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글
  • 접속자(383)
  • 검색
  • |
  • 로그인
  • 회원가입

[b관점해석] 단행본,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Step by Step)' 1장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

제임스 페티 James Petty

(번역: 윤홍식) 


------------------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는 방법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

제임스 C. 페티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

CCEF(기독교 상담 교육 재단)와 협력하에 기획물로 출판된 책 시리즈

시리즈 편집자  수잔 루츠


시리즈 도서들 

에드워드 T. 웰치,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사람을 두려워하라 ,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압박감과 공의존증 그리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

폴 데이비드 트립, 위기의 십대 기회의 십대, 십대 자녀들을 양육하는 성경적인 지침서

에드워드 T. 웰치, 내책임인가 뇌책임인가, 우리 몸의 생화학적 불균형과 정신이상, 그리고 반항심에 대한 상담학적 논의

제임스 C. 패티,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는 방법 

폴 데이비드 트립, 영혼을 살리는 말 영혼을 죽이는 말, 대화속에 나타나는 갈등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되는 길

에드워드 T. 웰치, 어떻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악의 향연속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의 소망을 발견하는 방법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는 방법

제임스 C. 패티


P & R Publishing




우리 주님을 지혜의 근본이신 분으로 경외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코넬리우스 반틸 박사님께 이책을 바칩니다.



목차

서문
감사의 글

1부 인도하심의 약속

1.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2.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에 대한 세 가지 관점
3. 인도하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

2부 인도하심에 대한 이해

4.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계획
5.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
6.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개별적인 뜻 
7. 인도하심과 그리스도인의 자유의지

3부 인도하심에 대한 경험

8.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지혜
9. 인도하심을 경험하기
10. 섭리, 인도하심의 보이지 않는 손 
11. 지혜롭게 되는 방법

4부 인도하심을 따르는 방법, 성경적인 결정의 일곱 가지 요소들

12. 헌신 (Consecration)
13. 지식 (Information)
14. 간구 (Supplication)
15. 자문 (Consultation)
16. 묵상 (Meditation)
17. 결정 (Decision)
18. 소망 (Expectation)

부록: 자신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도표 (The AMP Worksheet)

