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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영혼 돌봄의 상담학 (서론)

 

  

Care for the Soul:

  

Exploring the Intersection of Psychology Theology

  

(Wheaton Theology Conference Series)

  

 

  

Mark R. McMinn

  

 

  

 

  

영혼 돌봄의 상담학

  

 

  

마크 R. 맥민

  

 

  

 

  

서론 

  

 

  

 

  

어떤 최고급 승용차의 광고문구 중에서 ‘당신의 영혼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차라는 표현이 있었다. 차량 가격이 5천만원 정도였던 그 차에 대해서 그와 같은 표현을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겠지만, 광고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표현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영혼도 역시 가치를 매길 수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발행된 몇몇 책들의 제목에서도 우리는 쉽사리 영혼과 관계된 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영혼을 위한 펭귄과 오리 스프’, ‘영혼의 섹스’, ‘당신의 영혼을 살아있게 하는 100가지 방법’, ‘여성의 영혼을 위한 초컬릿’, ‘영혼을 위한 지압법’, ‘영혼을 위한 비행술 교본’, 그리고 ‘영혼을 위한 애완동물 기르는 법’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 이외에도 소울 뮤직(영혼의 음악)과 소울 메이트(영혼의 친구), 그리고 소울 푸드(영혼의 음식)이라는 것들도 있다. 잠깐이라도 대형 서점에 나가보면 영혼(Soul)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수천 권도 더 넘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에 영혼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 단지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가 더 깊어졌기 때문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정신분석이라는 과학적 설명과 자극과 반응이라는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영혼이라는 개념은 그리 믿을 만 하지 않는 역사적 산물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나 현대의 경험주의와 이성주의가 탈현대주의시대의 다원주의로 이어졌을 때, 비록 영혼이 무엇이냐에 대한 아무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현대성 그 자체가 영혼에 대한 이러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결과 지금 시대에는 영혼이나 정신에 대한 연구는 좀더 구체적인 학문인 심리학으로 나타났고 이는 해마다 수 천명의 대학졸업자들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로 계속 몰려들게 하고 있다. 엘런 채리는 이 책에 쓴 글에서 20세기를 ‘심리학적 세기’라고 명명했다. 그 정도로 심리학적인 연구는 인간정신에 대한 치유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던 임상기관들과 상담기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심리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던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영혼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그 질문과 마찬가지로 대답 또한 현대성의 인식론적 전제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심리학 연구는 심리학에 대한 존중을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계몽시대 이전에 영혼에 대한 이해를 구성해 왔던 종교적 전통을 종종 무시해 왔다.[i] 때로는 우리도 영혼을 오해하여 정신과학의 발전을 촉진시키려고 애쓰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몇몇 저자들은 말하기를 영혼의 개념이란 현대성의 자아개념으로 오용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섣불리 자기 치유개념을 세속적인 심리학자들에게 떠맡겨버리면서 영혼에 대한 치유의 중요한 요소를 놓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시대에 풍미했던 탈현대성이라는 변화의 영향으로 우리는 과학의 가치와 한계를 고민하며, 신학적 전통의 역할과 영성의 영역들에 대해 고심하는 교차점에 서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물질세계를 원자적 구성 요소들의 총합이라고 받아들이며 미시세계를 창조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로서 충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원자들과 분자들과 세포들과 조직들과 공동체들과 문화들과 사회들을 함께 엮는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가 임상적 우울증세에 대해 그의 정신적 충격들과 정신약물학적인 영향을 다루기 위한 과학적으로 유효한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 23:4)나 ‘어둔 밤’[ii]을 경험하는 영혼들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더욱 대량살상의 가능성에 대해 더욱 쉽게 접하게 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인간 영혼이 받게 되는 고통과 괴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가?

  

현대의 심리학은 어쩌면 영혼을 위한 치유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할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분야에 많은 고민을 하였던 기독교 심리학자들이 이 책에 많은 부분으로 참여하였다. 하지만 이 주제를 중심으로 모였던 신학 대회와 그 결과물로 나온 이 책에 깔려있는 주된 전제는 영혼을 위한 치유는 과거와 현재의 풍부한 신학적 교회론적 전통들로부터 이끌어 나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고자 일은 신학과 심리학의 교차된 부분을 살피는 것이었다.

  

 

  

 

  

영혼을 위한 치유(治癒)인가 치료(治療)인가?

  

 

  

이 책은 “영혼을 위한 치유: 신학과 심리학의 교차점을 연구하며”라는 주제로 열린 휘튼 신학 대회(Wheaton Theology Conference)의 산물이다. 이 대회는 휘튼대학의 성경신학과와 심리학과에 의해 주최되어서 심리학과 신학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저명한 신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함께 모였다.

