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욘 4;1-3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선지자

32욘 4;1-3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선지자



2009.7.12.주일. 주일오후예배/ 0상담학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 성읍에 대해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이었고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싫어했습니다. 그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다른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그가 처음 도망간 곳은 욥바였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거기서 배를 타고 계속 해서 도망갔습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다시스였는데 아마 그는 거기 있으면 하나님이 더이상 자신이 이일을 하도록 부르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시스에 도착해 있기만하면 하나님이 포기하시고 니느웨 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시든지 아니면 니느웨에는 아무도 보내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자신의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스에 이르기 전에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요나는 모른척하고 배 밑층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풍랑으로 인해 사람들이 난리가 나고 아우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선장은 잠을 자고 있던 요나를 불러 깨웠습니다. 육체적인 그리고 영적인 잠을 자고 있던 요나에게 선장은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신을 불러서 우리를 이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인 하나님을 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풍랑은 더욱 거세어져서 도저히 사람들이 헤쳐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중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풍랑이 오는 것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비를 뽑았는데 그 제비는 정확히 요나에게 걸렸습니다. 요나는 더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때문이라고 실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가 죽어야, 내가 바다에 빠져야 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바다에 던지게 하시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죄를 깨닫고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였지만 요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처음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정말 파도는 더욱 더 거세어지고 도저히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요나의 말대로 사람들은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곧 바다는 잔잔해 졌고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속에 요나가 믿는 신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떨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빠진 요나는 이제 하나님의 손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요나가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순종과 극단적인 선택 속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붙들어주셨고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는 바다에 던져졌지만 물속에 잠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그를 물고기 뱃속으로 집어넣으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숨쉴 수 있었고 의식을 차릴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지난 날에 대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새로운 결심이 그에게서 나왔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온전한 소망이 그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그는 물고기 뱃속을 나와서 육지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요나의 삶을 보았을 때 그의 삶은 앞으로 평탄한 삶이 지속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회개를 했으니 앞으로는 죄짓지 않고 명령을 어기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니느웨로 들어가 하나님 말씀대로 그 땅에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너무나 빨리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애나 어른이나 전부 굵은 베를 입으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문이 왕에게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니느웨 왕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얼른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앞아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자라고 선포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할 일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니느웨 사람들은 강퍅해서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니느웨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의지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기도와 니느웨 왕의 회개를 보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이제 정말 화가 난 사람은 요나였습니다. 요나는 크게 분노하며 분통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따지면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는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다시스로 도망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여곡절끝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서 결국에는 하나님 뜻대로 하기는 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하나님은 니느웨를 용서해 버렸던 것입니다. 망해버렸어야 할 니느웨가 원수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용서하심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차라리 죽여주옵소서! 그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렇게 뜻대로 안될 바에야 이렇게 분노로 가득하게 될 바에야 아예 죽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일을 안할 수도 없고 그렇게 내버려두시지도 않고 하자니 도저히 화가나서 견딜 수가 없고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의 문제의 유형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그의 삶 속에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요나의 모습은 정상적인 것입니까, 비정상적인 것입니까?

