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성경연구법] 과제4) 극본적 해석 및 소감문
< 극본적 해석 및 소감문 >
극본적 해석
창6:5 /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의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1. 발단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만들어가시겠다는 설계도를 그리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침투에 들어 오셔서 톨레도트, 아담을 통해 시작된 생명을 낳은 씨의 족보을 노아 시대까지 이끌어 오셨다. 수많은 세대가 지나 오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인 하늘적 존재들이 땅적 존재인 딸들과 연합함으로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버리면서 죄와 더럽힘이 증가했다. 이들의 사이에서 깁보르, 자기 이름을 스스로 내려는 용사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진 네피림들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했다. 딸들이 돕는 베필이 되어 아들을 낳지 못하니까 우상을 낳을 수밖에 없게 되고 진리를 거짓증언하게 되고 포악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2. 전개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빛 안에서 살아가지 않고 자신들의 본능과 욕구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같은 존재들을 보시고 한탄하셨다. 그리고 짐승적 존재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셨다. 한탄하셨다는 것이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근심하고 있는가를 강조한다고 느껴지기 보다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지극히 인간적이신 분이심을 나타내주는 사랑의 표현으로 다가온다. 그들을 당장 멸하실 수 있음에도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시고 120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주셨다. 욕정에 불탄 마음을 돌이키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바람난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의 속이 타 들어가는 기간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본심을 끝끝내 외면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님은 결코 홍수로 심판을 즐거워하지 않으셨지만 저들을 새로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홍수로 멸하기로 작정하셨다.
3. 절정 노아가 만든 방주도 완성이 되었다. 방주는 테바(히)인데 모세를 물에서 건진 갈대상자도 테바이다. 갈대상자와 방주는 역청으로 칠해졌다. 역청은 고페르 나무인데 일차적으로는 방수를 위함이고 진짜는 죄를 덮는 속죄의 의미이다. 방주가 구원사역을 나타내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노아는 자기 맘대로 방주를 짓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식양대로 지었다. 모세의 성막과 너무 닮았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의미와도 같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자발적으로 이끌림받아 나온 자들과 모든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갔다. 그들이 먹을 모든 양식도 실었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신 후에 비가 40일동안 비가내렸고 온 땅과 모든 높은 산들이 다 물에 잠겼다. 방주에 있는 존재들은 40년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만나로만 살아야 했던 것처럼 오직 말씀을 통해 안식이 된 존재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호흡있는 것들은 다 죽어야만 했다.
4.결말 홍수는 하나님의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이다. 홍해는 세례를 받고 새 이스라엘이 된 존재들에겐 큰 구원이 되었고 자기 배만 채우며 애굽백성으로 머물러 있던 존재들에겐 다 바다에 빠져죽는 심판이 되었다. 노아홍수가 인류 속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일 수 있겠으나 양파껍질을 까고 보면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볼 수 있다. 감정과 욕구로 가득차서 네피림이 된 교만해진 눈과 높아진 견고한 진들이 홍수의 바다 속에 다 죽어지고나면 노아처럼 오직 진리의 방주 안에서 안식을 이룬자가 되고, 하나님이 이끌어진 자신의 베필을 통해 씨를 지닌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들도 또 아들을 낳는 베필과 함께 살며 복음으로 살게 된다. 그럴 때 심판의 창힐했던 물이 빠지게 되고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뾰족하게 모가 난 산이 그리스도가 머리가 된 아름다운 산봉우리가 되어 모든욕구의 물이 사라지고 오직 은혜의 소원으로 결실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소감문
상담을 하는데 성경적 해석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오면서 이런 방법으로로 상담을 받아보거나 해본적이 없었다. 더더구나 창세기 1,2,3장을 갖고 성경적 해석법으로 상담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안해봤다. 그 어느 과제보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보았다. 예전에 수도없이 들었던 창세기에 대하여 새로운 상담적 방법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말을 했다거나 뱀이 처음엔 네 발로 걸었다거나 하나님이 저벅저벅 걸으셨다는 그림같은 언어들 속에 있는 진짜 의미를 찾아야했다. 심청전이 임당수에 빠졌다가 살아 난 것을 말하려는게 아니라 효를 강조하기 위함이듯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적 이야기들을 벗어 버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의 상처로 단단해진 마음을 부드러운 속살이 되도록 터치해가는 그런 과정을 경험하는 계기였다.
성경적 상담의 이론에서 대전제가 모든 사람을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흑암과 혼돈에서 빛이 들어오면서 출발하듯이 인간의 존재도 각 사람의 마음의 감정과 욕구로 가득차서 고통스럽고 공허한 마음에 생명의 빛을 창조해 주는 그런 과정으로 다가왔다. 내가 성경적 상담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성경적 상담의 방향성 때문이었다. 그 어떤 상담보다 제일 방향성이 옳다고 깨달았었다. 그리고 성경적 해석을 공부하면서 내가 왜 성경적 상담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두 번째 이유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다는 아니겠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 사실이라고 내가 믿어줄께!' 라는 식의 약간 팔짱끼고 제3자로 관망하는 그런 태도를 갖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고통스러운 인간의 마음을 터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적 상담의 성경 해석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감정과 욕구로 인한 고통을 직면하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을 얻게 하여 소원을 갖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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