  

이 책의 제목인 ‘영혼을 위한 치유상담’은 대회의 주제였던 ‘영혼에 대한 치료상담’에서 약간 바뀐 것이다. ‘치료’에서 ‘치유’로 바뀌어 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글자 한자의 변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회에 참가한 몇몇 심리학자들은 ‘영혼에 대한 치료상담’이라는 주제에 포괄적으로 담긴 뜻에 대해서 불편함을 토로하였다. 분명히 영혼을 치료한다는 것은 심리학자들의 역할은 아니었다. 심리학자들은 영혼에 대해서 고통을 줄이고 정서적인 괴로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되찾도록 도와주며 그들이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과 주변의 세계를 좀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격려한다. 쉽게 말하면, 심리학자들은 영혼을 돌보는 것이다. 대다수의 기독교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영혼을 치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일반적인 심리학적 접근법의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영혼을 위한 치유상담’이라는 책제목은 이 책에 집필한 심리학자들에게 좀더 자연스러운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많은 신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더욱 줄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학은 영혼을 치유하는 것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죄의 고백과 예수 그리스도안의 구속을 통한 영혼의 치유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 뿐이다.[iii] 다수의 심리학자들이 영혼을 위한 치유상담으로 두각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학의 멧세지는 상한 영혼을 위한 치료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서조차도 신학과 심리학의 교차점에서 발견되는 어떤 함축적인 긴장이 나타난다. 이러한 긴장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많은 학자들이 과거 수십 년 넘게 그러한 분야에 대해서 연구해 왔다.[iv] 다행스럽게도 바로 그 학자들 중의 많은 수가 이러한 교차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주의깊게 영혼에 대해서 관찰한다. 그들은 과거의 풍부한 전통들과 교리들을 현재의 역동적인 지성적 분위기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 심리학을 세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목표가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거나 혹은 치료하는 것이든지 간에 우리는 먼저 확실하게 영혼을 고려해야만 한다. 4장에서 제프리 보이드가 이러한 필요를 논증하였다. 그는 자신의 열정적인 논문에서 우리에게 영혼에 대한 신학적 해석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였다. 영혼을 고려하는 것은 심리학과 신학의 공동적인 연구과제이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요한 핵심이기도 하고 이 책의 주된 초점이기도 하다.

  

 

  

 

  

함께 하지만 그러나 너무 가까워서는 안되는 관계

  

 

  

만약 영혼에 대한 연구가 공유된다하더라도 그에 대한 접근방식은 전혀 다르다. 이 책에 기고한 저자들은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관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학문적 관심의 영역과 수학과정도 모두 다르다.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여러 분야에 걸친 종합적인 관심사에 있다. 각 장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 성경학자들, 임상심리학자들, 발달심리학자들과 사회심리학자들, 그리고 성경적 상담가들에 의해 저술되었다. 대회가 진행되는 날 동안 그리고 우리가 이 책의 각 내용들을 수합하면서 우리는 모두 함께 영혼에 대해서 주목하였다. 서로에게서 듣고 배울 수 있는 특권을 누린 다음에 우리는 각자의 전문적인 분야로 돌아왔다.

  

이러한 서로 다른 학문분야 사이에서 상호교류하는 가운데 직면한 한 가지 도전은 공유되는 영역을 언제 강조하는가 라는 것과 자신의 독특성과 때때로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관점들을 언제 강조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선지자(The Prophet)'이라는 책에서 칼릴 지브란은 두 명은 연인에게 ’함께 거하지만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지는 말라‘고 충고하였다. 바로 ‘영혼을 위한 치유상담’과 같은 책들은 기독교 심리학자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성경적 상담가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기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가 영혼에 대해서 연구할 때에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학문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론과 다른 학문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지식체계를 가지고 있다.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심리학자들과 상담가들은 신학자들을 필요로 한다. 앨런 체리는 자신이 쓴 장에서 이점을 잘 설명하였다. 심리학의 인간에 대한 현시대의 관점은 때때로 신학적 근본을 갖는 인간론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데니스 오크호름은 분노에 대해 쓴 글 속에서 그리고 로버트 로버츠는 사도 바울의 정신요법에 대해서 쓴 글 가운데에서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현대 정신 건강분야의 의사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자료들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리차드 슐츠가 자신의 글에서 지적한대로, 기독교인의 정신 건강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때로 성경을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서 성경 학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러한 책의 저술을 위해 함께 모이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성경적 상담가들과 기독교 심리학자들이 한데 모이는 것도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한쪽 편에서 제이 아담스[v]의 초기 저작들이 출간되면서 다른 쪽 편에서는 게리 콜린스[vi]의 저서들과 존 카터와 브루스 내러모어[vii]의 책들이 나온 이래로 성경적 상담학은 기독교 심리학과는 완전히 구별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연구법은 고유한 훈련기관과 관리체제를 가지고 있었고 이 두 분야의 지도자들은 종종 서로를 비판하기도 하였으며(그 내용이 옳건 그르건 간에), 때로는 상대를 설명할 때에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어떤 성경적 상담가들은 기독교 심리학을 오해하여서 그들이 현 시대의 심리학적인 이론들에 내포된 세속적인 전제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고 공격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어떤 기독교 심리학자들은 성경적 상담가들을 오해하여서 그들이 피상담자의 죄라는 정형화된 관점만을 고집한다고 몰아세우기도 하였다.

