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문제진단법] 과제2) 선악, 조직에 관한 사례
과제2) 선악 조직에 관한 사례를 찾고, 그 내용을 어떻게 문제 진단 도형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기록하고 설명하고 그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 선악선택 사례
내가 27살에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갔을 때, 신입사원이 왔다고 환영회식을 부서에서 열어 주셨었다. 나를 위해 모두가 모여 축하해 주는 자리,,, 모두들 나에게 축하주를 한잔씩 권한다. 이제 너를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 들이겠다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대리님, 선배사원,,, 이 술잔들을 호기롭게 받아 마시고, 노래라도 한곡조 멋들어지게 뽑아 내면, 훌륭한 신입이 되는 순간이다. 믿는 신자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시간이기도 한 이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옳을까?
남성 신자들이 처음 직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도전은 술, 담배에 대한 것이다. 지금은 담배는 그리 강권하지 않는다고 들었으나, 술은 지금도 매우 강요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남자들 끼리 모인 조직 생활 내에서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로 취급 받으며, 많은 경우 심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도전에 굴복하여 신자임을 숨기고 술 담배를 버졋이 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며, 혹은 신자임을 밝힌 상황에서도 술 담배는 신앙과 관계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2번 영역:. 신자임을 적극적으로 밝히지는 않으며, 술 담배도 모두 하고 전도도 하지 않는다. -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기에 속한 신자였었다.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도저히 그런 비난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고, 가끔 그러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마치 조직에 속하지 못한 사람 처럼, 외딴 섬에 따로 떨어진 사람처럼 조직내에서 살게 되는 것들을 보았고, 보였기 때문에, 난 전혀 그럴 마음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2번에 계속 머물렀다. 또한 하려면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지 처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그렇게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크게 가책을 느끼거나,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직장조직생활은 교회생활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었고, 교회에는 나의 이런 직장생활을 말하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니까.
3번 영역: 종교에 무관심하고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 시간이 지나자 교회와는 조금씩 멀어졌다. 주일도 잘 안지키게 되고, 가도 1,2시간 잠시 예배만 드리고 얼른 돌아와서 잠을 자거나, ,, 피곤했고, 주일날은 쉬고 싶었다. 더구나 어린 아기를 두명이나 키우는 아내도 내가 주일에 교회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교회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얼른 집에와서 애라도 좀 봐주고, 자기도 좀 쉬도록 만들어 주는 것을 원했다.
4번 영역: 크게 말하지 않지만, 기독교를 안 좋아하고 신자들을 피곤해 한다. 다만 예의를 갖춘다. - 과장급 이상 직급이 올라가자, 나의 부서원들 중에 기독교 신자가 있는 것이 그리 기쁘지 않은 상황들이 생겨날 때가 있었다. 일은 매우 바쁘고 시간은 촉박한데, 주말 출장은 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가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어쩌다 한소리 하기라도 한 날이면, 윗사람이 일하다 보면 부서원에게 한소리 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러면 남자들끼리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이말저말 서로 풀면, 간단한 일을 가지고, 꽁한건지?, 괜찮은 건지?, 예의는 지키지만, 말을 안하니 알 수도 없고, 불편했다.
5번 영역: 신자를 무례하게 대하며, 기독교를 비난한다. 술 담배를 강요하기도 한다. - 내가 개인적으로 여기에 속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사람은 지금도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나 요새는 교회들의 대형 잘못들이 연일 매스콤에 오르락 거리니, 이런 사람들 앞에서 더욱 움츠려 드는 경향도 있다.
1번 영역: 조직 내에 신자임을 밝히고 술 담배를 거부하고 어려운 동료를 도와주고 전도한다. - 지금은 이런 영역에 속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50대 중반이고, 이렇게 하는지 약 5년쯤 되었으니까, 50세가 다되도록 20년이 넘게 난 '2번 영역'에 계속 있었다. 직급이 올라서 임원급 이상으로 올라가자, 외부 인사들과의 술자리가 많아 지는데, 이건 거부하기가 오히려 내부 인사들 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왜냐하면 이건 개인적인 거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1번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내 사업을 하면서 부터였다. 결국 난, 조직생활 내에서 "1번 영억"으로 있어 본 적이 없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매우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그러나 그건 "빵이 아니면 자유를 달라"고 했던 프랑스 시민군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 소리 질렀던, 프랑스 왕비의 외침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조직체계 사례
지금 49세 인데 아직 자녀가 없는 후배가 있다. 별에별 좋다는 방법을 안해본게 없을 정도로 시도하였으나, 자녀를 얻는데 실패하였다. 재작년 쯤에 집을 나와서 혼자 거리를 1년쯤 방황하였는데, 재작년 말에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사는지 이제 한 1년 좀 넘어 가고 있다. 잘 지내느냐?고 물으면, 그저 잘 지낸다고 만 말한다.
