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기본원리] 5.6.7장 배운 내용 중에서 자신이 제일 감명깊었던 부분을 기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존재이다]
저는 목회를 하시면서도 늘 자녀를 참 따뜻한 인격과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아버지와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로 처한 상황과 환경을 감사로 감당하시는 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릴때에는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특성과 가정의 분위기. 가정 안에서 부모님이 크게 힘들거나 고통 가운데 계시다기보다는 가정으로 인해 누리는 기쁨, 목회를 하면서 믿음으로 감당하고 이겨내며 살아내시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견인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어릴때부터 사역자의 길을 걷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가정'을 믿음 안에 세워가는 것에 대한 소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혼 이후 직면하게 된 미성숙한 나 자신의 모습과 상담/사역현장에서 만나는 성도들과의 삶에서 20대와 30대 초반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아픈 성장의 길을 걷고, 또 믿음을 갖고있지만 삶의 풀리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성도들과의 접점 가운데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으며 살아야하는 이유가 믿음이 없어서인가?'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만의 기준과 잣대 - 나의 경험에서 한정된 - 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며 '말씀을 믿고, 말씀 가운데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의 감격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전제로 쉽게 다른 사람을 단정짓고 해석하고 지극히 나 중심적인 결론을 냈던 것도 같습니다. 이런 고민들이 최근 몇 해 간의 교회사역 가운데 좀 더 '머리'로 이해되기를 원했고 어떻게 성도들을 섬기고 교회를 세우며 상담의 현장에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기존에 갖고 있었던 인본주의철학과 부딪히는 면이 많아 내면적인 고민이 참 많은 시간을 여러 해 보내왔습니다.
이번 성경적 상담의 기본원리에서 다루었던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존재이다' 라는 그 원인은, 기존에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수용하며 경청하고, 인간 스스로 갖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합리화했던) 그 능력을 스스로 찾아 결국 발현하며 삶 가운데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현실과의 극명한 괴리를 느끼고 있던 제 현장 가운데에서 참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그동안의 상담과 사역 현장에서의 대화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
사역자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의 고통이 이미 결정된 것이었고, 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은혜가 아니고서는 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서 시작하고, 우리에서 답을 찾아가고자 했던 노력 자체가 인본주의적인 시도였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고통의 원인 자체가 자신의 죄, 타인의 죄, 하나님의 계획, 사탄의 유혹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에서 성경적 상담의 가치를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원인에 대한 오해가 결국은 남탓을 하게 하고, 나의 한경을 원망하게 하며,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과 동떨어진 걸음을 걷는다는 점에서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성경적 상담을 알게 하신 은혜가 참으로 감사하다 고백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상담자는, 이 고통이 숙명적임을 반드시 기억하고 마음이 고통 속에서 혼란을 겪을 수 있음을 받아들인채로 그 고통의 시간을 방치하거나 억제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이 위험성 자체를 받아들이고 고통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에서도 깊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고통의 시간을 잘 붙들어줄 때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것은 사역자, 상담가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도전을 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상담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서는 그 고통을 버텨내도록 함께 서 있어주고 조언을 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주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더욱 무장되어 있어야 함을 더욱 새겼던 이번 강의였습니다.
답변하시면 포인트 30점을, 답변이 채택되면
포인트 100점 (채택 0 + 추가 100) 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