  

성경적 상담가들과 기독교 심리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가끔은 기독교인으로서 정신건강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려는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 또 안타깝게도 성경적 상담가들과 기독교 심리학자들 사이의 불꽃튀는 논쟁은 극단적인 기독교 저술가들에 의해서 더욱 악화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성경적 상담가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나 혹은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베스트셀러를 통해서 기독교 심리학자들을 공격함으로써 논쟁을 격화시키기도 하였다. 그중 어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비통해 하기도 하였다. “우울증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서 떠나 정신요법에 의지하는 기독교인들은 오염되고 전혀 만족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말라버린 저수지(정신요법)’같은 데서 물을 찾고자 하여 ‘생명의 샘물(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자들이다.”[viii]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쓰여진 이렇게 신랄한 반심리학적인 책들의 연속된 출간에 대응하여, 신학적 학문배경을 가지고 있는 저명한 한 기독교 심리학자는 ‘당신은 심리학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심리학의 일부 부분들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확신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균형적이고 공정한 태도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ix] 그 이후 얼마동안은 논쟁은 중단되었거나 최소한 감소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93년에 어떤 목회자이자 성경적 상담가가 ‘왜 그리스도인은 심리학을 신뢰할 수 없는가?’[x]라는 책으로 다시 포문을 열였다. 그 책은 이전의 반심리학적인 책들보다는 훨씬 더 균형잡힌 것이기는 하였지만, 그런 책이 출간된다는 것은 양자가 어떤 합의에 이르기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일치와 갈등의 역사 속에서 양측이 이 책의 공동 저자로 함께 작업을 했다는 것은 기념비적으로 진일보한 일이 되는 셈이다.   

  

복음주의적인 신학자인 밀라드 에릭슨은 “사회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우리의 죄에 대한 관점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xi] 기독교 심리학자들과 성경적 상담가들은 인간 문제에 대한 죄의 역할에 대해서 합의를 이루지 못해왔다. 성경적 상담가들은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며 그 대신 마음의 우상으로 이끌어 가는 죄의 압도적인 영향에 대해서 끊임없이 강조했었다. 그래서 영혼을 위한 치유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저해하는 우상을 섬기는 마음에 직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 심리학자들은 잘못된 학습패턴들과 발달시기에서 충분히 건강하게 성숙되지 못한 관계들, 그리고 부정확한 사고방식들을 문제의 근원으로 강조해 왔다. 그들은 심리학과 신학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현대 심리학의 많은 공헌점들을 높이 평가했다. 물론 이러한 양분은 지금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양측은 죄를 하나의 문제로 보고 있고 둘 다 잘못된 학습 패턴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들, 그리고 부정확한 사고들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차이점은 현재 인식된 문제의 원인들 중에서 무엇이 우선적인 것이냐 하는 점이다. 성경적 상담가들은 상대적으로 은밀한 부분이 드러나야 하는 것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고서 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기독교 심리학자들은 대개 일반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다.  

  

성경적 상담가들이나 기독교 심리학자들이나 모두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심리학의 발견 중 어떤 것들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러한 예로서 스탠톤 존스는 2장에서 자폐아동을 위한 심리학적 치료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죄가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라는 성경적 상담가들의 말은 옳다. 이점은 이 책의 여러 장에서 특히 강조되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교에서 성경적 상담학 과정을 마치고 휘튼 칼리지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필립 먼로우는 자신이 쓴 장에서 지적하기를, 기독교 심리학자들은 때로 자신들이 대하고 있는 내담자의 삶의 주변에 있는 죄의 영향을 쉽게 간과해 버린다고 하였다.

  

“우리는 동일한 것을 단지 다른 말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면서 갈등을 피해버리고 싶은 유혹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성경적 상담가들과 기독교 심리학자들이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합의에 이를 만한 요소가 있지만 역시 매우 첨예하게 대립되는 차이점도 있다. 여하튼 대회를 진행하고 이 책을 편집하였던 우리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성경적 상담가들과 기독교 심리학자들 양측 모두 영혼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충분히 귀기울일 수 있을 만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차점에서의 전망

  

 

  

이 책은 컨퍼런스가 시작되었을 때 한 성경적 상담가와 또 다른 기독교 심리학자에 의해 발표된 전혀 다른 관점들이 드러나면서 처음 고안된 것이다. 데이빗 포울리슨에 의해 집필된 1장은 현대의 심리상담자들과 대다수의 기독교 심리상담자들에게 있는 핵심적인 전제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포울리슨은 결론내리기를 영혼을 위한 치유상담은 우선적으로 교회의 영역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CCEF(Christian Counseling and Educational Foundation)의 교수진이자 성경적 상담학 저널(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의 편집인인 포울리슨 박사는 자신의 모든 생애를 교회가 영혼을 위한 치유상담을 위해 준비되도록 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2장의 저자인 스탠톤 L 존스 현대 심리요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였다. 그는 심리학과 신학의 주의깊은 통합을 위한 ‘변증적 논증’을 기술하였다. 존스는 제안하기를 현대의 정신 건강을 다루는 기관은 잘 훈련된 기독교 심리상담사를 배출하기 위한 전략적인 장소가 된다고 하였다. 휘튼 칼리지에서 임상 심리학의 박사과정을 창설하고 현재 교무처장을 맡고 있는 존스 박사는 그가 설명한 주의깊은 통합을 이루기 위한 훈련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다.