참고문헌 


 
서문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다고 가정하고 그분께 이런 질문을 드린다면 그분은 뭐라고 말씀하실까? 주님은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참고, 요 15:1~17) 또한 이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서 이와 비슷한  대답을 제시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그렇다면 요점은 이렇다. 어느 한계까지는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그리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시중에 나와있는 복음주의적인 책들은 약 30여권 이나  있다(그리고 이 책으로 한 권 더 추가되었다). 이렇게 책이 많이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관한 성경 말씀이 실제적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기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알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할 지 말 지를 결정하는 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어떤 학교를 가야할 지 그리고 어떤 직장에 들어갈 지에 대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심각한 다툼이나 가정의 복잡하게 꼬인 일들 속에서, 그리고 교회의 여러가지 문제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이러한 책을 정말 써야만 하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향배를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러한 고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좀더 세밀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더 사소한 문제들로 이같은 고민을 한다. 지금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글쓰기를 잠깐 멈추고 점심을 먹을까 말까? 책을 쓸 때 서두를 어떻게 시작해야 독자들이 이 책을 계속 읽게 할 수 있을까? 점심을 먹는다면 그냥 사먹을까, 아니면 돈을 아끼기 위해서 직접 만들어서 먹을까? 이처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성경의 제일 큰 계명과 여러 가지 소소한 결정들 사이를 연계시키는 하나님의 뜻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뜻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그냥 포기해 버린다. 그 대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 그런 사람들은 기드온이 받았던  ‘양털’의 표적이나 베드로가 받았던 ‘옥문이 열리는 것’과 같은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을 지정받기를 원하거나 또는 감정적인 마음의 평안이나 귀에 들리는 환상속의 음성, 그리고 심지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조차 없는 신비한 음성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구하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영적 감화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교역자, 교회의 연륜많으신 어른들, 혹은 예언자나 ‘은사’가 있는 특별한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래도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 시도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하신 방법으로 보여주신 제비를 뽑는 일이나 발람 선지자의 말하는 당나귀와 같은 매우 특별하고 초자연적인 방법에 비하면 약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중에서 어떤 방법이 옳은 것인가?
최근에 나는 한 친구와 함께 이 책을 쓰는 것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우선적으로 알고 싶었던 것은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실제로 들려지는 음성을 듣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어떤 유명한 선교사들도 그같은 음성을 들은 적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그 친구는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교사로 부르신다면 그러한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 친구는 그의 삶에 이런 종류의 인도함을 요구해야만 할 지 아니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까지도 하나님은 그에게 그런 식의 부르심을 주지 않으셨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동일하거나 혹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이같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오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세상에 왔나이다”라는 말씀에 동감한다. 하지만 과연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확신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쓰게된 이유이다. 이 책이 비록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나타내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신실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과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러한 인도하심을 주실 때에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단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위로부터 내리는 신령한 지혜를 주시는 분이 아니다. 물론 어떤 성공은 특별한 신앙 성숙과정의 부산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공 그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그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이) 단지 뭔가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사실 우리의 ‘신’이 되어버리고 그것은 우리의 충성과 신뢰를 가로채기 위해서 참된 신이신 하나님과 경쟁하게 된다. 그 목표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가족, 사역, 결혼, 교육,혹은 직장에 관한 것들), 야고보서 4장 4절은 그것을 ‘세상의 벗된 것’이라고 하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동기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는 것이고 그분을 즐거워하며 섬기는 것이라면 주님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시편의 말씀과도 같이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대해서 말한 것이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나타내려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의 신실한 성도들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동안 그러한 자들은 현재 우리의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올바른 신학적인 진리의 근간을 세우고 검증해왔다. 섭리나 계시, 영감 그리고 영적조명 등과 같은  성경적인 교리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신학적인 면에서 연약한 이 세대의 여러 고민들에 대한 대답들을 제시해 준다. 초대교회 이후의 성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왔다. 그들은 성경말씀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질문했고 또한 성경 속에서 그 답을 찾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신학의 의미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자 할 때에 하고자 하는 일이다.
앞으로 우리는 인도함에 관하여 성경에 나타난 예와 실생활의 사례들을 모두 살펴볼 것이지만 우선적인 초점은 이 주제에 대해서 성경에서 실제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1부와 2부, 3부에서는 인도하심에 관한 신학을 살펴볼 것이고 4부에서는 그 원리들을 어떻게 실제 삶의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연구를 다룰 것이다. 이 사례연구에서는 내가 상담자로서 경험했던 인도하심에 관한 많은 복잡한 질문들을 소개하였다.
부록의 내용은 시간관리와 우선순위의 문제에 대한 인도하심에 관련되는 실제활동들과 여러 자료들을 담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대답을 해주는 것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지혜 속에서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법을 배울 때에 바로 당신이 찾고 있던 인도하심을 얻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이 당신에게 격려가 되어서 모든 지혜와 인도하심의 근본이자 근원이 되시는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구체적으로 인도하는 도구가 되기를 기대한다(골 2:2).  또한 이 책은  당신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과정에 대하여 혹시 가지고 있을 지 모르는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을 얻게 되고 그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더 큰 신뢰를 갖게 되기 위해 쓰여졌다.
내 자신이 그러한 고민들을 가지고 직접 씨름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유한한 피조물에 대한 무한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이해의 한계를 절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종종 신학적인 인도하심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러한 한계에 부딪치곤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작정하심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 등이다.  나는 우리가 그러한 관계나 혹은 그와 비슷한 다른 문제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우리는 진정한 신이신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온 우주에 대한 그분의 다스리심을 이해하려고 할 때에 그런 어리석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내가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도 이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어리석은 목표를 갖게 되면 어떤 잘 짜여진 성경적인 공식을 무리하게 구하고자 하는 커다란 유혹에 빠져서 결국에는 우리의 관점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의 구절들은 무시해 버리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그것은 오직 지성만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미묘한 변종이 되고 만다. 누군가 일전에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고 우리도 역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신을 창조해 낸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같은 어리석음에서 구원해 내시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부족을 겸허히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특히 이렇게 어렵고 논란이 많은 부분을 다룰 때에 겸손히 배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바라건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강조하는 것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왜곡의 함정이나 또는 성경의 어떤 한 부분에 대해 경시하는 잘못된 풍조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시기를 기원한다.
또한 인간에게 나타나신 그토록 역동적이면서 무한하신 그분 자신의 계시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 놀라움을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21세기의 모든 위대한 발견보다도 더욱 더 위대하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 변화무쌍한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이 되도록 준비시키시면서 그분의 교회에 찬란한 빛을 비추어주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성경말씀을 통해 교회가 계속 성령이 이끄시는 삶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그 길을 따르는 일에 대한 신학을 더욱 분명하게 배우고자 그리스도의 발앞에 앉아 끊임없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감사의 글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몇몇 중요한 요점들에 관련해서 어떤 구체적인 관점이나 입장에 대해서는 다소 오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대개 그런 경우 지금까지 나는 성도의 연합과 사랑을 위해서 그런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을 아예 언급하지 않곤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최초 형태는 목회학 박사 학위를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학 대학원에 논문으로 제출된 것이었다.  그 학위논문에는 여러 저자들에 의해 수립된  관점들에 관하여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완벽한 주석을 담은 참고문헌을 실어놓았다. 그래서 어떤 전혀 다른 견해라도 더 상세하게 (그럼으로써 더 명확하게) 다루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경우이거나 혹은 구체적인 부분을 인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저자를 분명히 명시하였다. 이들 저자들은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고 있다. 나도 비록 접근법에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꺼이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고 받아들인다. 또한 고백하건대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였다.
먼저 CCEF(기독교 상담 교육 재단)의 동료인 에드 웰치와 수잔 루츠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의 격려와 제안, 그리고 수잔의 정성어린 편집은 이 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 아내 마샤 페티에 대해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녀의 격려와 내조, 그리고 지난 2년동안 다양한 형태로 되어있던 이 작업을 읽어주며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었던 것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전 교인들, 가족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을 글로 쓸 수 있도록 힘을 주었던 나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부 인도하심의 약속

