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새벽에 잘 모르는 분에게 카톡 메세지가 왔습니다. 타국에 계신 선교사님이신데 심리학과 성경적 상담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고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젊은 시기에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참으로 유익하다는 덕담도 주셨습니다.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꽤 심층적인 토론을 했습니다. 그 분은 확실한 성경적상담학 입장에서 상담을 해나가시는 분이었고 저에 대해 알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저와 상담을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저에 대해 많은 것을 오픈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그분은 제가 갖고 있는 욕구를 찾아냈습니다. 제가 상담사여서 단서될 만한 내용을 전부 드린것도 있지만 카테고리 별로 정리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욕구의 지점을 다루기 전에 잠시 그곳에 머무리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저는 주로 이 지점까지 다다르는 것에 대한 과정과 심리학 역할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 분도 그것에 동의를 하셨고 본인도 뇌에 대한 부분이나 시냅스 등 참고할 만한 심리학의 원리들을 사용한다고 하셨습니다. 본질에 대한 부분을 굳게 붙잡고 있고 그정도의 고민을 하는 것은 위험성이 없다는 것이 주 요지였습니다. 욕구를 발견하고 난 이후에 문제에 대해서는약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CCEF의 방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선 상담심리학자들이랑 가는길이 분명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의 부분 때문에 성경적상담학자들이 심리학에 위험성에 대해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성경적 원리로 상담하는 것들을 지키시는 분들 특히 리더들은 과정 중에서도 심리학의 허용에 대해 쉽게 허락하지 못하는 것은 배움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허용이 치명적인 허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거라는 이해도 생겼습니다. 성경적상담에 대한 책은 여러권 봤지만 실제로 이것을 적용하는 사람들은 만나보기 쉽지 않아서 그 내용이 어느정도 적용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이 분을 통해 그 깊이와 실제를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활발한 토론들이 서로를 더 이해하게 했고 서로가 가는 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분의 말투와 그분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은혜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언어 안에 그 생명력이 느껴졌고 표정안에서 따스함도 보였습니다. 긴 시간을 선교지에서 지내시며 훈련받고 교제해 맺은 열매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만남과 인연들에 감사합니다. 바쁘신 가운데서 타국에서 긴 시간을 내주심에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