  

이렇게 처음 두 장을 통해 나타나는 학문적인 상호교류의 저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서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중요한 맥락을 제시한다. 첫 번째 포울리슨과 존스는 심리학의 주요한 현재의 활동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장들은 우리에게 영혼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 심리학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라고 요구하고 있다. 적절한 기독교 신학을 관련된 심리학과 혼합시키고자 하는 위대한 목표를 갖는 통합 운동은 때때로 사람들을 인간 경험과 관계들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께 대해서 거짓되고 위험한 결론에 이르게 할 수가 있다. 기독교 심리학자들은 너무나 자주 세상 사람들의 세속적인 가치관에 대해 영적으로 조심스럽게 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무시해버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앨런 체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어떤 심리상담가들이 내담자들이 치료적인 과정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영적인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고 할 지라도, 이러한 것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세속적인 것 자체를 위해 지원되는 추가적인 자원들로서만 여겨진다.”[xii] 이 책의 대부분의 저술가들은 기독교 심리학의 현재 활동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두 번째, 포울리슨과 존스는 자신들의 분석을 통해서 신학적인 체계를 설명하였는데 이는 우리에게 영혼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 신학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영적 지도자들과 신학적 지도자들의 임무였음을 상기시켰다. 이전의 영혼을 치유하는 형식을 영역의 면에서 대치할 수 있다고 보여지는 심리학은 신학과 심리학의 교차점을 연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연구되어야만 한다. 효과적인 영혼의 치유는 온전한 기독교 신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세 번째, 포울리슨과 존스 사이의 불일치된 영역이 있다는 것은 이 책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의견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특히 더 재미있는 것은 영혼을 치유하는 기관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토론이다. 기독교인들은 가장 먼저(아니면 유일하게) 삶에 나타나는 분쟁과 도전들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 교회로 나아와야 하는가, 아니면 교회의 일을 대신하여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적절한 곳이 있는가? 이렇듯 각기 다른 관점에서 생겨나는 긴장은 포울리슨과 존스에 의해 집필된 장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불일치의 영역은 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날 것이다. L 그레고리 존스와 마일라 시볼드의 용서에 대한 관점 사이에 존재하는 동일성과 차이점들에 유의해보라. 그리고 브래트 웹 미첼과 신시아 닐 킴볼 사이에 있는 교회성도들의 삶 속에서 발달 심리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도 눈여겨 보라. 우리는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자들을 모아 책을 만들어서 논쟁을 피하고자 하지 않았다. 또한 편집자들로서 완전히 동감하는 글만을 선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는 학문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논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하게 하고 더욱 성장하도록 돕는데 사용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얻게 되리라고 믿는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기

  

 

  

3장과 4장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을 치유하는 일에서 특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을 더욱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성숙되게 인도하는 것은 심리학적인 사명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이며 종교적인 사명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면에서와 철학적인 면에서, 그러면서도 실제적인 면에서 그리고 교회론적인 면에서 주장될 수 있다.

  

 역사적인 면에서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과거 교회와 목회자들의 전담업무였다. 그렇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점차 밀리기 시작하여서 이제는 세속적인 전문가들에게 맡겨져 버렸고 그들에 의해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종교적 가치는 때로 무시되기도 하고[xiii] 심지어는 비판되기도 하였다.[xiv] 탈현대주의가 종교에 대한 심리학의 공격을 다소 누그러뜨리기는 하였지만[xv] 정신요법을 중시하는 풍조가 생겨나면서 사람들 개개인이 그들 자신을 “진리의 속박과 윤리적 이상의 굴레”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런딘은 이렇게 말했다. “정신요법중시의 풍조에서는 진리에 대한 기독교적인 개념과 윤리적 삶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지가 없다.”[xvi] 이 책은 우리의 정신요법을 중시하는 풍조를 폭넓은 역사적 문맥속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영혼을 치유하는 것을 하나의 신학적인 연구주제로서 주창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철학적인 면에서는 영혼을 치유하는 일에 대한 신학적이며 종교적인 차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전체적인 의미의 맥락 속에서 심리치료자들과 상담가들의 업적을 인정하기 위해서이다. 브라우닝은 강조하기를 비록 많은 심리치료자들은 자신의 상담이 나름의 도덕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항상 어떤 의미에서든지 도덕체계에 관여되고 있다고 하였다.[xvii] 심리학의 주된 흐름이 자신의 도덕적 가치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엔 스스로를 이와 무관한 것처럼 그러면서 혼돈스럽게 만들어 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과 심리학의 상호교류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혼을 치유하는 일의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하고 있다.   

  

실제적인 면에서 심리학자들이 일반인들 보다 훨씬 덜 종교적이긴 하지만 심리학적인 도움을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종교적인 가치가 더 존중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xviii] 이렇게 자신의 영혼을 위한 치유를 찾는 것은 전통적으로는 사실 자신의 삶에 있는 영적인 측면을 깨닫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영적인 측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쪽은 내담자 자신이 아니라 대개 전문적인 심리상담사들이었다.

  

교회론적인 면에서 교회는 공통적인 신앙적인 토대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인간 발달의 이론과 정신건강을 위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어떤 특별한 상황과 환경에서 고안된 심리학적 발달 이론이 필수적으로 교회 환경에 적용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을 치유하는 일에 있어서 신학과 종교의 연관성을 대담하게 강조하는 것이 적절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xix]

  

3장에서는 브래트 웹-미첼이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교회론적인 근거를 가지고 교회가 인지발달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순례자의 이미지를 끌어들여 그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4장에서 제프리 보이드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하려는 경우가 아니면 영혼에 대해서 논하는 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세상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활동에 관해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인식에 대해서 역사적이며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시도하였다. 5장에서 앨런 체리는 신학적 인간학자들이 현대 세속 심리학의 압도적인 역할에 밀려서 제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호소하였다. 보이드가 말한 대로 우리는 좀더 영적인 자들이 되기 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체리는 신학자들에게 영혼을 치유하고 치료하는 일에 더욱 공헌을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말한 세 장은 우리가 현대 정신건강에 관한 이해를 추구하고자 할 때 신학적으로 근본이 되는 중요한 논의들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분명한 전망

