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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통찰해석] 단행본, "영혼을 살리는 말" 2장

2장  사탄의 말

“뱀이 여자에게 가로되...”(창세기 3:1)

그 날은 상쾌하게 시작되었다. 날씨는 바랬던 대로 아주 쾌적한 날씨였다. 마침내 모두 함께 기다리던 가족 나들이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날을 기다려 왔었다. 우리는 두 시간 정도 후에는 계획한 나들이를 위해 출발할 예정이었고, 나는 그 동안 책을 좀 읽고 있었다. 그런데 사춘기에 막 들어선 첫 딸과 막내 꼬마아들이 전에 없이 심하게 서로 다투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주고 받는 말다툼이 점점 더 격해지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들의 다투는 소리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나는 꾹 참으면서 그들의 싸움을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속으로 ‘오늘은 저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오늘은 좀 쉬고 싶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아내가 저 아이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자 짜증이 났다. ‘도대체 아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그리고 나서 아들이 뒤쫓아오는 누나를 피해 욕실로 도망갔다. 그들은 문을 사이에 두고 있는 힘을 다해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고 있었고, 드디어 나는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것은 부모로서의 성령의 열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스스로의 감정의 폭발로 인한 것이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원하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내가 그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모른단 말인가? 오늘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지금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이 아이들은 보지 못했단 말인가? 도대체 이런 일들 하나 자기네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 하루 기분을 망가뜨린단 말인가? 큰 애는 작은 애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데, 왜 동생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단 말인가? 왜 그렇게 너그럽지 못하고 동생한테 잘 대해 주지 못하는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현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나는 먼저 큰 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아빠가 얼마나 마음이 상해있는지, 이런 일로 얼마나 아빠의 하루를 망가뜨리는지, 왜 전혀 아빠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지 등등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나는 큰 딸에게 “나는 정말로 성실히 너를 위해서 일해 왔는데 이것이 네가 갚는 은혜이냐, 왜 이렇게 아직도 철이 없느냐?”는 식의 말을 한 것이다. 내 말은 책망조였으며 거칠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그 말들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일들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었고, 내가 원하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동안, 큰 딸아이는 계속해서 말해댔다. “하지만 아빠, 아빠는 절 이해를 못하세요”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그애를 이해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방을 나오면서 다시 독서를 하기 위해 소파 위에 털썩 앉았다. 하지만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양심은 내가 지금 한 일로 인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스스로를 아무리 정당화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스스로를 정죄하는 양심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곧 이어서 깊은 후회와 자책으로 변하였다. 언제쯤에서야 나는 실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바르게 깨닫고 이런 식의 잘못된 대화를 하지 않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용서와 도움을 구하는 회개 기도를 드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정말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자는 바로 나였던 것이다. 얼마 후 기도를 마치고 나서, 나는 딸아이의 방으로 가서 그 아이의 용서를 빌었다. 


잃어버린 낙원

만약 우리가 정말 솔직해진다면, 우리 인간은 더 이상 창세기 1장의 그 놀라운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곳은 말하여진 모든 말이 하나님의 기준과 계획에 일치하는 놀라운 곳이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창세기를 읽는 이유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 이유가 바로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에덴 동산에서는 말로 인한 죄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그 순전한 인간의 대화가 그렇게 죄와 다툼의 이유가 되고 말았을까? 왜 오늘날의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말하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는가?
우리가 대화에 대한 이해를 성경적으로 더 발전시키고자 할 때, 창세기 1장의 그 아름다운 모습만 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과 인간이 말한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긴 하였지만, 에덴 동산 안에는 또 다른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들려진 음성은 우리가 지금 날마다 싸우고 있는 말의 영적 전쟁 중에서 가장 격렬한 싸움을 촉발시켰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1-11)

에덴동산의 그 완벽한 세계속으로 사탄의 음성이 들어온 것이다. 이제 최초로, 하나님의 말씀의 위치와 권위는 도전받게 되었다. 그리고 최초로 인간의 말은 하나님의 기준과 계획에 맞지 않게 말하여졌다. 사탄은 말하였고, 또한 그의 말로 인해 순전하였던 인간의 언어는 죄와 다툼의 혼란스러운 각축장으로 변하였다. 말로 인한 우리들의 모든 다툼은 바로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에덴동산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다. 인간의 언어 생활속에 존재하는 많은 다툼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가장 먼저’ 이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비극적인 변화, 지속되는 싸움