1장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갑자기 분명하고도 명확한 음성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잠깐 멈추어 서라. 지금 네 뒤에서 걸어오는 저 소년이 너에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리고 저 애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해주어라.” 그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잘 포장된 인도 위를 걸으며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로 그 때 이와 같은 분명한 생각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 소년과는 약 100미터정도 거리가 있었는데 처음에 나는 그같은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죄책감이 들어서 더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다. 결국 몸을 숙이고 신발의 끈을 묶는 체 하면서 그 애를 기다렸다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못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15분 후에 그 소년은 나와 함께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는 기도를 드렸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하심을 받았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아아, 나는 정말 구원을 받은 사람이구나!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기쁨에 겨워서 앞으로도 주님의 ‘증인’이 되겠다는 사명감에 충만해졌고 심지어 내 허리띠에 십자가 표시까지 해 넣었다. 나는 영적으로 암울했던 고등학교 시절동안에도 이전의 그 사건 때 얻었던 평안을 계속 간직하며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시기를’ 기다렸다. 급기야는 대략 5,6년 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듣는 것이 그분과의 의미있는 관계가 지속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횟수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내 기대가 너무 지나쳤는가? 아니면 너무 부족했는가? 혹시 나는 나와 계속적으로 교제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원하심을 그냥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같은 의문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 본다.
정말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가? 정말로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을 통해서가 아니면 알지 못했을 앞으로의 방향과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계시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가? 또한 나는 어떻게 주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누릴 수 있는가?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이 책에서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들이다.


도서관인가 아니면 조종석인가?