  

 

  

만약 현대사회에서 광범위한 인식론적인 변화들 때문에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교회론적인 권위보다는 차라리 과학에 더 의지하게 되어서 교회가 영혼에 대한 치유를 잃어버렸다면 결국 탈현대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인식론을 의심하게 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이것은 여러 가지 진리에 대한 주장이란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받아들여진다는 일종의 다원론에 근거한 근거부족을 야기해왔다. 그렇지만 영혼을 위한 치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반가운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탈현대주의가 종교를 심리치료자들이 관심을 갖는 합법적인 요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치료가 종교적인 형태를 띨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심리치료를 받는 수많은 기독교인 환자들과 심리치료 병원기관들과 교회에 설치된 상담소들을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탈현대주의적인 모든 근거를 의심하는 ‘의심의 해석학’으로 인해 기독교 신학자들은 아무리 완벽한 진리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제한된 이성에 의해 다시 해석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이클 맨기스가 이에 관한 내용을 8장에서 설명하였고 데이비드 윌리엄스는 16장에서 이를 암시적으로 나타내었다.)

  

다른 측면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나쁜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의 내용과 기독교 전통에서 나온 진리 주장은 때로 고리타분하고 근거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많은 탈현대주의자들은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의 진리주장이 있고 그것은 심지어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일종의 진리주장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치유상담을 받기를 바라는 기독교인들에 있어서 중요한 도전은 더욱 기독교 신앙의 진리 수호와 기독교 역사의 풍성한 유산들에 강하게 의존하면서 개인에 대한 탈현대주의적인 관점에 의해 주어지는 기회들과 교육들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6장부터 10장은 기존에 수립된 신학적 진리 위에 심리학을 세우고자 노력하는 자들을 위한 근거를 제공해 준다. 로버트 로버츠는 치유상담을 위한 근거로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을 사용한다. 데니스 오크홀름과 마이클 맨기스는 초기 교부들과 수도사 신학자들의 저작들을 살피고 나서 자신들이 발견한 것을 심리치료자들이 현재 사용하는 전제들과 방법들에 연결시키고 있다. 교회 역사를 주의깊게 돌아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현대 심리학의 여러 전제들과 세속 심리학자들의 최신의 이론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새로운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필립 먼로우는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개인의 죄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청교도 신학을 살피고 있다. 인간의 결함론(죄의 신학)은 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는 주된 주제이다. 죄문제는 포울리슨과 스탠톤 존스와 체리와 그레고리 존스, 그리고 모로니와 그 외 다른 사람들에 의해 언급되고 있다. 데보라는 기독교 신학과 현대 심리학의 용어와 가치체계가 분명히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다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자의 필요를 채워준다는 이론적인 체계를 세운다. 그녀는 칼케톤 회에서 언급되었던 그리스도의 양성 상이의 관계의 논리적인 흐름을 따라서 이와 같은 상이한 두 학문사이의 관계성을 정립하고 있다.    

  

 

  

 

  

두 갈래 길을 바라보며

  

 

  

우리가 휘튼 신학 컨퍼런스 기간 동안과 이 책을 준비하기 위해 소요된 수개월동안 함께 작업을 하던 과정이 어떤 의미에서 교차로에 서있는 것이라고 했을 때 중요한 일은 양 방향을 모두 바라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신학이 심리학으로 하여금 영혼을 회복시키도록 도울 수 있는가와 더불어 심리학이 어떻게 신학과 기독교인의 삶에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이 책의 파트 5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신학에는 기독교 심리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레고리 존스는 자신이 용서에 대해 쓴 장에서 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은 최근에 용서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연구를 위해 템플턴 재단의 장학사업단은 용서에 대한 심리학적인 연구에 더욱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이미 기독교 단체들은 수세기 동안 용서를 실천해왔고 논의해 왔다. 우리가 정말 용서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서 그 실천을 기독교 공동체와 신학과 분리시킬 수 있을까? 용서란 치유적인 기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xx] 온건한 해석학의 중요성에 대해 다룬 12장과 13장은 심리학에 대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12장에서 리차드 슐츠는 구약의 지혜서들을 다루면서 해석학이 종종 기독교 심리치료사들에 의해 사용되는 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들의 적절한 해석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13장에서는 브라이언 마이어와 필립 먼로우가 팀을 이루어서 기독교 상담사들을 위한 온건한 성경해석학의 중요성에 대해서 서술한다.

  

만약 우리가 이 양쪽 방향을 바라본다면 신학과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심리학의 잠재적인 공헌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네 장은 이러한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밀라 세이볼드는 용서의 과정에 대해서 심리학적인 고찰을 하였다. 이 고찰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때로 기독교 공동체들이 용서의 의미를 해석하고 적용할 때 내세우는 관점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스테판 모로니는 우리 자신의 관점들과 의견들을 과장하려고 하는 경향성에 대한 사회심리학적인 증거를 내놓고 나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기 위해 성경적인 논의를 제공한다. 모로니가 쓴 장은 성경해석학에 대해 입문과정을 배우고 있는 학생에게는 매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데이비드 윌리엄스는 학문의 철학성과 그의 신학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끝으로 신시아 닐 캠벨은 빠르게 변화하는 가족 체계 속에서 기독교 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발달심리학에서 이끌어낸 통찰들을 소개하면서 가족해체의 발전과정에 따른 분석을 소개한다.

