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민14:1-10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설득함_3
2011.12.14.수, 수요예배, 상담설교 [52능력]
*개요 {1오경} <A적용> [3감정]-[6결심]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상황과 한계 속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주님을 따르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의심의 말과 거짓의 말, 그리고 죄악의 말을 버리고 충만의 말, 정복의 말, 다스리는 말을 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우상으로 삼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서 사탄의 말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그리스도인의 말이 악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선해지기 까지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비록 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선을 말하고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은 평안할 때, 행복할 때, 아무 고민이 없을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원하시는 말은 바로 힘들고 어려울 때 할 수 있습니다. 갈등이 고조되고 사탄의 원하는 말이 가득해질 때 하나님의 원하시는 말은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말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는 악한 말을 통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부정과 범죄가 일어나지만 선한 말을 통해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열심과 믿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가는 하나님께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으며 그러한 말을 통해 우리는 법률적이고도 언약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말은 하나님께 대한 저항과 반역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말의 중요한 표현을 우리는 본문 속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장 혼란스럽고 악한 말 속에서 가장 온전하면서도 신앙적인 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법률적이며 언약적인 의미가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대우하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이 말하고 있었던 악한 말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햐냐”
이 말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하고 있던 악한 말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 죽게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죄악의 말입니다. 또한 여호와가 칼에 망하게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의 말입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심의 말입니다. 이전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바로 그 의심과 거짓과 죄악의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더 큰 죄악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악한 말은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거부와 대적함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말은 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었습니다.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자들에 대해서 죄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그들은 대담하게도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 하였고 그것이 그대로 여호와에 대한 대적과 반역의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말 속에서 주님을 의심하고 주님을 거짓으로 만들고 주님께 죄악을 짓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3.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능한 형편에서 주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형편에서 주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악한 말에 반하여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말속에서 우리는 충만과 정복과 다스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버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분명히 하나님의 보여주신 아름다운 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곳은 정말 하나님의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의심하였지만 그들은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곳이 정말 좋은 곳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는 너무 높아서 따먹지 못하는 포도에 대해서 여우가 아마 저것은 시어서 먹지 못할 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이루지 못할 일에 대해서 폄하하고 평가절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하나님께 대한 의심과 거짓의 말일 뿐입니다. 충만한 말을 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고백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땅이었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낙자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9절을 보십시오.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바로 정복의 말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정복하면 된다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말이었습니다. 불가능하기에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정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스림에 대해서 여호와수아와 갈렙은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할 때에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스리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행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온전한 말이었던 것입니다.
4. 우리의 말은 법률적 언약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국 이러한 두 가지 말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다 죽어가는 자들이 되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살아서 땅을 차지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말은 법률적 언약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하고 부인하고 거부하고 의심하는 말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만들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해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서 더 큰 심판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온전한 말은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충만하자고 정복하자고 다스리자고 말해야 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구할 것은 구하고 기대할 것은 기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말을 오늘도 실천해 봅시다. 옆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충만합시다!’ ‘정복합시다!’ ‘다스립시다!’ 주님이 주신 삶속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더욱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