우리는 성경의 내용 속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아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문제들을 영적이거나 신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찾는 대답들은 근본적으로 삶속에서 실제로 내리는 결정들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도하심을 찾고자 할 때에는 도서관 서가에 앉아서 여러 책을 살펴보면서 인생의 심각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과 같지는 않다. 그보다 우리는 승객을 가득 태운 항공기를 조종하면서 착륙지점을 찾고 있는 조종사와 더 비슷할 것이다. 그 조종사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에게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비행기의 위치와 날씨, 가시거리, 그리고 그 지역의 기상상태에 대한 최신의 정보이다. 그런데 관제탑과의 교신이 불가능하거나 언제 개통될 지도 모르고  게다가 명확하게 들리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단순히 불안해 지는 것 그 이상이다. 바로 끔찍한 공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이렇게 비행중인 조종사와 같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역시 수많은 일들이 다 망쳐질 수도 있다. 우리의 인간관계, 직장, 건강, 그리고 안전이 그저 하나의 나쁜 결정 때문에 다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서 어떤 결정으로 인해 삶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우리는 동네 불량배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그 결정이 오늘날에는 갈등과 마찰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행동패턴이 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남녀에게는 한번 만났던 상대와 계속적인 만남을 가져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될 수 있다. 약간 신경이 쓰이는 사소한 몸의 이상에 대해서 병원에 가봐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생사를 좌우하는 결정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당신의 상관에게는 잘못된 일이거나 혹은 그의 생각을 어기는 것이 되었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사람과 옳고 그름을 따져야만 할까?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어쩌면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당신의 아들이 동성애를 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때 그 문제를 다 밝혀내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가 아니면 그냥 덮어 두어야 하는가? 그런 종류의 질문들에 대해서 분명한 것은 한번 엎질러진 물은 결코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당신은 지금 당장 돈은 없지만 신용카드를 사용해서라도 다 낡은 가전제품을 버리고 새 것을 사려고 하는가, 아니면 돈을 모았다가 현금으로 사려고 하는가?  어쩌면 당신은 경제생활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순간의 실수로 파산지경에 처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직장선택에 있어서 더 보수가 많고 편안한 일자리를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신의 일생일대의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어서 결국 중압감에 못이겨 자포자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종류의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도하심이 정말 가능하다는 것도 모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인생 속에서 우리는 추락해 버릴 수도 있는 수많은 위험들을 만나기도 하고 너무나 귀중한 기회들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최대한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산업사회에 이르기 전까지 인도하심에 관한 대부분의 기독교 저작물들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인도하심에 대해서 강조하였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도하심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성 요한(1542-91, 역주: 스페인의 그리스도교 사제로서 신비주의자였고 시인이자 신학자였다. 스페인 수도원운동을 개혁하였고 명상수도회로서 나중에 카르멜 신부회가 된 '맨발의 카르멜회'(Discalced Carmelites)의 공동설립자가 되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1090-1153, 역주: 프랑스 시토 수도회의 수사로서 신비주의자였고  클레르보 대수도원 설립자 및 대수도원장까지 지냈던 그 당시 가장 영향력있던 개혁자, 설교자, 저작가였다), 페늘롱(Francois Fenelon, 1651-1715, 역주: 프랑스의 성직자, 사상가, 문학가로서 그의 저작은 우아하고 섬세한 문체로 고전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꼽혔고 계몽사상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리처드 롤(Richard Rolle, 1290-1349, 역주: 잉글랜드 출신 사제로서  라틴어와 지방언어로 신앙적인 글을 쓴 최초의 당대 최고의 작가였고 신비적인 저술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외 다른 저술가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본성을 경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문제(나는 누구와 결혼해야 할 것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하며 내 인생을 보내야 하는가?)를 글로 담아내었던 많은 신앙저술가들은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다. 결혼은 대개 가족과 공동체의 주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직업에의 기회는 대부분 그 부모의 전례에 따라 좌지우지되었다. 급격한 신분상승에 대한 가능성은 실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커다란 결정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헌신으로서 수도원이나 수녀원과 같은 영적인 훈련과정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일반세상에 남아서 종교적인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지원할 것인가였을 뿐이었다.
나는 오늘날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받는 일에 대한 무관심이 도리어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매우 많은 의문들로 변하여 나타났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의 성도들이 했던 일들도 알지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보게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인도하심이란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바램에 대해서 더 많은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훨씬 더 그리스도의 형상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일상생활의 많은 결정들을 지혜롭게 내릴 수 있다.