  

 

  

 

  

  미래에 대한 전망

  

 

  

‘심리학과 신학저널’의 25주년 기념호에서 티스달과 데랜더와 파이크는 “우리는 통합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라고 말하였다.[xxi] 만약 우리가 영혼에 대해서 가장 효과적인 사역을 하려고 한다면 이러한 새로운 시대는 심리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존중하는 전문 영역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신학과 심리학의 공통점에 대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방향에서 진일보하기 위한 목표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제시된 학문적 성향과 마찬가지로 심리학과 신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연구의 다양한 초점들과 방법론이 고려되는 다방면에 걸친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심리학적 방법론과 신학적 체계 그리고 기독교 영성을 포함한 네 가지 방법론이 수행되어야 한다.[xxii] 이 네 가지 방법론이란 상호제휴적인 교류, 심도깊은 학문연구와 신앙과 삶의 일치, 그리고 상담연구자 자신의 성숙이다.

  

상호제휴적인 교류는 기독교인 봉사자들이 신학과 역사, 문화와 신앙에 기반하여 잘 발전된 도덕 규범을 가지고 상담학이나 혹은 심리치료의 현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이면서 인식론적인 전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가치평가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많은 일반적인 심리학 박사학위과정에서는 거의 독점적으로 현대주의적이며 과학적인 연구방법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최신 심리학에 대한 이해에 몰입하는 학문연구란 현대주의에서 훨씬 더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과학의 진리에 대한 신념까지도 의심해야만 한다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에 어떤 저명한 학자는 최신 심리학 저널에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료이다.”[xxiii]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그는 과학의 양적 자료가 우리들을 지성적인 고민이 가져다 주는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제목 밑에는 전제가 깔려있고 그것들은 다른 학문적인 연구분야에서 발견되는 신학과 같은 좀더 포괄적인 학문과는 쉽게 양립하지 못한다. 효과적인 영혼에 대한 치유는 지식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연구까지 허용하는 상호제휴적인 교류를 필요로 할 수 있다. 또한 상호제휴에 입각한 통합은 양방향적이다. 반 듀센처럼 윌리엄와 다른 사람들도 역시 심리학은 신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과학의 유익은 임상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예로 이 책은 임상심리학과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과 발달심리학을 연구한 사람들의 저술을 담고 있다.

  

상호제휴적인 의견교환이 다양한 학문영역으로부터 나오는 진리를 함께 엮어 나가고자 하는 다소 힘든 작업을 요구하는 반면에 심도깊은 학문연구는 한 분야에서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진리를 적용하도록 한다. 가장 학문적으로 상호제휴적인 교류를 했던 저명한 학자들이 실천면에서도 항상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흐느껴 우는 사람과 마주하고 앉아있다고 상상해 보라. “저는 평생동안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절 비난하고 거부합니다.” 펠라기우스와 반율법주의 이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어쩌면 영혼을 치유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근거를 마련해 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상담할 수 있도록 장담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이나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인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런 상황과 같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전적 타락’ 교리에 관해 논의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런 말이 고민으로 인해 미칠 듯 하게 된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이러한 고민들이 통합적인 방법적용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들이다.

  

게리 콜린스는 통합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심리학과 신학’ 저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목사들이나 전임상담사역자가 실제상담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도움될 만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책 속에서 나타나는 관점을 가지고 사역을 바라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통합을 할 것인가? 이를 위해 어떤 기술이나 방법이 사용되는가?[xxiv]

  

10년 후에 워싱턴는 언급하기를 콜린스의 실제적인 통합방법론에 대한 촉구가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xxv] 이러한 실제적인 방법론을 만드는 것이 치유상담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 담당해야할 일일 것이다.

  

통합적인 학문연구는 최신의 심리학과 신학을 영혼을 위한 치유(혹은 이런 분야와 관련된 영역)의 임상적인 실제에 적용하게 한다. 체리는 이점을 단도직입적으로 설득력 있게 밝혔다. “우리 신학자들은 실천가가 되기를 포기하였지만 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손해를 줄이려는 것이 너무 늦은 일은 아닐 것이다.”[xxvi]

  

통합적인 방법적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서 심리학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몇 개의 주목할 만한 장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시볼드와 그레고리 존스의 용서에 관한 장은 임상사역자들에게 그들의 사역현장에서 용서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에 관해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을 제공해 줄 것이다. 닐과 스탠톤 존스, 그리고 포울리슨의 글을 통해서는 치료적인 방법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맨기스와 모로니는 거의 모든 상담과정에서 일어나는 상담자의 자기기만(self-deception)을 비평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글속에서 저자들은 상담치료자들이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내담자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은밀한 죄에 휘말려들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심리학과 신학 사이의 교류에 있어서 또 다른 형식인 부머-프리디거가 이름붙인 ‘신앙과 실천의 통합‘은 기독교 성도들이 상담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xxvii]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에 대한 이상에 근거한 행동을 ’실천‘(praxis)이라고 명명했다. 기독교인들이 정통교리와 진리수호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또한 정통적인 실천과 참되고 진실되고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야고보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쓴 야고보서에서 신앙과 실천의 통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날카로운 의문을 던졌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

  

 

  

영혼을 치유하는 사역은 신앙과 실천의 통합을 이루게 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부와 기회의 불균등한 분배로 인하여 생겨나는 현실세계의 모든 문제들 가운에 기독교적인 사역을 행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심리학인 것이다.