이제 최초로 하나님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다. 이전까지 지구상에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는 말이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던 세계는 그분의 권위와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상태로 존재해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지구상에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분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 그리고 그분의 보내신 상주하는 관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순종하며 살아왔었다.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모든 반응과 서로간의 대화는 하나님께 대한 결코 변함없는 충성을 보였었다. 하지만 뱀이 무엇인가를 말한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은 너무나 비극적이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이 말하여진 것이다! 세계는 이제 결코 이전과 동일한 충성스러운 모습이 되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만약 우리의 모든 말이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에서 행하여진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겠는가 생각해 보라! 우리의 삶은 얼마나 순전한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서로가 대화를 나눌 때 경험하는 많은 문제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서부터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때에, 말하고 싶은 방법대로 말할 뿐인 것이다. 마치 그럴 위치에 있으며,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있는 자처럼 말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얻기위해 말을 한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사소한 말에서도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분의 피조물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며 말을 한다. 내가 내 딸에게 말했던 방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마치 하나님처럼 딸 아이의 방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모습은 전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고, 내 삶과 딸의 삶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고자하는 진심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많은 음성들, 많은 해석들

에덴동산에서 뱀의 음성이 들려진 그 순간에 가장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과 다른 삶의 해석을 듣게 된다. 사탄이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라. 그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나님께서 해석하여 주신 진실들과 유사해 보이지만 나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심각한 혼란을 주고 있다. 만약 사탄의 해석이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을 따르는 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선하거나 옳은 일이 아니며,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하와는 만약 뱀의 말이 맞다면, 하나님께 계속 순종하는 일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지구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삶의 해석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던 모든 것은 오직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해석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삶에 대해 많은 해석들이 존재하는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 중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분의 말씀과 배치되는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려고 한다. 이러한 점은 매우 중요한 요점을 말해 준다. 그것은 당신이나 나는 순수한 사실에만 근거해서 우리 삶의 환경들이나 사람들에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반응들은 우리가 그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있다. 이전에 언급했던 내가 딸에게 언성을 높였던 때에, 나는 단순히 일어난 일 때문에 그렇게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 일에 대해 나름대로 가졌던 해석에 따라 반응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해석은 이기적인 것이었고, 내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딸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오직 내가 원하는 일들과 그때까지 하고 있던 일에 대한 방해라는 내 자신의 관점에서만 보았었다. 결코 그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언성을 높이고 딸 아이를 윽박지르고 났을 때, 죄책감과 후회로 가득차게 되었던 것이다.
말로 인해 일어나는 우리들의 문제들 중 많은 것들은 단지 그 상황을 잠깐 중지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시며 뭐라고 말씀하실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해결될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일 없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죄를 짓도록 스스로를 내버려두는 것이다. 만약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면, 우리의 말도 역시 잘못되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원리이다. 말의 문제는 종종 잘못된 상황 해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선한 것을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처음으로 그 모든 문제를 일으켰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지고 만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새로운 해석을 듣게 되었고 그것을 믿었다. 사탄의 음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수천 가지의 음성들 중 가장 첫 번째였던 것이다. 
 한 분노한 아버지가 청소년기에 들어선 자신의 아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만약 네가 이 아버지를 존경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아버지는 가리지 않고 할 작정이다.” 그 아버지는 자신에게 영적인 아버지로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반대되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난 다른 모든 사람들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바로 당신만은 나를 너무나 화나게 만들어요!” 그녀의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어서 자신의 분노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남자 노동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만약 여성들이 직업전선에 나오는 일이 없었더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을텐데.” 그의 문제는 단지 자신의 말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뒤편에 있는 현실에 대한 잘못된 태도에 있다. 이와 같은 각 사람의 경우에서 말의 문제는 단지 부적절한 단어사용이나 목소리가 높고 크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옳고 참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삶에 대한 태도 때문에 생겨난다. 우리가 창세기 3장을 볼 때에, 말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해석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거짓말을 믿고 따름

에덴동산에서 뱀이 말하였을 때, 여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그것은 가장 처음으로 거짓말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모든 대화는 완전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진실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신뢰할 만한 것이었고, 삶은 바로 그 바탕위에서 성립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아담과 하와가 서로에게 한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였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기서 뱀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뱀은 실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 잊어먹은 것도 아니었다. 뱀은 이해가 빠르고, 간교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뱀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뱀이 그 말을 한 이유였다! 뱀은 아담과 하와가 진리의 빛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싫어하였던 것이다. 뱀은 그들에게 거짓말로 속이려고 하였고, 자신의 거짓말을 믿도록 하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뱀이 거짓말을 한 것은 매우 비극적인 변화의 순간이었다. 선하고 신령한 대화란 항상 진리에 근거하게 마련이다. 거짓말과 오류와 속임수는 항상 진리를 파괴하게 되어 있다. 또한, 거짓말은 진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신뢰성을 무너뜨리고 만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진실에 기초하든지 아니면 거짓말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대화에서의 문제들은 우리가 말을 속이고 왜곡하며 마음대로 전용(轉用)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진실을 마음대로 바꾸어 버린다. 또한 일어난 일을 마음대로 조작해버리고, 때로는 자신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내가 딸아이의 방에 들어갔던 그날 아침,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완전히 옳은 일이라고 굳게 확신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변명과 비난

