 인터넷 중독을 다루는 상담주제가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 중독 주제를 다루는 것은 그런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폄하하고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빠져나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인터넷 중독을 다루는 성경적 상담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인터넷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돌이키게 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원리는 왜 인터넷에 빠졌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아가고자 할 때 성경적 상담의 변화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상담의 과정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시작하지 않느냐는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가를 꼬치꼬치 깨묻는 것에 있습니다. 상담인지 아니면 교제인지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냥 격려해주고 기도해주겠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해서 적절한 방법을 제시해 주려고 하는지의 고비도 바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알고자 할 때 비로소 성경적 상담의 첫 번째 과정인 '1문제인식'이 시작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각 인터넷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고 나면 그 속에서 정말 마음 속에서 인터넷을 갈구하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 때 변화의 방법이 형성됩니다. 그것은 그 이유 속에 있는 욕구를 찾아서 소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 욕구를 찾은 다음에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에 있던 38년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낫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았고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빨리 들어갈 수 없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는 빨리 들어가기만 생각했지 예수님을 통해 나을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빨리 들어가는' 욕구만 가지고 있었지 '병이 나을'것을 사모할 수 있는 소원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고 그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는 정말 자신에게 생긴 능력을 활용해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고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병이 나아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움직였을 때 병이 나았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가 인터넷 중독으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문제가 해결되서 인터넷 중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인터넷 중독에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려고 할 때 인터넷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성경적 상담에서 인터넷 중독의 문제는 이와 같이 욕구를 소원으로 바꿀 때 해결됩니다. 조건이나 상황이나 원하는 기준에 맞춰지니까 그 다음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움직이게 하심을 따라서 하나씩 한번씩 움직이면서 비로소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이 인터넷 중독을 해결하는 성경적 상담의 방법이고 인터넷 중독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 사회의 문제가 날마다 새롭게 등장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의 원리와 성경에 나타난 은혜의 원리를 잘 따른다면 이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동일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힘입어서 변화되고 발전되며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 상담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변화의 방법을 통해서 인터넷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능동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귀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