  

현실의 상황에 대해서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위험한 것은 미래의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정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잠재적 능력에 대한 혼란에 빠져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좀더 어려운 일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분의 특수성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사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을 전해주는 것이고 그들을 좀더 인간적인 공동체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위험성이 있는데 그들의 전문화된 눈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의 눈이 아니라 더 판단적이고 냉철한 분석을 하려는 눈이 된다는 것이다.....배고픈 자에게는 더 많은 빵이 필요하듯 이들에게 더 많은 훈련과 준비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사랑없이 주어지는 빵이 평화 대신에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긍휼함이 없는 전문성은 용서조차 일종의 치료방법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xxviii]

  

 

  

그래서 신앙과 실천의 통합은 학문성과 사역의 신중한 균형을 필요로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탈현대주의 시대에서는 신중한 학문연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긍휼히 여김은 그저 그 상태 그대로 있거나 혹은 오히려 더 해로운 참견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 치료자가 주장하는 진리란 그저 그것이 진리라는 이유에서 그의 개인적인 면에서만 당연하게 여겨질 뿐이다. 또한 긍휼히 여김이 없는 학문성은 실제 괴로움에 빠진 사람들을 대할 때에 적절하지 않거나 혹은 매우 위험스럽게 적용될 뿐이다. 인간에 대한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연합된 학문연구야말로 도래한 새로운 천년에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영혼을 위한 치유라는 새로운 도전이 된다.

  

이 책의 많은 장들은 실천중심적이다. 예를 들면 시볼드의 용서에 관한 장은 신앙과 실천의 통합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는 가장 쉽게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은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용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기본 관점은 자주 상대적인 권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이다. 킴벨은 가족해체와 관련된 자신의 글에서 기독교 부모들에 의해 적절한 지도가 이루어지는 오랜 기간의 가정훈육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다.

  

네 번째로 ‘자기성숙’(personel formation)이란 상담자 자신의 성격의 성숙을 강조한다. 그리고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유익을 주고 치유를 하는 상호작용의 관계성에 참여하려는 포용력을 중시한다. 최근에 심리치료분야에서 선두적인 학자인 솔 가필드는 심리치료자들이 심리치료 연구에 소홀함을 지적하였다.[xxix] 그 뿐만 아니라 동일한 저널에 기고한 다른 학자들에 따르면 치료사의 개인적 자질이 치료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기독교 사역자들의 개인적인 자질이 마음에 대한 치유를 위한 그들의 포용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적인 성숙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수 세기동안 기독교 사역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왔다. 그들의 축적된 지혜는 기독교 심리학자들의 개인적인 발전이나 직업적인 성숙함보다도 훨씬 더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이 관련된 신학과 잘 연결될 때 사람들은 지성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은혜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기독교적인 치유의 본질적인 부분이 된다. 항상 경건한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주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신실한 상담자는 그가 고통 가운데에서 몸부림치는 내담자를 상담하게 될 때에 실천신학과 심리학의 교차점에 서 있는 셈이다.

  

리차드 포스터는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영적훈련과 성장’(The Celebration of Discipline)의 서두에서 “겉으로만 그럴싸한 것은 이 시대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xxx]라고 말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피상성이란 현대 정신건강에 대한 치유에 있어서도 역시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말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정신건강기관이나 미국 심리학 협회에 의해 광고되는 경험적으로 증명된 처지법의 최신 목록과 같은 방법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지 생물학적인 간섭이 가능하게 된 이래로, 전문 심리학은 이전의 치유를 위한 좀더 상호 관계적인 접근법에서 벗어나 더 짧고 기법중심적인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성이 기독교적인 경험의 중요한 핵심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또한 이러한 구원적 의미의 관계성이 내담자와의 관계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깨닫는다. 만약 좋은 치유상담이 단순히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치료방법을 전해주는 것 뿐이라면, 자기 성숙이란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만약 좋은 치유상담에는 상담자의 영적인 역동성과 스스로에 대한 준비와 내담자에 대한 관계적인 신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개인적 성숙이란 기독교 치유상담이 다루는 중요한 목표가 된다.

  

이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심리치료에서 행하는 영적인 치료법이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하나의 기법으로 변질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열정은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변화된다. 그래서 훈징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도하는 것과 육체적이며 정서적인 치유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경험적인 연구는 이미 많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연구는 기도에 대한 좋은 변증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 충분히 확신을 얻게 되어서 실제적인 유익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는 것에 전념하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기도의 진정한 중요성과 목적은 이제까지 간과되어왔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대신에 그저 우리의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상태만이 중심을 차지했던 것이다.”[xxxi]

  

 

  

개인적인 성숙은 영적인 치료기법들을 배우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그것은 겸손하게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동행하는 것이다. 맨기스는 자신의 쓴 장에서 묵상 신학과 정신분석 심리학을 다루면서 상담자의 개인적인 성숙이란 효과적인 치유상담을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역설하였다. 우리가 마음을 치유하는 상담 사역을 행하고자 사람들을 뽑고 교육시킬 때에 상담자의 성격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책은 심리학과 신학이 교차되는 영역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영역은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 영역은 풍부한 신학적이면서도 교회론적인 전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또한 현대 심리학의 파괴력과 유익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역시 오늘날의 사역자들의 성격적 자질과 신앙공동체의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이 책이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심리학자들, 성경적 상담가들, 교육자들, 그리고 마음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많은 대화와 고민을 촉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i]) Allen E. Bergin, "Psychotherapy and Religious Values," Journal of Consulting and Clinical Psychology 48 (1980): 95-105; Stanton L. Jones, "A constructive Relationship for Religion with the Science and Professional of psychology: Perhaps the Boldest Model Yet," American Psychologist 49 (1994): 184-99.