1분의 결정 
 
그리고 결정을 내리는 속도도 현재와 같이 산업화되고 정보화된 서구사회 속에서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지금은 1분마다 새로운 결정이 내려지는 시대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요즈음 새로  결혼한 부부는 향후 몇년 내에 1600년대의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을 선택들에 대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기 그 예들이 있다.
-우리는 아이를 몇이나 낳아야 할까?
-언제 그 아이들을 가져야 할까?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까, 분유를 먹일까?
-입양을 하면 어떨까?
-우리가 모두 맞벌이로 살아야 할까?
-남편이(혹은 아내가) 저지른 부정에 대해서 이혼해버릴까, 아니면 그냥 살까?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낼까, 사립학교에 보낼까, 아니면 기독교학교에 보낼까?
-아이들이 음악이나 운동이나 컴퓨터를 배울 때 얼마나 강압적으로 하게 해야 할까?
-어떤 교회나 혹은 주일학교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얼마나 서로의 성격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시 직업을 바꾸어야 할까?
-아이들의 교육비로 얼마나 지출을 해야 할까?
-집을 구입하고 학교에 보내고 차를 사는 등의 특별한 지출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빚을 져야 할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실업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떤 계획을 세워두어야 할까?
-자동차보험, 생명보험, 그리고 건강보험 등은 얼마를 들어놓아야 할까?
-은퇴이후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야 할까?
-연금보험에는 얼마를 들어놓아야 할까?

이러한 질문들 이외에도 다른 고민들은 결혼이후 10년 혹은 12년 동안의 기간내에 직면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들은 거의 매일 또다시 내려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고민들에 아울러 각각의 문제들이 내포하고 있는 우선순위를 조절해야하는 일이 뒤따른다. 삶의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것은 오직 그에 따라 필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도 더욱 많아지게 만들고 있다.


직업환경에서의 변화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단지 결혼관계에서나 가정생활에서만 경험하는 일은 아니다. 직업환경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다. 노동시장은 전후 산업사회의 부흥기에서 전세계적인 경쟁체제인 정보화 시대로의 변화로 인해 급격한 구조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전통적인 기간산업이(철강, 자재, 전기, 등등)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미국의 생산업계에서는 1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일자리들의 대부분이 대형회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기업경쟁은 그저 단지 큰 회사들을 위협할 정도로만 그치고 있지 않다. 당신은 인터넷에서 음반이나 유명 브랜드 신발이나 혹은 전자제품을 더 값싼 가격에 사기 위해서 온 세계를 다 뒤질 수 있다. 게다가 그 모든 일을 하는 데에는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것보다도 시간이 짧게 걸린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가 가져다 주는 경쟁체제와 변화로부터 안전한 사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변화의 한 가운데에 있는 우리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듯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텅빈 지갑

또한 변화무쌍한 직업환경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수입의 분배방식에 있어서의 구조적인 변화이다. 직장을 가진 미국인들은 그들이 앞으로 중산층에도 못미치게 되면 경험하게 될 구매력의 실제적인 감소를 두려워하고 있다. 경제잡지인 ‘이코노미스트’ 는 1968년 이후 일정한 세대가구를 추적조사한 미시간 대학의 연구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그 연구는 1980년이 되기 전에 21세가 된 미국 백인 남성들의 65퍼센트가 30세가 되어서는 중산층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1980년 이후에 21세가 된 사람들 중 오직 47퍼센트만이 30세가 되었을 때에 중산층에 도달하였다. 특히 흑인 남성의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는 통계는 1980년 이전에 21세가 된 뒤 30세때 중산층에 이른 사람들이 29퍼센트이고 1980년 이후에 21세가 된 사람들은 19퍼센트였다( The Economist, February 24, 1996, 30).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뉴욕 대학의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울프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는 1979년도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사람들이 전국의 재산의 2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1992년에는 상위 1퍼센트의 인구가 42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울프가 연금과 퇴직금 수익을 계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만약 했더라면 통계수치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매우 충격적이다. 미국의 경제적인 급부가 더욱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중산층이 그 유익을 나누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하류층에 대한 경제적 통계는 더더욱 끔찍하다.
이와같은 심각성은 소득규모가 축소된 이후에(실직한 이후에) 다시 직장을 얻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삶속에서 날마다 펼쳐지고 있다. 오늘날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는 일반적인 미국 근로자는 약 20퍼센트의 급료가 삭감되고 있다(The Economist, 1996.2.24, p.31) 그리고 직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정보화 시대에서 필요한 특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한 기술은 대개 교육을 통해서 취득되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 교육비용은 물가상승율보다도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잠재적인 학습대상자들은 현재의 교육의  가치가 장래의 급료수준에 대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빚을 지면서까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러한 모든 이유들로 인해서 우리는 자신들의 직장에 대해서 실직위기나 혹은 끊임없는 불안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가족 혹은 교수님으로부터 적절한 진로지도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개는 겉으로만 그럴 뿐이지 사실 우리는 숨가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한번도 검증되어지지 않았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미완의 계획을 끊임없이 추구할 뿐인 것이다.


