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행 2;38-42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장소2_5
2014.5.23.금.금요철야.
*개요: 상담비전, [55충만]
{6서신서} <B관점> [7실천]-[8사역]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3)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서 성경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올바른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 속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허황된 환상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가정을 이루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가
공부잘하게 하는 곳도 아니고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곳도 아니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곳도 아닙니다. 물론
교회의 영향 중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오해되면 마치 교회의 본질이 그런 유익을 가져다 주는 곳으로 오해하게 만들것입니다. 진정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본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결국 교회를 파탄나게 하고 교회가
세속화되게 하고 교회가 타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본질에 입각하지 않고 궁극의 목표를 부인하는 것이
결국에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교회를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지, 교회가 타락하고 퇴보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바로 성경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성경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교회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들의 수가 세 명이기도 하고 삼백 명이기도 하고 삼천 명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일을 하는 교회의 규모가 세 명이기도 하고 삼백 명이기도 하고 삼천 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게 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단지 행복만이 아니라 단지 기도성취만이 아니라 죄악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에서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릴 때에 비로소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그것이
참된 생명이자 능력이 됩니다. 그렇게 변화를 받아서 세례를 받고 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그 새로운 세계에서 여러가지 주님의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깁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일들은 가르침을 받아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교제하는 것입니다. 떡을 떼며 나누는 것입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삶이 교회생활입니다. 교회생활을 위해 가정생활이나 혹은 학교, 직장생활을 그만둘 필요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에게는 개인생활과 가정생활과 학교, 직장생활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주님께 기도하며 떡을 떼며 교제하며 가르침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기도함으로 이루어야 할 일이 바로 개인적인 삶에, 가정의
삶에, 학교와 직장의 삶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제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고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면 어떤 원리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훈련이나 학습이나 교육에 의해서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훈련과 학습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근원은 단순한 훈련과 학습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더 강한 욕구의 자극이 있습니다. 그
훈련을 받고 나면 얻을 수 있는 더 많은 인정을 주고 더 큰 자존감을 갖게 하며 더 강한 권력을 쥐어주면서 그런 과정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희생과 헌신이 목적이 되는 훈련과 학습은 결코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무엇이 이러한 훈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요? 38,39절을 보십시오.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레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그들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온전한 교회생활을 가능하게 되고 훈련을 통해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풍선에 넣는 수소가스와 같습니다. 풍선에 인간의 입김으로 공기를 불어 넣으면 그 풍선은 땅에 가라앉아 버리지만 수소가스를 집어 넣으면 그 풍선은
둥둥 떠오릅니다. 그 이유는 수소가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통해 세례를 받는 것은 세례를 받고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은 우리에게 부어진 성령을 통해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만 온전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어떤 기독교 방송에서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성도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에 충만하게 되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계속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온전한 구원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기를 소원합니다. 몇몇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오게되고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경험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그러한 본질로 가득찰 수 있도록 함께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 스스로 교회가 그런 곳이 아니라고 부인해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어색하다고 말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런 경험이
없으면 이상하게 느껴지도록 우리가 교회를 성경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갑시다. 온전한 교회의 모습속에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의 본질을 깨달아 하나님의 주시는 놀라운 신앙의 충만함을 누리게 되시기를 다시한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