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인간이 불행한 것은 외적인 환경때문이 아닌가? 현실문제를 해결하여 불행의 요소를 모두 제거하면 인간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인간을 고통받는 존재로 규정하는가? 인간이 고통받는 존재라고 규정할 때 인간의 고통이 도데체 인간에게 무슨 유용성이 있단말인가?
답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운명을 갖고 살아감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남의 고통을 대신 느낄수 없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너무나 절실히 느끼기때문에 대부분은 자신의 고통이 남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인간은 남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잘 드러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봐서는 사람들이 무슨 고민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 파악하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남들은 다 행복해보이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생각하다보면 이런 생각때문에 실제보다 몇배로 상대적인 불행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기도 한다. 특별히 아무 문제없는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속에는 고통이 없을까?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만 없다면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한 존재인가? 그렇지않다. 인간은 근본적인 죄와 그로 인한 죽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유한한 존재이므로 스스로 죄의 고통과 사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원죄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향해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여러가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인간 스스로가 이런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이 문제해결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심리 상담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실 문제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한다고 보고 그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적인 환경이나 행동을 바꿔주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성경적 상담은 인간의 고통의 근본원인이 마음의 죄악된 욕구때문이라고 보기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피상담자의 마음이 변화되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고통가운데 여러가지 현실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나님께 나온 우리들에게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영혼의 구원을 선물해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삶의 고통이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잠시 불행의 원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가서 뒤돌아 볼 때는 영혼의 구원을 얻게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해준 값진 기회가 되었으리라...
적용) 며칠 전에 에스더 선교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였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는데도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신기해보여요"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도 인생이 참 힘든데 예수님을 믿지않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때때로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선교사님은 예수님을 모르는 인간이 결코 스스로 행복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들속에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고통이 반드시 있다고 하셨다.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인간 스스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나는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냥 행복한 삶을 살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늘 나의 고통에 대해 이상한 일 당한 것처럼 불평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TV나 잡지 광고에서 보이는 웃는 얼굴들, 행복한 가족들, 성공한 인생들속에서 대중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불행을 느끼며 광고 속 주인공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인기, 명예와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고 믿으며 이러한 행복의 조건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예외없이 삶의 여러가지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에스더 선교사님으로부터 성경적 상담을 받을 때 인간은 세상에서 고통받는 존재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반발심이 들어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오랫동안 조엘 오스틴의 설교와 책들을 읽으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축복을 받아서 무한한 자아실현을 펼치고 큰 꿈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라고 믿어왔기때문에 인간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존재라는 말이 참으로 부정적이고 초라하게 들렸다. 인간에게 고통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고통스러운 현실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런 관점으로 살아갈 때 나의 자기 중심적인 꿈을 이루는데에 방해가 되는 건강의 연약함이나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늘 극복하고 고쳐야 할 문제들로만 내게 보일뿐이었다. 내 마음 깊이에 보다 근본적인 죄의 욕구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현실 문제보다 나의 마음을 바꾸기 원하시는 분이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이라고 해서 고통없는 꽃길만 걸으며 편한 삶을 살다가 쉽게 천국에 가는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택하신 자녀이기에 고통속에서 더 연단하셔서 죄를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으로 빚어가신다. 삶속에서 고통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연단의 뜻이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성경의 인물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바울 등등이 수십년간 고난가운데 연단을 받으며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귀하게 쓰임받았던 것처럼...내가 간절히 벗어나기를 원하는 나의 삶에 여러가지 고통들을 당장 거두어가지 않으시고 허락하시는 선하신 하나님... 고통가운데서 나의 마음을 빚으셔서 하나님의 때에 고통마저도 쓸모있게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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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기본적으로 부족을 의미합니다. 그 부족은 에덴동산에서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자 했던 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심판으로 얻게된 이 세상에서의 모든 부족 속에서 반드시 하나님으로 채워야만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게 됩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을 하나님으로 채울 때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영화등에서 보면 메달같은 것을 쪼개어 나눠갖는 연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반쪽을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가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서 원래의 메달을 맞춰보았을 때 비로소 자신의 반쪽을 찾는다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빈 부분을 다른 것으로 채우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으로 채우고자 할 때에 비로소 모든 빈 부분이 맞춰집니다. 그러한 의미로 고통을 생각하시고 고통 속에서 그 빈자리를 하나님에 대한 마음으로 채워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