선과 악을 구별하기

그런데 여기에는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사실 그 문제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인도함의 부재라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것은 ‘소돔’(역주: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죄악이 가득차서 하나님의 불과 유황의 심판을 받은 도시)에서 유래되었는데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돔과 고모라’라는 가치 혼돈의 상태를 극복할 방법을 고안할 수 있기도 하지만 분명 이러한 혼란의 상황은 이 시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전 시대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 속에서 선과 악이 분명했던 가치관은 현대의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는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대신 프란시스 쉐퍼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가장 우선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평안과 풍요를 추구하는 전적인 개인주의만이 있을 뿐이다.
요즈음 대학의 신입생들은 대개 자신이 이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지 혹은 동성애자인지를 어떻게 구별하는가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고 있다. 그들은 ‘성적 성향’이란 개인적인 문제이고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는 교육을 받는다. 윤리학이나 종교학 분야에서도 필수과목 대신에 오늘날 많은 대학들이 ‘종교다원주의’에 근거한 선택 과목들을 다양하게 개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목들은 실제로는 ‘상대주의’에 입각한 과목이다. 상대주의는 도덕적으로 하나의 온전한 체계를 이루고 있는 완성된 가치관의 개념을 다시 해체한다. 그리고 도덕은 단순히 외부환경에 대한 한 사람의 개인적인 심리적 반응정도로 치부된다. 죄의식도 그저 심리적인 변화이고 도덕적인 선도 역시 심리적인 현상일뿐이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으로부터 내려온 행동적이며 감성적인 유산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전 세대의 기독교 윤리적인 의미심장한 단어들은 (공의, 사랑, 인내, 자유, 절제, 평안, 평화 등등) 이제는 매일 텔레비젼에 방영되면서 마치 미국의 이교도같은 전체주의적 성향의 정당이나 외국의 비상식적인 국가와 같은 그룹의 선전문구들을 강화하는 데 더 사용되고 있다. 또한 그 개념들 속에 있던 어떤 신성한 의미와 진실하며 도덕적인 설득력도 완전히 배제되어 버렸다. 그 대신 자신들의 주장을 더욱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쓰여질 뿐이다. 그 결과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삶의 영역과 방향에 대해서 이 사회의 축적된 지혜의 유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진정 이전의 가치관은 아무런 유익이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기독교 역사의 역동성뿐이다. 우리의 문화는 마치 극심한 안개 속에서도 항구에 있는 등대를 바라보며 꾸준히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19세기의 선박과 같다. 선장은 나아가야 할 대체적인 방향은 알고 있지만 세세하게 그 경로를 파악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다. 그가 전혀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는 시간이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바람과 파도 그리고 암울한 상황에 의해 야기되는 복합적인 실수도 더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19세기 사람들도 역시 오늘날 우리처럼 죄많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같은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한 도덕적 범주들을 유지하는데 애를 썼다. 20세기 도덕은 전혀 남을 비난하거나 혹은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사실 도덕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도덕적인 면에서 마치 한치도 보이지않는 안개구름 속에 갇혀버린 셈이지만 이런 상황은 19세기 사람들에게는 퇴폐적이었던 지식인층을 제외하고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우리 문화는 신성함에서 출발하여 가족과 결혼,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도덕 규범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한 관계성들과 구조적인 측면들은 오직 생물학적이면서 사회학적인 진화의 산물인 것 처럼 그려진다. 그것들은 단지 각 개인의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안에 본질적인 가치나 초월적인 정당성 등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무지함은 이 시대의 높은 이혼율과 범죄로 인한 구속율, 증가되는 가정 폭력, 그리고 결혼과 가정의 의미에 대한 가치혼란상태가 높아져가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만약 삶의 인도함이 어떤 지혜에 근거하여 주어지는데 그 지혜가 삶에 대한 참된 가치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문화 속에서 비록 그 거대한 기술중심적인 엄청난 정보량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인도함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사회는 오직 약삭빠르게 자기 유익을 추구하며 자기존중감에 충실하여 스스로를 위한 능력을 얻기 위한 방법만을 제공할 뿐이다. 예를 들어 ‘한번 더 생각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Think and Grow Rich, Hill 1960)와 같은 자기개발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책들은 이 시대에 널리 읽히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책들은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시대에서 오직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구를 충족하기

