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기본원리] 원리 1,2장 에 대한 소감문*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임을 고백 함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문제는 성도로 살면서도 하나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교회를 다니고 있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열정으로 사모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 모든 상황 속에서 순간 내 속에서 올라오는 악독을 부끄럽게 여길지언정 어떻게 해결하는지? 해결은 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살면서 성화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부담만 않고 산다고나 할까. 정녕 죽으리라 고 한 금지를 선택 할때마다 그것이 선악과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순간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 하면서 살고, 이 정도는 누구나 어쩔 수 없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우상 숭배가되고 우리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 할 수 없는 삶을 살게 한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환경을 내가 불평이 없을만 하고 만족할만 하게 만들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예수님이 오셨을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정치적으로 만족할 만하게 만들어 주길 바랐고 신유의 기적을 주목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궁극적인 해결책은 죄사함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 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관심은 죄사함이라는 의미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순간이나 상황들 속에서 내뜻대로 행하지 않고 내 죄를 보고 애통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죄인의 모습으로 주앞에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죄사함을 받게되고 이 사람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것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알기 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거 아닌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 하고 있는 격? 이라서 인지도 몰라 속상하고 마음만 급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아 하나님께 순종하여 귀기울이는 것이 목표가 되고 창세기 1,2장의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기를 소원 했으면 좋겠다.
*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로인한 희생자일뿐만은 아니다. 우리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온전한 기준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러하기에 온전 한 기준이 없어 계속적으로 법을 만들어야하고 문제 해결이 되지 않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악화될 뿐이다. 해결의 열쇠는 우리가 온전한 기준을 아는 것이고 방법을 아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 조차 온전한 기준을 가르치지 못하고 방법을 따르지 못 하는 현실이라고 보여진다. 우리 각자의 주관적인 기준의 수준을 따르고 방법을 택하므로 책임전가 형태로 다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 속에 많이 있다. 그래서 부부간에 대인간에 조직간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기고 원수가 되어 고통하며 불행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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