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락은 사랑의 대상이 누구였는가, 무엇이었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사랑의 대상이 자기 자신일 때 희락은 자기 자신을 통해서 나타나고,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일 때 희락도 역시 하나님을 통해서 나타난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자신일 때의 희락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고 사랑의 대상과 희락의 근원을 하나님께 둘 때에만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기가 원하는 그 어떤 것에 희락의 근원이 있는 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기쁨이나 즐거움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공중에 던져 올리는 공과 같아서 올라가서 멈추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만 느껴지는 감정인데, 올라가기까지의 어려움이 있고 올라가서 멈추면서 희락을 느끼게 되고 다시 내려오면서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근원으로 둔 기쁨은 앞에서의 기쁨과는 다르다. 본문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근원으로 둔 큰 기쁨을 말하고 있다. 그 희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나타났고, 그들은 본문에서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면서 기뻐하고 있다.
“23 온 회가 다시 칠일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이에 또 칠일을 즐거이 지켰더라”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셨던 놀라운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유월절 절기의 의미인데 바로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을 생각하면서 히스기야왕이 절기를 지키게 하였고 그것이 이러한 커다란 희락의 근원이 되었다.
이 두 가지 희락을 비교해 본다면, 한 가지 희락은 삶속에서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고 기뻐하는 일을 하면서 얻는 희락이고 그런 희락은 다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좋아하는 것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늘 순간의 희락을 맛보기 위한 오랜 시간의 고통이 따르는데 이렇게 이 세상의 삶속에서 얻는 희락은 항상 그렇게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을 근원으로 하는 커다란 희락은 그런 것 들 과는 다르다. 그 희락은 오래 지속되고 있다. 그 희락은 모든 사람에게 넘치는 것이고 그 희락은 하나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셨던 모든 일들과 앞으로 행하실 모든 일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행하고 계시는 일들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고양시키며 확장시켜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면서 희락에 들어가게 하고 이로써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희락에 인간이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약간의 희락을 맛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희락의 근원이자 창조자 이신 하나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해서 기쁜 희락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그 속에 있는 자들도 기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기쁨의 근원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행하는 것이다. 이런 기쁨을 알게 되면 정말 기뻐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원하심 속에서 그 기쁨이 한도 끝도 없이 영원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시고 그분의 기뻐하심을 함께 기뻐하게 되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하시고 그래서 영원 속에서 언제나 끊임없이 항상 주님의 기뻐하심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참된 희락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과 일하는 것이 즐거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기뻐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행하는 것이 좋아서 일 때 그것은 진정한 희락이 되고 천국은 바로 그런 일을 행하는 곳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께 그 근원을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길 원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기쁨에 들어가게 되고 그 기쁨 속에서 한없이 기뻐하게 될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