지금까지의 살펴본 사회적인 상황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전체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인도하심을 주시는 은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혼란에 빠져있고 인생의 방향을 상실한 많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태초의 시작을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참되시고 살아계신 분이시며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을 기꺼이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왕 다윗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선한 분으로 나타나신다. 이에 대해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편 139:9-10)

이와같은 약속은 꿈이 사라지고 절망 외에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하는 현대의 문화에 대해서 교회가 안내자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시해준다.
인도함에 대한 필요성은 인기있는 기독교 서적들 속에서 적극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목사들은 설교시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주제로 자주 설교하기도 한다. 또한 인터발시티 주최로 열리는 도시선교대회(InterVarsity’s Urbana Missions Convention)과 같은 집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기 위해서 열리는 행사이다. 목회상담자들은 심각한 위기상황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삶의 문제들도 상담해주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이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주제에 관한 35권의 기독교 서적을 살펴보았다. 이 책들에 대해서 자세한 주해를 곁들인 참고문헌목록은 펜실바니아 글렌사이드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 제출된 학위논문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의 기독교 지도자들로부터 전해지는 메세지를 접하는 것이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인도함을 가장 간절히 바라는 그때에 이러한 기독교 저자들이나 지도자들은 때때로 가장 중요한 요점에 있어서 서로 논리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들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면서(몇몇 저자들은 예외이지만) 전혀 신학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즉 그들의 저서에서는 성경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하라고 하거나 더 큰 신학적 원리들에 대한 심층적인 관계성을 살펴보라는 말이 없다. 우리에게는 이야기들과 비유들과 참고할 만한 성경구절이 주어지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신학적 깨달음은 적거나 아니면 아예 없다. 그들의 책은 대부분 저자의 결론만을 제시해주고는 그것으로 끝나 버린다.
하지만 올바른 의미의 목회적인 방향제시를 할 수 있는 곳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곳은 성경에 대한 깊은 연구가 일어나는 곳이다. 그러나 내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연구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고 혹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책으로 표현되어서 독자들에게 전달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인도하심에 관해 저술된 책들의 저자들이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조차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의료윤리나 교회와 정부의 관계, 정경성 문제, 교회지도력의 중요성, 그리고 세계빈곤문제 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해왔다. 하지만 진정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것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귀로 들을 수 있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이 옳은 것이 아니냐고 내게 물었던 친구 역시 바로 인도하심 그 자체를 정말로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는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사용하기 보다는 진정한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서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더 큰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닌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역시 문제가 생겨난다. 만약 하나님께서 실제로 말씀하신다면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부담감 역시 더욱 커진다. 또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를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게 될 것이다.
나의 추구하는 목적은 당신이 조직신학적인 성경적 관점으로 인도하심이라는 주제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책을 통해서 당신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의 인도하심을 받는가에 대해서 확신에 찬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한다. 그리하여 당신이 확신에 차서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당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자세히 설명해보라.

2. 그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마음 속에 떠올랐던 어떤 성경구절이 있었는가?

3. 당신은 인도하심이란 우리 삶에 대한 그분의 구체적인 계획의 일부나 혹은 전체적인 방향에 관하여 보여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는가?

4. 그러한 가르침에 관해서 어떤 성경구절을 근거로 삼을 수 있겠는가?

5. 당신은 이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던 적이 있었는가?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1.상담챠트
2.신체문제
3.정신구조
4.마음이해
5.변화과정