에덴동산에서 뱀이 한 말은 또 다른 최초의 사건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가장 최초로, 사람들이 서로를 헐뜯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비판적인 말이나, 서로 헐뜯는 말이나, 분노에 찬 말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변명이나 남을 누름이 없었고,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이 다시 자신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그들이 죄에서 자유로왔던 것처럼 역시 이러한 서로 헐뜯는 갈등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왔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비극적인 변화뿐만이 아니라 그들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도 참담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왜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아담은 하와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하와를 두둔하지 않았고, 보호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는 중재자나 변호자로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손가락질을 하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저 여자를 벌하십시오. 하나님. 저 여자는 나를 이 모든 죄악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입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대화가 다른 사람에게 죄의 책임을 돌리는 것이었던가! “당신이 나를 화나게 만들잖아요!” “당신이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어” “당신이 이럴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을 자제할 수가 없어” “애들 때문에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만약 당신이 음식을 맛있게 하지 않았더라면, 난 체중문제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중 누가 책임감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들에게 잘못을 돌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려운 때일수록,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고 하기 마련이다. 삶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말을 하지 않거나, 그런 말을 듣지 않고는 단 하루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책임전가에 대해서 또 다른 비난의 대상이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하나님 바로 그분께 비난의 말이 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셨을 때, 손가락으로 하와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 만약 이 여자를 내게 주시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당신의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여자를 만드셨고 지금은 저 여자가 내게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보고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신의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과 환경을 비난할 때, 그 이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도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남편이 “내 아내가 나를 화나게 만듭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의 손가락은 단지 자신의 아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가리키게 된다. 어떤 사람이 “내게 너무나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지만 않았더라면 교회 사역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의 실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더 좋은 교회 자리를 주셨더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주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있기 전에는 더 여유롭고 평온한 삶을 살았었는데...”라고 말하는 부모들은 사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나 과도하다고 생각되는 부모로서의 부담감을 지워주신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그들이 사랑하고 순종하며 섬기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죄를 위한 속죄양이 되셨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는 수많은 대화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이와 비슷한 비난을 퍼붓는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들과 거짓말, 잘못된 인생에 대한 해석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말들은 모두 이러한 아담의 비극적인 변화의 순간에서 생겨났다는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사탄이 말했을 때, 아담과 하와가 그 사탄의 말에 따라 행했기 때문에 대화의 세계는 다툼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더 이상 대화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뱀의 형상으로 추락한 말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의 말은 하나님의 계획대로의 신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정반대로 사탄의 속임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대화는 더 이상 편안하거나 안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거짓말이 판을 치고, 분노의 말로 상처를 입히며, 불의가 마음을 상하게 하고, 욕설이 난무하며, 비난과 조롱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세계에 살게 되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이와 같은 말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세워주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우리 중 과연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친구로서, 이웃으로서, 혹은 직장인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그런 잘못된 말을 후회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 중 자신의 후회스러운 말을 다시 주워 담아서 마치 녹음테잎이 지워져서 더 이상 기억속에 남지 않는 것처럼 되기를 누가 원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우리 중에 자신이 한 말이나 말한 태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자신의 자녀나, 배우자나 혹은 친구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끝없는 죄악

야고보는 비유적인 언어로 이러한 갈등의 세계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말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상처의 극심함과 그 심각성에 대해서 경고한다.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禦拒)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야고보서 3:3-12)

야고보에게 있어서, 혀는 ‘불의의 세계’요, ‘온 몸을 더럽히는 것’이며,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혀는 지극히 작은 키이며, 불씨이고, 길들이지 못하는 동물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말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든지, 아니면 뱀인 사탄을 반영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우리의 말은 서로를 세우고 회복시키든지 아니면 찢고 파괴시킨다. 그래서 말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말의 영적 전쟁(The War of Words)

잠언도 역시 타락한 세계에서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인 말의 영적 전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2:12)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2:16)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6:2-3)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6:16-19)

여러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7:21)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0:19)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12:6)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궤휼을 말하느니라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12:17-19)

패려(悖戾)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16:28)

악을 행하는 자는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17:4)

분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17:7)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17:14)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17:19)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18:2)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 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18:8)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18:21)