  
  
  

[ii]) John of the Cross, Dark Night of the Soul (New York: Doubleday, 1990).

  
  
  

[iii]) Dennis L. Okholm and Timothy r. Phillips, eds., More Than One Way? Four Views on Salvation in a Pluralistic World (Grand Rapids, Mich.: Zondervan, 1995).

  
  
  

[iv])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책들을 보라. Paul C. Vitz, Psychology As Religion: The Cult of Self-Worship(Grand Rapids, Mich.: Eerdmans, 1977); Jay E. Adams, Compent to Counsel (Grand Raipds, Mich.: Baker, 1970).

  
  
  

[v]) Adams, Competent to counsel 참조. Jay E Adams, The Christian Counselor's Manual (Grand Rapids, Mich,: Baker, 1973).

  
  
  

[vi]) 참조. Gary R. Collins, How to Be a People Helper (Santa An, Calif.: Vision House, 1976); Christian Counseling: A Comprehensive Guide (Waco, Tex.: Word, 1980).

  
  
  

[vii]) John Carter and Bruce Narramore, The Integration of Psychology and Theology: An Introduction (Grand Rapids, Mich.: Zondervan, 1979).

  
  
  

[viii]) Dave Hunt, Beyond Seduction (Eugene, Ore.: Harvest House, 1987).

  
  
  

[ix]) Gary R. Collins, Can You Trust Psychology?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Press, 1988).

  
  
  

[x]) Ed Bulkey, Why Christians Can't Trst Psychology (Eugene, Ore.: Harvest House, 1993).

  
  
  

[xi])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Grand Rapids, Mich.: Baker, 1985), p. 563.

  
  
  

[xii]) Ellen T. Charry, "Theology After Psychology," in this volume, pp. 126-27.

  

 

  
  
  

[xiii]) Bergin, "Psychotherapy and Religious Values"; but for some recent changes in this regard, 참조, Scott Richards and Allen E. Bergin, A spiritual Stratey for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1997); Edward P. Shafranske, ed., Religion and the Clinical Practice of Psychology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tion, 1996).

  
  
  

[xiv]) Albert Ellis, The Case Aginst Religion: A Psychotherapist's View (New York: Institute for Rational Living, 1983).

  
  
  

[xv]) Jones, "Constructive Relationship."

  
  
  

[xvi])

  
  
  

[xvii]) Donald S. Browning, Moral Context of Pastoral Care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6).

  
  
  

[xviii]) 참조, Stephen Quackenbos, Gayle Privette and Bonnel Klentz. "Psychotherapy: Sacred or Secular?" Journal of Counseling and Development 63 (1985): 290-93; also see Richards and Bergin, Spiritual Strategy.

  
  
  

[xix]) Jones, "Constructive Relationship."

  
  
  

[xx]) Katheryn Rhoads Meek and Mark R. McMinn, "Forgiveness: More Than a Therapeutic Technique," Journal of psychology and Christianity 16 (1997): 51-61.

  
  
  

[xxi]) Theresa C. Tisdale, Scott E. Thelander and patricia L. Pike, "We Press On Toward the Goal: Introduction to the 25th Anniversary issue, Part 1," Journal of Psychology and Theology 25 (1997): 3.

  
  
  

[xxii]) Steve Bouma-Prediger, "The Task of Integration: A Model Proposal," Journal of Psychology and Theology 18 (1990): 21-31; Everett L. Worthington Jr., "A Blueprint for Intradisciplinary Integration," Journal of Psychology and Theology 22 (1994): 79-86.

  
  
  

[xxiii]) Peter E. Nathan, "In the final Analysis, It's the Data That Count," Clinical Psychology: Science and Practice 4 (1997): 281-84.

  
  
  

[xxiv] Gary R. Collins, "Moving Through the Jungel: A Decade of Integration," Journal of Psychology and Theology 11 (1983): 2-7

  
  
  

[xxv] Worthington, "Blueprint for Intradisciplinary Integration."

  
  
  

[xxvi] Ellen T. Charry, "Theology afther Psychology," this volume, p. 134.

  
  
  

[xxvii] Bouma-Predige, "Task of Integration."

  
  
  

[xxviii] Henri J. M. Nouwen, Ministry and Spirituality (New York: Continuum, 1996), p. 135.

  
  
  

[xxix] Sol L. Garfield, "The Therapist as a Neglected Variable in Psychotherapy Research," Clinical Psychology: Science and Practice 4 (1997): 40-43.

  
  
  

[xxx] Richard J. Foster, Celebration of Discipline: The Path to Spiritual Growth (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88), p. 1.

  
  
  

[xxxi] Deborah van Deusen Hunsinger, "An Interdisciplinary Map for Christian Counselors: Theology & Psychology in Pastoral Counseling," this volume, p.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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