상담시리즈 현장실시간 학차신청 세미나

필독서1
필독서2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공지]
구글 검색: 성경적 상담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2-19 0 73
[공지]
논문분석목록 3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5-02 1 215
[공지]
성경적 상담 문헌검색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1-23 0 109
[공지]
구글 학술검색: "westminster biblical counseling ccef"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0-04 9 1300
[공지]
국회전자도서관: 성경적 상담 검색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0-01 9 2071
766 전통주의
Ten minutes together with God, Jan David stoop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17 9532
765 심리학
내과 의사가 알아야 할 신경안정제와 정신과 약물의 A-Z -항불안제 및 항우울제를 중심으로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1-08 12 5090
764 전통주의
메인아이디어, 잠언편, 디모데출판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1-23 14 4347
763 전통주의
*매일 행복한 부부 - 10분 묵상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4 13 3160
762 [기관]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SBTS) D.Min 과정안내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01 3 3058
761 [기관]
논문 프로포잘 작성방법에 관한 조언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07 9 2889
760 [기관]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SBTS) 성경적 상담학 과정안…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01 4 2856
759 c도덕해석
피스메이커(켄 산데, 202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1-25 15 2776
758 심리학
NLP란 무엇인가? 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2-19 4 2765
757 [공지]
구글 학술검색: 성경적 상담 검색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8-23 11 2737
756 전통주의
Proberbs, Holman commentary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13 2610
755 4조직유형
영혼을 살리는 말, 영혼을 죽이는 말 요약정리 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01 1 2587
754 b관점해석
When God weeps, Joni Eareckson Tada & Steven Estes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15 2572
753 심리학
심리학적 상담에 대한 이해 (200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24 5 2497
752 4조직유형
성경적 상담이란 무엇인가? by 김순성교수(고신대)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0 4 2347
751 심리학
교류분석(박용민) 안내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01 4 2114
750 [기관]
SBTS 성경적 상담학(BIBLICAL COUNSELING) D.Min. 프로그램 안내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0 3 2095
749 심리학
교류분석(TA) 지도자 과정 1단계 by 박용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0 4 2053
748 f통찰해석
Age of Opportunity 초벌번역본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0 1 2022
747 4조직유형
영혼을 살리는 말, 영혼을 죽이는 말 요약정리 2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24 4 2002
746 통합주의
When You Shouldn’t Do What You Want to Do'(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말아야 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2-29 5 2000
745 c도덕해석
단행본, 위기의 십대 기회의 십대(Age of Opportunity) 서문, 1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7-03 5 1972
744 f통찰해석
When People Are Big and God Is Small, 초벌 번역본 / Ed Welch 1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4 1902
743 d극본해석
상담전도법 논문프로포잘 2003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1 1866
742 [기관]
상담학 논문 프로포잘 작성법, 강의필기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4 1836
741 심리학
더 행복해지는 부부 대화법, (TA심리학에 근거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24 5 1835
b관점해석
단행본,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Step by Step)' 1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7-03 3 1825
739 심리학
‘레노바레 영성주제 성경(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 서문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01 2 1822
738 f통찰해석
서평, '위기의 십대, 기회의 십대’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12-14 4 1800
737 [기관]
성경적 상담학 박사 논문작성시 조언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03 3 1787
736 f통찰해석
단행본, '영혼을 살리는 말 영혼을 죽이는 말(War of Words)' 1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7-03 5 1783
735 [기관]
웨스트민스터, 성경적 상담학 종합시험답안, 샤론 사례분석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2 1719
734 통합주의
Validating the Effectiveness of a forgiveness Intervention p…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24 4 1718
733 [기관]
2003 WTS 성경적 상담학 졸업시험 예상문제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2 1713
732 심리학
찬양사역자 마이클 W 스미스의 '표적(sign)' 1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9-01 2 1644
731 f통찰해석
When People are big, God is small (당신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2장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12-14 4 1620
730 f통찰해석
단행본, "영혼을 살리는 말" 2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12-14 3 1587
729 a적용해석
Parenting A Model for Biblical Counseling / Dr. Welch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0 2 1584
728 [기관]
2003년도 웨스트민스터 성경적상담학 종합시험문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2 1534
727 b관점해석
Age of Opportunity 소감문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0 2 1478
726 통합주의
연구논문 : 청소년의 학업성취도가 열등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상담학적 연구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0-27 10 1451
725 통합주의
성경적 상담의 미래   드루시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0-27 5 1446
724 혁신주의
성경적 상담을 활용한 기독교 부모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및 효과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3-07 11 1416
723 e분석해석
Blame It on the Brain / Ed Welch (번역본)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7-02 1 1406
722 통합주의
When You Shouldn’t Do What You Want to Do: Young Children’s … 1 원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1-20 5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