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의 모토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듣기를 속히하고 말하기를 더디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생각해 본다면 어떤 상황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말하기를 더디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옆에서 말하는 참된 소리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겠는가?
듣는 속도가 과히 말하는 속도보다 빠를 수 있겠는가?
아닐 것이다.
이처럼 감정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듣기가 말하기보다 빠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상담자에게 필요한 요소로서 '경청'이라는 기법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적극적인 경청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 삶 가운데 부딪히는 여러가지 상황속에서
언제나 일관적인 태도로서 경청이라는 요소를 가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한마디로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편하고 더 익숙하고 더 빠르다고 할 수 있기게 과히 부정적인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말씀하셨다.
왜 듣기를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도록 의도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변화를 위한 적절한 해답을 던져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새로운 피조물이라."에서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개념은 변화이다.
여기서 변화는 이전것이 아닌 새로운 실체로서의 변화이다.
동쪽에서 남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쪽을 보는 남쪽에서 동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북쪽을 보는
반대로 돌아서는 개념에서 변화인 것이지 비스듬히 돌아서는 변화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속사람이 변하는 것이고 나 지신의 정체성과 실체가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변화의 삶에 들어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변화된 삶으로 들어가는 창을 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에 대한 답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는 길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나는 우선적으로 말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내가 말하기를 더디한다는 것은 곧 마음에서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통해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둘째, 나에게 듣기를 속히 한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서로", "서로" 그렇게 타인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두가지 요소를 잘 갖추어 나갈 수 있을 때 나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하는자로서 그 영향력을 발휘해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이 두가지 요소가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한 변화의 원동력이며,
참된 변화의 촉진제로서 적절한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ps) 생각과 의도한 대로 안 이어지는 듯한 글인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조사, 오타를 계속 수정했으나
결론은 집중이 안되고 있어서 그런듯하네요. ^^ 그러나 일등으로 과제해서 무지 뿌듯해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