이것이 이제 우리가 보고자 하는 '악한 결과'입니다. 요나의 삶 속에는 반복되는 죄의 패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의 패턴이며 악순환의 양식입니다. 그 패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살펴볼 때에 어떤 양식이 반복해서 일어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죄의 결과이며 악한 결과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요나에게 있어서 잘못된 죄의 패턴은 하나님과 뜻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그는 하나님과 뜻이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어긋납니다. 엉뚱한 길로 빠집니다. 애써 모른척 합니다. 의식하지 않습니다.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전혀 하나님의 선지자 같지 않게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같으면 당장 선지자 노릇을 그만두게 할텐데 당장 옷벗게 하고 당장 나가게 하고 당장 안보이게 할텐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선지자였지만 요나의 장점을 아십니다. 요나가 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사실 요나가 선지자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요나를 선지자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요나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점에 더 발전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것만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변화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해집니다. 그러면 완벽해집니다. 그 약한 부분이 치명적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보완만 된다면 요나는 더할 나위없는 주님의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뜻이 안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성경적 상담학에서 첫 번째 '상황'을 보았을 때 그 상황은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 상황을 재빨리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놔두고 오직 각 사람이 그 상황 속에서 무엇을 더욱 괴로워하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괴로운 것이 아니고 더욱 더 괴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통해 우리는 그 상황에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는 '나쁜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힘든 상황'과 '나쁜 결과'에는 서로 상관점이 있습니다. 애초에도 '힘든 상황'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혹은 아무런 이유없이 '힘든 상황'이 그냥 생겼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쁜 결과'입니다. 어찌되었던 이 '상황'과 '결과'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계속해서 상황을 나쁘게 만들고 그로 인해서 계속 나쁜 결과가 생겨나게 만듭니다. 이 둘은 서로 주고받으면서 계속 성장합니다. 계속 커져갑니다. 그냥 놔두면 죽을 때까지 이것이 커져가고 결국은 정말 죽게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혹은 우리 자신에게서 어려운 상황을 발견했습니까?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나쁜 결과'가 무엇인가를 찾아보십시오.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보았던 하나님이 주신 '뜨거운 동풍'과 '뜨거운 햇빛'은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다 요나의 '나쁜 결과'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이 본문에서 맨처음 '힘든 상황'은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연관된 '나쁜 결과'를 보면 요나에게 이전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계속해서 요나는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아서 감사해서 기뻐함으로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하기 싫은 데 꾹 참으면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니느웨로 가라하니 다시스로 가고 배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그냥 죽어버리려고 했습니다. 한번 진짜 죽으려고 하게 되니까 회개하고 다시 살아났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늘 하는 말은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보다도, 선지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부르심보다도, 그를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보다도 그가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못견뎌서 죽여달라고 죽고싶다고 애원하고 호소하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나님을 가슴아프게,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요나를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 요나를 하나님이 어르고 달래며 용납하시는지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은혜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그것을 볼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신지, 얼마나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시는지, 얼마나 반복해서 기회를 주시고 또 사랑해주시는지를 볼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요나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속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그 문제의 유형과 반복되는 악순환의 패턴과 죄의 양식이 무엇인지를 보면 요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해는 앞으로 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양식, 패턴, 유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이 유형은 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뜻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진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진로의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끊임없이 힘든 상황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힘든 상황'과 '악한 결과'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 지를 보았습니다. 이 둘은 매우 유기적입니다. '악한 결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새롭게 시작되는 '상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해프닝이고 일화이고 사건에 불과합니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상황을 선하게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상황'을 악하게 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내고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하고 다시 더 큰 힘든 상황을 만들어내게 합니다.
이러한 연관관계를 잘 이해하셔서 우리의 삶에 생기는 모든 상황 들 속에서 악한 결과가 아니라 선한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인과관계를 잘 살펴서 그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의 문제나 혹은 다른 사람의 문제에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한 이해를 통해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필독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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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07-06 (화) 14:36 3년전
'이전에 우리가 성경적 상담학에서 첫 번째 '상황'을 보았을 때 그 상황은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 상황을 재빨리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놔두고 오직 각 사람이 그 상황 속에서 무엇을 더욱 괴로워하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괴로운 것이 아니고 더욱 더 괴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통해 우리는 그 상황에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는 '나쁜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힘든 상황'과 '나쁜 결과'에는 서로 상관점이 있습니다. 애초에도 '힘든 상황'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혹은 아무런 이유없이 '힘든 상황'이 그냥 생겼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쁜 결과'입니다. 어찌되었던 이 '상황'과 '결과'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계속해서 상황을 나쁘게 만들고 그로 인해서 계속 나쁜 결과가 생겨나게 만듭니다. 이 둘은 서로 주고받으면서 계속 성장합니다. 계속 커져갑니다. 그냥 놔두면 죽을 때까지 이것이 커져가고 결국은 정말 죽게됩니다."

위 의 글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경적 상담자는 피상담자에게 재빨리 변화되도록 요구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놔두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괴로와하는 중에 문제을 인식하고 원인을 이해하고  성령의 역사하는 시간하시고 그 음성을 듣고 반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밥을 하고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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