망령된 증인은 공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19:28-2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21:9)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22:10)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25:9-1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是非)를 일으키느니라 (26:20-21)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27:15-16)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28:23)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29:5)

모만(侮慢)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29:8)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29:20)”

이것은 단지 많은 성경본문중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잠언은 특히 강조하여 ‘불의의 세계’(world of evil)의 원인은 바로 ‘혀’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불의의 세계는 성경의 모든 각권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의 말에 그 원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야고보서와 잠언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그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말할 때, 하나님의 기준과 계획에 합당하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종종 거짓말의 아비요, 속이고, 나누며, 멸망시키는 바로 그 사탄의 뜻을 따르는 데에까지 낮아지고 말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입에 함정을 두어 왔다. 스스로의 말로 인해 속아왔던 것이다. 우리의 말은 늘 분쟁에 휘말렸다. 또 그럴 때마다 늘 너무 많은 말을 했고, 너무나 성급하게 말을 했다. 너무나 무모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입소문들에 너무 민감하였고, 말이 악하게 나올 수 있는 분노에 너무 쉽게 따랐었다. 그래서 자주 충돌이 있어 왔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소신을 대중 앞에서 밝히곤 한다. 그런데 그런 때에도 남을 비웃는 유머를 쓰기도 하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는 사실을 말로써 무시해버렸던 것이다. 

창세기 3장과 우리의 말

 우리가 창세기 3장에서 나타난 대화 속에서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말이 주님의 말씀(창세기 1장)에 근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의 말(창세기 3장)에도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만 한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다툼들은 단지 대화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가 겪는 말로 인한 다툼은 다른 사람들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그것은 위대한 대화자이신 주님을 닮은 방식으로 말할 것인가, 아니면 가장 사악한 자인 사탄을 따라서 말할 것인가라는 고민이다. 과연 누가 우리의 마음과 말을 지배하게 할 것인가?
창세기 1장과 3장에서 나타난 말로 인한 다툼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속에서 날마다 이러한 다툼을 겪고 있다. 이제 우리의 말은 서로를 격리시키며 속이고 파괴하고 있다. 그 상태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 악의 세계이다. 말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 대가는 참으로 크다.
우리는 이 문제를 지금까지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 우리 각 사람은 이제 다음과 같은 기도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 “주님, 주의 말씀은 저에게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제 저는 저의 말이 주님께 속해 있다는 것에 항상 주의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주님의 계획과 섭리에 따른 진실한 말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자 자신의 뜻에 따라 내 목적에만 사용하기 위해서만 말하였습니다. 사악한 사탄의 말에 따랐으며 여러 번 주님을 닮기보다는 사탄을 더 닮은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저는 주님의 용서를 간구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만이 저의 혀를 다스려 주실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금 저의 말을 주님께 돌려드리오니, 저로 하여금 주님의 뜻에 합당한 말을 하게 하시며, 주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말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고백한 것처럼,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바울이 말한 복음의 영광스러운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우리의 연약함은 말로 인해 일어나는 다툼의 모습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 세상에 거하셨고, 죽으셨으며,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말로 저지르는 죄악으로 나아가게 되는 마음의 죄에서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연약함속에서 그리스도의 도우심의 위대함을 깨닫게 될 때 오히려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찰 수 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하여

고백을 위한 시간

당신의 언어 습관을 평가해 보라. 당신의 말이 주님보다는 사탄의 방식을 더 많이 따랐던 경우가 있었는가? 잠시동안 이것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기도하며 주님께 고백하라. 주님께 자백하고 혹 그로 인해 상처입었을 당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라.

1. 당신의 말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상황이 있었는가?(잘못된 지배욕을 행사하려고 하거나, 악한 비난의 말을 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을 말로써 정죄하거나, 지도자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려고 하거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지정하여 주신 상황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을 늘어 놓았다든가 등등)

2. 당신의 말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관점과는 다른 삶의 해석을 하게 한 적이 있는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말은 삶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성경적인 신실한 관점을 나타내었는가? (예를 들면, 교통이 혼잡할 때에 차안에서 온갖 짜증을 다 내었는가, 아니면 가족들과 혹은 동승자와 담소를 나누면서 기다렸는가?)

3. 당신의 말은 삶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은 그리스도 밖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영향받아 왔는가? 예를 들면,
“나는 이 논쟁에서 이겨야만 해”
“나는 그녀의 사랑과 이해와 존경을 받아야만 해”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그가 ____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야!”
“그것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해!”
“나는 ____이 없이는 절대 살 수 없어”
“나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기억하라. 그리스도는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구원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분은 구원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회복하여 주신다. 또한 그분은 회복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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