재작년 중반 쯤 부터 아내는 매일 눈물로 새벽기도를 찾으면서, 퇴근 시간에 맞추어 남편의 회사 앞으로 찾아와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애원을 했었는데, 그 결과로 집에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리 밝은 얼굴은 아니다. 그 제수씨도 내가 잘 아는 분인데, 젊을 때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자존심 숙일 분은 아닌데, 쉽지 않은 일을 일단 하시긴 하신 것 같다.
두사람 모두 아버님은 장로님, 어머님은 권사님인 집안의 자녀로 성장해서 결혼한 케이스이다. 장남인 이 아들은, 사실 오랫동안 임신에 실패하면서, 별에별 생각을 안해본 것은 없으나, "음행한 연고 이외에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말씀 한마디에 본인의 신앙 보다는 양가 부모님들의 권위에 눌려 꼼짝도 못하고, 그렇다고 옛날 처럼 씨받이 농사 같은 그야말로 음행을 저지를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채로 20년을 살았다.
남편은 복잡하게 생각하기도 싫으니, 그냥 일에만 완전히 몰두해 버리게 되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소일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며, 취미일 수도 있고, 때로는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일들에, 쓸데 없이 집착하면서, 오랜시간을 지냈다.
그 와중에 동생댁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둘이나 낳으면서, 부모님의 성화는 냉대로 바뀌었고, 집안 구성원들 사이의 뻔한 알력은 소용돌이 치게 된다. 그러면서 이꼴저꼴 다 귀찮은 후배는 집을 나와 버리고, 만만한 여동생네 문간방에 들어 앉아, 귀찮아 죽으려고 하는 처남을 붙잡고 매일 술타령이나 불러 대든가, 아니면 나가서 술먹고 외박하는 생활을 1년쯤 하게 된다.
[2번 영역] 나 - 사실은 지금의 아내와 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함께 안산다고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불임이 아내의 책임은 아닐찌라도, 그러한 상황을 공유하는 자체가 즐거운 것일 수도 없고, 누구의 책임이든 그것에 관계 없이 지금은 편안하지 않다. 아내가 가끔씩 보이는 히스테리성 이상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은 받아줄 마음의 여력이나 사랑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 많이 질려있는 상황이다. (모태신앙인 이지만, 본인의 신앙은 지금은 거의 없다. 그렇게 아기를 달라고 기도하고도 이 지경에 오고 보니, 있던 신앙도 다 없어진 판이다.)
아내- 이제와서 남편을 대단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드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갈 생각도 전혀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의 상황이라도 유지하고 싶다. 그러나 나와 생각이 다른 남편과 야속한 시부모님, 꼴도 보기 싫은 동서나 동서네 아들들을 보면, 내 속에 미친 불길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새벽기도에 엄청 매달린다.
[1번 영역] 시부모님- 이제는 이들 부부에게 별 관심이 없다. 늦게 얻은 손주들만 이뻐 죽겠다.
[3번 영역] 동생네- 솔직히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형님네가 그런 상황인게 내 탓도 아니다. 억울한 면도 엄청 많지만, 그렇다고 말한마디 어디다가 할데도 없다.
[4번 영역] 이웃, 주변인- 아무 생각없이 자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애들은 몇살이에요?",, 힘들다. .. 만나고 나면 수군거린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이제는 10년 전에 비하면, 해결책이 더 많이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때는 아직도 임신을 포기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부모님의 기대도 그대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포기도 했고, 손주들도 생겼고, 부모님도 변했고, 둘이서만 서로 잘 타협하면 그럭저럭이 잘 될만한 상황, 시점에 와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제와서 보니, 상황은 변했는데도, 그 동안 서로에게 쌓아온 상처들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에 문을 여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남들은 쇼윈도우 부부라는 말도 하지만, 이들 부부는 언제 부터인가, 어떤 모임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쇼윙할 것도 없는 지나치게 데면데면한, 그냥 한집에 사는 두사람 같은 사이가 되어있다. 아내와 잠자리를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다. "식구끼리 무슨 그런 민망한 짓을 하느냐"는 농담이 돌아왔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 가족을 만지시면, 어디부터 만지실지 짐작할 수 없으나, 후배(남편)이 은혜를 받아 주님의 조건없는 사랑으로 모든 상황을 물리치고 아내를 무조건 사랑한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기는 하다.
여태 인고의 시간들이 지나갔으니, 이제는 좋은 일들이 생기기를 가끔씩 기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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