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서 어린 나이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다. 노예생활을 성실히 한 결과 주인집의 모든 일을 맡아 돌보는 가정총무가 되었으나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로 인해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애굽의 왕에게 범죄한 두 관리를 감옥에서 만나서 그들의 꿈을 해석해주었고 요셉의 해몽대로 한 관리는 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다른 관리는 관직을 회복하여 감옥에서 나가게 되었고 훗날 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요셉을 왕에게 추천하였다. 요셉은 아무도 풀지 못하던 왕의 꿈을 정확히 풀어줌으로써 애굽 바로왕 다음의 권력자인 애굽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7년 풍년동안 전국에서 모아들인 곡식을 잘 관리하여 그 후 닥친 7년 흉년을 지혜롭게 잘 대처하였으며 흉년에 애굽땅에 곡식을 얻기위해 찾아온 형제들과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잘 화해하여 가족들을 모두 애굽땅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인격에 대한 이해
요셉은 어린시절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억울하게 타국의 노예로 팔려가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이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기록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요셉은 늘 어느곳에 가든지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것처럼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동하였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서 범죄의 유혹에 빠져서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았다. 요셉은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스스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형편을 뛰어넘는 거시적인 안목속에서 각 사람과 민족을 인도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요셉은 어린시절 하나님이 주신 두 번의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꿈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결국에는 자신을 부모님과 형들의 머리로 세우실 것을 바라보았기에 그는 꿈과는 정반대로 펼쳐지는 현실속에서도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믿음으로 반응하는 삶을 계속적으로 살 수 있었다. 요셉 자신의 삶속에 고통은 형들을 잘못 만나서였고 또 축복은 바로를 잘 만났기 때문에 왔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한 과정속에서 허락하신 것들임을 깨닫고 내적 외적인 올바른 반응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애굽 총리가 되어 형들을 대할 때 개인적인 미움이나 복수심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땅으로 옮기려고 하셨던 하나님이 맡겨주신 총리로서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였다. 연약한 인간이라면 거듭되는 어려움 속에서 한 두번쯤은 악하게 반응할 만도 한데 요셉에 대해서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가시가 많은 나무로서의 반응을 찾아볼수 없었다. 요셉은 예수님처럼 열매가 많은 나무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구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그림자로서 우리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인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은혜에 대한 이해
역기능 가정속에서 태어나서 타국의 노예로까지 팔려가야했던 요셉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동화속 해피엔딩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의 삶의 무대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가 늘 요셉과 함께 하였음을 성경은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 39: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5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3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이처럼 요셉과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요셉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을 법한 원망과 불평, 미움과 복수심 등의 죄성을 이기고 선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해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었다. 형들과는 다르게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으며 혼자 채색옷을 입고 모두가 자기에게 절하는 꿈까지 꾸는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지 전까지는 집안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형들앞에 채색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눈치없는 어린아이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사랑만 받다가 하루 아침에 노예로 전락해버린 자신의 신세를 평생 한탄하며 왜 세상이 더이상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냐고 불평하면서 가시가 많은 나무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마음 깊숙히 하나님의 은혜가 생명수처럼 흘러들어가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한 분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하는 거룩한 욕구를 갖고 살 수가 있었기에 그는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처럼 정신적 충격, 절망과 괴로움, 미움과 복수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었다. 요셉이 어느곳으로 가든지 늘 하나님의 은혜가 때마다 새롭게 그의 심령에 부어졌기때문에 계속되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요셉은 희망의 끈은 놓지않고 자신의 삶속에서 살아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요셉의 삶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실제는 그가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기때문에 증명된 것이라기 보다는 도리어 눈에 보이는 상황에 아무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되어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속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뭔가 상황이 나아질거라고 믿으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인간 스스로의 긍정의 힘으로 버틸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절망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아무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변함없이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의 삶을 사는 것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생명수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하지 않는다면 결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난이라는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요셉이 선하게 반응하여 그의 삶속에 선순환이 계속 됨으로써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까지 미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과 결과는 한 사람의 부귀영화나 생사화복에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영혼들에게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적용
요셉처럼 고통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각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로 인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까지 미치게 될 하나님의 은혜의 넓이와 깊이가 달라짐을 생각해볼 때 내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자각과 책임감을 새삼 가져보게 된다. 고난속에서 요셉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고 바르게 살다보면 결국 애굽의 총리처럼 큰 축복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나의 삶 속에서 언제쯤 이루어질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나에게도 늘 있어왔다. 뭔가 상황이 좋아지는 듯 할때는 요셉의 이야기가 내 삶의 소망이 되는 듯 하다가도 상황속에 아무 변화가 안보이고 오히려 안좋은 일들이 겹치면 역시 나는 요셉의 팔자가 아니라서 고생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구나 절망하면서 고난속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았다. 이번 과제를 통하여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잘 이해하면 어떠한 고난에도 선하게 반응하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 선택으로 인해 은혜의 선순환 속에 계속적으로 살게 될 때 비록 상황은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해도 나의 마음속 죄성을 하나님의 은혜로서 넉넉히 이겨낼수 있다면 그 한 가지 많으로도 저에게는 큰 소망이 된다.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 자체보다는 그 상황속에서 드러나는 저의 죄성들(이기심, 미움, 원망, 분노, 절망, 슬픔, 자기연민, 자기우상, 열등감, 교만 등등)이기 때문인데 사단은 마치 모든 원인이 어떤 상황, 어떤 사람때문인 것처럼 거짓말로 나를 속임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였다. 결국 원인을 잘못 파악하였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헛수고를 반복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서 점점 멀어진 삶을 살게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셉의 삶 속에 늘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듯이 현재 나의 삶속에도 늘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고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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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그 상황을 이겨나가게 하시고 극복하게 하시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더욱 놀랍게 나타납니다. 그속에서 하나님은 반석이 되시고 산성이 되시며 도움이 되십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는 신앙인들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잘 이해하시고 지금도 그 변화를 이끌어 내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속에서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적용해 보세요. 그럴 때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실 수 있겠습니다.
다만 요셉의 가정이 역기능 가정이었다는 말은 심리학적인 표현입니다. 성경적인 표현은 죄가 있거나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이 있었다는 정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역기능 가정의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을 심리학적인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면 심리학적인 해결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역기능을 순기능으로 바꾸는 것이 성경적 상담의 목적이 아닙니다. 가정이 '기능적'(functional)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변화는 불의에서 의로, 죄에서 거룩함으로, 인간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변화되는 것이니 이러한 변화에 좀더 집중하시면 더 좋은 변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역기능이 심리학적 용어였군요 목사님...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단어들이 심리학에서 왔다니, 실생활속에 그만큼 심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거네요... 무엇보다도 이런 용어 속에 담겨있는 비성경적 가치관이 왜 잘못된 것이지 이해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로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더 좋으니까 상담의 목적이 되어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가정이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시니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는 느낌?처럼 다시 본질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성경적 상담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해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