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사람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라고 하는데 환경에 의해서 마음이 다르게 형성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것인가? 예를 들어서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라면서 결국 범죄자가 된 사람의 문제가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는가? 만일 좋은 부모에게 바른 교육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범죄자까지 되지는 않았을것이 아닌가? 이렇게 나쁜 환경때문에 범죄자가 된 사람의 죄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대답)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의 문제가 마음의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의 문제가 결국 그 마음의 근본 죄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와 죄악이 겉으로 드러나게 된 근본 원인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 있다는 뜻이다. 만일 환경이 인간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한다면 부모님의 사랑속에 부족함이 없이 바르게 자라난 인간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모든 고아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해서 다 올바른 성인으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환경속에서 자란 인간이라 해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그 환경에 반응하는 각자의 선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인간이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환경속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죄를 다스리라는 계명을 주심으로 죄에 대한 책임이 각자에게 있음을 말씀하셨다. 심리학에서처럼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환경탓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도록 허용하는 사회가 된다면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며 아무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혼란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범죄자가 고아로 자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범죄들을 지었는지에 대한 외부적인 것들을 심리학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의 환경과 행동 뒤에 숨겨진 마음속의 죄악된 욕구들은 성경적 상담을 통해서만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을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마음속의 숨은 동기까지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좋은 부모님밑에서 훌륭하게 자란 사람과 고아 출신의 범죄자 두 사람을 비교해 볼 때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선악의 행동만으로 누구는 선인이고 누구는 악인이라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두 사람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죄악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일한 죄인인 것이다. 마치 인간의 눈에는 겉으로 거룩해보이는 종교인인 바리새인은 의인이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세리는 죄인이라고 여겼던 인간의 잣대와는 달리 예수님은 오히려 바리새인을 더 악하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세리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한데 반해서 바리새인은 자신의 악한 마음을 종교적 행위로 포장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생각과 숨은 동기까지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성경적 상담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내담자의 마음속 깊이에 있는 죄악된 욕구를 빛 가운데 드러내게 하심으로써 내담자가 환경을 탓하는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자신의 문제가 외부환경이 아닌 내면의 마음속에 있음을 깨닫도록 돕는다. 예수님은 세리가 죄악된 행동을 버리고 바리새인처럼 거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키려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악된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변화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신 것이다. 뿌리인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닮아 변화될 때 저절로 선한 열매가 맺히는 것이지 마음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 행동만 선하게 한다고 해서 선한 존재로 변화될 수 없다.
질문에서 보다시피 '고아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범죄자까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며 인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환경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고아로 태어났다는 환경이나 범법행위를 했다는 사실보다는 인간이 원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죄인의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마음의 회개함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진정한 변화와 구원을 얻을수 없다는 점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심리상담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환경을 핑게대며 오히려 죄의 욕구들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세상적인 행복을 추구하게 함으로 여전히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하는 반면 성경적 상담은고통스러운 환경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 마음의 죄악된 욕구를 버리고 그 자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가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둘 다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적 상담은 심리상담으로는 건드릴 수 없는 인간 마음 심층에 있는 죄악된 욕구를 발견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새로운 존재로서 변화된 삶을 살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심리상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적용) 나는 성경적 상담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문제가 마음의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고 동의했다. 하지만 나의 문제가 '내' 죄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려 하자 의외로 마음이 많이 힘들어지고 극심한 피곤과 무기력해지면서 온몸의 통증도 갑자기 더 심해졌다. 가족들을 보기만 해도 부담스럽고 마음의 불안이 극도에 이르렀다. 갑자기 어린시절 이런 증세로 늘 고통하면서 환자같이 살아온 과거의 삶이 떠오르자 역시 나는 이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수 없다는 절망감에 짖눌리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또 내 '죄' 때문인가? 평소에는 이런 결론에 이를 때마다 생각나는 잘못된 '행동'들을 부지런히 회개함으로 마음의 평안과 건강같은 다급한 현실문제의 해결하고자 했다. 겉으로는 바리새인처럼 기도하고 회개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뉘우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함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지는 못했다. 성경적 상담을 시작하면서 뭔가 조금은 이해한 것 같았는데 다시 문제들이 꼬이고 힘들어지자 내가 본능적으로 다시 붙잡는 건 하나님이 아니라 현실문제 해결이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깊이 죄의 올무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는 절망감에 빠지자 이번에는 기도할 마음마저 사라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으로 스스로를 바리새인처럼 포장하고 모범생이자 피해자로 자처하며 살아온 나의 마음깊이에는 미움과 저주, 원망과 분노, 자기연민, 철저한 이기심과 욕심, 자기우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워할수 밖에 없는 행동들을 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나 남편을 미워하는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고아로 자라면서 범죄자가 된 것이 전적으로 환경때문이라고 핑게하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주어진 환경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나는 늘 그 원인이 환경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사실은 자기우상때문에 늘 나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죄성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그들의 환경때문이 아니라 죄의 노예인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죄악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런 인간의 죄악된 마음 자체를 선하게 바꿔줄 생각조차 할 수 있었을까...참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분이시기에 인간 스스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근본문제를 다 알고 계신다. 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은 단지 나의 행동을 교정하거나 힘든 환경을 바꿔주려 하심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악된 마음을 고쳐주시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볼 때 성경적 상담을 공부하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더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나의 마음이 먼저 고쳐져서 다른 이들의 마음도 하나님께로 돌이켜지도록 돕는 일에 쓰임받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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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상담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소망이 차오르지만 실제 그 길을 걸어가다 보면 몇번이고 좌절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래서 성경적 상담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 해결은 자신의 성화 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된 모습 그 자체가 문제의 해결입니다. 그 모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 하루 이루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빚어가시고 만들어가시는 작품이 됩니다.
스페인에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예술가의 걸작품 성당이 있습니다. 130년 전부터 지어졌지만 아직도 완공을 못했는데 지금도 짓고 있고 최근에는 화재도 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성당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완공이 목표가 아니라 시작이 목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한 성도의 영혼은 성화를 통해서 놀라운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 과정에서의 의미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있습니다.
앞으로 배울 것이 많고 바뀔 부분도 많으니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의 원인과 해답을 성경적 상담 속에서 계속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방법외에는 별달리 선택할 만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하시면서 계속 힘내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